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화를 규명해가는 극히 일부이고 본질적인것은 아니죠.
근원적으로는 음양으로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즉, 양중양인 병화와 양중음인 정화로 나누어 볼 문제라는 거죠.
수화는 명리 해석의 기준이고 정동론의 기초지만,
누군가는 세월을 춘추라 이야기하듯 조습의 문제로 나누어 볼 수도 있습니다.
그안에서 약간의 유불리를 논할 수 있는것이 길흉이고요.
화는 동하고 수는 정하니,
양중양인 병화는, 변화를 만들어내나 기복이 있는 것이고,
양중음인 정화는, 변화를 만들어내나 꾸준한 것이죠.
어떤 분이 댓글로 기운의 방향을 논해볼 문제라고 하셨는데,
바빠서 잠시 스쳐보고 지나간 까닭에 누구셨는지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병화는 시야가 탁트인 정원의 울타리 같은거죠.
그래서 목생화를 우선해서 논하는 것이고 나무를 키운다 하는 것이죠.
열린 공간이 없으면 나무가 위로 자랄 수 없으니까요.
양중양이라 기복이 있으니 낮에는 팽창적이지만 밤에는 수축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성패가 다단하다 하는 것이고, 낮동안 얼른 업무를 끝내고 밤에는 좀 쉬자 하는 것이죠.
병화가 어떤 공간에 들어가면 한 눈에 좌중을 훑어보고 누가 무엇을 하고있는지 간파하며,
바코드 찍듯 한 눈에 담아내는 시야를 말하니 Field Of View ( FOV ) 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것을 빛이라 논하는 것 뿐이고요.
정화는 낮동안 쌓인 운동에너지를 토에 저장하고 밤에도 조금씩 쓰는 것이어서,
화생토를 우선해서 논하는 것인데,
변화인 동을 꾸준히하는 정인 것이니, 열이라고 논하는 것 뿐이죠.
그래서 그 꾸준함 때문에 무리한다. 밤새 일한다.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이를 좀 더 깊게 들어가면,
병화가 bouncing 되는 빛이라면 정화는 focusing 된 빛일 뿐입니다.
돋보기로 빛을 모으면 빛의 운동에너지가( 관성질량 ) 열이 되듯이,
빛과 열은 근원적으로 구별되진 않습니다.
가시광선에 비해 주파수가 낮은( 변화가 적은, 꾸준한 ) 빛이 열일 뿐이죠. ( 적외선 )
정화일간 사람의 눈빛은 대상에 초점이 맺혀 있습니다.
그래서 하이라이트를 흰 붓으로 콕 찍은것 처럼 빛나죠.
이를 inspection 이라고 하는 것이고요. 현미경 같은 관찰력을 논하는 것이죠.
이에 반해 병화는 전체를 한눈에 담아내는 펼쳐진 시야를( wide FOV, spectacle )
말하는 것이고요.
병화일간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배경과 전경의 구별이 불명확한 파노라마를 찍고,
정화일간의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면 돌담 틈에 피어난 꽃 처럼 전경이 분명한 정물 사진을 찍는 편이죠.
정화가 더 구체적이란 말이고요.
그에 반해 계수일간의 사람들은 초점이 맺혀져 있지 않아 빛이 꺼져들어가는 느낌이다 하는 것이고요.
엄밀히는 눈동자의 하이라이트로 구별되기 보다 대상의 너머를 향해 풀려있는 시선 같은 것이죠.
정화는 초점을 맺고 있기 때문에 초점 거리를 ( Focal Length ) 지나게 되면 무한히 발산합니다.
> 이렇게 초점이 맺히다가 초점 위치를 지나면 >< 이렇게 발산한다는거죠.
그 중심을 초점 이라 한 것이고,
병화는 < 탁트인 시야가 > 한 눈에 들어오니 <> 이렇게 수렴한다는 것이고,
그 중심을 울타리 라고 한 것이죠.
병화는 양기를 일단 쓰고 나중에 모으자는 것이니 즉흥성을 말하고,
정화는 일단 모으고 나중에 쓰자는 것이니 준비성을 말하죠.
병화는 오늘만 사는듯 보이고, 정화는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 같은것이지요.
목을 성장시키고 보호하기 위한 탁트인 울타리를 말하는 병화는 보통, 사업의 종목을 늘리진 않지만,
정화는 하나가 디테일하게 정복되었다 싶으면 그를 기반으로 사업 종목을 다양히 확장하게 됩니다.
이는 병화가 습에 속해있고 ( '잘 될거야' ), 정화가 조에 속해있기 때문이죠 ( '혹시 모르지' ).
그래서 물상에 매몰되기 보다, 실제로 무엇을 하느냐에 집중해야 앎의 나아감이 가능한 것이니,
빛과 열은 프레임으로 삼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죠.
시각을 활용하는 것은 맞지만, 운동성과 변화에 방점을 두면 더 적합하다 생각합니다.
병화는 빛이고 정화는 열이다 란 제목으로도 구체적으로 해석을 잘붙이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 여기 말구 ) 결국엔 타이틀, 성명보다 내용이 중요한거겠죠.
첫댓글 제가 기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 차륜님이셨군요. : )
@세이메이 몸에 있는 양기를 한꺼번에 많이 사용하면 발바닥으로 음기가 들어 옵니다.
@차륜 예 양기를 쓰면 잠이오죠 : )
@세이메이 차륜 세이메이님 티키타카에 빵 터지고 갑니다. 😹
점학은
별자리로도 점치고
동전으로도점치고
깃대로도 점치지만
역학은 뭔가 목화토금수에 뚝 떨어지는 재료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빛 기 열 이런 단어 말고요
빛과 열은 화
기는 비겁 등으로 그냥 표현하면 편할것 같은데요
열과 기와 빛을 어떻게 길흉에 대입하는지 이해가 안가서요
나만 답답한가 모르겠네요
길흉성패는 상대적인 것이라 절대적으로 논하는 자체가 비논리인 것이니,
길흉을 판단하기 보다
무엇을 하느냐, 왜 했느냐,
즉 행동과 심리와 상황을 보면 오행과 육신과 음양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문제지요.
그냥 작은 것입니다 음양인 정화와 병화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구요 빛은 그냥 작은 것이 두루두루 넓게 펼처저서 느끼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동일하게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공돌이들은..사기성은 없는데..헐~
찔리셨습니까?
멋진글이네요
감사합니다~
태양 빛이 어느 질량대상에 도달하여 에너지로 남게 되어 생명을 유지하는 자연현상을 미루어 보면. 병정이 맞군요. 양에서 음의 변화이지. 병정이 따로 존재하는 음양이 아닌것이 음양론이지요.
변화로 해석하는 것과. 상태로 구분하는 것은 때론 다른 결과를 낳기도 하더군요. ~.
공학전공자 셨나봅니다. ^^ 흥미로운 관점 입니다. 👍
크게 보면 음양에서 음인 수는 체고 양인 화는 용이고,
지지에서 수화는 상태인 체고 금목은 용인 변화죠.
그 계절이 체면 다음 계절은 그 계절의 용이고,
지지 하나에서 전기가 체면 정기는 용이죠.
누군가는 화를 태양하다 하고 이는 상태를 본 것이고,
저는 목을 태양하다 하고 이는 변화를 본 것이죠.
천간에서 갑목이 체면 경금은 용이고요.
경금은 갑목 병화 을목을 보좌하긴 하지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체와 용 기와 질을 고전에 그렇게 명확하게 적혀 있어도 고전책조차도 사주 예시는 그걸 이해못하고 개판으로 적혀 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고서의 반은 그냥 쓰레기입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한다는 쓰레기 과학자들 처럼요.
저도 이해한다고 하면서 사실 아직 이해못하는 부분입니다. 서로 공존하는 느낌이라서요. 마음은 가나 설명하고자 하니 답이 없더라구요. 서로 상호작용으로 움직이니.... 참으로 어려운 학문입니다.
양자역학 강퇴당한 세이메이님 글귀와 왜이리 겹쳐보이는지 제가 오해한건가요?
개소리... ㅋㅋ 빛과 열이 근원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고 하네.. 빛은 전자기파이고 열은 분자의 운동임.(병진 회전 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