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미 7사단 31연대 전투단 하갈우리로 철수작전
장진호 동안에서 중공군 80사단과 81사단 1개연대의 어마어마한 공격을 막아내고 있던 31연대 전투단은 이제 어떤 누구의 도움도 바랄 수 없는 고립무원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31연대 전투단을 지휘하고 있는 돈 페이스 중령과 병사들은 이제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절박한 현실을 엄중하게 받아들이면서, 자력으로 포위망을 똟고 하갈우리로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연일 계속되는 전투로 사상자가 무수히 발생하여 병력은 매일 줄어들고 있어서 곧 바로 지원군이 오지 않는다면 모두 전멸할 위기에 이르렀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돈 페이스 중령은 이래 죽어나 저래 죽으나 어차피 죽을 운명이면 한번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적과 싸워 죽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돈 페이스 중령은 유엔군 전폭기가 적을 강타하는 시간에 맞춰 적의 포위망을 돌파할 계획임을 전 부대원에게 통보했다.
그리고 잔여분 폭탄과 탄약을 13시 이전에 모두 사격하고, 휴대가 곤란한 장비는 파괴하도록 하였다.
또한 상태가 좋은 차량만 선정해 연료를 보충하고, 수백 명에 달하는 부상병들만 차량에 태우고 나머지 차량은 모두 파괴했다.
철수 준비를 마친 부대는 C중대를 선두로 하여 지난 5일간의 전투에서 중공군에게 가장 위협이 되었던 40밀리 대공자동화기 듀얼40을 장착한 M19 장갑차를 앞세우고 출발하기로 했다.
드디어 13시 경에 유엔군 전폭기가 상공에 나타나자 진지를 출발하였다.
그런데 12월 1일 자력으로 중공군의 포위망을 돌파하고자 대대진지를 출발하려던 순간, 한국전쟁 기간 중 대표적인 오폭사고로 기록된 사고가 발생했다.
선두부대가 진지를 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중공군의 집중사격이 일제히 개시되었다.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돌파작전을 근접 지원하던 유엔군 코르세어 전폭기 4대가 돌연 선두부대 상공에 기총소사와 함께 네이팜탄을 투하했다. 그런데 이 네이팜탄이 대공화기를 장착한 미군 M19장갑차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고, 장갑차에 탑승한 수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되자 제대별로 편성된 조직을 비교적 질서 있게 유지하면서 이동하던 부대는 갑자기 분산되기 시작했으며, 병사들은 공포 속에 서로 뒤범벅이 되어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돌변했다.
이런 사고에도 불구하고 돈 페이스 중령은 가까스로 부대를 수습하고 B중대에 선두부대 임무를 부여한 다음 계속 남으로 전진하였다.
그러나 실시간 유엔군 항공기의 근접지원과 공중엄호에도 중공군의 공격은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파괴된 트럭은 걸림돌이 되어 길을 막았고, 적의 사격에 운전병이 피살되어 차량이 전복되면 차량에 탑승했던 부상병들은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져서 길바닥에 흐트러지는 참상이 연속되는 아비규환을 연출하였다.
이 와중에 부대를 지휘하던 돈 페이스 중령은 수류탄 파편에 맞아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중공군은 계속해서 사격을 가해왔고 병사들은 분전했으나 포위망은 좁혀 왔습니다. 유엔 공군의 근접 항공 폭격도 계속되었으나, 어떤 경우는 중공군이 너무 가까이 있어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도리어 아군이 희생되기도 했다.
마침내 독전하던 돈 페이스 중령이 장렬하게 전사하면서 지휘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휘와 통제는 상실되었고 병사들은 소단위로 흩어져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다.
전투 중 많은 병사들이 전사하였고, 탈출하지 못한 병사들은 후에 적에게 사살되거나 포로가 되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장진호 남단 하갈우리의 미 해병1사단 지휘본부를 향해 무방비 상태로 철길을 따라 걷거나 얼어붙은 장진호를 건너가야 했다.
유엔군 전폭기 조종사들은 이들 철수하는 병사들을 지원하려고 적군에게 공격을 가하고 아군에게 하갈우리 방향을 알려주기도 했다.
며칠 동안 겨우 몸을 끌면서 미 7사단 31연대 전투단 수백 명의 병사는 걷거나 부상당한 몸으로 혹독한 추위 속에서 얼어붙은 장진호를 건너 미 해병1사단 지휘본부가 있는 하갈우리에 도착하였다.
하갈우리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사단 지휘부와 부대원들은 유담리 방향에서 넋이 나간 듯이 돌아오는 병사들을 보고 마치 유령이 걸어오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12월 2일 새벽까지 장진호 동안에 배치되었던 미 7사단 31연대 전투단 병사 중 생존자 670명만이 하갈우리에 복귀하였다. 미 해병1사단 1수송대장인 올린 비올 중령의 지휘 하에 자원봉사자와 미 해군 의료지원단으로 구성된 수색부대는 이날 아침부터 생존자를 찾아나서 320명을 추가로 구출하였습니다.
이후로도 구출작전은 계속되어 장진호 동안을 방어한 31연대 전투단 병사 총 3,288명 중 1,050명이 구출되었고, 이 중 385명만이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전투에 참가한 한국인 카투사 병력은 875명이었고, 그중 다수가 희생되었다.
전투를 할 수 있는 385명은 하갈우리에서 미 해병1사단 병사들과 함께 중공군과 싸우면서 함흥-흥남까지 철수 하였다.
그런데 7사단 31연대가 비록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후퇴했지만, 11월 27일 밤부터 시작된 전투에서 중공군의 압도적 공격을 결사적으로 버티어 낸 것이 결과적으로 아군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만약 장진호 동안에서 31연대 전투단이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하갈우리 미 해병지휘부나 유담리에 있던 해병 5연대나 7연대가 중공군에 포위되어 전멸했을 지도 모른다.
첫댓글 미7사단31연대 지휘관
돈페이스중령이 부대원들과 철수하면서
살인적 기상 추위와
밤낮없이 기습 야습하는 지독한
끈질긴 악착같은 거머리떼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부대원들과
죽기살기로 영웅적 전투력을 독려
지휘하다
장렬히 전사하였네요
애석하고 안탑깝네요
설상가상으로 아군 공중전투기의
오폭으로 아군이 희생되고
또 전방 운전병이 총탄에 맞아 트럭이
전복되어 엎어지고 등등
악전고투속에 670명만이 구사일생
하갈우리에 도착하였군요
돈페이스중령이 끝까지 중공군과
영웅적 전투혈전으로 버티고 시간을
벌어줘서
아군들이 포위 섬멸 피하고
지옥 아비규환을 막아주었네요
진정한 영웅적군인
돈페이스 중령에게
경건한 마음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함니다
한편 중공군이 오합지졸이고
무식무지하고 별거 아니라는
후방 미군지휘관들의 적을 깔보는
안일한 판단 생각이
결국 최일선 장병들에게는 엄청난
막대한 희생 피해 타격을 입었음을
상기 교훈으로 삼아야 함니다
적을 깔보지 말자 신중해야한다
붙어 봐야한다 승패를 안다 껄껄껄
다음 연재편도 기대와
흥미진진함니다 수고했습니다
무섭습니다. 전쟁
그 사명감이 뭐길래 저리 전투에 나가서 목숨도 잃고
저 고생을 하는지 그져 불쌍하기만 합니다.
남자라는 이유로 군대를 가고, 승리도 하고 패배도 하고
남자는 위대합니다.
듣기만해도 무서운 전쟁이야기 입니다.
살아있는 이야기는 더욱 무섭습니다.
페이스 중령은 장열히 전사를하고...
살아돌아온 병사들도 평생동안 전쟁트라우마에 시달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