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교의 한 얼굴만 강조 … 국가주의 너무 우위에 뒀다” |
『관용의 역사』 (김응종 지음, 푸른역사, 2014) 집단서평회 풍경 |
집단서평이 확실히 자리 잡아가고 있다. 출판사 푸른역사(대표 박혜숙)를 중심으로 한 ‘집단서평’은 하나의 문제저작을 놓고, 다양한 인접 분야 연구자들까지 가세해 책과 저자의 문제의식과 한계를 난상토론하는 데 성공했다. 아카데미 외부에서 분 이 돌풍은 대학으로까지 건너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2일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는 김응종 충남대 교수(사학과)의 『관용의 역사』를 놓고, 박충구 감리교신학대 교수, 임승휘 선문대 교수(역사학과), 윤원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기봉 경기대 교수(사학과) 등이 참여해, 사회학자 정수복의 사회로 얼굴을 맞댔다. 이날, 어떤 서평이 오고갔을까.
김응종: 처음에 『아날학파』라는 책을 20년 전에 낸 것도 무모했던 것 같고, 이번에 『관용의 역사』라는 새로운 분야, 근대사를 다룬 것도 무모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근대사나 지성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관용이란 주제에 끌려 무시무시한 사상가들을 쭉 훑어봤는데, 전문가들은 각각의 사상가들에 대해 허점이 많다고 지적할 수 있으나 무모하게 해야 결과가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다음에는 프랑스 혁명의 어두운 면을 들춰내는 작업을 하고 싶다.
6월 달에 이 책을 냈는데(출간은 9월), 책을 낸 후 한 번도 보지 않다가 책을 다시 한 번 쭉 정독을 했다. 정독을 하고 느낀 소감, 후기를 말씀드리겠다. 머리말은 도발적으로 문제제기를 했다.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불관용적인 종교다. 따라서 관용의 역사는 그리스도교로부터의 해방의 역사가 될 수밖에 없다. 중세에는 그리스도교가 철저하게 지배했던 시기이고, 르네상스에서 계몽주의까지의 근대는 기독교의 지배가 무너지는 관용이 생겨나는 시기로 파악했다. 근대의 본질은 종교로부터의 탈피라는 게 내 생각이다. 즉 근대에 나온 모든 것들 절대 왕정론, 자연법사상, 철학들 계몽주의 등을 종교 즉 기독교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로 파악했다. 15년 걸린 작업이었고 생소했던 분야이며, 낯선 사상가들에 과감하게 도전했던 책이었다.
박충구: 좋은 책을 읽게 되서 반가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기독교 신학자로서 변명할 것은 없지만, 굉장히 사실에 근거해서 집필했으나, 간단한 내 느낌은 종교가 두 얼굴이 있는데 하나의 얼굴을 너무 강조하시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에 왜 이 기독교를 불관용의 종교로 초지일관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게 좀 규명이 됐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마 시작이 계몽주의, 르네상스부터니까 그러지 않았나 생각한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기독교를 분석하길 기독교는 하나의 동일한 제국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지주들이 여러 개가 있다고 했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메이저라인만을 따져서 봤기 때문에 기독교가 굉장히 폭력적인 종교라는 그런 인상과 결론을 내리지 않았나 그렇게 이해한다. 왜냐하면 나의 연구에 의하면 기독교 안에는 평화, 비폭력적인 흐름들이 이게 더 본질적인 것이고 폭력적인 종교의 모습이 비본질적인 것인데, 왜 기독교가 비본질적인 종교가 됐을까 그 질문은 기독교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내렸던 결론이다.
임승휘: 책 중간에 군주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단락이 있다. 칼 슈미트는 근대국가의 역사의 기원에서 종교전쟁이 중요했다고 언급했다. 교파간의 대립, 각 교파가 자신의 교회를 통제하려는 것,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규율이 사회로 퍼져나가 사회 규율로 정착돼 근대국가의 세포가 됐다는 설명이다.
칼 슈미트의 말대로 종교전쟁이 근대국가의 모태라면, 종교전쟁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에서, 그리고 그 분리로부터 관용이 나타났다면, 나는 기본적으로는 17세기에 등장한 유럽의 근대국가와 관용 개념은 현대쯤 되는 것 같다고 보겠다. 근대 국가를 떠올리면 피의 역사가 떠오른다. 그런데 『관용의 역사』 책을 보아도 피의 역사다. 관용 개념 역시 피의 역사다. 관용의 개념이 물론 개인의 권리로 넘어가긴 했는데, 근대국가가 확고한 자기의 모습을 갖게 된 18세기 후반이 관용이 개인의 권리로 넘어가는 시기와 일치한다고 본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 국가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통일성을 부여했는데, 근대국가가 취했던 하나의 도덕적인 수단이 관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윤원근: 그 지점에서 나도 의견을 밝히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가주의를 너무 우위에 두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에 의한 폭력 부분은 너무 등한시 하고 종교적 관용부분에 치우쳐서 근대 국가에 대한 기술에 너무 편중돼 있지 않나 싶다. 따라서 이 책은 전투에서는 이겼는데 전쟁에서는 패할 수 있는 구조의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용은 종교적인 관용만이 있는 게 아니다. 폭력에 대한 모든 형태의 억압이 관용과 불관용을 초래하기에 권력에 대한 억압을 모두 다뤄야 하지 않겠나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관용은 근대 시민 사회의 형성과도 밀접한 역할을 갖고 있다. 독일의 프리드리히 대제는 독일 전체주의를 위한 유산을 남긴 사람인데, 국가의 완전한 규율을 위해 종교적인 관용을 허용했고, 이는 전체주의로 가는 문을 열었다. 따라서 관용이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형성돼야 하는데 이 시스템에 주목하지 않고 누가 관용을 주장했는지만 서술한 점은 무척 아쉽다.
김기봉: 서양사 특강에서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읽었다. 굉장히 교과서적으로 책을 쓰셨다. 정확하고 엄격하게 서술해서 학생들과 읽기에 좋다. 관용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기독교에 대해서 상당히 불관용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환논법에서 못 벗어나는 게 뭐냐면, 사실숭배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쓰신 건 관용에 대한 사실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쓰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이 책을 비판적으로 보면 관용에 대한 목적론적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즉 관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목적론적으로 서술하고 다른 부분은 제외했다. 루터는 가장 독선적인 사람인데 루터의 독선에 의해 관용이 시작됐다는 점이 참 재밌는 부분이다. 관용만 볼 게 아니라 이 빛과 그림자를 같이 보았다면 책의 방향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본다. 종교개혁 이전에 관용 개념이 없었을까. 관용에 대한 아름다운 정의가 일찍이 있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이 만드는 조화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문제를 왕과 국가가 해결한 것이 근대 국가다. 그렇다면 국가는 무엇인가. 이것을 저자는 세속화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되면 모든 부분에서 즉 문화적 차원의 관용을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관용은 무한대인가, 관용의 한계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중세의 마녀사냥과 체제/반체제로 나누는 지금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것을 관용으로 볼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