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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아려 본 슬픔 』
( A Grief Observed )
저 자: C. S. 루이스 출판: 홍성사 / 한국출판 2004년 3월 30일
Q1 오늘 소개하여 주실 책은 어떤 책입니까?
A 오늘은 좀 어려운 책을 골랐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한 세계적 기독교 저술가의 고백입니다. 이 책에 대한 추천평을 퍼블리셔스 위클리 Publishers Weekly >지는 이렇게 썼습니다.
< 죽음과 결혼, 신앙의 의미에 관한 지극히 사적이며 고뇌에 차 있으며 명쾌한 책!" >
책제목은 < 헤아려 본 슬픔>이고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저술가 C.S 루이스가 썼습니다. 한국에서 출판은 홍성사에서 만들었습니다.
Q2 오늘 소개하는 책 <헤아려 본 슬픔>의 저자 C.S 루이스를 모르는 분들이 계실텐데 소개하여 주시죠?
A. Clive Staples Lewis 클리브 스태플스 루이스 는 20세기를 대표하는 기독교 지성가이며 기독교 변증가입니다.
지성적이며 논리적인 신학자로 개신교, 성공회, 로마 가톨릭 등 기독교 교파를 초월한 기독교의 교리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로 영국 3대 판타지 소설가로 꼽히는 유명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는 확고한 무신론자였다가 로마 가톨릭 신자이자 소설가인 톨킨과 다른 친구들의 영향으로 30세 때인 1929년 성공회 신앙을 받아들여 성공회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서 평생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루이스는 작가로서 수십권의 책을 냈습니다. <<나니아 연대기>>는 그의 유일한 판타지 소설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입니다. 종교를 넘어서서 보편성을 얻는 주제들로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흥미진진한 작품으로 평가되는 <<나니아 연대기>> 중 <마지막 전투>는 이 연대기를 대표하여 카네기 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다룬 『순전한 기독교』, '악마의 편지'라는 우화 기법을 통해 정작 인간의 삶과 본질을 새로운 각도로 보여준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이상 홍성사)이외에도 『고통의 문제』,『예기치 못한 기쁨』,『네 가지 사랑》,『기독교적 숙고』가 있습니다. - 루이스의 책은 한국에서 주로 홍성사에서 만듭니다.
무신론자 였던 루이스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접근을 늘 의식하고 있다가, 1929년 어느 날 밤 마침내 신 앞에 항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날의 회심은 '복음적 신앙'으로의 회심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신론'으로의 회심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31년 어느 가을 밤, 옥스퍼드의 동료 교수이자 가톨릭 신자인 톨킨 J. R. R. Tolkien과 성서와 신화를 주제로 나누었던 긴 대화를 통해 마침내 기독교 신앙의 핵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 루이스는 자신의 소명은 교회 밖(언저리)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정 교파에 국한되는 교리가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기독교의 정수―"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를, 전문 신학 용어가 아닌 현대인의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표현해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분투는 결국 그에게 "회의자를 위한 사도"라는 별명을 안겨줍니다.
Q3 < 헤아려 본 슬픔>은 어떤 책인지 먼저 대략적으로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A 세계적인 기독교 사상가이자 변증가인 루이스는 독신으로 살다 59세에 여류 시인 조이(Joy)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불과 4년만에 아내 조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 책은 그가 사별이라는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써내려간 일기로,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아내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다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 안에 귀착하기까지의 마음의 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추스릴 수 없는 격정 가운데, 그리고 때로는 깊은 묵상 속에서 그가 만난 인생의 의미, 그리고 하나님의 존재가 본문 가운데 가득합니다. 루이스와 조이의 사랑은 <셰도우랜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세상에 잘 알려지게 됩니다. <헤아려 본 슬픔>은 루이스의 사랑, 그리고 아내를 향한 한 지성인의 애절한 순애보를 만날 수 있습니다.
Q4 세계적인 작가 루이스와 4년간 결혼했던 여인은 어떤 분입니까 ?
A 조이Joy Gresham는 루이스보다 열여섯 살 연하였습니다. 그녀는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들을 발표한 미국 작가로서, 애초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였으나 루이스의 저술들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기독교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조이는 시인이며, 재치와 지성미를 갖춘 여인으로, 평생을 독신으로 지내던 루이스는 58세에 조이와 결혼을 합니다. . 영국으로 이사를 왔는데 암에 걸렸지만 치료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루이스가 이때 조이의 영국 시민권을 얻게 해주기 위해 조이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사랑했지만 암치료를 위한 결혼이었습니다. 이미 불치의 골수암에 걸린 상태였음이 뒤늦게 알려지고, 죽음의 신이 연적이 된 상황에서 조이에 대한 루이스의 사랑은 급속히 깊어졌습니다. 1957년 3월 조이의 병실에서 성공회(Anglican) 혼인예식에 맞게 결혼식을 올렸으나 4년만에 결국 사별로 끝나고만 이 아름답고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훗날 연극으로 만들어졌고, 또 그 연극 대본을 기초로 하여 영화 '섀도랜드 Shadowlands'가 제작되었습니다.
루이스가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기기 위해 일기 형식으로 적었던 글이 오늘 소개하는 책 『헤아려 본 슬픔 A Grief Observed』입니다 루이스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가명(N.W CLARK 라는)으로 출판되었습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같은 날, 루이스는 자택에서 조용히 숨을 거둡니다.
Q5. 루이스와 조이의 결혼에 대하여 좀 자세히 이야기 해주시길 바랍니다. ?
A 특별한 결혼이지요 물론 사랑했지만 황혼결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혼이혼은 들어보았지만 황혼결혼이라서 놀랐습니다.
또한 58세 루이스는 초혼이었습니다. 조이는 결혼을 했고 이혼을 한 상태였고 자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조이가 골수암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조이와 루이스 둘다 문학을 하는 작가였습니다. 둘째 지성이 넘쳐 흘렀던 사랑이고요. 보통 20-30대 때하는 사랑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인격적 사랑 어쩌면 완숙미 넘치는 신적사랑과 같은 것을 했던 것입니다. 최대한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의 아픔과 슬픔까지도 함께 하려고 했던 20세기 순애보적인 사랑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6 일반적으로 C.S루이스는 20세기 기독교 변증가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철학적인 분석력이 대단한 것으로 아는데 이 책에서는 어떤 가요?
A C.S 루이스는 영문학전공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했습니다. 물론 문학을 통한 창의력과 감수성으로 비크리스천들을 설득도 했지만 당당하게 철학적으로, 비교언어분석쪽으로도 알려져서 기독교가 유일한 진리임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런 문학적, 철학적 방법론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분석하기전에 루이스 자신이 당한 슬픔의 고통을 면면히 쏟아내고 있습니다. 사물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시각보다 내면적 아픔과 슬픔의 감정을 격정적으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 헤아려 본 슬픔 >의 한곳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슬픔은 게으른 것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일상이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직장에서의 일을 제외하면 나는 최소한의 애쓰는 일도 하기 싫다. 글쓰기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 읽는 것조차 버겁다. 수염 깎는 일조차 하기 싫다."- >
Q7 .CS 루이스의 < 슬픔 >은 책에서 어떻게 표현되어 있나요 ?
A C.S 루이스의 다른 책들은 어렵습니다. 철학적(합리적 논리성)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증가라고 합니다. 다른 책들에서는 루이스의 감정적 혹은 비논리적 접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책 만큼은 루이스의 개인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등장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족과 친구들과의 이별을 맞이할 때 주로 쓰는 용어 또는 위로의 말이 < 하나님이 당신을 위로 하신다>라고 대략적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루이스의 조이를 잃은 슬픔에 대하여 루이스는 오히려 감정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떠오르는 의미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슬픔 일을 만날 때 인간이 슬퍼하도록 허용되었으며, 슬퍼하는 것이 정상이고 마땅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당연하게 상실에 대해 이처럼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일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떤 훌륭한 교리적 해법, 대략적 언어보다 더 많은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루이스는 대단한 작가입니다. 자신이 엄청난 고통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기억하며 기록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자신의 슬픔을 신앙의 눈으로, 성서의 눈으로 헤아려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탁월함이 아닐까요?
루이스의 이런 책이 많은 비슷한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극히 개인적인 책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감상적이고 손쉬운 위로가 아니라 깊은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도와주는 책입니다
"사랑이란 매혹되면서도 올바로 꿰뚫어 보는 힘을 주며, 그러면서도 환멸을 느끼지 않게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처럼 꿰뚫어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앎은 서로 구별되는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 자신과도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하므로 보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보면서도 사랑하시는 것이다." p.101
Q8. 요즘 사회에서 힐링(healing)이란 단어가 대세가 되었습니다. 사실 슬픔과 고통이 없다면 치유나 힐링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이 책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종류라고 보면 어떻습니까 ?
A 책속에서 루이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물론 이때 루이스는 조이를 잃은 상처와 고통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었습니다.
< 내게 종교적 진리에 대해 말해주면 기쁘게 경청하겠다.
내게 종교적 의미에 대해 말해주면 순종하며 듣겠다.
그러나 종교적 위안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라.
<당신은 모른다>고 나는 의심할 것이다.
이런 말은 하나님의 은혜, 진리에 대하여 의심하겠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가는 것 같은 하나님, 루이스가 신앙적 교리를 몰라서 그랬을까요? 신학적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을까요?
종교적 위안이라는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말하는 힐링이 과연 진짜 힐링이라고 루이스는 <헤아려 본 슬픔> 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고통속에서 계신 하나님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신학은 면제해주는 신앙이 아닙니다. 그 고통속에서 함께 하는 신앙입니다.
루이스는 종교적 위로, 종교적 치유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속에서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 현실을 더욱 똑똑히 보려는 것입니다. 위장이 아니라 사실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별하면 아프지요 그렇다고 말 몇마디에 위로가 되나요?
Q9. 그러면 루이스의 슬픔은 어떻게 극복이 되었나요?
A 루이스는 조이를 잃은 슬픔을 < 상처난 곳을 스스로의 면역력으로 아물게끔 도와주는(Helper)것이다 >라고 합니다. 떠남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실의 이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떠난 자의 삶을 너무 이상한 추억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 과거의 장소 이런것들이 결국 추억을 우상화 작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그 떠난 성도들 사랑하는 자들과 함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감정적이 되면 무엇이든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조금은 도움 되지만 결국 하나님이 치료하지 않으면, 시간이 흘러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시간속에서 계십니다. 고통의 시간 아픔의 시간이 지나가야 현실이 보입니다. 감정을 계속적으로 지속하다보면 현실과 감정이 뒤섞여서 더욱 혼란을 부채질 합니다.
죽음과 이별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감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10. CS. 루이스의 <슬픔 > 극복법 <헤아려본 슬픔>책을 통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주시죠 ?
A 먼저는 첫 번째로 글쓰기입니다. 슬픈 감정은 누구와의 대화를 통해서 극복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생각나는 대로 써야 합니다 치유방법 중에 글쓰기 치유방법도 있습니다.
둘째는 삶의 과정으로 이별도 이해하여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루이스는
우리 결혼에 대해 나는 '너무 완벽해서 지속되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중략)...그러나 또한 이는 '그 나름의 완벽함에 다다랐다. 이루어야 할 만큼 이루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길게 늘일 필요가 없다'라는 뜻일 수도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됐다. 그 과정을 터득하였다. 내 보기에 미쁘다. 이제 다음 연습으로 갈 준비가 되었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2차 방정식을 배워서 즐겨 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거기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선생님은 다음 단계로 옯겨 가신다.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배웠고 성취했기 때문이다.
- <헤아려 본 슬픔> 74~75p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연애 다음에 결혼이 오듯이, 결혼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이 온다. 그것은 과정의 단절이 아니라 그 여러 단계들 중의 하나이다. 춤이 중단된 게 아니라, 그 다음 표현 양식으로 옮겨 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연인 덕분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다음에는 춤의 비극적인 양식에 따라 우리는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비록 그 육신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어도 연인 그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의 과거와 추억, 슬픔 혹은 슬픔으로부터의 위안, 자신의 사랑 따위를 사랑하느라 안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헤아려 본 슬픔> 76p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출처 : 침례회전국사모회 카페 책소개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 이렇게 묻는 것은 매우 걱정스러운 증상이다....(중략) 그러나 다른 모든 도움이 헛되고 절박하여 하나님께 다가가면 무엇을 얻는가? 면전에서 쾅 하고 닫히는 문, 안 에서 빗장을 지르고 또 지르는 소리. 그리고 나서는, 침묵. 돌아서는 게 더 낫다. 오래 기다릴수록 침묵만 뼈저리게 느낄 뿐. 창문에는 불빛 한 점 없다. 빈집인지도 모른다....(중략) 왜 그분은 우리가 번성할때는 사령관처럼 군림하시다가 환난의 때에는 이토록 도움 주시는 데 인색한 것인가?
- <헤아려 본 슬픔> 22p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모든 광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찾아보라고 해도 그녀의 얼굴,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손길을 찾아낼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게 어디 있겠는가? 그녀는 죽었다. 죽어버린 것이다.
- <헤아려 본 슬픔> 32p
우리 결혼에 대해 나는 '너무 완벽해서 지속되지 못했다'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중략)...그러나 또한 이는 '그 나름의 완벽함에 다다랐다. 이루어야 할 만큼 이루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길게 늘일 필요가 없다'라는 뜻일 수도 있다. 마치 하나님께서 "됐다. 그 과정을 터득하였다. 내 보기에 미쁘다. 이제 다음 연습으로 갈 준비가 되었구나"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 2차 방정식을 배워서 즐겨 할 수 있게 되면 더 이상 거기 매달려 있을 필요가 없다. 선생님은 다음 단계로 옯겨 가신다. 이는 우리가 무언가를 배웠고 성취했기 때문이다.
- <헤아려 본 슬픔> 74~75p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고 연애 다음에 결혼이 오듯이, 결혼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죽음이 온다. 그것은 과정의 단절이 아니라 그 여러 단계들 중의 하나이다. 춤이 중단된 게 아니라, 그 다음 표현 양식으로 옮겨 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연인 덕분에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난다.' 그 다음에는 춤의 비극적인 양식에 따라 우리는 여전히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비록 그 육신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어도 연인 그 자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우리의 과거와 추억, 슬픔 혹은 슬픔으로부터의 위안, 자신의 사랑 따위를 사랑하느라 안주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 <헤아려 본 슬픔> 76p
우리는 한 몸이었다. 이제 둘로 갈라진 이상, 그것이 완전하고 온전한 체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결혼한 상태일 것이며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리라....(중략)...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어느 민담에 산 자의 애도가 죽은 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었던 것 같다. 죽은이들은 우리더러 제발 좀 그만두라고 말한다...(중략)...어쨌든 내게는 앞으로의 계획이 명백하다. 나는 가능한 자주 기쁜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갈 것이다. 나는 그녀를 웃음으로 맞이하기조차 할 것이다. 내가 그녀를 덜 애도할수록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 <헤아려 본 슬픔> 8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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