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까지 가을이었다가 하루 사이에 제대로 겨울이 되었다. 보기 드물게 첫눈이 큰눈으로 바뀐 터라 더욱 겨울 기분이 난다.
오늘 아침 출근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평소에도 20분쯤 일찍 집을 나서는 편인데 오늘은 거기다 30분을 더 보태 거의 1시간 일찍 출발해서야 무사히 도착했다.
언젠가부터 눈이 낭만이 아니라 출근 전쟁을 유발시키는 자연 재해로 인식이 되었다. 올 가을이 평년보다 따뜻했던 터라 이 눈과 추위가 더 차갑게 느껴진다.
서울 광화문을 한국의 심장부라고 한다. 지금은 많이 희석이 되었지만 여전히 광화문 광장에는 한국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자리하고 있다.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에서 요즘 안중근 의사 유묵전이 열리고 있다. 나는 3주 전쯤에 갔었는데 오늘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문득 안중근 글씨가 생각났다.
내가 전시장에서 폰으로 찍은 사진이 선명하지 않아 빌려 온 것이다. 한국인 중에 안중근 의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으나 그가 굉장한 서예가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歲寒然後 知松栢之不彫
<날이 추워진 후에야 잣나무와 소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 내가 서예에 관해서는 식견이 없으니 넘어가고 오직 글씨 뜻이 좋다는 것으로 가름할 뿐이다.
논어를 읽지 않았으면 쓸 수 없는 글씨로 서예의 대가 추사 김정희 선생도 제주도 유배지에서 이 글에 담긴 뜻을 세한도로 그려냈다.
훗날 안중근도 1910년 3월에 죽음을 앞둔 만주 뤼순 감옥에서 이 글을 정성스럽게 옮겨 적었고 오늘날에 후손들이 이 글씨를 감상하고 있다.
내 방식을 보태 해석하자면 평소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들을 세월이 지난 후에야 소중했음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이 많긴 하지만 나는 안중근 선생을 남산 기념관에서 온전히 만났다. 일부러 찾아 간 것이 아니라 남산 갔다가 건물이 보이길래 들어간 것이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싸 죽이고 여순 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국했는데 당시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30년을 살다 간 그의 무덤이 아직까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 효창공원에 안중근 묘가 있으나 가묘일 뿐이다.
지금 남아 있는 안중근의 글씨는 그가 여순 감옥에서 재판을 받고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썼던 것인데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라고 한다.
그가 조국을 사랑하는 신념도 뚜렷했지만 논어나 사기(史記) 등, 학문에도 무지 깊은 경지에 도달했음을 글씨에서 알 수 있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爲國獻身 軍人本分), 오늘날까지도 애국자들의 폐부를 찌르는 이 글씨도 안중근이 남긴 것인데 마음 속으로 읊어 보았다.
<나라 위해 몸 바침이 군인의 본분이다>.
나처럼 입으로만 애국을 하는 사람 말은 믿을 게 못 되지만 스스로 목숨을 바쳐 애국을 증명한 안중근 의사 말은 믿는다.
1910년 3월 25일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고 형 집행 전에 남긴 사진.
안중근의 이 사진과 유묵을 보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그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는데 그가 남긴 문장에서 평소에 연마한 독서의 깊이와 인간적 삶의 깊이가 절로 느껴진다.
몇 구절 옮겨 오면 이렇다.
博學於文 約之以禮 (박학어문 약지이례)
폭넓게 공부하고 글을 익히되, 예법으로써 자신을 단속하라.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황금백만량 불여일교자)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貧而無諂 富而無驕 (빈이무첨 부이무교)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
孤莫孤 於自恃 (고막고 어자시)
가장 외로운 것은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이다.
白日莫虛渡 靑春不再來
(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주옥 같은 문장들이다. 불꽃처럼 살다 떠난 삶처럼 이렇듯 장엄한 문장을 남겼는데 다소 긴 문장이 눈길을 끄는 유묵 하나가 있다.
이 유묵은 홍익대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오로봉위필(五老峯爲筆)
청천일장지(靑天一丈紙)
삼상작연지(三湘作硯池)
사아복중시(寫我腹中詩)
오로봉을 붓으로 삼고, 푸른 하늘을 종이로 삼으며, 모든 강을 벼룻물로 삼아서, 내 마음에 품은 시를 쓰리라.
안중근은 의로운 사람이면서 이 문장처럼 시인이기도 했다.
예전에 승용차 뒤편에 안중근 선생의 약지가 잘린 손바닥 사진을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들 안중근 선생의 애국을 발끝에도 못 따라 가겠지만 흉내라도 내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첫눈 온 날에 뜬금없는 나의 애국은 여기까지다. 나같은 가짜 애국자도 날이 추워지면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첫댓글 나라를 위해
젊음을 흔쾌히 바친 순국선열의
얼을 기리는 이의
마음 속에는
애국이라는 열정이 보이는 듯..
차가워진 날씨에
추위보다
애국을 생각하는
애국자!
제가 보기엔 모렌도 선배님도 애국이 온몸에 아니 혈관까지 배어 있을 분이네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뜬금없이 안중근 전시회 다녀온 것이 생각나서 쓴 글이랍니다.
제겐 애국이 내가 있을 자리에서 본분 지키며 사는 것이라 생각한답니다. 요즘 감기가 유행을 한다던데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본을 받아야
합니다..
안중근 의사.. 영화가 연말에 개봉
한다고 하네요.
"하얼빈" 현빈이 안중근으로
변신..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맛점하세요 ^&^
아~ 안중근 선생 영화 얼마전에 저도 언뜻 제작 소식을 듣긴 했습니다. 드디어 연말에 개봉할 모양이군요. 그러고 보니 다빈님이 저보다 훨씬 안중근 의사 사랑이 깊은 듯하네요.
본을 받을 사람이 많지 않은 시대에 이런 분의 삶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이 불행한 역사를 잊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영화 개봉하면 저도 꼭 봐야겠네요.
다빈님 감사요.ㅎ
언제나 감동으로 읽게되는 안의사님 이야기 감사합니다.
형 집행전 사진이라 설명하신 포승줄에 묶여 서 계신 위 사진은
이토히로부미 저격 직후 러시아 군에게 체포되신 모습입니다.
입고계신 것은 두루스케라는 러시아 코트구요.
사형집행 바로 전 모습은 안의사님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흰 두루마기를 입고 앉아 계시는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아, 헤도네님 지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쉬충마오(徐宗懋)라는 대만 작가가 펴낸 <희귀사진집>에 나온 사진 설명을 보고 인용한 것인데 제대로 살피지 않은 저의 오류였습니다.
헤도네님 설명을 들으니 제가 올린 사진은 의거 당시 체포 사진처럼 보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제 눈에는 사형 전에 찍었다는 흰 두루마기 사진보다는 이 사진이 훨씬 더 숙연해 보여 본문 오류는 수정하지 않고 그냥 두겠습니다.ㅎ
제대로 된 정보 감사합니다.
순국 5분 전에 무명옷을 입고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안 의사의 사진
<일본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사진을 새로 촬영한 것 - 출처 인터넷한국일보 이왕구 기자 2010.1.26>
- 안의사 어머니는 편지에서 항소는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니 항소하지
말라하셨다고 합니다
그산님 설명까지 곁들인 사진을 첨부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첫 사진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는
글에서 쓴 것처럼 오늘 날씨에 맞는 내용 같습니다.
재밌는 것은
안 의사께서 마음속으로 총 열 글자로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마지막에 가서 한 칸이 모자란다는 걸 알고,
고심 끝에 아닐 불(부)을 작게 써 놓은 것 같다는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일리 있는 생각이고 대단한 눈썰미를 가진 예비백수님시네요. 전시장에 붙어 있는 설명문에도 뜻풀이 뿐이었고 이걸 말해 주는 설명이 없었거든요.
국내 안중근 연구가들 또한 언급이 없었구요.
제가 보기엔 안의사님이 다 쓰고 나서 아차, 당신의 뜻을 온전히 전하기 위해 不를 집어 넣은 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형수인 당신이 얼마나 진지하게 글씨를 써 내려 갔을지 상상만으로도 그 풍경이 처연합니다. 제 눈엔 이것이 화룡정점으로 보이기도 한답니다.ㅎ
태어날때 북두칠성 같은 일곱개의 점이 가슴에 있어서
북두칠성의 기운을 받고 태어났다 해서 그의 할아버지는
應七(응칠) 이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고 합니다
안중근 의사는 외롭게 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며 동양평화를
추구했던 그는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이자 진정한
평화주의자 이죠..
러시아 제국 하얼빈의 하얼빌역에서 일본제국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한 사건...등등
학교다닐때 교과서로 접하고 선생님한테 들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고
그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저 같은 후루꾸 평민이 뭘 알겠습니까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의 우리들이
있지 않았나 십습니다..
순국선열을 생각해 보며 짧게나마 묵념해 봅니다
발가락이 아프고 통증이 와도, 무릎이 아프고
견비통이 와도 우리는 조국의 발전과 안녕을
위하여 굳세게 싸워나가며 등산과 탁구도
포기하지 말자고라 ~ 칼라풀 동지...필승~!!
@적토마 수신 이상무
필승~~~~~!!!! ㅋ
@칼라풀
전달 양호 수신 완료~ 전부 이상 무 (^_^)
와우~ 칼라풀님의 안중근 사랑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댓글입니다.
안선생은 실제 자신의 전기에서 밝히길 그가 죽인 이등박문의 죄목 15가지를 나열하는데 읽어 보면 우리 민족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죄목이긴 하데요.
님이 말한 것처럼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령이었다고 하네요. 그럼에도 일본이 재판을 하고 사형을 내리고 형집행을 했으니 당시 외교력뿐 아니라 우리 국권이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행복은 그들이 바친 목숨의 댓가임을 잊지 않아야겠지요. 저의 안중근 이야기는 또 이어질지도 모르겠네요.ㅎ
글을 정성으로 써서,
게시판에 등재한 유현덕님은
진정한 애국자임이 명백합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한수 배우고 가거든요.ㅎ
@소리 벗
소리 벗님 안녕~^*^
방가워요~ 처음 뵈어요~🐦
피케티님께서 저의 정성을 알아보시는군요.ㅎ
이 글 쓰느라고 오늘 점심 시간 1시간을 온전히 소비했습니다. 왜 그랬느냐고 묻지는 않을 테지만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하겠습니다.
언제나 좋은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유현덕
오~ 대단합니다...🦋
이렇게 긴 글을
1 시간에 쓸 수 있다니...
나라 잃은 그런 세월에 나도 태어났으면,,,저도 울분을 못이겨 진작의 죽을 목숨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네 베이비부머는 나라가 어려운 시대에 태어났지만는,
나이 들어서보니 좋은세월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그 생각입니다.
@소리 벗 살아보니,,,자기 성격이 곧 자기 운명이더이라.ㅠ~~
아하~ 섭이님을 오랜만에 뵙네요.
저도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으나 안중근 시대에 비하면 비단길이라 생각한답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억사는 반복되기도 하기에 반면교사로는 삼을 만하지요. 우리 이 좋은 세월을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구요. 성질도 좀 죽이면서요.ㅎ
지식인이랍시고 나라 팔아 먹고 분탕질 칠 때 제대로된 지식인들은 드러내지 않고 나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는 건 난세에 가서야 드러나지요 하지만 이름도 없이 독립을 위해 싸우다 가신 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
💗
🌸🌸👍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운선님이 댓글로 잘 요약해 주셧네요.
난세에 가서야 드러난다는 운선님 말씀처럼 안의사께서 글씨로 남긴 세한연후 지송백지부조란 말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애국자라고 떠들지만 정작 조국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서야 진정한 의인이 보이기 때문일 겁니다.
비록 날은 춥지만 마음은 움츠리지 마시고 따뜻한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세요.
내용 좋고~ 박수 짝짝짝.. !!
나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중에 필체도
멋지고 내용도 내가 늘 실천하려하는
"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
(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 을 하루에
몇번씩 써보기도 한다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생긴다.
그런데 종종 저건 실천을 안하고
"一日不入카페 眼中生다라끼"
"하루라도 카페에 안들어오면 눈에 다라끼
생긴다"를 실천하니 심각하게 반성중이라네..ㅎ
곡주 한껏 들이키고
회계하고 또 반성하고,,
일상이 물레방아여~~ 입니다
돌고도는...돌고돌고~~
선배님 그냥 맘편히 사라고라~~~니~~~
@칼라풀
그거 또한 좋고~ 좋고~ 에헤라디야 앗싸...(^_*)
맞다. 일일불독서 구중생형극 안의사께서 한 말씀이라지요. 도서관 현판으로도 자주 인용되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역시 적토마 선배님은 울 카페 한문학의 소믈리에가 맞습니다.ㅎ
이렇듯 안중근 선생은 우리 정신 사상 곳곳에 알게 모르게 스며 있는 분이기도 합니다. 저는 안중근 의사가 지폐에 실려야 할 인물이라고 생각하네요.
이런 분의 이력을 우리는 그동안 일본인의 기록물에 의존해야 했던 현실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요.
사형 마지막 장면까지 일본인이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상상으로 그의 삶을 떠올려야 했을 겁니다. 눈 쌓인 밤, 평화로운 밤 되시길요.
@유현덕
감사~ 우리들의 평온한 밤을 위하여...화이팅 ~!!
거의 17년 전? 하얼빈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안중근의사께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신 하얼빈 역에 일부러 가봤는데
안의사 의거 자리에는 바닥에 조그만 삼각형 표지만 있더군요.
한인들이 의거 기념비를 세웠었는데
일본 측의 항의로 철거하고 그 조그만 표지판만 매립한 거랍니다.
안의사의 필체에서도 그분의 웅혼함이 드러나는군요.
안의사께서도 명필이지만, 매국노 이완용이야말로 희대의 명필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완용의 글씨를 사겠다는 사람은 없다지요.
안의사의 글씨는 사고 싶어서 아무리 큰 돈을 내도 살 수가 없는데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어둠 속에 안의사의 목숨을 바친 쾌거는 한 줄기 빛이었고 우리 민족의 자존심입니다.
유현덕님의 해박하신 식견으로 쓰신 귀한 글에 힘입어 저도 잠시 애국자가 되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는 가본 적 없지만 달항아리님이 하얼빈에 가셨을 때 안중근 선생 흔적을 더듬을 정도였다면 달님은 진정한 한국인이 맞습니다.
일본 입장에서야 기념물이든 기념관이든 반대를 했겠지만 지금은 하얼빈에도 안중근 기념관이 있다고 하더군요. 물론 중국이 관리를 하겠지요.
저는 서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안중근 선생의 글씨가 좋아 자주 읽습니다.
안의사님의 정신을 잇기 위해 해마다 안중근 서예대전이 15회째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안중근 선생의 글씨가 떠올라 쓴 글인데 이렇게 반가운 달항아리님과 댓글 소통을 하니 글 쓴 보람이 있네요. 폭설 피해 없길 바라면서 고운 밤 되세요.ㅎ
역사 영화를 좋아하는 저는 작년에 안중근 영화 '영웅'을 보러 갔다 많이 울었습니다..
안중근도 처자식을 둔 가장이었고 홀어머니도 계셨답니다..
예전에 '명량'의 이순신을 보고도~
우리가 알고있는 위인들이 강인한 냉혈인간 인거 같지만 평범한 한 분들이 많습니다..
시대가 범부를 위인으로 만들었을 뿐..
부조리와 거짓이 난무하는 요즘..정의가 뭔지..잠시~
아하~ 역시 남동이님도 이 영화를 보셨군요.
나도 가능한 안중근 선생과 연관된 공연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데 110년 전 안중근 선생의 삶이 한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했답니다.
무엇이 그들을 손가락 잘라 혈서동맹을 맺으면서까지 애국을 하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조국이 대체 우리에게 무엇입니까>라고 했던 문장 만큼은 오래도록 각인이 되어 있네요.
남동이님 말처럼 처자식과 노모를 두고 서른 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안 선생의 마음이 어땠을지 서늘한 마음으로 생각해 봅니다.
이런 분도 있는데 우리 힘 냅시다.ㅎ
현재 우리들이 이루어 놓은 위대한 대한민국, 민족의 영웅들께서는 행복해 하실겁니다.
그러나 더 위대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후배들이 계속 잘 하도록 오늘도 지도하는 선배가 되자, 입니다.
ㅎ 첫눈에 폭설이 겹쳐 사방이 온통 눈밭인데 도깨비불님의 댓글이 더욱 반짝반짝합니다.
님의 말씀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께는 우리가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보답하는 일입니다.
먼저 간 분들 덕택에 우리가 이 좋은 세상 누리며 살고 있으니 후손들 또한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물려주는 것이 임무이기도 하지요.
일깨우게 하는 댓글 고이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