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동무님
주 안에서 평안하옵신지요.
외국에 그리 나가 본 일이 없다 보니
가끔은, 아주 가끔은
님이 계신 영국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영국의 이곳 저곳을 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나 유적지나 관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영국에 복음의 생명력이 힘있게 있어서 복음과 함께 하는 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님에게 역사하시는지 그 은혜를 참으로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비록 이러한 마음에 있을 수 밖에 없긴 하나, 성령을 통하여 주 안에서 복음의 친밀한 교제에 있음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하나 됨의 기쁨에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더욱 복음에 신실하고 견고하게 잘 서나가실 것을 주께 구합니다.
님이여.
님은 말라기 4장 5절 말씀을 가지고 질문해 주셨습니다.
님은 이 구절이 예수님 초림에 관한 말씀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구절에서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고 있고, 님이 언급하였듯이 예수님도 세례 요한을 염두에 두고 엘리야가 왔었다고 말씀하셨구요.
그런데 님은 (아마도 방송 설교인 듯 한데) 님이 자주 듣는 어느 미국인 목사님이 이 구절이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재림에 관한 말씀이라고 설교하심으로써, 어떤 것이 맞는지를 알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말라기 4장 5절, 이 한 구절 전체를 놓고 보면은요 예수님의 초림이나 예수님의 재림이나 어느 하나 만을 가지고서 말씀하시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이나 또는 예수님의 재림이나 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 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이 구절에서는 이 두 가지가 다 내포된 것에서 예언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초림이나 예수님의 재림 어느 하나 만을 얘기하더라도, 그래도 50%는 맞는 것 아닌가? 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억지요 우기는 것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이 예수님의 초림이나 또는 예수님의 재림이나 이 둘 중에서 어느 하나 만을 가지고 말한다면 맞지 않다고 답변을 드렸는데, 그렇다면 왜 그런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 먼저 이 구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여기서 ‘보라’는 말은 감탄사인데, 이 말 뒤에 따르는 하나님의 예언을 주목하게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예언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듣게 하심으로 이 예언에서 알게 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하여 집중하게 하며 바라보게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를 것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그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란 것으로 ’여호와의 날‘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와의 날‘이 어떤 날인지 그 성격을 설명해 주는 것으로 ’그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즉 ’그 큰 여호와의 날‘, ’그리고 그 두려운 여호와 날‘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선지자 말라기는 하나님의 예언인 ’여호와 날‘, 곧 ’크고 두려운 날‘이 올 것을 전해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여호와의 날이 ’크고‘란 말은 ’(심히) 큰‘, ’(목소리가) 큰‘이란 뜻이기도 하고, 이는 ’위대한‘이란 뜻에서 사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또한 ’두려운‘이란 말은 이 뜻 외에도 ’무서운‘, ’경외하는‘의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은 ’크고 두려운(무서운) 여호와의 날‘이란 것입니다.
이 ‘여호와의 날’, 곧 ‘크고 두려운 날’이 어떤 날인가에 대하여서는 앞서 4장 1절에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라고 말씀하시고 있어서, 교만한 자와 악한 자에게 심판이 임하는 날을 예언하시고 있기 때문에,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란 개념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여기서의 ‘여호와의 날’, 곧 ‘크고 두려운 날’을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로 단정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말라기 4장 5절 앞서에서 곧, 4절에서 무엇이 말씀되고 있는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전해준 율법이 말씀되고 있고, 이제 여기 5절과 그리고 6절에서는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셔서 그가 전할 하나님의 예언이 말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율법과 예언의 대표되는 두 사람인 모세와 엘리야의 언급에서 ‘여호와의 날’, 곧 ‘크고 두려운 날’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요. ‘여호와의 날’, 곧 ‘크고 두려운 날’은 율법과 예언에서 약속되고 있는 날인 것이며, 따라서 이 날은 그 약속되고 있는 날의 성취로 반드시 올 것이었습니다. 그 성취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되어집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성취되는 것입니다.
선지자 말라기는 그렇게 그리스도에 의해서 온전히 성취되는 날이 이르기 전에 있을 일, 즉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있을 일을 또한 예언합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과 예언에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 - 여호와의 날 - 을 기억하여 그 날의 기다림에서 그들을 위하여 보낼 한 사람을 맞이할 예비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선지 엘리야입니다. 이 선지 엘리야가 누구인가는 후에 예수께서 알게 해주시고 있는데, ‘세례 요한’을 가리켰습니다(마 17:9-13). 여기서 ‘선지 엘리야’에서 ‘선지’란 말은 엘리야의 직임을 말하는 것으로, 엘리야가 맡은 직임에 있는 선지자가 올 것이란 것입니다. 선지자 말라기는 그렇게 엘리야가 맡은 선지자의 직임을 수행할 한 사람이 와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부모의 마음을 자녀들에게 돌려주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려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자로서 세례요한이 출생하게 되는 것과 관련해서 주의 사자에 의해서 세례요한이 어떤 일을 하는 자로 오게 될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눅 1:13).
이렇게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올 것이라고 한 선지 엘리야, 곧 엘리야가 수행했던 선지자의 일을 하는 한 사람인 세례요한이 와서 물로 회개케 하는 세례를 베푸는 일을 하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성령(과 불)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을 소개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이 증거한 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며, 그분은 그 사역을 행하시는 것에 의해서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입니다(마 3:1-12).
여기에서 알 수 있는 바대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과 함께 심판이 행해집니다. 선지자 말라기가 4장 6절에서 올 것이라고 한 선지 엘리야의 사역이 있음으로 -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 예언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와서 심판할 때에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는 일이 있음으로 그들은 멸망의 저주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돌이키지 않는 자들은 멸망의 저주를 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말입니다. 말라기 4장 5절과 이 구절의 전후 문맥에 의하면, 4장 5절에서의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는 날입니다. 이 성취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서 비로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 성육신<초림> 하셔서 구속 사역을 수행하시는 것에서부터 시작 되어진 것이며, 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 그리고 승천과 성령 강림으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 나가시고, 재림하셔서 죄로부터 구원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인 택하신 백성을 주와 함께 주의 나라에 있게 하시나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그 심판인 멸망에 있는 자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영영히 꺼지지 않는 불에 내던져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하실 것입니다. 이렇게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에 의해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올 것’의 기다림에 있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신 이후 지금의 온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인 세상 끝날까지 예언된 그 날의 성취인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에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선지자 말라기가 예언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에서 예언하시고 있는 ‘여호와의 날’, 곧 ‘크고 두려운 날’은 그리스도의 초림이나 또는 그리스도의 재림 어느 하나를 지칭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의 전체 기간인 ‘그리스도의 날’, 곧 ‘그리스도의 심판이 있는 날’, '그리스도에 의한 심판의 날'이니, '그리스도에게서 있게 되는 크고 두려운 날'을 의미합니다.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님이 계신 영국은 이곳 한국보다는 따스한지요. 그동안 이곳 한국은 한 달이 넘게 삼한사온이 실종된 가운데서 연일 추운 날이 계속되었습니다만, 이제 오늘부터는 한풀 꺾일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직 겨울이란 철이 다 지나간 것은 아니기에 겨울 추위가 몇 번은 더 오지 않겠나 싶습니다.
모쪼록
강건하시며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목사님 답글 감사드립니다. 영국은 그리 춥지도 덥지도 않습니다. 이런 날씨에 익숙하다보니 한국의 덥고 추운 날씨가 감당이 되지 않아 한국 갈 엄두가 나지 않는가봅니다 (게을러서). 영국 교회에서 설교 말씀 들으면서 복음에 많이 부딪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같은 사람을 사랑하실 수 있을까, 그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감사했고, 주님의 거룩함 앞에 제 그 어떤 선한 행위도 거지 조각에 불과함을 알았습니다. 심판에 대한 말씀을 접했을 땐, 벌레가 부러웠고, 전도서4"2-3 말씀에 애통해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큰 사람들은 대통령이나 왕이 아니요. 큰 교회에서 목회하고 기도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는 기도의 능력자가 아니라 비록 세상에서 버려진 자라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말씀 안에 거하는 자들이 위대한 자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목자의 심정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진리를 전하는 목사님들이 계신 교회에 가고 싶죠.영국에서 복음을 들은 기억 없으며 회개에 대한 설교도 안하죠. 그래서 이 미국인 목사님 설교들 듣는데 아쉬운 것은 이 목사님은 회개하라는 설교는 하지 않네요. 복음에 신실하고 견고하게 잘 서나가며, 기도 줄이 끊기지 않도록 또 회개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