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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상대 산악회원 12명 설악산에서 조난!--10월 11일 백두대간 산행에 나섰던 서울상대 17회 산악회원 25명 중 12명이 설악산 大間嶺(큰사이령) 계곡을 하산하던 중 길을 잃고 조난했으나 이날 밤 9시 인근 창암리의 심마니와 땅꾼 2명의 도움으로 극적 으로 구조됐다. 대부분 70세 가까운 고령인데다 여성 3명 중 1명은 팔목 부상으로 한쪽 팔의 사용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날은 이 산악회가 정확하게 3년 10개월 (2004. 12. 11.- 2008. 10. 11.)에 걸친 백두대간 마지막 코스 산행을 한 날로 평소보다 참석자가 많았고 대간 완주라는 기념비적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둔 흥분으로 회원들이 잠시 긴장이 풀린 것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자 피로와 추위 및 허기에 지친 조난자들은 일단 더 이상 무리한 돌파를 중단하고 먼저 하산한 다른 회원들과의 교신을 시도하며 모닥불을 피우고 최악의 경우 비박을 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다행히 오후 7시 다른 대원 들과 휴대전화 통화에 성공, 급파된 구조대에 의해 조난 5시간 만에 전원 무사히 하산 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한 12명 대원들과 부근 지리에 밝은 심마니와 땅꾼을 구조대로 파견한 것이 대형사고를 예방한 현명한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계획은 이랬다. A팀은 미시령에서 상봉, 신선봉을 거쳐 대간령으로 북진하고 B팀은 창암리에서 대간령으로 올라와 A팀과 랑데부한 다음 전원이 창암리로 하산한다. 버스로 다시 진부령으로 가서 만세삼창하고 기념촬영하고 진부령 식당 에서 종파티하고 폭죽도 터뜨리고, 먹고, 마시고, 광란의 파티로 밤을 지새우기로 했었다. 그런데 결국 12명의 조난이라는 믿을 수 없는 사고가 모든 계획을 물거품 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냥 무사히 끝내주기에는 너무 심심했나? 마지막 날 운명의 여신은 우리들에게 기어코 Once in a Life Time Experience를 선물하셨다. 평생 죽어도 못 잊을 추억(?) 하나를 만들고 나서야 우리의 백두대간 종주는 끝났다. 25명의 대원이 미시령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팔목을 다친 김회장이 외팔로 一筆揮之해온 ‘祝 白頭大幹 縱走’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촬영부터 한다. 이렇게 격조있게 완주 증명사진 찍은 산악회는 17밖에 없을 걸! 짠돌이 현총무는 그 와중에도 을지로 가서 플래카드 주문하면 6만원인데 회장 덕분에 돈벌었다고 좋아한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에 현란한 단풍과 소슬한 가을바람이 우리의 마지막 산행을 축하해준다. 김고문, 이영구동문, 최영철동문에 명예회원 장문영 부회장까지 카메라를 들이대 촬영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랜만에 5명 전원이 모인 여학생들이 알 카에다 포즈로 폼잡고 사진 찍는 동안 등산로 입구 환경 감시원들과 교섭을 벌이던 김고문이 실망한 표정으로 돌아와 입산이 불가하다 는 통보를 한다. 한두명이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너무 인원이 많아 안 되겠단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 대한 불만이 일제히 터져나온다. 공원을 만들 때는 국민들 즐기라고 만든 건데 무작정 출입금지만 시키면 다냐, 인터넷에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자, 등산객이 환경 훼손하는 거 봤냐, 환경청 혼 좀 내주자, 떠들어 보지만 도리가 없다. 김고문의 제안으로 전원 창암리에서 출발하는 걸로 계획이 바뀐다. 노약자와 전날 과음자 등은 대간령까지만 가고 나머지 희망자는 상봉까지 갔다 화암재에서 창암리 로 하산하는 안이다. B팀이 다 같이 가게 돼 오히려 더 잘됐다고 환호한다. 10시 40분, 창암리 박달나무쉼터. 버스에서 내리는 25명의 등산객을 본 쉼터 주인이 법대로 하자면 내가 신고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러겠느냐, 하지만 절대로 미시령 으로 하산하지는 마라, 감시원이 반드시 지키고 있다가 벌금 물린다, 고 주의를 준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출발. 계곡을 뒤덮은 붉은 단풍, 하얀 손을 흔드는 억새, 풀숲의 애절한 구절초에 취해 꿈길 같은 산책로를 걷는다. 11시20분 小間嶺(작은사이령), 11시 35분 마장터, 대간령 3km 표지판을 지난 얼마 후 앞서 가던 팀을 큰 개울가에서 만난다. 무전기를 가진 중간 통신병(박정수)이 선두 구바오로와 함께 내빼버려 우리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서 기다리고 있다 한다. 인원도 많은데 무전기 두 대가 함께 선두로 가버리면 어쩌냐며 중간통신병에게 엄중한 징계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열띤 성토가 이어진다. 12시 40분 대간령. 이미 점심식사를 끝낸 선두팀을 만나 우리도 점심을 먹는다. 1시 나머지 후미가 전원 올라왔는데 임대장이 안 보인다. 중간에 다른 길로 잘못 빠진 모양이다. 산행대장의 실종이라니! 서방님이 안 보이자 김경자여사가 울상이다. 나중에 하산길에서 서방님과 재회하고는 진짜로 울었단다. 1시 10분, 구바오로와 장문영, 강일성 명예회원이 상봉을 거쳐 화암재로 하산 하겠다며 출발한다. 김영길-유수자 부부, 노창송 아재(일가아저씨)와 우리 부부가 따라붙는다. 상봉까지 안 가고 화암재에서 하산하는 데만도 총 4시간이 걸리니 상봉은 발 빠른 선두 3명만 가기로 하고 나머지 5명은 화암재까지만 가서 하산 하기로 한다. 그러다보니 무전기가 필요할 것 같아 결국 상봉팀과 화암재팀이 각각 무전기 1대씩을 갖고 가게 됐다. 별 생각 없이 취한 이 행동이 나중에 엄청난 재난을 불러오는 한 원인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간령에서 신선봉까지는 잡목숲을 뚫고가는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다. 바오로가 달아놓은 리본을 따라 올라가는데 신선봉 직전 ‘큰바위’ 아래에서 무시무시한 너덜겅 암벽을 만난다. 다행히 로프가 매어있어 간신히 기어 올라갔는데, 앞서 간 선두도 원래 가기로 한 신선봉 우회로를 못 찾아 신선봉으로 올라갔다 내려간다는 바오로의 무전이 온다. 신선봉 오르기가 자신이 없던 우리는 우회로를 찾기 위해 오른쪽 길로 내려섰다. 그러나 가파른 내리막의 그 길은 화암재와는 반대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화암재에 도착한 선두가 자기들도 상봉행을 포기하고 화암재에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며 바오로가 길을 못 찾는 우리를 데리러 큰바위봉 아래로 되돌아온다는 무전을 보낸다. 무전으로 우리들 하는 짓을 파악한 김고문이 일몰시간이 가까워오니 전원 대간령으로 후퇴해 하산하는 것이 좋겠다고 지시한다. 우리 5명은 즉각 동의 하고, 바오로는 화암재로 다시 돌아가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의 명예회원과 합류해 하산하겠다고 대답한다. 우리 일행이 대간령으로 후퇴한 시간이 4시 40분. 김고문이 어두워질 것에 대비해 밝을 때 랜턴을 세팅하라고 지시한다. 시키는 대로 랜턴 세팅해 머리에 쓰고 서둘러 하산한다. 한편 마장터 민가 주인에게서 화암재에서 마장터로 내려오는 길이 분명치 않다는 정보를 얻은 김고문은 바오로에게 대간령 으로 후퇴해 하산할 것을 권유했지만 선두 3명은 원래 계획대로 화암재에서 마장터 로 바로 하산하겠다고 연락해온다. 5시 30분 마장터에 도착하니 김고문이 기다리고 있다. 선두 3명은 이미 창암리로 내려갔다고 한다. 바오로 찜쪄먹는 두 명예회원의 주행실력에 놀랄 뿐이다. 그런데 김고문이 오늘 “내 속이 다 문드러졌다”고 한탄을 한다. 연유인즉 신선봉 으로 간 우리 두 팀 걱정에 정신이 없는 사이 12명의 후미가 마장터에서 엉뚱한 길로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마장터 지나 소간령으로 가는 약간의 오르막이 있는데 그걸 보고 길을 잘못 들었다고 판단한 12명이 오른쪽으로 진짜 잘못된 길로 들어서 버린 것 같단다. 함께 뒤따라가던 현총무, 이종범달마대사와 박근준동문이 잘못 가고 있다고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이들 12명은 못 들었는지 계속 가더라는 것. 즉각 김고문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고 김고문은 3명에게 뒤따라 갈 것이 아니라 빨리 휴대폰이 터지는 박달나무쉼터로 내려가 심마니인 주인과 일행을 통화시켜 소재를 파악하라고 지시했단다. 억장이 무너졌지만 무전기도 없고 휴대폰도 안 터지니 속수무책으로 속만 끓이다 우리 일행을 만나 함께 창암리로 내려왔다. 6시 창암리 박달나무 쉼터.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12명의 소식은 감감이다. 잠시 후 다행히 휴대폰 통화에 성공했지만 일행이 전해온 소식은 암담하기 짝이 없다. 계곡을 수차례 건너면서 내려가고 있는데 곳곳에서 절벽을 만나고 길이 끊겨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박달나무 쉼터 주인은 심마니다. 우리 설명을 들은 주인이 내린 결론은 그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결국 군부대를 지나 진부령으로 가는 국도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심마니 한 명과 땅꾼 한 명을 구조대로 보내기로 한다. 이 일대의 산과 계곡을 자기 집 뒷마당 같이 훤히 아는 이 사람들이 119구급대보다 구조작업을 훨씬 더 잘 할 거라는 김고문의 말에 모두 수긍한다. 그리고 우리들 중 누가 따라 나서는 것은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니 모두 버스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 교인들은 기도나 열심히 하라고 지시한다. 구조대가 고성능 랜턴을 들고 산으로 올라가고 우리는 국도옆 버스에서 진부령 고개 위의 별들만 바라보며 애간장을 태운다. 7시 40분, 마침내 구조대가 조난자들을 만났 다는 연락이 온다. 아, 이제 살았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는 것 같다. 9시, 불빛이 보이고 대원들이 한 명씩 지친 몸을 끌고 내려온다. 모두 끌어안고 감격의 재회를 한다. 김경자여사는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대간 마지막 행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처럼 참석한 김승만왕회장, 김태구회장, 최영철동문과 김계숙여사에게는 웬 날벼락인가. 평생에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조난’이라니... 파티고 폭죽이고 다 날아가 버리고 아무데나 문 연 식당 있으면 간단히 저녁밥이나 먹기로 한다. 국도변의 한 식당에서 황태국과 설렁탕으로 저녁을 먹는다. 그래도 술은 한잔 해야지. 마주앙(이종범)과 소주에 윤봉용교수가 가져온 하이네켄 생맥주 로 축배를 든다. 그러나 축하보다는 삼삼오오 테이블마다 모여앉아 조난자들의 얘기 듣기에 정신이 없다. 계곡물에 빠져 옷은 다 젖어 덜덜 떨다 어두워지자 더 이상 움직이기를 포기하고 모닥불을 피웠단다. 가져온 옷을 다 껴입고 비상식량도 점검하고 비박 채비에 들어갔는데 그때 마침 구조대가 올라간다는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윤봉용교수는 모처럼 오랜만에 산에서 한번 자보려는데 공연히 구조대를 올려보내 좋은 기회를 놓쳤다고 어깃장을 놓는다. 하기야 그런 낙천주의가 조난자들을 무사히 보호했을 것 같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든 조난자들께는 몰매 맞을 얘기지만 세상에 이보다 더 진진하고 재미있는 얘기가 또 어디 있겠는가. 시간만 허락한다면 밤새 해도 모자랄 것 같다. 신속하게 성의를 다한 두 분 구조대 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백두대간은 역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73회 동안 별 탈 없이 진행된 산행이 D-1에 회장의 부상사고를 내고 D-day 에는 결국 상상도 못한 12명의 조난사고를 낳았다. 절대 따로 다니지 말고, 무전기 근처에서 벗어나지 말고, 길을 잘못 들었을 때는 반드시 길 있는 곳까지 되돌아가라, 등등 김고문이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을 좀더 경청했어야 했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았어야 했다. 선두가 무전기 2대를 독점한 것도 용서할 수 없는 실수였다. 그런 의미에서 고생하신 조난자 여러분께 박통신병을 대신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심마니와 땅꾼을 구조대로 올려 보낸 김고문의 결정은 더 이상 탁월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역시 위대한 지도자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 자리를 빌려 우리 산악회원 모두가 다시 한번 김고문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김고문 없는 17산악회는 상상도 할 수 없고 김고문 없이는 백두대간은 꿈도 꿀 수 없는 프로젝트였다. 귀경버스안, 윤봉용교수가 느닷없이 멀미약을 찾는다. 장문영회장이 가져온 발렌타인으로 뒷자리에서 멀미꾼들이 종파티를 한다. 17동기회 3대 ‘구찌’의 한 분(임한석고문의 평가)이라는 김태구회장의 유머에 힘들었던 하루를 웃음으로 끝낼 수 있었다. “너희들, 조난해봤어? 난 조난해본 사람이야! 너희 들은 걱정했는지 몰라도 우린 다 기쁘고 즐거웠어.” 동문 여러분, 이렇게 17산악회가 백두대간을 완주했습니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희대의 조난 사고도 곁들였습니다. 지나간 3년 10개월은 영광의 계절이었 습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성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진짜 축하파티가 10월 17일 청계산 아래에서 열립니다. 많이 오셔서 축하해주십시오. 선물도 있습니다. 조난을 당하고도 11일 저녁을 쏘아주신 김승만왕회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참가자(25명): 강일성, 구명회, 김숭자(장원찬), 김승만, 김영길(유수자), 김윤기(김계숙), 김종남, 김태구, 노창송, 박근준, 박정수(노순옥), 윤봉용, 이영구, 이종범, 임종수(김경자), 임종홍, 임한석, 장문영, 최영철, 현해수, (노순옥 기)
첫댓글 설악산 산 신령님께서 산을 만만히 보지 말고 조심하라는 두서너번의 예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깨닫지 못하고 느슨해 진 우리들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엄중 경고하고, 백두대간외의 산행에서도 더욱 조심하라는 산신령님의 계시로 받아 들이는 것이 어떨까요.
조난자가 조난 와중에 기록 사진을 남기다니, 너무나 놀랍습니다. Photo Journalism 의 백미입니다. (노순옥)
溫齋의 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나저나 우리가 대단한 성취를 이룬 것은 틀림없으니 다 같이 경축합시다.
추카 추카 추카합니다. 3년 10개월에 걸친 백두대간 종주를 무사히 마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더불어 산행기자 노순옥 여사의 감칠맛 나는 산행기는 더 이상 볼 수는 없는지요? 아쉬움이 남는군요. 저 역시 대간길에서 매사 나를 낮추는 겸손의 법을 배웠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낍니다. 이 번 조난도 지금은 두려움으로 남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커다란 힘이 되어 돌아올겁니다. (차영민)
뒤에서 조용히 응원해주신 차여사님 덕이 큽니다. 축하 감사합니다. (노순옥)
축하합니다! 장하십니다!! 정말 대단한 성취를 이뤘군요!!! 산신령님의 계시 잘 받드러 무궁한 발전 기원합니다.
모든 일이 아름다운 젊은 날의 추억으로 남겠지요! 모두 수고 많았읍니다. 시원하고도 섭섭하네요!
지하철 공짜로 타면서 아직도 젊은 날?
구조의 힘을 빌려서라도 잘 탈출하였으니 다행이고 축하합니다. 길을 잃고 어두운 산속에 묻혀 마음고생을 하면서 몇시간을 잘도 버티셨네요. 조난을 당한 분이거나 당하지 안한분이거나 우리 모두에게 경고이고 교훈이라 싶습니다.
약간의 상항설명이 퍌요한것 같읍니다.현해수,박근준,달마대사가 먼저 내려가버린것이 아니라,세사람을 만나 상항을 들은 김고문이 12명을 쫏아 가는것보다 빨리 통화가 가능한 박달나무쉼터로 먼저 내려가 12명과 심마니 주인과 통화시켜 위치와 상항을 파악하라고해서 부랴부랴 먼저 내려와 휴대폰으로 위치를 파악 확인시켜주고 차후행동방향을 알려준것입니다.
사실 확인을 하지 않은 정확치 못한 보고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고 걱정이 돼 경황이 없었습니다. 정정했습니다. (노순옥)
무사히 조난을 극복하고 대 단원의 막을 내렸으니 대단히 축하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