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학교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스피치 시험이 있어서 주제를
한일 양국의 역사적 사건과 견해차이 로 잡았는데
임진왜란에 포인트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어떤분이 블로그에 기재한 내용을 보니
1543년 포르투갈 상인이 구주에 온 이래 무역에서의 막대한 이익 때문에 구주 지역의 영주들은 이를 장려하여 상업이 융성하고 그로 인해 유입된 기독교 또한 널리 전파되어갔다. 이러한 새로운 기운은 히데요시 자신의 봉건적 집권 체제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은 하였으나 자신의 정치 세력은 아직 미약했으며 통일 정권에 맞는 통치 질서의 확립 역시 미흡한 상황에서 그러한 새로운 기운을 내포한 지방의 잔존 세력의 말살과 이들 저항 세력의 힘이 되었던 요소들의 통제 혹은 말살을 꾀하고 되고 이는 곧 자신을 정점으로하는 봉건적 집권 체제의 강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자유 상업 도시의 신흥 시민들을 타지방으로 이주시키고 도시를 파괴했으며 1587년에는 천주교 금령을 발표하고 1588년에는 히토바라이(人掃)령이라 하여 병사와 농민을 분리하는 정책을 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출전시 병사의 할당 비율에 있어서 구주, 기주 등 서부 일본에 할당된 병사의 수가 타지방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높고 조선 출병 후 일차 후퇴시 조선에 남겨둔 다이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에 미루어 알 수 있다.
라는 대목이 나오더라구요.
학과에서 진행하는 수업에서는 상세한 내용은 없고 큼직큼직하게
시대별 역사 흐름과 주요 인물에 대해서만 나와서 궁금해 미치겠더라구요.
왜란 당시에 기독교인 다이묘가 있었다는건 들었는데.. 정말로 그렇게 많았나요?
그리고 있다 하더라고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조선에 남겨둔 다이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어디서 찾을수 있나요....ㅠㅠ
궁금해서 잠을 못자겠네요 ㅠㅠ
첫댓글 천주교 신자 다이묘의 임진왜란 종군기록은 프로이스의 [일본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느분 블로그인지 모르겠지만, 전문성 0
이 분야에서는 아케치님이 틀렸다면, 틀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