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기석의 「뽈랑 공원」 감상 / 강인한 뽈랑공원
함기석
뽈랑 공원의 아름다운 정문이 열린다 꽃밭에서 햇빛과 나비들 춤춘다 뽈랑색 벤치들이 보인다 뽈랑새 두 마리 자유로이 공원을 날고 있다 물푸레나무 아래 꽁치처럼 예쁜 여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아기가 젖을 빨다 스르르 잠이 들자 여자는 하늘 한복판을 푸욱 찢어 아기의 어깨까지 살포시 덮어준다 찢어진 하늘에선 푸른 물고기들이 쏟아지고 여자는 유모차에서 책을 꺼낸다 아기를 위한 자장가 뽈랑송을 부르며 책장을 넘긴다 여자가 책을 보는 동안 아기는 꿈꾸고 물고기들은 나뭇가지 사이로 헤엄쳐 다니다 책 속으로 사라진다 한 청소부가 후문에 나타난다 이상하게 생긴 뽈랑 빗자루로 공원을 쓴다 그러자 공원이 조금씩 조금씩 지워지면서 책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꽃밭이 사라진다 벤치들이 사라진다 나무들이 사라진다 하늘이 새들이 빛이 시간이 차례로 빨려 들어가고 여자가 사라지면서 손에 들려 있던 책이 청소부 발 아래로 떨어진다 청소부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책을 주워 들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다 말들이 피운다는 뽈랑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길게 연기를 내뿜으며 책을 펼친다 22페이지에 뽈랑 공원이 나타난다 함기석이라는 휴지통이 보인다 여백이 되어버린 하늘이 보인다 유모차를 끌고 행간으로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라진 새들은 사라진 빛을 향해 날아가고 여자가 머물던 물푸레나무 그늘 속에서 투명한 물고기들이 헤엄쳐 나온다 샘물이 된 아기울음 흘러나온다 ..............................................................................................................................................
마술적 상상력의 언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어떤 모임에서 함기석의 「뷰티샵 낱말과일들」을 몇 사람의 선정위원들이 그냥 지나치는 걸 내가 끄집어내어 우수작품으로 올린 기억이 있습니다. 함기석 시인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지요. “토마토; 유기산과 비타민 A, C가 풍부해 여드름 많은 문장과 지성피부를 가진 문장에 좋다.// 자두; 각종 과일산이 풍부해 상상력을 자극한다. 행간의 모공수축으로 인한 긴장유발 및 문장의 각질제거효과도 있다. //딸기; 비타민 C와 젖산이 풍부해 봄기운을 불어넣을 수 있다. 씨는 버리지 말고 마침표로 사용하면 된다.”등 「뷰티샵 낱말과일들」의 발랄 상큼한 상상력을 만난 좋은 인연을 기억합니다. 이후에 그의 시집 『뽈랑 공원』을 알게 된 건 2008년 3월입니다.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한 이과 출신이 시를 쓰는 게 이색적이기는 합니다. 의대생이 시 쓰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런데 수학과 출신은 함기석 시인 말고 더 있는지 모르겠군요. 무엇보다도 이 시는 상상력의 기발함이 매력적입니다. 동화적이랄까, 시를 읽으며 내용의 전개를 추보식으로 따라가 보면 어떤 영상이 판타지로 충분히 아름답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시인이 찾아낸 ‘뽈랑’이란 시어도 매우 독특합니다. 처음엔 ‘빨랑’이란 말에서 착안한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빨리’란 뜻을 가진 구어로서의 ‘뽈랑’과는 거리가 먼 용법을 가진 시어 ‘뽈랑’이었지요. 이 '뽈랑'은 귀엽고 음악성이 강한 어감의 말입니다. 뽈랑 공원, 뽈랑색, 뽈랑새, 뽈랑송, 뽈랑 빗자루, 뽈랑 담배 등. 그것은 사물의 이름에 동화적인 관념을 유도하며 결합되는 성질이 있습니다. 어떤 시인은 자기만의 독특한 시어 하나를 정하여 놓고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요. 명사뿐만 아니라 동사나 부사로 혹은 중요한 상징적 관념으로 그 시어를 사용해서 도저히 논리적 감상이 어려운 경우가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그 시인이 자기만의 전용적인 그 시어를 사용해서 쓴 시들을 읽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뽈랑 공원」은 새로운 상황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반대로 청소부가 나타나 빗자루로 공원을 쓸게 되면서 존재하는 것들이 마술처럼 책 속으로 사라지게도 합니다. 시인이 마치 마술사의 능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 |
첫댓글
"물푸레나무 아래 꽁치처럼 예쁜 여자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아기가 젖을 빨다 스르르 잠이 들자
여자는 하늘 한복판을 푸욱 찢어
아기의 어깨까지 살포시 덮어준다
찢어진 하늘에선 푸른 물고기들이 쏟아지고"
함기석(석기함) 시인은 몇 년 전 우리 온새미로 강의실에서 작품을 복사하여 공부한 바 있지요.
동화적(이색적)인 상상력이 수학적으로 차질 없이 잘 계산하여 짜여진 아름다운 작품이네요.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