일천번제헌금 하지말라 / 황부일 목사
얼마 전에 아는 어떤 교회 집사님이 자녀들 이름으로 각각 일천번제 헌금을 한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목회자이지만 그런 헌금이 있다는 얘기를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내가 그런 헌금 분야에 너무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무관심이었는지, 아니면 목회 정보교류가 너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처음 들은 황당한 일이였고 해서 그게 무슨 헌금인지, 또한 다른 교회들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의외로 그런 헌금을 권하는 교회들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헌금은 아이들이나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 부모들이 거리낌 없이 대체적으로 다른 헌금보다 자원해서 잘 하는 편임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런 것을 그렇게 하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를 얻은 것처럼 내 자식도 지혜를 얻어 공부를 잘 하게 되고 남보다 영특한 자식이 되는 줄 알고 있거나 또한 믿고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을 언제 누가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만 오늘날 이 땅의 다수의 교회들이 그런 헌금을 유도하고 있고 공부하는 자식을 둔 부모들은 헌금의 액수를 정해놓고 주기적으로 천 번의 횟수를 채워가게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그렇게 이용해서 헌금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위를 이어 예루살렘에 두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아직 성전을 짓기 전 기브온 산당에 가서 제사했다고 했습니다. 거기는 산당이 컸다고 했는데 실로에서 옮겨온 성막과 번제 단이 있었고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기브온에서 그 밤에 여호와께서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때 솔로몬은 자신은 작은 자라 이스라엘의 많고 큰 백성을 재판할 수 없으니 지혜로운 마음을 주어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들어주셨다고 했습니다(왕상 3:3-12). 바로 이 내용을 이용해서 일천번제 헌금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구하는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천 번의 헌금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런 자식들에게 지혜를 줄 것이요 그래서 남달리 공부 잘하게 될 것이라는 어떤 지도자들의 말에 단순하고 부족한 교인들은 그런가 하여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자식들의 이름으로 천 번의 헌금을 횟수를 헤아리며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실로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일인 것이죠.
이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자칫하면 속이고 속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아무소용도 없는 헛된 일만되거나 무엇보다 잘못된 신앙에 어리석게도 빠져드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솔로몬의 일천번제가 횟수로 천 번의 제사를 드린 것인지 아니면 번제 제물의 량이 천 마리가 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역대하 1장 5-6절에 보면 옛적 홀의 손자 우리의 아들 브사렐의 지은 놋단에 솔로몬이 회중과 더불어 나가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일천번제는 제사 횟수가 일천 번이 아니라 그 당시 그가 기브온에 가서 일천 마리의 제물을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번제는 가축(비둘기도 포함됨)을 잡아 불에 태워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양사방 약 2.2m 크기의 놋단에 한꺼번에 그 많은 희생을 드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주석에서 7일간 솔로몬이 번제를 드렸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으나 성경을 보면 번제를 드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했으니 며칠을 하고 마친 날이 아니라 번제를 드린 그 날이니 며칠 걸렸다고도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일천희생은 상징적인 숫자이고 그날 많은 제물을 번제로 드렸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솔로몬이 일천 번의 제사를 한 것은 분명 아니라는 것입니다. 역대하 1장을 보면 그는 이스라엘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재판관과 각 방백과 족장들과 온 회중과 함께 나아가서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단에 이르러 그 위에 일천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대하 1:2-7 참조). 그러니까 이 번제는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고 이스라엘을 이제 통치해감에 있어 먼저 하나님께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자들과 함께 행한 공적인 봉헌식이었던 것입니다. 많은 예물로 하나님께 드리며 함께 한번의 의식을 가진 것입니다. 그것이 이어지는 번제였든지 하루 종일 걸리는 번제였든지 분명 하나님을 먼저 기억하고 그분 중심으로 이스라엘을 세워가는 시작에서 하는 한번의 공적인 봉헌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하든, 또는 무엇을 세웠든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천 번을 나누어서 헌금을 하라는 것은 어거지로 맞추어 보려 해도 안 맞는 것입니다.
이제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가령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했다 해도 오늘날 요구되는 일천 번의 헌금하고는 형식도 의미도 안 맞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에서 제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을 숭배하는 보편적인 예배요소요 예배의식이었던 것입니다. 제물이나 예물만 달랑 한번이든 아니면 몇 차례든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다고 그 횟수를 따져 헌금만 천 번 한다면 그것은 한번의 제사형식도 안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제사횟수를 따져 오늘날 무엇을 하겠다면 일천 번의 예배를 해야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자원해서 그래야 형식이라도 맞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만 번의 많은 헌금을 드려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오늘날 일천번제 헌금을 하는 자가 실제 누구 입니까? 이름만 자식 이었지 신앙의 부모가 내주는 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번제는 자원하는 헌신예물인데 지혜를 얻어야할 자식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부모가 자식 머리 좋아진다니까 그것을 기대하고 대신 내주는 것이니 우스운 얘기 같을지 모르겠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신다면 자식이 아니라 그 부모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확실하게 따져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그가 하나님 나라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다스리며 바르게 인도해야할 지도자에게 필요한 판단력이었고 하나님 중심의 분별력이었고 모든 사물과 되어지는 일들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통찰력이었고 무엇보다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이 담긴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잠언서와 전도서, 아가서, 그리고 몇 가지 시편을 기록할 정도였던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그의 지혜에 대해 증거 하기를 전에도 솔로몬 같은 자가 없고 그 후에도 그와 같은 지혜 자가 일어남이 없을 것이라고 분명 말씀했습니다(왕상 3:12).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솔로몬 같은 지혜를 얻고자 한들 되겠습니까? 그리고 오늘날 교회에서 솔로몬의 지혜와 더한 영화를 걸고 은근히 강조하고 또한 유도하는 일천 번의 헌금으로 얻고자하는 지혜와는 너무도 차원이 다른데도 로비나 뇌물이면 다 되는 줄 아는 세상 사람처럼 천 번의 헌금을 드려 하나님의 마음을 사서 내 자식 세상 학교 점수 잘 받아서 좋은 대학가는 공부 잘하는 아이큐적 지혜를 얻으려하니 어디 될 말입니까?
일천 번의 헌금을 얼마씩이나 하는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만원씩만 해도 천만원인데 우리같이 아이가 넷씩 되는 집은 어떻게 해야 할지??????. 큰 놈이나 공부 잘하게 대표로 하게 해야할지 그러자니 편애 적이라 나중에 원망 들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천원씩만 해도 사백만원이 되는데 그래도 아이들 위하고 특히 요즘 부모들 내 자식 공부 잘하는 것이라면 파출부해서라도(심지어 말 못할 일까지 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돈으로 밀어 주려고 할 정도로 제일 된 관심이 거기에 있음을 아는 어떤 머리 좋은 헌금 개발론 자가 바로 이 일천번제헌금을 창출해 내고 또한 그와 비슷한 자들이 정보교류를 통해 적절히 이용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잘못된 신앙의 지도자는 우리를 더욱 어리석게 하고 맹종케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가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부족하고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적인 모습이나 부분을 교묘히 이용하여 조련해 갑니다. 보통 교인들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고 협력하지만 헛될 뿐이고 잘못된 신앙의 소용들이 속에서 맴돌거나 더 빠져 갈 뿐인 것입니다.
분명 일천번제식 헌금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을 시키는 자나 기대하고 하는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서로 자기 소욕을 위해 이용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을 실족케 하는 잘못은 더 큰 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제 일천번제 식 헌금은 시키지도 말고 또한 누가 시키더라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녕 내 자식이 지혜롭기를 원한다면 신앙의 부모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하나님말씀으로 훈계하고 양육하며 내 자식을 어릴 때부터 영어만 먼저 가르치려말고 구원을 이루는 영생의 하나님 말씀을 좀더 가까이 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했습니다(시 19:7-8). 그리고 말씀을 따라 아이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잠 22:6). 그리고 그 자녀와 더불어 가정에서 주기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기를 권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녀가 될 것이며 참 지혜를 가지고 이 어둡고 혼란하고 점점 미혹 적이고 악해지는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 된 자로 바르고 굳게 인도받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자식보다 우선 신앙도 헌금도 잘 모르는 부모 된 내가 먼저 복음으로 깨닫고 밝게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랑하는 자식도 잘 지도하며 이끌 수 있는 앞선 자가 될 것입니다.
헌금은 내 기대와 그 실현을 위한 선불이나 투자가 아닙니다. 바치면 더 받게 되는 복채 같은 것 또한 아닙니다. 헌금은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예물이요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삶을 위한 구별이요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는 증거물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된 자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켜 가는 은혜의 동참인 것입니다.(*)
*글쓴 이/황부일 목사, 고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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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번제 제사, 알고 보니 '한 번' 1천 번의 제사를 드린 게 아닌 '1천 마리'의 생축을 태운 제사
윤종상
한국교회에 무지한 목회자와 성도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에 대해 통탄하며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성경이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음에도 최소한의 살핌과 연구도 없이 임의로 해석하고 무리하게 적용하는 목회자와 성도를 바라볼 때 실로 한국교회의 모습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소위 '일천번제'다.
솔로몬이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리자 그날 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으신 성경의 사건을 두고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1천 번의 제사를 드린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일천번제는 '1천 번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1천 마리의 생축을 불태워 제사 드렸다'는 뜻이다. 한자로는 一千番祭가 아니라 一千燔祭인 것이다.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에는 '1천 마리의 생축'으로 표현해 이해하기 쉽게 되어 있다.
무속신앙과 다를 바 없는 일천번제(?)
NIV를 보면, 솔로몬이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The king went to Gibeon to offer sacrifices, for that was the most import!!ant high place, and Solomon offered a thousand burnt offerings on that altar".[왕이 희생물을 드리려고 기브온으로 갔다. 이는 그곳의 산당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솔로몬이 그 제단 위에 번제 헌물 천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렸다](왕상3:4).
솔로몬이 왜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갔는가. 그것은 그 산당이 그 시대에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곳은 1천 개의 번제 헌물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였다. 천일 동안 매일 매일 바쳤다는 것은 솔로몬의 일천번제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솔로몬이 제사장도 아니고 매일 매일 3년 동안 번제 드리는 일에만 골몰했다면 어떻게 왕국을 다스렸겠는가. 그것은 왕이 되고 나서 드리게 된 한 번의 번제에 1천 개의 헌물을 드렸다는 뜻이다.
성경을 바로 보라. 일천번제는 '1천 날 동안 희생을 드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1천 개의 번제 헌물을 드렸다'는 의미다. "솔로몬이 회중과 함께 그 성막으로 나아가 거기서 주 앞 곧 회중의 성막으로 나아가 거기서 주 앞에 곧 회중의 성막 옆에 있는 놋 제단에 이르러 그 위에 번제 헌물 1천 개(a thousand burnt offerings)를 드렸더라"(대하1:5b,6). 역대상 29장 21절과 역대하 7장 4∼7절 등 솔로몬의 제사를 다룬 다른 성경구절을 보더라도 1천 마리의 생축을 태워 제사 드린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굳이 원어를 보지 않고 영어 성경을 한 번만 살펴봐도, 현대어로 번역된 성경을 한 번만 봐도, 이러한 우를 범하지는 않을 텐데. 무속신앙에서 백일 기도 또는 천일 기도를 드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천번제를 그저 그렇게 막무가내로 이해하는 것은 뿌리 깊이 박힌 샤머니즘에서 비롯된 것일까.
어려우면 일천번제 헌금해라
이러한 문제는 기독교 백화점에서 일천번제 헌금 봉투가 버젓이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면, 일천번제 헌금을 해 보라고들 말을 한다. 3년은 헌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무지하고 공부 안하는 목회자들의 부끄러운 한 단면이다.
더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일천번제운동본부니 하는 것도 생겨나고 있고, 거기에 회장이니 위원장이니 하는 직함들도 무슨 자랑이라도 하듯이 버젓이 내밀고 다닌다. 일반 성도들이 무슨 큰 잘못이 있을까. 잘못이 있다면 너무 분별없이 따른 무지의 잘못일 것이다. 정말 몰라서일까. 아니면 알고도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이용하는 것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그는 틀림없이 신학도 없을 뿐더러 기복신앙에 물든 사람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일천번제 헌금을 유도하는 목회자의 기복신앙 내지는 세속화된 신앙을 이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천번제 헌금의 발생은 교회가 점점 돈을 좋아하는 기복신앙의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요, 목회자들의 세속화된 목회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의 변질을 주도하는 목회자의 역할을 버리고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만일 내가 바친 천일의 헌물이 내 기도 응답에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돈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곧 배교다. 하나님께서 받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헌물은 우리의 물질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이다.
"이는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면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도 그리하실 것임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정죄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그분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고 그분의 눈 앞에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행하기 때문이라"(요일3:20~22).
가장 좋은 헌물은 신뢰하는 믿음
성경은 결코 돈이나 인간적인 정(情) 때문에 기도가 응답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방종교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백만 원 헌금을 천 원씩 천 번을 하겠단다. 차라리 땡빚을 내서라도 한꺼번에 왕창 드리면서 하나님께 서원해 보라. 차라리 그게 본래 일천번제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것이다.
듣기로는 한국에 일천번제를 처음 도입한 장본인이 말만 하면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모 목사로 알고 있다. 무리하게 성전건축을 벌려놓고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만들어 낸 것이 소위 일천번제란다. 손해 볼게 없는 장사란다. 무지한 성도들이야 복받는 일이라는데, 그것도 솔로몬이 받은 유사한 복을 받겠다는데 안 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정작 번제를 드리고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은 태도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로도 계속 번제를 드렸는가.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는 왜 기록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구약의 제사를 반복해서 드리는 히브리인에게 희생 제물과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 성전 제사를 중단하라는 것이다.
"이제 이것들을 사면하셨은즉 다시는 죄로 인하여 헌물을 드릴 필요가 없느니라"(히10:18). 구약에 드려졌던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온전히 드리실 것에 대한 예표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스스로 피를 쏟는 희생 제물이 되시므로 구약의 번제를 더는 필요 없게 만드셨다. 누구든지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드리고자 하는 자는 이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번제의 진정한 의미다.
영원한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없이 돈으로 번제를 드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의 희생을 격하시키는 것이며, 그것에 견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행동이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떳떳이 서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 흘리신 피가 우리의 모든 죄들을 사함 받게 하시며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성령으로 다시 나게 하신다. 우리의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있으므로 우리는 언제든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새롭고 살아있는 길로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함을 얻게 되었나니 이 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휘장 곧 자기의 육체를 통해 거룩히 구분하신 것이라. 또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께서 우리에게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정결한 물로 씻겨졌으니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히 10:19-22).
일천 번의 헛된 경배에서 벗어나라
잘못된 일천번제 습관은 좋은 의도로 시작했더라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돈을 착취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무지한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놓으신 번제를 희석시키게 하는 행습을 속히 중단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구약의 번제를 계속 우리 시대에 끌어오려고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루신 갈보리의 희생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먼저 성경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물질을 신뢰하게 하고, 물질을 걸고 기도하게 하는 종교지도자들은 이러한 종교적인 행태에 대해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당신은 혹시 이런 것에 속고 있지는 않는가. 그것이 헛된 경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백성이 자기 입으로는 내게 가까이 오며 자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거니와 사람들의 명령을 교리로 삼아 가르치니 내게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 15:8~9).
그리고 목회자와 설교자가 최소한의 공부라도 해야 할 것이다. 성경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설교해야 한다. 비성경적인 것이라면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교인들을 무지와 탐욕으로 이끄는 일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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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일천 번제(一千燔祭)에 대한 이해와 문제점
요즈음 일천번제에 대한 문제로 고민하는 성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경로를 통하여 문의가 쇄도하고 있고 피해 사례도 접수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주로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일천번제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교회에서 헌금을 강조하는 것인데 한 번에 만원씩 천 번을 하는 식으로 정한 금액을 천 번을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천 번의 헌금을 지극 정성으로 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실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성도들이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독교 서점에 가도 버젓이 일천번제 헌금봉투가 예쁘게 인쇄되어 팔리고 있는 실정인 만큼 일천번제 헌금은 현하 한국교회에서 아무런 제재 없이 행해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일천번제는 헌금뿐 아니라 기도에도 일천번제를 사용하는 경우를 봅니다. 신월동 동아교회(강창훈 목사)에서는 1,000일기도 즉 일천번제 기도를 2년 9개월 동안 매일 이어가고 있는데 천일 작정기도회의 힘이 교회성장의 원동력이 된다고 합니다. 강목사는 “1,000일 작정기도회”(예솔)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2001년부터 24차례 전국 목회자와 사모 세미나를 하면서 800여 개의 교회가 “1,000일 작정기도회”에 동참하여 성도들을 깨우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강목사의 책 내용을 보면 그가 합천 해인사에서 3,000번 절을 하고 삭발한 후에 행자승이 된 일이 있었고 그후에 신유은사집회에서 주의 종으로 변화 받았다고 합니다.
또 기도혁명교회(최옥석 목사)는 일천번제를 일곱 번 하는 칠천번제 예배를 드렸는데 기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일천번제본부” 산하에 기도총신연구원, 세계칠천번제본부, 칠천번제대성회, 세계기도올림픽, 세계기도운동본부, 기도방송국, 기도타임지, 세계장로권사영성원, 신부단장원, 영적성경번역출판부 등 다양한 기관을 설립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심지어 태신자 전도를 위한 일천번제 전도운동을 하는 곳도 있습니다(성결교 류우열 목사). 그에 따르면 태신자를 정하고 그를 위해서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기도하며 관계를 맺고 전하는 방법인데 새벽기도시간에 헌금봉투를 준비하여 태신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일천번제 횟수를 기록하고 봉헌자의 이름도 기록한 다음에 1천원씩 천 번을 드리면서 기도하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한 내용을 읽었습니다.
서울의 모 교회는 1997년 4월 6일 21세기가 되는 새천년이 1,000일이 남았다며 일천번제에 동참할 것을 성도들에게 호소하였는데 결국은 성전건축을 위하여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모든 성도들에게 고유번호까지 부여해 가며 헌금을 드릴 것을 독촉하였는데 그 교회가 7천명정도 되었는데 70억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일천번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기도하게 하고 전도하게 하고 헌금하게 하는 것이 나쁜 것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굳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일천번제의 이름으로 하고 있는 것들이 과연 옳은 것인가? 묻는다면 단호하게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솔로몬이 드렸던 일천번제에 대한 이해를 전혀 달리하고 잘못된 해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결과를 얻기만 한다면 그것이 옳든지 그르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겠다는 데는 전혀 찬성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시대가 성공위주의 시대요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수단은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는 세상풍조인데 교회도 똑같은 길을 걸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필자는 일천번제에 대한 이해와 그 문제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일천번제에 대한 잘못된 해석문제입니다. 일천번제의 근거를 열왕기상 3장 4절과 역대하 1장 6절의 말씀에 두는데 문제는 일천번제(一千燔祭)를 일천 번(一千番) 드린 제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천번제는 일천 번씩 제물을 드린 것이 아니라 일천 마리의 제물을 한꺼번에 드린 것을 말합니다. 즉 일천번제는(one thousand burnt offerings) 일천 마리의 양을 제물로 하여 하나님께 드린 것을 말합니다. 역대하 7장 5절에 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 낙성식에서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소가 2만2천이요 양이 12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물의 분량이 그 만큼 많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일천번제를 일천 번의 제물을 드린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왜곡된 해석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그렇다면 단순히 해석상의 문제로만 그것을 돌리고 말 것인가? 다른 이유는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본인의 생각이지만 일천번제가 기독교에서 행해진 것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불교에서는 천배, 2천배, 3천배, 만배 등 절을 하면서 자신의 소원을 비는 풍습이 있는 것을 잘 압니다. 절을 그 만큼 많이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정성이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지극 정성으로 빌면 소원을 이룬다고 믿는 불교의 신심을 기독교에 접목하여 일천 번의 제물을 드리면 그 만큼 정성이 커서 기도응답을 받을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설득력 있게 헌금을 강조하게 된 것이라 사료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교회의 일부 잘못된 부흥사들과 목회자들의 헌금 걷는 방법으로 동원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 한국교회에 헌금종류가 얼마나 많은가 하는 것은 기독교인이라면 잘 압니다. 심지어 야곱이 자기 아버지 이삭에게 별미를 드리고 축복을 받았는데 그것을 빙자하여 별미헌금까지 만들어 헌금을 하게 한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일천번제 헌금이라하여 작정케 한 것은 성경에는 없는 왜곡된 방법으로 헌금을 내게 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헌금을 걷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잘못된 방법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셋째는 번제에 대한 이해입니다. 번제(燔祭/burnt offering)는 짐승을 잡아 각을 뜨고 피를 내어 뿌리고 그 몸을 불태우는 제사로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돈이나 금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제사였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하여 목적을 가지고 드리는 제사가 아니라 진정한 자기헌신의 표시였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린 것이 번제였고 속죄제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산 제사(living sacrifice) 즉 살아있는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로마서 12:1). 그런데 오늘 날의 일천번제는 완전히 왜곡되어 정성을 드린 후에 소원을 성취하고 응답을 받겠다는 의도로 드려지고 있으니 바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얻기 위하여 일천번제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번제라는 말 자체가 어떤 요구나 목적을 가지고 드린다는 뜻이 아니라 희생이요 헌신이라는 의미입니다. 번제가 헌금으로 둔갑하여 드려진다면 번제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일천번제에 대하여 이해를 하고도 교회에서 일천 번의 제물을 드리는 일천번제를 시행한다면?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하여는 성도들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맡기기를 원합니다. 일천번제를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성도들 자신이 판단하여 행동할 것을 기대합니다. 목회자가 헌금을 걷기 위한 방법으로 동원되었다면 철저하게 반대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교회바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책이름은 “교회바로보기”라는 뜻을 줄여서 한 것입니다. 성도로서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하면서 잘못된 관행이나 제도, 그리고 목회자의 잘못된 행동들을 소설형식을 빌어서 기록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성도들도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해서 옳은 것은 따르지만 그른 것은 따르지 않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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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샬롬! 일천 번제는 단번에 일천 마리의 소 나 양 을 잡아 하나님께 드린 솔로몬 의 신앙의 순종입니다. 그걸 요즈음 목회자들 이 곡해 하고 편법으로 활용해서 는 헌금을 울궈 먹는 ? 거라고 보면 됩니다. 좋은 지적입니다.
성도들에게 귀감이 되어야할 좋은자료, 감사합니다.제가아는 교회도 성전건축이라는 기도제목으로 전교인들에게 일천번제봉투를 돌리고 성전과 가정의 복을 빌기위해서 다같이 솔로몬의 일천번제를 하자고 독려하고 기도와 설교중에 강조하던군요 ,제가 본게시글과 같은 내용을 말하고, 더 나아가.솔로몬은 군주이니까 할수있는 대규모 번제를 했다고 말을 꺼내고서는 , 물론 왕따당했지요~ㅎㅎ
샬롬 초민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일천번제는 하나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무속적 사고로 치성을 드려서 자신의 소원의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과 더불어 일천번의 예배와 헌금을 받고 비로소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를 하게 합니다, 번을 burnt가 아닌 number로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오히려 전병욱목사님은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여 전심으로 드리는 예배가 일천번제라고 하셨습니다,
grace~ 님이 제대로 보셨습니다. ^^
좋은글입니다 ...추천한표입니다 ...이를 알면서도 헌금 수입이 줄어들까 쉬쉬하며 방조하는 것이 더 큰잘못이지요^^.
주명님께서도 일천번제헌금 반대운동에 동참해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샬롬
'일천번제헌금' 중고등부 교사인데요...헌금 계수중에 보니 우리 학생중 하나가 일천번제헌금을 했더라고요~ 생소하기도 하고,솔로몬이 드린 일천번제는 그런 것이 아님을 알기에 교육목사님에게 '일천번제'에 대한 견해를 여쭤봤는데...답변을 들은 후 실망스러움을 금치 못했답니다.... 고신쪽에서 공부하신 분이고, 성경에 박식 하신 분이라 바르게 설명해 주실 줄 알았는데...ㅠㅜ 좋은 내용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에게도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진리만을 가르치지를 바랍니다. 샬롬
예수믿기시작하던 20여년전에 하던말들을 아직도 하고 있네요
편지쓰는중님 구체적으로 말해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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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일천번제헌금 반대운동에 동참이 전부가 아닙니다. 개인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으면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