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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콩깍지] 03 - 첫 연애
#1 S 서울전경 (아침)
한강다리 너머로 도심의 하늘에 떠오르는 아침햇살.
자막. 2년 6개월 후. 1994년 10월 21일.
#2 S 성수대교 북단 진입로 (아침)
성수대교 진입 표지판이 보이고, 정체된 출근길 차량들 속에 버스
가 보인다.
이상하게도 반대편 차선은 한산해진다.
#3 S 동 버스 안 (아침)
학생들과 직장인들로 만원인 버스 안.
그 속에 서류봉투를 든 은영이 앉아서 졸고있다. 헤어스타일이 달
라져있다.
라디오에선 아침방송이 흘러나오고, 신문을 보거나 졸고 있는 사
람,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자는 척 하는 청년 등
교통체증과 불쾌한 만원버스에 짜증이 나있고, 평범한 일상의 풍
경이다.
승객들, 오늘따라 유달리 심한 정체에 여기저기서 불평이 터져나
오고 시계를 쳐다보는데,
이때 창 밖으로 다리 쪽에서부터 급히 달려나오는 사람들이 보이
기 시작하고,
서있는 차들을 향해, “다리 무너져요! 빨리 피해요, 빨리요!” 소리
치며 지나가면,
버스 안의 사람들 술렁거린다.
아저씨 무슨 일이지? 사고 났나?
아줌마 뭐래요?
아저씨 모르겠어요.
이때 반대편 차선으로 경광등을 켠 경찰자가 다리를 향해 지나가
고,
이어 119 구급차도 나타났다 다리 쪽으로 쏜살같이 사라진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 은영은 계속 졸고 있는
데.
이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랫소리 갑자기 줄어들더니, 뉴스
가 시작된다.
아나운서 (흥분된 E) 방금 들어온 뉴스속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 7시 40분쯤 서울 성수대교 상판이 갑자기 꽝하는 굉음
과 함께 내려앉았습니다. 이 사고로 다리를 지나던 차량들이 20여
m 아래 강물로 추락했으며, 많은 사상자가 발생될 것으로 예상됩
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
일제히 무슨 소린가 의아해서 술렁거리는 버스 안.
이때 경찰 사이드카 지나가며
경찰관 빨리 차에서 내려 대피하세요!
승객들, 공황상태에 빠져 급히 버스에서 내린다. 창 밖으로 앰블런
스, 경찰차, 119구급차 등 급히 지나가고 여러 사이렌 소리 마구 뒤
섞여 혼란스럽다. 졸던 은영도 소란에 깨여 무슨 일인가 두리번거
리다 어서 내리라는 주위사람들의 말에 일어난다.
#4 S 동 버스 밖 교각 진입로 (아침)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은영. 멀리 다리 쪽을 보려고 기웃거리
지만,
호르라기를 불며 통제하는 경찰관에게 밀려 다리 쪽에서 오는 사
람들만 보인다. (스태디 캠)
카메라 보도기자 두어 명이 급히 다리를 향해 달려가고,
몇몇 차들이 중앙선을 넘어 유턴하고 있다.
사람들과 은영, 뒷사람들에 밀리면서도 바로 자리를 떠나지 못하
고 수런대는데...
아줌마 (버스에서 내린) 무슨 일이야? 보여요?
아저씨 (버스에서 내린) 안보여요.
아줌마 아니, 어쩌다가 다리가 무너져요?
이때 다리에서 오는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그 속에 성민이 끼어있
다.
남 자1 (다리에서 온, 충격에 휩싸여) 세상에... 기가 막혀...
남 자2 (다리에서 온)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여 자1 (다리에서 온) 너무 끔찍해요. (울먹인다.)
아줌마 (버스에서 내린) 어떻게 된 거예요? 멀쩡한 다리가 왜
무너져?
여 자1 모르겠어요. 갑자기 쿵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까, 차들
이... (운다.)
성 민 다리가 이만큼이 잘려나가고 없어요. 앞에 가던 차들
은 그대로 다 떨어졌구요... (하면서 은영과 눈길이 스치고)
남 자1 (다리에서 온) 지금 차는 놔두고 몸만 나왔어요.
남 자2 꼭 누가 폭탄 터뜨린 거 같애...
성 민 아침저녁으로 맨날 지나다니던 다린데...
이때 호루라기를 불며 경찰관이 통제하며 다가오고,
경찰관 (사람들 밀어내며) 빨리 나가요! 추가 붕괴 위험이 있
어요!
아줌마 그래요?
순간 다리 쪽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자,
돌아서던 은영이 밀리면서 넘어지고 비명과 함께 발목을 삐끗하
게 된다.
성 민 괜찮아요? (은영의 팔을 잡아 일으킨다.)
은 영 (창피하기도 하고) 괜찮아요. (그러나 일어서자 몹시
아프다.) 아, 아!
성 민 (부축하며) 일단 살살 걸어봐요.
소란스럽게 피하는 사람들 속에, 성민의 부축을 받으며 황급히 빠
져나가는 은영.
#5 S 근처 다른 거리 (아침)
사이드카와 앰뷸런스, 방송차 등이 급히 지나가고,
우왕좌왕하며 다리 쪽에서 몰려오는 사람들,
경찰들이 여기저기서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통제하고 있고
슈퍼 앞에는 둘러서서 사고현장이 생중계 되는 TV***를 보고 있
는 사람들 등.
어렵게 걸어온 은영이 가로수를 짚고 서있고, 성민이 은영의 발목
을 살펴보고 싶어한다.
성 민 (주변의 어수선함 때문에 정신이 없는) 삔 거 같은데
요? 어디 봐요.
은 영 (보여주고 싶지 않은) 됐어요.
성 민 신발 좀 벗어봐요. 내가 좀 아니까...
은 영 싫어요... 괜찮아요.
성 민 (할 수 없다는 듯 일어서며) 그럼 병원에 가서 치료부
터 받아요. 오늘 하루는 얼음찜질 좀 해 주는 게 좋구요.(가려는
데)
은 영 근데 대치동 갈려면 이제 어떻게 가야 되요? 춘천에서
와서 서울은 잘 모르거든요...
성 민 그거야 택시 타면 되겠지만, 병원부터 가요. 내가 데려
다 줄 테니까.
은 영 안돼요. (서류봉투 보이며) 교수님 심부름이라서요...
성 민 지금 그게 중요해요? 병원에 갔다가요.
은 영 안돼요. 빨리 가야돼요. 8시 반까지 가야 되는데...?
(지나가는 택시보고) 택시! (순간 아픈지) 아!
성 민 (이상하다는 듯) 그 다리론 못 간다니까. 자꾸 걸으면
염증 생겨요.
은 영 (절뚝거리며 급히 거리로 돌아서며) 그래두 가야 되
요. 출국하시기 전에 자료 갖다 드려야 되는데... (택시 잡으려하
고)
성 민 (어쩔까 머뭇거리다) 그럼 저기, 이렇게 합시다. 그거
내가 대신 전해줄 테니까, 병원부터 가봐요. (서류봉투 집어들며)
대치동 어디로 가면 되요?
의아해서 그런 성민을 쳐다보는 은영.
두 사람 모습 그대로 멈추면서.
은 영 (N) 그때 나는 문득 이 사람과 그냥 이대로 스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스물 세 살의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화면 다시 플레이되면 얼이나가 아무 말도 못하고,
주소가 적힌 메모지만 꺼내 내미는 은영.
은 영 여긴 데요...
성 민 (받아들고 보며) 어딘지 알겠어요. 이건 걱정 말고 어
서 병원이나 가봐요.
은영 무언가 더 말하고 싶은데, 성민 그대로 길을 건너 택시를 잡
는다.
은 영 (답답한 듯 머뭇거리다) 저기...
성 민 (쳐다보자)
은 영 ... 고마워요...! (성민에게는 잘 들리지도 않는)
성 민 (떠나는)
은영이 성민이 탄 택시를 눈으로 좇는데서 화면 스톱.
#6 S 소제목
은영의 일기장이 펼쳐지며 그 위에 글씨가 적힌다.
3. 첫 연애.
#7 S 은영방 (밤)
수건 위에 쏟아지는 얼음조각들.
수건으로 얼음을 싸서 은영의 발목에 냉찜질을 해주는 인경.
‘너에게 나를 보낸다’ 정도의 그해의 영화포스터가 보인다.
인 경 이 답답아, 그걸 그냥 보냈어? 니 연락처를 가르쳐줘야
지!
은 영 (공황상태의 표정) 그러게 ... 난 이래서 뭔 일이 안
돼... 진짜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내 인생에 다시 만날까 말까
한...
인 경 근데 좀 오바한다? 뭐 하는 남잔지도 모르잖아?
은 영 아냐. 사람을 보면 느낌이라는 게 있어. 그 남자... 마
치 운명처럼 느껴졌는데...
인 경 그건 사고가 난 직후에 만났기 때문이야. 대형사고 현
장에서 의외로 사랑에 빠지는 커플들이 많대. 죽음의 위기감 같은
걸 느끼면서 삶에 대한 애착을 강하게 붙잡는 거지.
은 영 넌 참 아는 거 많아서 좋겠다. 어쨌든... 다 끝났어. (한
숨)
인 경 서울 가서 찾지 그러니? 몽타주 그려 가지고? 이 남자
를 찾습니다. 이름 모름. 나이 모름.
은 영 너 자꾸 그럴래?
#8 S 은영집 거실 (밤)
TV에선 성수대교 구조작업에 대한 뉴스가 흐르고...
은영부 쯪쯔즈... 세상에, 불쌍해서 어떡하나... 하루아침에 저
렇게 됐으니...
은 호 저 다리 만든 놈들 다 감옥에 쳐 넣어야 돼요.
은영모 넌 올라가서 공부나 해. 대학 안갈 거야? 이번에도 떨
어지면 삼수생이야. 내가 챙피해서 증말...
은 호 알았어... (일어서는데)
이때 전화벨이 울리면 은호 받으려하는데, 은영모 은호를 재끼고
얼른 받는다.
은호 할 수 없다는 듯 2층으로 향하면, 내려오는 인경과 은영을 만
난다.
은 호 (인경에게) 벌써 가? 나랑 좀 놀다 가지.
인 경 학원은 잘 다니지?
은영모 (그 사이 E) 여보세요? 네,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신
데요? 잠시만요...
(은영에게) 은영아, 남자다.
은영 전화를 받는데, 남자라는 소리에 모두 관심 있게 본다.
은 영 (절뚝거리며 사람들 등지고 돌아서서) 여보세요?
성 민 (E. 처음이라 긴장된) 저는 정성민이라고 하는데요...
은 영 네? 누구시라구요...?
성 민 (E. 뭐라고 해야 하나) 음... 약 13시간 전에 만났던 사
람이요. 교수님댁에 심부름 대신 갔던...
은 영 (어리둥절, 반기며) 아, 예...
성 민 (E) 발목은 어때요? 병원엔 갔어요?
은 영 네, 괜찮아요. 근데 제 연락처는 어떻게 아셨어요?
성 민 (E) 그건 만나서 가르쳐 드릴게요.
은 영 네?
#9 S 춘천의 카페 (낮)
성민과 은영이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있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나는 자리라 긴장해있고, 목소리도 떨리는 듯하
다.
성 민 교수님을 집 앞에서 만났어요. 까딱했으면 길이 엇갈
린 뻔했는데... 되게 고마워하시더라구요.
은 영 다행이네요. 정말 고마워요.
성 민 교수님께서 저한테 뭐 해줄 건 없구, 나중에 중매를 서
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은 영 (약간 섭섭한 듯) 네에...
성 민 그래서 다른 사람 말고, 은영씨를 소개시켜 달라고 했
지요.
은 영 (!!!) ...
성 민 생전 처음 보는 사람한테 심부름만 시키는 경우가 어
딨어요? 나중에 밥이라도 한끼 사겠다든가, 전화번호라도 물어봐
줄 줄 알았는데...
은 영 그땐... 경황이 없어서요. 정말 고마웠어요.
둘 서먹하고 잠시 말이 끊기는데,
성 민 그날... 많이 놀랬죠?
은 영 네... 버스가 30초만 먼저 갔어도... 죽을 뻔했어요...
성 민 그랬으면 우린 못 만날 뻔했죠...!
은 영 (그 말에 성민을 쳐다볼 뿐) ....
성 민 아직도 기분이 이상해요. TV에선 졸지에 소중한 사람
들을 잃고 슬퍼하던데... 난 은영씨를 만날려고 그렇게 된 거 같기
도 하구...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약간 가라앉은 분위기.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시선 피하는 두 사
람.
성 민 참, 내 소개할게요.
M -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김광석)
#10 S 대학병원 앞 (낮. 몽타주)
동료들과 함께 나오는 의사 가운 차림의 성민.
성 민 (E) 난 의대 다녀요. 본과 4학년.
성민, 함께 나온 동료들과 헤어져 달려가면, 기다리고 있던 은영
과 만난다.
동료들 우~ 우우~ 야유를 보내면,
은영, 동료들을 향해 고개인사를 하고,
은영을 데리고 다른 쪽으로 걸어가는 성민. 두 사람 좀 떨어져 걷
는다.
성 민 (E) 집에선 힘들다고 의대가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좋
아서 그냥 왔어요.
#11 S 레코드 점 (다른 날 낮. 몽타주)
시청코너의 CD플레이어가 돌아가고,
손에 든 헤드폰을 귀에 대고 듣던 성민이, 은영의 귀에도 대준다.
성 민 (E) 김광석을 무지 좋아하구요, 주량은 소주 두 잔. 세
잔 이상 마시면 바로 취침상태죠.
#12 S 춘천역 광장 (다른 날 낮. 몽타주)
은영이 역사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사람들 속에 섞여서 달려나오는 성민.
두 사람 반갑게 만난다.
이때 근사한 오토바이가 나타나 두 사람 앞을 지나 멈춰서면,
성민이 오토바이를 돌아보자, 은영도 함께 돌아본다.
성 민 (나레이션 이어받아 대사) 언젠가 돈을 벌면 꼭 오토바
이를 사고 싶어요.
그 소리엔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 되는 은영.
#13 S 성민방 (밤. 몽타주)
침대는 없어도 좋고, 중산층 정도의 세간 살이.
열심히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성민. 삐삐가 불빛을 반짝거리며
울린다.
얼른 반갑게 삐삐를 보는 성민. 급히 수화기를 집어든다.
성 민 (E) 그리고 참, 요즘은 운동을 다시 하기 시작했어요.
#14 S 은영방 (밤. 몽타주)
베개를 안고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은영.
은 영 왜요?
성 민 (전화기 속에서 E) 사랑에 빠지면 난 운동을 하거든요.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피식 웃는 은영.
#15 S 서울 거리 (낮. 몽타주)
거리 좌판에서 성민에게 마스코트를 사주는 은영.
은 영 그럼 전에도 사랑에 빠진 적이 있어요?
성 민 그럼요. 짝사랑도 사랑은 사랑이죠?
두 사람 웃으면서 화면 밖으로 빠져나가고, 몽타주 끝난다.
#16 S 전철 안 (밤)
사람들로 붐비는 비좁은 전철 안.
은영과 성민, 매우 가까이 마주하고 있어 좀 난처하고 어색하다.
성 민 (혼잣말처럼) 돈 벌면 오토바이가 아니라 경차부터 한
대 사야겠네...
은영 어색하게 웃는데, 이때 다음 정차역 청량리를 알리는 안내방
송이 시작되자,
문으로 이동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비좁아진다.
은영과 성민 닿을 듯이 밀착하게 되고, 난감해진 두 사람 애써 웃
으면서도 시선 피한다.
은 영 (어색해하며) 우리도 내려야 되는데...
성 민 아, 맞다. 내려야지...
은영을 보호하며 사람들을 뚫고 나가는 성민.
#17 S 청량리역 매표소
매표구 앞의 경수와 은영.
은 영 춘천 한 사람이요. (직원 표를 ***인쇄해 주는데)
성 민 (불쑥) 저, 두 사람이요... 죄송합니다.
은 영 (쳐다보면)
성 민 춘천까지 바래다줄께요.
은 영 할 일 많다면서요...
성 민 갔다와서 밤새 하죠, 뭐.
은 영 (기분 좋은)
#18 S 기차 (밤)
나란히 앉아있는 은영과 성민. 앞좌석의 사람들과 마주보고 가고
있다.
두 사람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앞사람들에게 신경이 쓰인다.
은 영 (자기 두 손 만지작거리며) 그럼 나 만나기 전엔 춘천
을 한번도 안 와봤어요?
성 민 (끄덕이면) 네...
은 영 춘천 참 좋은데... 안개도 많이 끼고, 가을도 참 좋구,
겨울에 눈오면 더 좋구...
이때 성민, 말없이 은영의 손을 잡더니, 자기 무릎 위로 가져가 꼭
쥔다.
은영 민망해서 앞사람들을 힐끔 보면서도, 그런 성민을 가만히 둔
다.
#19 S 춘천역 앞 (밤)
(음악 끝나고) 나란히 걸어나오는 은영과 성민.
두 사람 멈춰 서며, 성민에게 잡힌 손을 스르르 놓는 은영.
순간 서로를 아쉽게 바라보는 두 사람.
은 영 얼른 가요. 막차는 표 빨리 안 사면 입석밖에 없어요.
성 민 괜찮아요. 서서 가면 되지 뭐... 만나면 왜 이렇게 시간
이 빨리 가지?
은 영 (아쉽다. 괜히 시선 돌리는데) ....
성 민 (다시 은영 손잡고) 우린 집이 왜 이렇게 머냐...
은 영 (손 슬쩍 빼며) 얼른 가요.
성 민 (멋쩍은 듯) 먼저 가요. 가는 거 보고 갈 테니까.
은 영 (미적거리며) 어떻게 그래요? 먼저 들어가요.
성 민 (아쉽게) 그래요... (하면서 안가고) 집까지 바래다줄
까요?
은 영 어? 이러다 정말 기차 놓치겠어요. 빨리 가요.
성 민 (갑자기 주머니 뒤져서 껌 꺼내 내민다. 은영 얼굴 보
며) 진짜 가기 싫다.
은 영 (껌 받으며) 안돼요. 그래도 빨랑 가요.
성 민 (어쩔까 손 주머니에 꽂고 주변 두리번거리며 서있으
면)
은 영 (껌 껍질 까서 입에 대준다.) 자요. 도착해서 전화해
요.
성 민 (고개 젓고는, 한숨 크게 쉬더니) 그래요, 갈게요. 잘
들어가요.
은 영 네.
성민 이내 돌아서서 역사로 향한다.
은영 미소지으며 바라보다, 손에 들린 껌을 입에 넣으며 돌아선
다.
멀어지는 두 사람.
이때 역 안으로 들어가려던 성민, 갑자기 돌아서더니 은영을 향해
달려간다.
성 민 (달여가 은영의 손목을 잡으며) 잠깐만요. 은영씨.
이내 은영을 끌고 어디론가 달려가는 성민.
은 영 (이끌려가며) 왜 그래요?
성민 두리번거리며 계속 은영의 손을 잡고 달려간다.
은 영 무슨 일이에요?
#20 S 역 근처 다른 곳 (밤)
모퉁이를 돌아 후미진 골목으로 뛰어든 성민과 은영.
숨을 몰아쉬며 은영을 내려다보는 성민. 이내 끌어안더니 입을 맞
춘다.
갑작스러운 은영, 그러나 서서히 그 감미로움에 빠져들면서 조심
스레 안는데,
이때 갑자기 캑캑거리며 목을 움켜쥐고 나가떨어지는 성민.
은 영 어머, 왜 그래요? 왜요...? 어...? 내 껌 어디 갔지? (손
을 입에 대는데)
겨우 숨을 고른 성민, 껌을 씹으며 은영을 보고, 두 사람 서로를 보
면서 웃고 만다.
#21 S 동네 골목 (밤)
인경이 와서 서면, 은호가 기다리고 있다.
인 경 너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왜 자꾸 전화해? 열심히
하지 않고?
은 호 열심히 하고 있어. 누나 얼굴 한번 보면 더 잘될 것 같
아서...
인 경 너 자꾸 장난할래?
은 호 장난 아니야.
인 경 지금 수험생이니까 봐주는데, 생각해봐라. 난 대학 졸
업하는데, 넌 이제 겨우 대학 들어가고, 내가 널 만나서 뭐하겠니?
이번이 마지막이야? 시험만 끝나면 안 만나 줄 거니까 그렇게 알
어.
은 호 그게 지금 수험생을 격려하는 말이야?
인 경 어쨌든.
이때 골목 안으로 은영이 나타나면,
두 사람 동시에 보고는 합의라도 한 듯 얼른 어느 집 대문 옆으로
숨는다.
은호, 갑자기 인경에게 키스한다. 뿌리치는 인경.
첫 키스로 인해 황홀한 은영이 지나가면,
인경이 은호를 뿌리치듯 빠져 나온다. 히죽 웃는 은호.
#22 S 은영집 거실 (밤)
불이 꺼진 거실. 밖에서 들어온 은영, 살금살금 2층으로 향하는데,
이때 기다렸다는 듯이 안방에서 달려나오는 은영모.
은영모 (조용조용) 오늘은 서울서 만나구 왔니?
은 영 (조용조용) 미안해, 엄마. 다음부터 일찍 들어올게.
(올라가는데)
은영모 (따라 올라오며) 아냐, 좀 늦을 수도 있지 뭐. (기대에
찬) 오늘은 어땠어? 어디 가서 뭐했니?
은 영 나 피곤해. 씻구 잘래.
은영모 그래... 의사사위 볼 생각을 하니, 내가 더 마음이 설렌
다. 잘해라!
은 영 (나직이) 엄만? 사위는 무슨 사위야? 그리고 내가 뭐
성민씨 의대생이라 좋아하나...? (좀 캥기는)
은영모 누가 그렇댔니? (이내 반격) 너 얘, 그렇게 이쁘게 낳
아준 게 누군데 그러니?
은 영 점점? 성민씨가 뭐 나 생긴 거 보구 좋아해? 아무튼 엄
마하곤 말이 안 통해.
은영 올라가 버리고, 은영모 삐죽거리면서도 기분이 좋다.
#23 S 은영방 (밤)
들어온 은영, 그대로 침대에 엎드려 생각에 잠긴다.
더럭 겁도 나고 황홀한 기분.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24 S 의상학과 실습실 (낮)
마네킹에 의상가봉을 하고 있는 인경. 이때 뒤에서 나타나는 은
영.
은 영 졸업작품은 잘 되가? 이 거니?
인 경 (삐져서) 웬일이니? 오늘은 데이트 없나부다?
은 영 어... 성민씨 의료봉사 갔거든. 다음 주까진 못 만나.
인 경 (금새 태도 돌변) 야, 어떻디? 성민씨 친구들 중에 괜
찮은 사람 있지?
은 영 아직 새끼칠 단계는 아니야. 좀 기다려 봐. (하면서 혼
자 히죽 웃는다.)
인 경 (그 표정 놓치지 않고) 너 뭔 일 있었구나? 그렇지?
은 영 (말 안하고 좋은 표정만)
인 경 어서 말해봐.
뮤지컬 에피소드 3 - 첫키스.
(슈비루왑빠 슈비루왑빠 달콤할꺼야
슈비루왑빠 슈비루왑빠 행복할꺼야)
은 영 어, 실은... 그 남자와 키스한지, 약 14시간하고 20분
됐어.
인 경 어머, 어머 기집애.
(마음의 소리) (시계 슬쩍 보며) 난 네 동생이랑 키스한지 13
시간 50분 됐다.
(은영) 키스가 이렇게도 달콤한건지 예전엔 미쳐 몰랐었어.
(친구들 쓰러지며 신음하듯) 오호~
온몸엔 전기가 찌릿찌릿 흐르고 기분이 너무 좋았어
음~
(슈비루왑빠 슈비루왑빠 달콤할꺼야)
은 영 실은 겁이 나. 이러다 꼭 사고칠 거 같애.
인 경 원래 원정 데이트가 그렇대. 자주 못 만나니까 급격히
불타올랐다가 쉽게 깨질 위험성도 많다더라.
은 영 (불만인 표정)
학생1 난 초등학교 때 내 짝궁이랑 했지.
학생2 나는 술 취한 틈을 타서 당했어. 나쁜 놈.
학생3 나는 아직 못해봤어 이씨.
학생4 어쨌든 첫키스는 너무 달콤해 아~
날아갈 것 같아. 꿈꾸는 것 같아.
여고수 첫키스의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
사랑은 이렇게 시작해.
(은영 대사. 꿈꾸듯) 이제 어떻게 될까. 이런 게 바로 사랑이라는
걸까?
(인경 대사. 시샘하듯) 좋겠다. 네가 원하던 조건. 너 의사 사모님
소리 듣겠다.
(은영 대사. 항변) 아냐, 내가 언제 조건 보고 사람 좋아했니?
#25 S 농촌 마을회관 앞 의료봉사 현장 (낮)
(성민의 남녀친구) 날아갈 것 같아. 꿈꾸믄 것 같아.
(성민- 15씬의 은영이 준 마스코트 만지작거리며) 첫 키스의 추억
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
(성민의 남녀친구) 사랑은 이렇게 시작해.
(성민) 사랑은 이렇게 시작해.
(은영) 사랑은 이렇게 시작해. (노래 끝나고)
#26 S 성민방, 은영방(밤)
책상의 스탠드불빛을 받으며 공부를 하면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
는 성민.
은 영 (E) 잘 갔다왔어? 내가 삐삐 여러 번 쳤었는데...
성 민 (눈은 책을 보며, 피곤한) 거기 시골이라 삐삐수신이
안돼. (은영 얼굴 와이프 인 되며)
은 영 그럼 와서 전화라도 좀 해주지...
성 민 미안해. 정신이 없었어. (기지개 켜며) 골학스터디 과
제 내느라고 여태 밤샜는데, 화요일날은 또 나보구 심맥관계 발표
수업을 하라는데? 뭔가 힘이 되는 말을 해줘.
은 영 (모자가 달린 후드티셔츠를 접어 선물 상자에 넣으며)
사랑해.
성 민 (피곤이 묻어 나오는 미소) 나두. 보구 싶다. 아주 많
이. 이번 주말엔 할머니제산데, 어떡하지?
은 영 그럼 우린 언제 만나?
성 민 다음 주나 되야 되겠는데?
은 영 안돼. 내일 자기 생일이잖아. 내가 그쪽으로 갈게.
성 민 괜찮아. 다음주에 내가 갈게.
은 영 싫어. 내가 학교 앞으로 가서 잠깐 보구 올게. 선물도
사놨단 말이야. (화면 양쪽 으로 와이프 아웃)
#27 S 카페 (낮)
성민이 은영의 어깨를 안고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있다. 퍽 친밀하
다.
그 앞에 풀어본 선물 상자가 열려있고, 후드티셔츠가 보인다.
성 민 (카드를 보고 이마에 입 맞추며) 고마워.
은 영 티셔츠 맘에 들어?
성 민 음. (카드 내려놓고, 피곤한) 나 아무래도 갑상선 기능
저하증인 것 같다.
은 영 갑상선...? 그게 뭐야?
성 민 (웃으며) 피곤해서 목이 좀 부었단 얘기야.
은 영 정말? 어디 봐. (성민의 목 만져보는데)
성 민 (귀엽다는 듯) 보면 니가 뭐 아니? (얼굴 끌어다가 가
슴에 안아주고, 행복한) 아,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이제 곧 의사고
시도 봐야하고, 죽어라고 해도 될까말까한데...
은 영 나 만난 거 후회해?
성 민 아니.
은 영 (아쉽지만) 얼굴 봤으니까 금방 갈게.
성 민 조금만 더 있다 가.
은영 좋다. 이때 등뒤에서 나타나는 여자후배 수빈.
수 빈 성민오빠!
성 민 (얼른 팔 풀며 떨어져 앉는, 오기로 돼있던) 어, 왔니?
앉아.
수 빈 (맞은편에 앉으며, 은영에게) 안녕하세요.
은 영 (느닷없어) 안녕하세요...?
성 민 (가방에서 자료 꺼내며) 과 후배야. 한수빈이라구. 여
긴 최은영. (수빈에게) 누군지 알지?
수 빈 말씀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경계하는 눈빛) 오빠...
오늘 생일선물 받았구나...? (하면서 은영을 보면)
은 영 네...
성 민 (자료 건네주며) 이거면 되지? 그 정도면 시체현상에
대해서는 다 망라한 거다.
수 빈 (받아서 보며) 이걸 언제 다 보지? 이러다간 내가 부패
하겠어.
계속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은영 조금씩 소외되면서 기분
이 나빠진다.
성 민 (손 깍지껴 기지개켜며) 나두 다음주에 케이스발표랑
시험 다 있는데 왜 이렇게 공부하기가 싫은지 모르겠다.
수 빈 오늘 아침엔 지하철에서 졸다가 강남역까지 간 거 있
지. 오빤 괜찮아? 피곤해 보인다?
성 민 괜찮아.
수 빈 다음주에 해부학 자료두 좀 갖다줘야 돼?
은영의 굳은 표정 위로 계속해서 들려오는 두 사람 대화소리.
성 민 (E) 맨입으로?
수 빈 (E) 에이, 뭔가가 있겠지.
성 민 (E) 알았다.
수 빈 (E) 어머, 죄송해요. 우리끼리만 얘기했네?
은 영 (얼른 보며 미소) 아니에요... (하지만 기분 나쁘다.)
수 빈 (E) 참, 그 해부학교수는 이자액을 이자주스라고 그러
대? 진짜 너무해.
이어지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 하지만 은영은 웃지 않는다.
#28 S 대학 구내 식당 (다음 날. 낮)
거칠게 식판을 올려놓고 줄을 서서 배식을 받는 은영과 인경.
은 영 (열 받아 두서없이) 나한텐 후배가 오기로 했다는 얘기
두 안 했어. 게다가 그 여자앤 갈 생각도 안하고 끝까지 앉아서는,
(배식자에게) 조금만 주세요. (인경에게 계속) 나랑 성민씨랑 오랜
만에 만난 거 뻔히 알면서 말이야. (배식자에게 성질 내는) 아니
요, 조금만요! (인경에게 다시) 성민씨도 걔보구 가라 그러질 않더
라구! 자기들끼리 아는 얘기만 하면서, 날 완전히 무시했어!
인 경 설마 일부러 그랬겠니?
은 영 일부러 그러진 않았다 해도 날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구! 내가 거기까지 갔는데! (뒷사람에게 밀려 얼른 식판 들고 이동
하고)
인 경 (따라가며) 그래서 어떻게 했어? 성민씨한테 얘기하
지? 기분 나쁘다고.
은 영 (멈춰 서며) 그 여자애랑 같이 학교로 들어가 버렸는
데, 무슨 얘길 하니?
인 경 (같이 서서 흥분) 어머, 그건 너무 심했다. 둘이 친하
디? 선후배 이상으로?
은 영 (그 점이 특히 기분 나쁜) 음. 나보다도 둘이 더 잘 통
하는 거 같더라.
인 경 세상에! 그럼 여태 그 여자애랑 매주 의료봉사를 갔단
말이야? 야, 다음부터 가지 말라 그래.
은 영 (근처 식탁에 식판 놓고 앉으며) 어떻게 그러니? 자존
심이 있지.
인 경 (마주 앉으며) 못 가게 해야 돼! 생각해봐라. 그쪽은 여
의사가 될 게 틀림없어. 니가 한 수 밀리잖아. 한 수만 밀리니? 학
교도 딸리는데? 여러 수 밀리지?
은 영 (먹을 생각은 않고) 그래두... 인물은 내가 쫌 나.
인 경 걔넨 둘이 맨날 볼 꺼 아니야. 넌 일주일에 한번 밖에
더 보냐? 니가 더 악조건이야.
은 영 맞아. 이번엔 보름만에 본 거였어.
인 경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봉사활동 같이 못 가게 해야
돼! (수저를 드는데)
은영은 화가 나서 다른 곳 응시한다.
#29 S 국도 (다른 날. 낮)
‘사랑의 의료봉사’ 깃발을 달고 달리는 봉고차.
#30 S 봉고차 안 (낮)
어딘가에서 울리는 삐삐소리. 피곤에 절은 성민이 잠들어있다.
뒷좌석의 수빈이 성민을 흔들어 깨운다.
#31 S 은영집 거실 (낮)
테이블 위에 그 해 수능결과 분석과 대입 지원경향에 대한 기사가
난 신문이 놓여 있다.
은영, 소파에 앉아 단단히 화가 나서 전화기만 내려다보고 있는데,
이때 전화벨이 울리면,
은 영 (잽싸게 받으며) 여보세요? (실망) 네? 잠시만요. 엄
마!. 전화 받어.
은영모 (와서 수화기 받으면)
은 영 얼른 끊어. 나 전화 올 데 있어.
은영모 여보세요? 아, 김교수님...! (괜히 은영 눈치보며 안방
으로 향하는) 저기, 우리 애가 실력은 있는데, 올해 수능 운이 나빠
서 점수가 좀 안나왔어요. 언제 찾아 뵙고 의논을 좀 드리고 싶은
데요... (방으로 들어가자)
은 영 빨랑 끊어!
#32 S 읍내 슈퍼 옆 공중전화 (낮)
뚜뚜뚜 통화중인 전화기.
성민 전화를 다시 거는데, 이때 슈퍼에서 장 보따리를 들고 나오
는 수빈.
수 빈 오빠!
성민 수화기를 내려놓고, 수빈과 함께 장바구니 들고 봉고차로 달
려간다.
#33 S 은영집 부엌 (밤)
늦은 밤인 듯 거실은 불이 꺼져있다.
식탁 위는 온통 난장판이고, 은영과 인경이 열심히 김밥을 싸고 있
다.
옆구리가 터지고, 삐질삐질 매면서 김밥 마는 솜씨 가관인데,
은 영 지난주엔 시험, 지지난 주엔 제사, 이번 주엔 또 봉사
활동이야. 삼 주 째 못 봤어.
인 경 그러니까 찾아가서 니가 성민씨 애인이라는 걸 그 여
자애한테 명확히 보여줘.
은 영 그래두 연락두 없이 불쑥 찾아가는 건 좀 그렇지 않을
까?
인 경 얘가? 가보면 성민씨 태도도 확실히 알 수 있을 걸?
널 반가워하는지, 아니면 부담스러워 하는지, 금방 캐취가 될 거
아니니.
이때 은호, 손에 수험표 들고 나타나 김밥 집어먹으며,
은 호 한밤중에 뭐해? 내일 어디 소풍 가? (인경과는 둘이 말
없이 힐끗 쳐다보고)
은 영 (은호 손 툭 치며) 넌 저리 가. 논술고사 공부 안 하
니?
이때 안에서 안방 문이 열리고,
은영모 (E) 은호야! 뭐하니? 얼른 와보라니까?
은 호 네, 가요. 왜요? (달려간다.)
은 영 (김밥 말다 말고) 만약에, 성민씨가 왜 왔냐 그러면 어
떡하지?
인 경 그러니까 먹을 걸 잔뜩 해 가는 거 아니니. 핑계도 좋
잖아. (목소리 가늘어지며) 수고들 하시는데, 뭐 도움 될만한 게 없
을까해서 왔어요... 이러고 딱 들어가란 말이야.
은 영 (자신 없는) 알았어...
인 경 야, 당당하게 해야 된다? 넌 성민씨 공식지정 애인이
야. 꿀릴 거 없어. 알았지?
은 영 어... (하지만 걱정되는 표정.)
#34 S 은영집, 안방 (밤)
은영모가 조심스레 문을 닫고 돌아서면,
막 들어온 은호가 사진이 붙어있는 대학 본고사 수험표를 내민다.
은영부는 침대 위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은 호 (수험표를 주며) 수험표는 뭐하게?
은영모 어, 저기, 너... (은영부 힐끔 보고는) 논술고사 보는
날. 시험 치러 가지마라.
은 호 (놀라며) 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대학가지 말라
구?
은영모 그게 아니니까...걱정하지 말고 넌 그날 그냥 집에 있
어.
은 호 무슨 말이야?
은영모 (잠시 주저하다) 누가 너 대신 시험 봐주기로 했어...
은 호 (영문을 몰라) 누가 내 대신 시험을 봐...?
은영모 넌 자세히 알 거 없구.
은영부 암묵적인 헛기침하고 모르는 척 방관하고 신문 넘긴다.
은 호 (아버지를 힐끔 봤다가) 엄마... 나 이번엔 자신 있어.
은영모 자신? 그 점수에 갈만한 대학이 어딨니? 남들 챙피하
게 핫빠리 대학가서 뭐해?
은 호 그래두 내 실력으로 가야지... 그러문 안되잖아?
은영모 니가 공부를 잘했으면 이런 일이 생기니?
은 호 그래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은영모 얘가 속 터지는 소리하고 있어. 누군 이렇게 하고 싶어
서 하니?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잔말 말어. 니 누나는 의사
한테 시집갈지도 모르는데, 너두 어느 정도는 되야 할 거 아니야?
은영부 (쳐다보지 않고) 엄마가 시키는대로 해. (헛기침)
아버지를 힐끔 보고, 겁도 나고 어리둥절한 은호.
#35 S 농촌마을 입구 (다음날. 낮)
시외버스에서 내리는 은영. 양손에 김밥보퉁이를 들고 있다.
시외버스 떠나고 나면,
길 건너편에 시골 개 한 마리와 쪼그리고 앉은 촌노가 은영을 물끄
러미 바라본다.
낯설게 둘러보는 은영.
#36 S 마을회관 앞 의료봉사 현장 (낮)
진료를 받는 긴 줄. 분주한 분위기다.
그 안에 성민과 수빈이 나란히 앉아 주사약을 분류하고 있는데,
남후배 (달려와) 성민이형, 누가 형 찾아왔는데?
성 민 누가? (하면서 보면)
사람들 너머로 어색하게 봉사현장을 둘러보다 성민과 눈이 마주치
는 은영.
성민 반가운 웃음을 지으며 일어선다.
성 민 은영아!
주변의 남자친구들 “오우!” 탄성을 지르며 두 사람을 보는데,
성민 옆에 앉아 있던 수빈도 일어서 은영에게 가볍게 고개를 까딱
해 보인다.
순간 성민에게 손을 흔들려다 표정이 굳어지는 은영.
성 민 (사람들 뚫고 달려나와) 아니, 여기까지 웬일이야? 어
떻게 왔어?
은 영 그냥, 왔어... (주변에 대고, 연습한 대로) 저기, 수고
들 하시는데... (다들 빤히 쳐다보자 당황) 저기... (성민에게) 그
냥 김밥 좀 싸왔어...
성 민 (받아들고) 그래? 잘 왔다. 거의 끝나가. 조금만 기다
릴래?
은 영 어...
성민 김밥 보퉁이를 후배에게 넘기고 진료소로 달려간다.
은영 멀뚱이 보면서 낯설은 기분이다.
#37 S 동 마을회관 앞 (해질녘)
신이 나서 맥주박스를 옮겨오는 남학생을 따라가면,
진료소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닭 바비큐를 하면서 식탁을 차리고
있는 학생들.
한쪽에선 기타를 치며 김광석노래를 부르는 남학생이 보이고,
다들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며 파티 준비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다.
성민, 담배를 물고 연기를 피해가며 닭고기를 뒤집고 있다. 그 옆
에 서있는 은영.
남학생 (맥주박스 식탁에 올려놓으며) 교수님이 특별히 보내
신 거야.
우우! 학생들 일순간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데,
한쪽의 수빈은 나란히 서있는 성민과 은영의 모습 보고, 기분 좋
지 않다.
성 민 오늘 자고 가라. 맥주도 마시고. 내가 술을 잘 못해서
평소에 미안했는데, 이런 때 마셔.
은 영 그래두 돼?
성 민 그럼. 여자들 숙소 있거든. 자고 가.
은 영 집에는 자고 간다는 얘긴 안하고 왔는데...?
성 민 그래? (둘러보다) 수빈아! 잠깐 이리와 봐.
수 빈 (달려와서) 왜? (은영에게 미소지어 보이고)
성 민 저기, 이 친구가 집에 전화 좀 해야 되거든? 들어가서
알려줘라.
수 빈 (은영에게) 이쪽으로 오세요.
은영, 수빈을 따라 마을회관으로 향한다.
#38 S 동 마을회관 안 (해질녘)
수빈을 따라 회관 안으로 들어서는 은영.
이때 회관 밖 입구에 보이는 여학생들,
은영이 회관 안에 있는 줄 모르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린다.
여 자1 누구야?
여 자2 몰라.
여 자1 여긴 왜 왔데?
여 자2 성민오빠 찾아왔나 봐.
여 자1 성민오빠가 오라그랬대?
여 자2 아닌 거 같애.
여 자1 별종이다, 증말...
여 자3 (갑자기 끼어들며) 춘천에 무슨 대학 다닌다구?
여 자2 내가 아니?
은영, 기분이 상하면서 신경이 쓰이는데,
수 빈 (안쪽의 전화 가리키며) 저거 쓰세요. 마을 공동전화
라 저희는 급한 일 아니면 못쓰거든요.
은 영 네... (전화기로 가려는데)
수 빈 아휴, 더워. 뛰어다녔더니 땀이 다 나네...
하면서 수빈, 겉옷을 벗으면, 은영이 성민에게 선물했던 후드티셔
츠가 드러난다.
은 영 어? 그거 성민씨 옷하고 똑같네...?
수 빈 아, 제가 빌려 입었어요.
은 영 (순간 예민한 표정) 내가 생일 선물로 사준 건데...?
수 빈 어머, 그런 거였어요? 난 몰랐네...?
은 영 ...그날 저한테 선물 받는 거 다 봤잖아요. 어떻게 그
럴 수가 있어요?
수 빈 그냥 저는 오빠가 별말 없길래요...
은 영 둘이 평소에 옷도 같이 입어요?
수 빈 네?
은 영 아무리 선후배라도 그렇지, 분별은 있어야 되는 거 아
닌가요?
수 빈 (갑자기 기분 나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은 영 내가 뭐 못할 말 했나요? 수빈씨 저한테 좀 심하단 생
각 안 드세요?
수 빈 뭐가요? 오빠랑 전 원래 친해요. 그럼 은영씨 때문에
서로 모른 척하고 지내란 말인가요?
은 영 뭐라구요?
두 사람 기분 나쁜 투로 서로를 보는데, 이때 성민이 웃으며 뛰어
들어온다.
성 민 (들어서며) 왜 그래? 전화 안돼?
은 영 (돌아서며) 나 그냥 갈래. (나간다.)
성 민 왜 그래...? (영문을 몰라 수빈을 보고는, 얼른 은영을
따라나간다.)
#39 S 동 마을입구 (밤)
화가 난 은영이 황급히 달려나오고, 성민 연신 쫓아오며 설득하려
한다.
성 민 뭘 그걸 가지고 그래? 여자들은 참...
은 영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성 민 걘 그냥 후배야. 내가 후배라는데, 니가 왜 신경을 쓰
니?
은 영 수빈씨는 성민씨 좋아해. 내 눈엔 다 보여. 그걸 모른
다고 할 참이야?
성 민 걔가 날 좋아하든 말든, 난 아니야. 그럼 된 거 아니야?
은 영 어떻게 그게 된 거야? 매일 만나면서? 그렇게 친절하
게 해달라는 거 다 해주면서?
성 민 후배가 부탁하는 걸 어떻게 거절하니? 우리 과는 다 그
렇게 지내.
은 영 이건 경우가 틀려!
성 민 그럼 내가 어떡하면 좋겠니? 걜 붙들고 나 좋아하지 말
라고 해? 분명한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너라는 거야!
은 영 날 사랑한다구? 후배부탁은 그렇게 잘 들어주면서, 언
제 나한테 양보 한번 해본 적 있어? 의료봉사 다 다니고, 할 거 다
하고, 나 때문에 자기생활 흐트러진 적 없잖아. 난 자기한테 맞추
느라, 이번 학기 학점이 어떻게 되는지 알기나 해? 내 마음 하나 치
료 못하면서, 무슨 의료봉사야? 가서 수빈씨랑 의료봉사나 실컷
해.
이때 달려오는 시외버스를 급하게 세우며 길을 건너는 은영.
성 민 (붙잡으려다 멈춰 서며) 은영아! 조심해!
은영 버스를 두드리고, 문이 열리면 올라탄다.
성민 뒤늦게 길을 건너 달려오지만, 버스는 이미 문을 닫고 출발한
다.
답답하다는 듯 멀어지는 버스를 보다가 시선 돌리는 성민. 실망과
피로감.
#40 S 달리는 시외버스 안 (밤)
화가 난 은영 검은 창 밖을 본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화가 난 듯 손으로 닦아낸다. (F.O)
#41 S 의대 건물 락커룸 (낮)
수빈이 개어진 티셔츠를 성민에게 내민다.
수 빈 오빠, 이거. 잘 입었어.
성 민 (받아들고)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수 빈 아니야. (멋쩍은 웃음) 그 여자 세게 나오데? 사실 좀
당황했어.
성 민 우리과 분위기를 이해 못하는 거 같애. 니가 좀 이해해
라.
수 빈 (좋아하는 마음 숨기고, 조심스레) 앞으로 의사가 되
도 그렇고, 오빨 좀 이해해주는 여자가 좋을 텐데... 어떻게 할거
야?
성 민 (고민되는) 글쎄... 잘 모르겠다. 여잔 뭐가 그렇게 복
잡한지...
수 빈 솔직히 말할까? 오빠한텐 안 어울려.
성 민 (보면)
수 빈 오빠가 왜 그런 애한테 꼼짝 못하고 쩔쩔매? 우리 같
은 사람은 이해해주는 사람이 옆에 필요한 거 아니야?
성 민 (긍정도 부정도 않는, 고민스럽게 시선 떼는) ...
수 빈 갈게.
수빈 가고 나면, 티셔츠를 보는 성민. 락커 안에 넣고, 문을 닫는
다.
락커룸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는 성민의 모습.
#42 S 은영집 전경 (낮)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집 전경.
#43 S 은영방 (낮)
침대에 퍼질러 앉아 울면서 약을 먹는 은영. 잠옷차림이다.
인경, 물 잔과 약 봉투, 휴지를 뽑아주며 시중든다.
은 영 전화도 안하는 거 봐. 갔다온 지가 벌써 언젠데... (약
털어넣고 훌쩍거린다.)
인 경 (물잔 건네주며) 무슨 사정이 있겠지...
은 영 (물로 약 넘기고) 이보다 더 중대한 사정이 어딨니? 사
랑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한달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운다.)
인 경 (휴지 뽑아주고)
은 영 우린 분명히 운명적으로 만났는데... 그 사람이 왜 자
꾸 밉지? (닦은 휴지 아무 데나 던지며 운다.)
인 경 (휴지 뽑아 대기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미운 거겠지.
은 영 (휴지 뽑아 들고) 맞아. 아무 상관도 없다면 왜 이렇게
밉겠니...? (눈물 닦더니, 코까지 풀고) 내가 너무 집착이 심한가?
나 꼭 옛날에 걔, 정미 같지 않니? 걔가 나한테 되게 못되게 굴었잖
아... 내 꼴이 너무 비참해... (운다.)
인 경 아니야, 그거하곤 다르지. 이건 누가 봐도 기분 나쁜
거야.
은 영 고마워. 나 이러다 정말 성민씨랑 헤어지면 어떡하지?
(엉엉 운다.)
인 경 (안아주며) 그만 울어. 머리 아프겠다.
은 영 나 죽을 거 같애...
이때 문이 열리더니 은호가 머리만 들이밀고는,
은 호 누나, 성민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은 영 뭐? (갑자기 입고있는 옷보고, 머리 매만지며) 어떡하
니? 잠깐만 기다리라 그래? 잠깐만?
은호는 사라지고, 은영은 얼른 침대 밖으로 튀어나가 옷장 열고 허
둥댄다.
은 영 뭘 입지?
인 경 (같이 와서 옷 골라주며) 이게 낫지 않아?
은 영 그거?
인 경 (다른 옷도 챙겨주며) 어머, 얘. 궁금하다. 어떻게 생겼
을지...
은 영 (얼른 옷 갈아입다, 방바닥보고) 어머, 휴지 좀 다 치
워. 얼른!
인 경 어, 그래. (급히 휴지들 치우는데)
은 영 (옷 입을랴) 여기도 있다, 여기! 요기두!
#44 S 은영집 거실 (낮)
들어선 성민이 멋쩍게 서있고, 모두 일어나 나가서 맞은 상황.
성 민 죄송합니다. 갑자기 이렇게 불쑥 찾아 뵙게 돼서...
은영부 아니야, 괜찮아요. 저리 가서 좀 앉지?
은영모 그래요. (부엌을 향해, 교양 넘치는) 아줌마! 여기 차
좀 내와요!
성 민 아닙니다. 잠깐 얘기만 하고 곧 가야돼서요...
은영모 그래요...? 모처럼 왔는데...?
은영부 그럼 올라가 봐요. 친구하고 같이 있을 거야.
성 민 예, 그럼. (인사하고 돌아서면)
은 호 제가 안내할게요, 형.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성 면 그럼. (은호를 따라 올라간다.)
은영모와 은영부, 잠시 후 아줌마까지 나타나 목을 빼고 2층을 본
다.
은영모 어쩜, 생긴 거까지 내 맘에 쏙 들까...? (생각났다는
듯) 여보, 우리 덕이동 땅에
지금부터 설계 맡겨서 병원 짓는 게 어때요...?
은영부 이 사람이? 김칫국부터 마시지 마. (하면서도 흐믓한)
#45 S 은영방 (낮)
밖에서 은호가 문을 열고 비켜주면, 방으로 들어서는 성민.
방 말끔하게 치워져있고, 인경이 얼른 잠옷을 옷장에 우겨 넣고 돌
아선다.
은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책상에 공부하는 척 앉아있다 일어
난다.
은 영 (성민에게) 웬일이야? 여기까지?
인 경 (은영에게) 얘는? (성민에게) 안녕하세요.
성 민 안녕하세요.
인 경 (가방 챙기며)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성민에게) 둘이
서 얘기 잘 하세요.
성 민 미안해요, 괜히 저 때문에...
인 경 아니에요. 우린 같은 동네 살구, 맨날 지겹게 보는 사
이라서요. 그럼 다음에 또 뵈요. (밖으로 나간다.)
#46 S 은영방 밖 (낮)
인경이 나오면, 문 밖에 주루룩 둘러 서있던 가족들 놀라서 물러나
고,
인경, 가족들을 몰고 같이 1층으로 내려간다.
마침 다과쟁반을 들고 올라오던 아줌마까지 모두 제지하며 함께
내려가는 인경.
인 경 (은호에게) 참, 너 논술시험은 잘 봤니?
은 호 어? 어...
#47 S 은영방 (낮)
성민은 방안을 둘러보고, 두 사람 약간 어색하게 서있는데,
성 민 (은영을 보며) 좀 핼쑥해졌네? 많이 아팠어?
은 영 아니. (볼 만지며) 그대루야. 핼쑥해지긴...
성민, 책상 보면 책이 거꾸로 펼쳐져 있다. 성민, 말없이 책을 덮
고 의자 돌려서 은영을
일으켜선 덥석 안는다.
성 민 아이구, 이 바보야...
은 영 놔... 왜 이래...?
성 민 (그대로 안고) 여자후배 하나 때문에 우리가 헤어지면
좋겠니?
은 영 ....
성 민 나랑 헤어져있으니까 좋아?
은 영 ....
성 민 수빈이한테 전처럼 지내기는 힘들겠다고 말했어... 바
로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해.
은 영 (얼굴 떼고 쳐다보면)
성 민 이제 속이 시원해? 니 애인 이렇게 바보 만들어 놓고
좋아?
은 영 미안해...
성 민 우리 자존심 때문에 싸우지 말자. (다시 꼭 안고) 내가
아무리 공부 때문에 바쁘고 다른 일도 많지만, 너보다 소중한 건
없어.
은 영 ....
성 민 앞으로 우리가 부딪칠 일들이 얼마나 더 많은데 그
래...?
은 영 ....
성 민 (팔 풀고 은영의 두 손 맞잡으며 보는) 우리 다짐하자.
나보고 따라해 봐. 서로 마음 아프게 하지 않기.
은 영 (시선 피할 뿐) ...
성 민 어서. 서로 마음 아프게 하지 않기.
은 영 서로 맘 아프게 하지 않기.
성 민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
은 영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
성 민 바보같이 이별연습 같은 거 하지 말기!
은 영 이별연습 같은 거 하지 말기... (눈물 맺히고)
성 민 뒷모습 보이지 않기.
은 영 뒷모습 보이지 않기... (울먹인다.)
성 민 죽는 날까지 함께 하기. 아니 죽어서두 같이 하기. 다
짐할 수 있지?
고개를 끄덕이는 은영. 훌쩍거리다가 웃는다.
미소 지으며 다시 은영을 다시 꼭 안는 성민.
#48 S 대학 강의실 밖 복도 (낮. 몽타주)
벽에 ‘1994년 제 58회 의사국가고시’ 시험장을 알리는 공고문이 붙
어있고,
강의실 안에서 시험을 보고 있는 성민의 모습이 보인다.
#49 S 성당 뜰 (낮. 몽타주)
성모상 앞에서 눈을 감고 있는 은영.
은 영 (혼잣말) 하느님. 태어나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기도
를 이렇게 갑작스럽게 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옆에서 기도하던 아줌마가 이상하다는 듯 슥 본다.
은 영 (시선 느끼며, 꿋꿋이)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그 사람
꼭 붙게 해주세요...
#50 S 공중전화 부스 안 (낮. 몽타주)
은영과 성민이 부스 안에 함께 있다.
성민이 듣던 수화기를 은영의 귀에 대주면, 축하송과 함께 안내음
이 들려온다.
안 내 (E) 축하합니다. 귀하께서는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하
는 제 58회 의사국가고시에 합격되셨습니다.
은 영 축하해, 성민씨! 잘됐다. 정말 축하해!
두 사람 끌어안고 좋아한다.
이때 부스 밖에 중년남자가 신경질적으로 문을 두드리자,
얼른 자중하고 밖으로 나가는 은영과 성민.
#51 S 은영집 거실 (밤)
은영부와 은영모, 은호, 아줌마까지 앉거나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전화를 기다린다.
은영모 기집애 전화 좀 해주지.
은 호 엄만? 어련히 붙었을라구. 의사패스는 95% 이상 합격
이래.
은영모 그래두 얘, 난 니 대학합격자 발표보다 더 초조하다.
은영부 그 거야 뭐, 붙는 걸로 얘기가 다 된 거구...
은영모 (얼른 아줌마 눈치 보며) 이이가?
은영부 어...
이때 전화벨이 울리면, 재빨리 받는 은영모. 전화에 귀기울이는 은
영부와 은호.
은영모 여보세요? (은영이다) 어, 붙었니? 붙었어? (기뻐하
며) 붙었구나. 잘됐다. 이제 의사 됐으니 한시름 놔두 되겠다.
#52 S 레스토랑 전화부스 (밤)
은 영 (전화하는) 엄마, 나 오늘 좀 늦을지도 몰라. (사이) 알았
어.
은영 기분 좋게 전화를 끊고 간다.
#53 S 동 레스토랑 (밤)
은영이 와서 앉으면, 와인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성 민 뭐라셔?
은 영 축하한다고 전해달래.
성 민 (웃고는 물 마시며) 참, 요번 주말에 시간 좀 있어?
은 영 왜?
성 민 군대간 고등학교 동창 놈이 하나 있는데, 그놈 면회 한
번 가봐야 할까봐. 곧 인턴 나가면 정신없을 거구, 지금 밖에 시간
이 없을 거 같애서.
은 영 나두 같이 가자구?
성 민 응. 맨날 만나면 헤어지기 바쁜데, 같이 가면 좋잖아.
여행도 할 겸.
은 영 거기가 어딘데...?
성 민 양구. 춘천에선 금방이지, 뭐.
은 영 그럼 그날 갔다 그날 올 수 있겠네.
성 민 뭐, 잘하면 그날 올 수도 있고... 가봐서...
은 영 .... (성민을 쳐다본다)
성 민 왜?
은 영 내가 꼭 가야 돼? 난 그 사람 모르잖아.
성 민 실은 그놈 나랑 친한 놈인데 지금 심각해. 여자한테 채
여서 그냥 두면 탈영할지도 몰라. 그래서 그래. 가서 외박 한번 시
켜줘야지. 여자 친구가 안가면 외박 안시켜준데.
은 영 외박? 그럼 자구온단 얘기네?
성 민 얘기가 그렇게 되나? 가 봐서... 왜 싫어?
고민이 되는 은영의 표정.
#54 S 은영방 (밤)
작은 배낭에 가벼운 짐을 꾸리는 잠옷 차림의 은영. 고민이 된
다.
양말을 넣고, 속옷을 넣으려다 펼쳐보고, 다른 야한 걸 꺼내들고
비춰보고...
손길 멈추고, 고민이 된다.
#55 S 은영집 거실 (다음 날. 아침)
베낭을 들고 살금살금 나가는 은영.
이때 뒤에서 신문이라도 들고 화장실에서 슥 나오는 은영부.
은영부 어디 가니? 새벽같이?
은 영 (깜짝 놀라) 어? 저기, 어, 인경이랑, 어, 뭐냐, 여행
좀 갈라구. (후닥닥 나가는데)
현관문 열려하자, 먼저 밖에서 열리며 은영모가 우유라도 들고 들
어선다.
은영모 너 어디 가니? 새벽같이?
은 영 어? 저기... 아빠한테 말씀 드렸거든? 나 갔다올게?
(후닥닥 나가며) 하루 자구올지도 몰라! (내빼는 뒷모습)
의아한 듯 서로를 보는 은영모와 은영부.
은영모 뭐래요? 어디 간데?
은영부 몰라...?
은영모 아니, 당신이 허락했대매?
은영부 내가?
은영모 당신은 애한테 관심이 있는 거야? 뭐야?
은영부 아니, 내가 뭐...?
#56 S 강물 위 다리 (아침)
아침해가 다리 위로 떠오르고, 그 위를 달리는 시외버스 전경.
성 민 (E) 집에다 뭐라 그러고 왔어?
은 영 (E) 인경이랑... 같이 여행간다 그랬어...
#57 S 달리는 시외버스안 (낮)
성 민 나 때문에 거짓말했네? 미안해.
어깨에 두른 팔로 은영을 끌어당겨 포근하게 안아주는 성민.
스치는 창 밖 풍경. 아침햇살이 쏟아진다.
#58 S 호수 전경 (낮)
멀리 호수를 가로지르는 작은 배.
#59 S 동 배 (낮)
갑판 위에 손을 잡고 강바람을 맞는 은영과 성민.
은영, 약간의 불안감과 떨리는 설렘으로 성민을 올려다보면,
성민, 외투를 벌려 은영을 뒤에서 폭 안는다. 행복해 보이는 두 사
람.
#60 S 양구 선착장 (낮)
먼저 내린 성민이 손을 잡아주고, 배에서 폴짝 뛰어내리는 은영.
#61 S 부대 앞 (낮)
시외버스에서 내리는 은영과 성민. 두리번거리며 부대를 향해 간
다.
#62 S 부대, 위병소 앞 (낮)
담당군인에게 면회신청 서류를 적어낸 성민이, 따로 서있는 은영
에게로 온다.
위병소에서 나온 군인의 안내를 받아 나란히 면회실로 향하는 은
영과 성민.
#63 S 면회실 (낮)
난로 위 주전자 뚜껑이 들썩거리며 나오는 하얀 김.
나란히 앉아 기다리고 있는 은영과 성민.
들락날락 거리는 군인들이 은영을 힐끔힐끔 쳐다보자, 은영 시선
피하는데,
이때 문이 열리고 뛰어들어와 두리번거리는 군인 하나.
은영, 친구인가 해서 성민을 보면, 성민 고개를 젓고,
그 군인은 다른 가족을 만난다.
은 영 어떤 친군데?
성 민 음, 고1 때 친군데... 보면 알아. 좋은 놈이야.
은 영 (미소 짓는데)
성 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얘가 지금 실연을 당해서 마음의
상처가 크거든. 안 좋은 얘긴 묻지 말고. 알았지?
은 영 걱정 마.
이때 그 가족들과 군인이 나가면서 문이 열리고, 찬바람이 들어오
자,
은영, 일어서서 문을 닫으러 가는데,
이때 뛰어들어오는 일병 하나. 은영을 지나쳐서 달려들어간다.
은영도 그 일병을 자세히 보지 못하고 문을 마저 닫고 돌아서는
데,
성 민 (일어서며) 어? 몰라보겠네?
일 병 (덥석 안으며) 성민아! 오랜만이다!... 혼자 왔어?
성 민 아니, 저기... 내 여자친구야.
성민과 팔을 풀며 돌아보는 일병. 다름 아닌 경수다. 얼굴이 검게
타있다.
은영도 그제야 경수를 보게 되고 놀란다.
경 수 (은영이 맞나싶어) 어...? (자세히 보는 눈길)
성 민 (경수 뒤에서) 최은영이야. 서경수라고 하고.
은 영 (갑자기 당황해서, 엉겁결에)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
습니다.
하면서 시선피하는 은영.
그런 은영을 벙쩌서 바라보는 경수.
아무런 낌새도 못 채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미소짓는 성민이 보이
고,
세 사람의 모습 그대로 멈추면서. (화이트 아웃)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