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주간조선 2072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열병합발전소 앞 택지개발지구. 인적이 드문 외진 이곳에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입구와 월드컵경기장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 왼쪽에 높이 3m도 훨씬 더 되어 보이는 철제 가림막이 모서리 양옆으로 길게 세워져 있다. 한눈에 보아도 무슨 공사현장 같았지만 어디에도 이곳에 대한 안내판은 보이지 않았다.
철제 가림막은 군데군데 녹이 슬고 휘어져 있어 볼썽사납다. 가림막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야트막한 산자락의 빈터. 터파기 공사를 하다 중도에 그만둔 흔적이 어지럽게 내버려져 있다.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경작 금지’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지만 빈터 이곳저곳에는 옥수수, 고추 등이 자라고 있었다. 마침 60대로 보이는 남자가 고추밭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다.
“여기가 박정희기념관 부지 맞나요?”
이 남자가 대답했다.
“예, 맞는데요.”
이곳을 처음 와본 사람은 그 장소에 놀랄 것이다. 위치도 후미진 데다 공간도 협소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이 ‘박정희기념관’ 부지라는 사실을 알면 기겁을 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한 공식명칭은 ‘박정희기념·도서관’.
- ▲ 재추진을 앞두고 있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 부지. 작은 사진은 기념관 부지로 들어가는 문. /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푯말 하나 없이 방치된 이 기념관 부지를 수치로 표시해보자. 대지 9917㎡(3000평)의 서울시 땅에 건물 연면적 5289㎡(1600평), 지상 2층, 지하 1층. 박정희기념사업회가 기념관을 건설한 뒤에 토지를 제공한 서울시에 기부체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박정희기념관은 김대중 정부 후반인 2002년 1월에 착공됐으나 터파기 공사를 하던 중 기부금 부족에 따른 국고보조금 미집행으로 전면 중단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념관 건립은 DJ 대선 공약 1999년 기념사업회 공식 발족
박정희기념관은 1997년 12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후보의 대선 공약이었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왜 자신의 정적(政敵)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을까?
1997년 12월, 15대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는 호남표만으로는 결코 집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DJP후보 단일화였다. 충청권의 맹주였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김대중 총재를 야권 단일후보로 지지하는 조건으로 두 가지를 내걸었다. 내각제 개헌과 박정희기념관 건립이었다. 화면을 1997년 12월의 상황으로 되돌려보자.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12월 5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하고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또 박태준 총재, 박준규 고문, 박철언 의원과 박지만씨, 한병기 대사 부부 등 박전 대통령 가족들은 이날 김 후보를 맞아 함께 손을 맞잡고 ‘DJT’ 연합을 과시했다.’(조선일보 1997년 12월 6일자)
여기서 DJT연합이란 DJ(김대중), JP(김종필), TJ(박태준) 3인의 영문 이니셜의 앞글자만 딴 것이다. 김대중·김종필·박태준 3인의 정치연합을 의미했다. 내각제개헌과 박정희기념관건립을 약속한 김대중 후보는 충청표를 얻고 보수층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성공해 12월 18일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김대중 정부 2년차인 1999년 7월, 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이하 기념사업회)’가 발족됐다. 명예회장에 김대중 대통령이 추대되었고 회장에는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선출되었다. 부회장에는 각 당을 대표해 권노갑 국민회의 고문, 김용환 자민련 의원,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가 추대되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위한 역사적인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서울시가 3개의 후보지 중에서 상암동 택지개발지구를 건립 부지로 제공했다. 신현확 회장은 “2~3개월 내에 전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반년 내에 건물설계를 마치고 2000년 상반기에 착공해 2002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포부를 밝혔다. 기념사업회 측은 건립비와 운영비로 709억원을 책정했다. 김대중 정부는 국고보조금 200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으며 나머지 금액 500억원은 기념사업회 측이 국민성금을 통해 모으기로 했다.
좌파단체들 국고지원 반대 운동 명칭도 ‘박정희기념·도서관’ 변경
그런데 일부 좌파단체들이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며 실력행사를 하기 시작했다. 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공동대표 홍근수·이관복)는 국고지원을 반대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겠다며 김대중 대통령의 명예회장직 사퇴를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좌파단체들의 집요한 반대로 인해 기념사업회 측은 기념관 명칭을 ‘박정희기념관’에서 ‘박정희기념·도서관’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바꾸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성금 모금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민성금 모금이 예상을 크게 밑돌면서 기념관 건립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기념사업회 측은 우여곡절 끝에 당초 계획보다 2년여 늦은 2002년 1월 공사에 들어갔다. 기념관건립이 난항을 겪고 있는 사이에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 노무현 정부는 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다. 2004년 6월, 허성관 행자부장관은 “박정희기념관 건립모금이 전경련 등 일부 단체에 편중되어 있고 올해 상반기 모금액도 380만원에 그치는 등 국민적 합의를 모으기 힘든 상황”이라며 “사업 만료 시점인 10월 말까지 국민적 성금(500억원)을 확보하지 못하면 행자부가 지원한 200억원의 지원금을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실상 국고지원금을 회수하겠다는 발언이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하해온 노무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에게는 못마땅한 일이었다. 결국 행자부는 2005년 3월 기념사업회에 국고보조금 사용 중지처분을 내렸다.
기념사업회는 이에 반발해 취소처분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은 2006년 1월 기념사업회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정부가 지난해 3월 박정희기념관 건립사업에 208억원의 국고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은 재량권의 남용이자 행정의 신뢰보호 원칙과 어긋나 위법이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 4월 대법원도 역시 기념사업회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MB “전직 대통령 예우” 발언으로 관심 기념사업회 재정비 하고 재착공 박차
기념사업회 입장에서 보면 노무현 정부 5년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일부 언론에선 기념사업회 출범 이후 사용된 예산과 관련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일부 좌파단체 회원들은 공사 현장에 나타나 안내 푯말을 훼손하기도 했다. 온갖 방법으로 기념사업회 측을 괴롭혔다.
우파단체들은 반대입장에서 기념사업회를 압박했다. ‘박대통령기념관 졸속추진반대 시민연대’는 “기념사업회가 일부 반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명칭을 ‘박정희기념·도서관’으로 바꾸고 당초의 기념관 규모를 축소해 지자체 박물관 규모만도 못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성금을 낸 시민들도 기념관 면적이 축소된 것에 대해 항의했다. 기념사업회 측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팔았다고 비난하는 사람까지 나왔다. 김종필씨는 2005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 “김대중씨에게 속았다”고 말했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새삼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영결식 직후 “전직 대통령은 예우·존경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전직 대통령의 장례는 국민장으로 한다’는 전례를 깨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렀다는 보수층의 반발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전직 대통령은 예우·존경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이 있자마자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저런 상태로 방치되도록 하는 게 과연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냐?”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우파 정부가 들어선 지금 기념사업회는 다시 기념관 건립에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현재 기념사업회장은 2007년 작고한 신현확씨의 뒤를 이어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씨가 맡고 있다. 기념사업회 고병우 이사는 “지금은 모든 문제가 해결돼 재착공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기념관 규모 대폭 축소도 논란 “위치부터 다시 논의를” 주장도
기념관 건립이 지지부진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기념사업회 측의 추진력 부족인가, 아니면 정치적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결과인가. 김용환 기념사업회 부회장은 1997년 DJP 공동정권을 세울 때 핵심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김용환 부회장은 “추진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일부 좌파단체들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김용환 부회장은 국민성금 모금이 예상에 못미친 것도 시대분위기와 밀접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기념사업회가 목표치로 정한 500억원을 모으려면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대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만든 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 아닌가. 그런데 대기업들이 당시 정부와 권력을 의식해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인 게 사실이다.
- ▲ 박정희 전 대통령 / photo 조선일보 DB
여기서 근원적인 의문이 생긴다. 박정희기념관은 현재의 대지 9917㎡에 건물 연면적 5289㎡의 지상 2층, 지하 1층의 건물로 지어져야 할까. 이것은 1999년 기념사업회가 출범할 당시, 대지 1만6529㎡(5000평)에 건물 연면적 6611㎡(2000평)로 하겠다는 계획이 대폭 축소된 것이다. 기념사업회 측이 일부 좌파단체의 압력을 받고 “시립도서관을 건립해 공동사용하겠다”며 후퇴한 결과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의원은 “기념관의 위치와 부지 등에 대해 기념비적 건물로 남을 수 있도록 다시 처음부터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념관 위치는 과연 최적지일까. 건립 부지가 상암동 택지개발지구로 결정되는 과정을 다시 살펴보자. 1999년 기념사업회가 창립된 직후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건립 부지를 선정해야 했다. 제1후보지는 용산국립박물관 내 민족공원, 제2후보지는 상암동 택지개발지구, 제3후보지는 과천 남태령 부근이었다. 기념사업회 측은 1후보지를 희망했으나 서울시와 박물관 측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3후보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렇게 되어 신현확 기념사업회장, 고건 서울시장, 한광옥 비서실장 3인은 기념관 건립 장소를 제2후보지인 상암동 택지개발지구로 결정했다. 신현확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상암동을 택한 이유와 관련 “그곳은 앞으로 지하철, 버스, 철도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들어서 많은 국민이 편리하게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2002월드컵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기에 이 설명은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난 지 7년이 지난 지금 상암동 현장은 여전히 외진 곳으로 남아 있다.
‘박정희기념도서관’ 명칭 원래대로 설계변경 추진… 모금운동도 재개
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을 만났다. 이 만남은 한승수 국무총리의 주선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도 오 시장은 상암동의 입지가 최적지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기념관 부근에 하늘공원, 상암DMC(완공 예정) 등이 있고 모노레일 설치 등 교통문제가 해결되면 상암동이 부각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10년 전 신현확 회장의 설명과 똑같은 논리다. 과연 그럴까?
남은 문제는 규모와 기념관 이름이다. 고병우 기념사업회 이사는 “박정희기념·도서관에서 가운뎃점(·)을 없애고 박정희기념도서관으로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명칭이 박정희기념도서관으로 바뀌면 기능이 달라져 설계부터 바뀌어야 한다. 고병우 이사의 설명이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이 되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재조정을 해야 한다. 지금 전시장 규모를 확대하는 쪽으로 설계 변경을 하고 있는 중이다. 정물(靜物)기념관에서 살아있는 교육기념관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그래서 한국 경제성장의 비밀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교육의 장이 되게 할 것이다. 현재 모금 재개 광고를 준비 중이다.”
첫댓글 박정희 대통령은 천년만의 영웅입니다 늦졌지만 표류하던 기념관 이제나마 다행입니다 정부는 너무합니다 80억$ 북한에준 돈은 핵과무기로 우리를 위협하고 관광객조준사격 물세래까지?그런 김대중이를 현충원 국장 안장이라니? 정부는 미친짓을? ...........견공이 웃고 갈일입니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상대도 상대이지만 기념사업회 측에서도 문제점을 오픈해서 국민들과 함께 풀어가야 합니다. 쉬쉬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기념도서관이라는 명칭이 상당히 아쉽습니다. 기념관으로 바뀌었으면 합니다.
반석님 오랜만에 뵈니 엄청 반갑네요. 앞으로 자주 뵈요...^^*
저 자리에 그냥 그대로 재착공만 해서 될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계획 전면 재검토해서 장소 선정부터 원점에서 새로 해야죠~!
도서관이뭡니까 거참 개대중놈 뇌무현놈살인마집단붉은무리눈치보느라.....에이 ㅆ.....
뒤 늦게나마 박대통령 기념관 건립이 재추진되는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우리 전국민의 정성을 모아 역사에 길이길이보존되어 국민 정신교육과 빈곤을 떨치고 일서나 세계제일의 신화을 이룩한 휼륭하신 지도자의 정신을 승계해나가는 애국,애족에 장소로 활용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