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
2024.10.25.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에페4,1-6 루카12,54-59
주님과 더불어 일치의 여정
<시대의 표징을 아는 지혜, 분별력의 지혜>
기상하여 자비의 집 숙소문을 열면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이 하늘과 별이요 다음은 불암산입니다. 아마 세상에서 저만큼 하늘과 산을 많이 바라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하늘 있어 산이 좋고
산 있어 하늘이 좋다
하늘은 산에 신비를 더하고
산은 하늘에 깊이를 더한다
이런 사랑을 하고 싶다
이런 사이가 되고 싶다”<1997.2.>
아주 많이 인용한 무려 27년전 자작애송시지만 지금도 하늘과 산을 바라볼 때 마다 늘 새롭게 떠오르는 시입니다. 하늘이 상징하는 주님과 산이 상징하는 나와 날로 깊어지는 관계를 희구(希求)하는 시입니다. 새삼 우리의 삶은 더불어 주님과 일치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옛 어른 ‘다산’의 지혜를 나눕니다.
“말이 말을 하지 않고, 사람이 말하기 위해서는 오직 끊임없는 공부와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이란 그릇된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릇된 것을 깨달음이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른 말에서 깨달을 뿐이다.”
바른 말을 깨닫는 공부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더불어 주님과 일치의 여정은 이런 깨달음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아, 그렇구나!” 날로 깨달아가면서 지혜로워지고 너그러워지고 자유로워지는 우리들입니다. 역시 값싼 깨달음의 은총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치열한 공부와 노력의 수행이 뒤따라야 합니다.
어제 원장수사로부터 부탁한 강의록을 선물받았습니다. “전례의 상징과 공간”이란 ‘깊고 아름다운’ 제하의 강의록인데 참보물을 지닌 부자라도 된 듯 행복했습니다. 맨먼저 나온 상징이 제대였습니다. 끊임없이 미사가 봉헌되는 ‘희생제단과 식탁’의 주님의 제대야 말로 하느님을 믿는 우리 삶의 영원한 중심이 됩니다. 또 믿는 이들 모두가 다 주님 중심의, 주님과 날로 깊어지는 일치의 여정중의 삶임을 깨닫게 합니다.
공부중의 공부가 주 하느님 공부입니다. 이런 공부의 대가가, 공부의 달인이 바오로 사도입니다. 주님 안에서 수인(囚人)이 된 바오로 사도이지만 자유롭기는 우주적입니다. 우리 모두 더불어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항구할 것을 권하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단숨에 읽힙니다.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진리 말씀으로 더욱 주님과 일치를 추구하고픈 의욕을 갖게 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하느님께서 부르실 때에 하나의 희망을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성령도 한 분이고,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고,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모두가 성령의 인도하에 겸손과 온유와 인내와 평화의 사랑을 다하며, 이런 일치의 중심인 하나를, 한분이신 주님을 향한 일치의 여정에 항구할 때 다양성의 일치에 날로 지혜로워지고 자유로워지는 삶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 모두 시대의 표징을 읽는데, 또 분별에 눈밝은 지혜를 지닐 것을 촉구합니다.
“깨어 있어라”에 이어지는 시대를 알아보고 분별의 지혜로 늦기전에 용서하고 화해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이 어떤 시대입니까? 어제 “파멸 앞당기는 초가속 시대 AI”(안호기) 이란 칼럼을 읽었습니다. 핵전쟁 위험을 예고하는 종말시계는 90초를 남겨두고 있고, 탄소시계의 한계치는 4년 273일 남았을 뿐이며,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하는 ‘AI 안전시계’는 현재 11시31분으로 고위험상태에 진입했다는 것입니다. 필자는 다음과 같이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근대화 이전 과거 삶의 방식을 되찾고,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국가는 성장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시민이 서로 돌보고 연대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느리더라도 공동체의 가치와 삶의 질을 높여야 행복해질수 있다.”
그 무엇보다도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공동체의 고마움을 깨닫고 섬김과 나눔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각자도생은 모두가 파멸의 지름길입니다. 오늘 주님의 복음은 그대로 이런 위기의 시대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참으로 외적 육적 욕망의 삶에서 내적 영적 삶에로의 혁명적 전환이 절박한 시대입니다. 더불어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분투의 노력을 다해야 할 절체절명의 작금의 시대입니다. 이어 주님은 우리의 무지를 꾸짖으며 분별의 지혜를 발휘할 것을 촉구합니다.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스스로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여 지체없는 회개와 용서, 화해를 촉구하는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깨어 주님과 더불어 일치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시대의 표징을 읽는 지혜의 은총에, 분별력의 지혜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더불어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