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친구랑 서울역에서 5시반에 만났다.
6시 5분에 광주로 떠나는 표를 끊고, 졸린눈을 비비며 기찻간에서 몰려오는 잠을 자려고 했건만..
수다가 시작되고 묘한 흥분감에 젖은 우리는 온갖 대화꺼리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잠을 잘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
10시 반쯤 광주역에 도착했을땐 반쯤 잠이 깬듯한 정신상태였다.
무료셔틀 시간이 안맞아서 택시를 타고 비엔날레 전시관에 도착하니 11시가 조금 안되었고,
표를 끊고 전시관안으로 들어갔더니...
교복입은 고등학생 언니들(?)과 오빠들(?)이 자신들의 동네인양, 시끌벅적~~~
1전시실에선 잠이 깨지않아 별 감흥이 없었고, 해설서를 사들고 2전시실로 옮겼다
으흠~~
2전시관에는 그냥 구경하는거 말고,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좀더 많아서 잠이 깼다.
신발벗고 들어가라는 작품들이 몇개 있었는데, 특히 9th ROOM 이라는 작품은 거울로 온 사방을 막고
마치 영화 큐브의 공간에 온듯한 느낌을 주어서 친구랑 놀이기구를 탄듯한 착각에 빠지게했다.
어느 전시실인지는 생각이 안나는데, 일본작가들이랑 한국작가들이 서로 릴레이로
축구공을 가지고 오브제를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화면구성도 재밌고 축구공의 모습이
변해가는게 웃기기도하고 편지가 들어가는 장면에선 약간 감동스럽기도 했었다.
5전시실까지 다 구경하고 나와서 기념품 하나 사고 시계를 봤더니 2시 반쯤되었네..
친구랑 생각보다 전시관 규모가 큰 것에 놀라면서, 괜히 서울가는 표를 미리 끊었다는 자책을 하기시작했다 -.-
셔틀을 타고 5.18공원에 자리한 project3 전시를 봤는데..
몇년전에 선배들이랑 망월동에 갔을때의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고
억울하게 누명을 뒤집어쓴 무고한 시민들의 고통의 역사도 그랬지만..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공간이 신도시 개발계획으로 사라져 버리고 박물관화되어가고 있다는
글을 봤을땐..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헐레벌떡 친구와 마지막 전시관에 가기위해 셔틀버스 정류장에 가니깐 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길이 막히는 토요일오후라 그런지 약속된 시간이 훨씬 지나도록 차는 오질 않았고
우리끼리 쑥덕쑥덕거렸는데, 알고보니 거기있는 사람의 70%정도는 외지인이었다.
마지막 전시관에 도착해서 광주시의 도시변천사, 건축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 폐선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담긴 작품들을 보고나니 5시 40분..
떠날시간은 한시간 이십분밖에 남질않고
광주역까지 어떻게 가는지 시장상인들한테 물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광주역에 도착해서
눈에 뜨인 감자탕 집에 들어가서 제육백반을 시켰는데
황송하리만치 나오는 반찬의 갯수와 그 맛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기찻간에서 맥주를 들이키면서 친구랑 다짐한건,
다음에 비엔날레에 오게되면 당일치기는 절대로 하지말자는 것과
광주시내의 맛집을 알아보고 오자는 것이었다.
(마지막 전시관에서 나와서 벤치에 앉아계신 아주머니한테 어느쪽에 가면 맛집이 많으냐고 물으니까
'어디서 왔소?'라는 질문을 먼저 하시길래
'서울에서 왔어요'했더니
'그럼 어디서 먹든 훨씬 맛있고 음식이 실허제'하셨다)
몇년전에 망월동을 선배들과 찾아왔을때도 당일치기였던 터라
광주시내 구경도 못해봤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지나와서 아쉬움이 컸고
버스를 타고 길거리를 보고 받은 광주에 대한 인상은
서울보다 길거리가 깨끗하다는 점, 시민들이 여유로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전시관을 둘러보면서 광주사람들은 이런 좋은 구경도 가까이서 할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1초도 안되서 든 생각은
내 사무실 근처엔 미술관이 죽 늘어서 있고, 20-30분만 걸어가면 인사동인데..
우리집에서 한시간도 안가는 거리엔 국립현대미술관도 있는데..
나도 참 게으르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가까이서 문화생활할게 이렇게 많은데.. 하는 생각이 절로들면서
장소탓 이벤트탓 하지말고 있을때 챙겨보고 문화인이 되어보자는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