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그 이름 예수(마1:21)
사람들에게도 자기 본 이름 외에 별명들이 있고 그가 하는 직함이나 역할에 따라 이름을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도 그렇습니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예수,임마누엘,기묘자,모사,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 선한 목자,보혜사 성령, 의의 태양,샛별, 포도나무...등의 이름입니다.
(요17:3)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1)예수라는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헬라어 대문자ΙΗΣΟΥ 소문자 Ἰησοῦς)Ἰησοῦς(I이오타η(에타=H) S(시그마=Σ=ς=C)즉, IHS는 라틴어 Iesus Hominum Salvator(인류의 구원자 예수)를 말하는 단어입니다.
예수께서는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여 주시려고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사람이 죄짓고는 못산다고 말들 합니다. 그런데 죄의 종류는 크게 네가지로 분류합니다.
원죄(하나님과의 관계)-원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멸망과 죽음이다(롬5:12,6:23)
자범죄(대인관계 실수,허물,과실)-사람관계에서 고통이 온다(마6:15,약3:1롬2:5)
고범죄(악한습관)-양심마비,화인맞은 양심이라 회개가 어렵다(시19:13)
유전죄(조상들의 죄)-가족 중 누군가 예수 믿고 저주의 흐름은 끊어진다(출20:)
중요한 것은, 원죄입니다. 자범죄,고범죄,유전죄 같은 것들은 사람이 사람하고 짓는 것들이니까 사람끼리 해결하면 되는데 원죄는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께 저지른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죄가 원죄입니다.
여러분,만약 내가 이웃집 김씨하고 싸움을 했는데 그다음 날 생각해보니 내가 잘못했습니다. 이웃 간에 평생 안 볼 사람도 아니고 허구한날 원수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그래서 화해를 해야겠는데 누구하고 화해를 해야 합니까?. 이웃집 김씨하고 화해를 해야지 옆집 아줌마한테 미안하다고 백번 말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원죄가 그런 것입니다.우리 인간이 죄를 하나님에게 진 것이지 부처에게 죄를 진것이 아니잖아요. 돌이나 무슨 나무에게 죄를 지었다면 나무에게 빌어도 되겠지만 우리가 언제 석가모니,해,달,나무에게 죄를 지었습니까?. 아니잖아요.
그래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 원죄 때문에 멸망이 왔고 죽음이 왔기 때문에 멸망에서 벗어나고 죽음이 아니라 영생을 얻으려면 오직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에게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습니다.
(엡2: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저기 육체로 허시고...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롬5: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22:21).
예수님이 이 세상이 왜 오셨습니까?.오늘 말씀“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요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냈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왜 예수님만이 우리 인간의 원죄를 해결하고 하나님하고 화해시킬수 있나요?.
첫째, 하나님이 보내주신 분이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행4:12요3:13)
둘째, 원죄를 없애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피흘려 주신 분이 오직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히9:22).
셋째, 나는 길이요,진리요,생명이니,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요14:6-7).
(2)예수라는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마1:23)
임마누엘(Immanuel)이란‘임=계시다/마누=우리와/엘=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창조주 하나님이 죄인된 세상의 인간들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가난한 자가 부자 찾아가기는 힘들어도 부자가 가난한 자 찾아가는 것은 쉽습니다.높은데 계신분이 어려운 사람,별볼일 없는 사람을 찾아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누가 알아볼까 힘들면 변장하고 가면 됩니다.
(요1: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14절“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예수님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왜 오셨을까요?.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 주시려고 오신 것이고, 그리고 우리와 함께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여러분,사람은 다 자기보다 잘나가고 출세한 사람을 좋아하지 누가 죄인과 함께하고 버림받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그런 사람을 가까이 합니까?.
이번에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내정된 김홍일 국민권익위원장이 옛날 백종원 대표의 가정교사로 일했다고 합니다. 김홍일씨가 초등학생 때 어머니를 잃고, 고등학생 때 아버지를 잃고 고등학교를 못갈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백종원 대표의 아버지가 당시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는데 김홍일씨를 3년간 사택에서 지내게 해주며 아이들을 개인지도를 해가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답니다.
얼마나 훌륭한 일입니까?.한 사람의 헌신이 훌륭한 인재 하나를 키운 것입니다.
얼굴 없는 천사라는 뉴스가 가끔 나옵니다.“어려운 이들을 도와달라”며 이름도 안 밝히고 1,000만원을 놓고 간 사람, 1억 원을 놓고 사라진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시내 어떤 교회는 성탄절에 쓰라고 누가 3,000만원을 놓고 갔는데 이름도 없이 놓고 갔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33년을 사시면서 화려한 왕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아무도 찾지 않는 마굿 간으로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병든 자들과 함께하셨고, 삶에 지치고 힘들어하는 자들과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예수님은 33년을 사셨지만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보다 훨씬 더 오래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보다 몇 곱절을 더 오래 산다하여도 뭔가 좋은 일 한번 해보지 못하고 산다면 장수하는 것 자체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한 번쯤은‘얼굴 없는 천사노릇도’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3)사도행전 3:6절에 보면 매우 눈여겨 볼만한 구절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했던 말입니다.“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와 요한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성도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놀라운 선물,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재정을 자랑해서도 안됩니다. 건물을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입니다.
여러분, 주저앉아있는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을 주저앉히려고 하지 일으켜 세워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누가 헌신 좀 하려고 하면 시기하고 샘을 내고 질투를 합니다. 그래서 주저앉히고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참 이게 문제입니다.
(요삼1:9)디오드레베와 같은 사람입니다.(반대로 데메드리오는 섬기는 사람)
여러분, 사람을 키워주면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될지 누가 알아요.
예수 이름으로 사람을 키워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마귀가 물러가고, 예수 이름으로 질병이 물러갑니다.
여러분,베드로와 요한은“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외쳤을 뿐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예수의 권세가 나타나서 못 걷는 사람이 다리와 발목에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나가면, 예수 이름 의지하면 힘을 얻습니다. 돈이 없고 힘이 없고, 건강이 없어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위가 낮아도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요 예수 이름의 권세입니다.
세상은 지금 은과 금은 웬만큼 있습니다. 사실 돈을 벌고 돈을 찾고는 있으나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 말동무가 필요하고 함께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친구 없이 외로운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못 걷고 주저앉고 싶은 사람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은과 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으로 신령한 힘, 영혼의 힘을 얻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찬미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