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24.金. 맑음
회膾는 뜨고 사시미(刺身)는 치고, 쨍하고 회膾 뜰 날 돌아온단다.
17C초 이수광李睡光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지봉유설芝峰類說에 ‘중국인은 회膾를 먹지 않는다. 말린 고기라도 반드시 익혀먹고 우리나라 사람이 회를 먹는 것을 보고 웃는다.’라는 기록이 있는 걸로 봐서 회는 한국에서 많이 먹던 요리임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회라고 하면 바로 생선회를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로 회의 종류는 다양하다. 생선을 살짝 익혀 만든 숙회熟鱠가 있고, 미나리나 파로 만든 강회康膾가 있고, 육회肉膾, 소등심회, 자라회, 잉어회, 홍어회, 두릅회, 송이회, 죽순회, 그리고 각종 생선회 등등이 있는데 지봉유설에서 언급한 것은 아마 육회나 채소회가 아닌가한다. 실제로 각종 생선회가 우리사회에 대중화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 생각된다.
1981년 겨울에 가까운 스님 한 분과 함께 보름 남짓 동안 경주에서부터 시작하여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며 고성 통일 전망대까지 사찰 순례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전에도 회를 먹어보기는 했지만 그때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각종 생선회와 매운탕을 다양하게 먹어보았다. 스님과 동행한 사찰 순례 길에 생선회와 매운탕을 먹고 다녔다니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동해안을 끼고 있는 사찰 기행문과 동해안의 대표적인 맛 기행문 두 가지를 동시에 쓰다 보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일을 하고 다녔던 듯하다. 그리고 내가 회와 매운탕을 맛나게 먹고 있을 때 동행인이었던 스님께서도 옆에서 한 수저, 한 젓가락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전혀 없다. 또 한 가지, 생선회나 매운탕을 먹고 나서 절에 들게 된 때에는 꼭 양치질과 함께 일주문 앞에서 부처님께 그 날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참회를 했다.
“저어, 부처님 잘 지내셨지요. 오늘 실은 생선회와 매운탕을 먹어서 그냥 시내에서 자고 다음 행선지로 가려고 했는데요, 나중에 아시면 궁금하고 서운해 하실까봐 부처님께 안부 인사도 드릴 겸해서 왔거든요. 조금 전에 양치질도 깨끗하게 했고요, 내가 먹었던 물고기에게는 다음 생生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난 뒤 꼭 성불成佛하라고 축원도 해주었거든요. 그래서 참회를 깨끗하게 한 뒤라 부처님께서도 이해를 다 해주시겠지 하는 마음에 부처님도 뵙고 절에서 잠도 자려고 왔거든요. 부처님 저 잘했지요?”
“가만있자 어디서 많이 들어본 시끄러운 목소리인데 누구더라. 흐음, 자세히 보니 울림이 아니냐. 호오, 그 녀석. 요 며칠 간 생선회에 매운탕에 잘 먹고 다닌다는 이야기가 있더니만 볼살이 통통하게 올라 내가 얼른 알아보지 못했구나. 네놈이 안 오더라도 별로 궁금하지도 서운하지도 않고 괜찮은데 그랬구나. 네 녀석이 꼭 일주문 앞에 얼굴을 들이밀 때를 보면 날이 어둑어둑 해져서 슬슬 저녁밥도 얻어먹고 잠자리도 해결하고자 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의 심보에다 안부 인사를 슬쩍 얹어 들이미는 듯한 분위기더구나. 오늘은 기왕지사 일주문 안에 들어섰으니 묵고 가거라만 내일부터는 안 오더라도 하나도 궁금하지도 서운하지 않으니 그리 알도록 해라.”
“저어, 부처님!”
“오냐, 그런데 무슨 질문을 하려고 그러느냐. 네놈이 정색을 하고 그러면 내가 눈 하나 깜박할 줄 아느냐. 네놈 그 수법에 내가 여러 번 당해봐서 안다. 어디 질문 있으면 해보아라. 제대로 된 질문 같으면 내 대답을 해 주되 이상한 질문에는 노코멘트다. 네놈에게 이젠 더 안 속는다.”
“저어 부처님. 이런 말이 있잖아요. 일심一心이 청정淸淨하면 이심二心이 청정淸淨하고, 이심二心이 청정하면 삼심三心이 청정하고, 삼심三心이 청정하면 다심多心이 청정하다고요. 그래서 참회를 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일주문 앞에 서서 경건하게 부처님을 뵙고 인사를 드리는데 내일부터는 안와도 괜찮다 그러시면 제가 몹시 섭하지 않겠습니까. 원래 절이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항상 열려 있는 큰 마당이라 했는데 혹여 이 절에서 거居하시는 스님이나 다른 신도 분들이 지나가다 부처님 말씀을 듣는다면 몰인정하다고 부처님께 그럴까봐 제가 걱정이 되어 드리는 말씀이거든요. 어때요, 부처님 제 말이 맞지요. 그럼 얼른 저에게 사과하세요. 제가 부처님 사과를 받아들일게요. 예, 부처님.”
“흐음, 네놈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상하게 주도권을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드는데 왜 그런지 몰라. 그런데 말이다, 일심一心이 청정해서 다심多心이 청정해지는 것하고, 네놈이 참회를 하는 것하고 무슨 상관관계가 있느냐? 참회란 네놈처럼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이 아니란다. 네놈처럼 참회를 밥 먹듯이 하면 그것은 참회가 아니라 자기위안이나 현실회피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구나. 본래 참회懺悔란 잘못을 깨닫고 깊이 뉘우친다는 뜻도 있지만, 용서容恕를 구한다는 뜻도 그 안에 들어 있는 거란다. 수도 없이 반복되는 참회란 깊은 뉘우침도 없지만 용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말이 되겠지. 그건 그렇고 네놈 말마따나 네놈이 안 오더라도 하나도 궁금하지도 서운하지도 않다는 말은 좀 과장된 말이었구나. 사실대로 말하면 아주 아주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고 서운도 하지. 그래 조금 전에 한 말은 내가 좀 심했다. 이제 되었느냐?”
“......”
“엉, 어째 아무 말이 없느냐? 나는 네놈이 과묵할 때보다 헤~헤~ 거릴 때가 훨씬 좋더라.”
“저어, 부처님.”
“오냐.”
“사랑해요, 부처님.”
“허허, 고 녀석, 내 다 알고 있다.”
커다란 창窓이 있는 회 센터 이층에 앉아 일행들과 저녁식사로 회와 매운탕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올해도 남아 있는 날수가 양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는 날짜가 어느덧 되어버렸구나!
(- 회膾는 뜨고 사시미(刺身)는 치고, 쨍하고 회膾 뜰 날 돌아온단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부처를 어루는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긴울림님 후기 보면서 골고루 올라오는 생선을 맛있게만 먹었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참회할 기회를 주신 긴울림님 감사합니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춥네요. 운동하실 때 감기조심하세요. *^^*
요즘은 중국사람들도 회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단지 값이 좀 비싸서 대중화는 쉽지 않은가 봅니다.
ㅎㅎㅎ~~ 사랑합니다. ㅎㅎㅎ
~~~ㅎㅎㅎㅎ^^
읽으면서 웃었습니다. 회에 대한 얘기도 부처님과의 대화도 재미있어서요. 앞으로 생선을 먹을 때 다음 세상엔 성불하라고 축원해 주어야겠네요.^^
저는 회를 겁나게 맛나게 먹는디 어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