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라는 말이 남긴 혼란, 물질(순환)은 돌고, 업(윤회)은 흐른다
▣ 2026.5.28
▣ 수성 알파시티-내관지-청계사-까꾸리
이원근(수필가)
친구들과 `생각을담는길'을 산책했다. 수성알파시티에서 청계사까지 걸었다. 며칠 전에는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행사 준비로 쳥계골이 시끄러웠는데 오늘은 청계골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라는 말 지금까지도 아리송하다.
유튜브 방송을 통해 우연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몇 번 들었더니 SNS 알고리즘이란 게 희한해서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잔뜩 찾아준다. 차려진 밥상 걷어차기도 뭣해서 들었더니 양자역학만큼이나 난해하다. 딱히 듣고 볼만한 콘텐츠도 없는 데다 알 듯 말 듯하니 오히려 관심이 더 간다.
우리 몸을 이루는 물질들은 죽음 이후 분해되어 자연으로 돌아간다. 흙과 양분이 되어 나무와 꽃, 동물과 미생물의 일부가 되며 끝없는 순환의 과정을 거친다. 지금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 역시 과거에는 공룡의 살점이었을 수도 있고, 병균이나 풀잎, 누군가의 밥 한 숟갈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변환이며, 모든 것은 우주 안에서 끊임없이 재활용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죽은 뒤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물질의 순환은 얼핏 불교의 윤회사상과도 닮아 보인다. 이때까지, 영혼이란 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물질의 순환과 같이 현재의 '나'라는 자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음 생으로 태어나는 것이 윤회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여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물질의 순환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자연 현상인데,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는 단순한 물질의 재배치나 생태적 순환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바르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몇 분의 스님 말씀을 듣자니 윤회란 생명체가 죽은 뒤 다시 태어나며 이어지는 생사의 흐름을 뜻한다. 여기까지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다.
이때 핵심 개념이 업(karma, 業)이란다. 과거의 행위가 현재의 삶을 낳고, 현재의 행위가 미래의 삶을 조건 짓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불교가 서양 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고정되고 불변하는 영혼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불교는 이를 `무아(anatman, 無我)'라고 부른다. 영원한 자아도, 변하지 않는 영혼도 없다는 주장이다.
실체적 자아(atman)가 없다면 윤회는 어떻게 가능한가?. 무아와 윤회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불교에서는 이를 업의 연속성으로 설명한다. 어느 스님이 든 비유는 물레방아였다. 물레방아는 물이 흐를 때 돌아간다. 그러나 그 물은 늘 같은 물이 아니다. 새로운 물이 들어오고, 이전의 물은 흘러간다. 물방울 하나하나에는 지속성이 없지만, 흐름은 이어진다.
윤회 역시 이와 같다는 설명이다. `나'라는 고정된 존재가 다음 생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그 결과의 흐름, 즉 업이 조건이 되어 새로운 생을 낳는다는 것이다. 동일한 자아의 이동이 아니라 인과의 연속성이란다.
이 설명은 나름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여전히 개운치 않은 지점이 남는다. 물질의 순환은 명확하다. 죽은 몸이 분해되어 자연의 일부가 되고, 그 물질이 다른 생명체를 구성한다는 사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업의 흐름이 어떻게 `다음 생'이라는 구체적 존재로 이어지는지는 여전히 관념의 영역에 머문다.
더욱이 많은 사람이 윤회를 `현재의 나라는 자아가 그대로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오해한다. 나도 그랬다. 스님들조차 `전생' 이야기를 쉽게 꺼내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통념은 더욱 강화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물질의 순환 자체를 윤회라고 설명하지도 않고, 고정된 자아의 이동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결국 내가 느끼는 혼란은 여기서 비롯된다. 몸을 이루는 물질이 순환한다는 이야기와, 물이 흘러 물레방아를 돌리듯 업이 이어진다는 설명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하나는 자연 현상에 대한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와 삶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사유의 체계다.
이 둘을 하나의 `순환'이라는 말로 묶는 순간, 오히려 이해는 흐려진다. 윤회라는 말이 `바퀴처럼 돌고 도는 현상'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인지도 모르겠다.
청목의 팔순을 축하합니다.
청목이라는 이름처럼
한결같이 푸른 소나무의 기품으로 살아온 벗에게
팔순을 조용히 축하드립니다.
비바람 속에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소나무처럼
오랜 세월 국민교육에 헌신하며
드러내지 않는 인내와 침묵의 미덕으로
삶의 길을 곧게 걸어오셨습니다.
화려함보다 담담함으로,
욕심보다 너그러움으로 살아온 세월이
오늘의 깊은 연륜을 이루었음을 느낍니다.
팔순의 오늘에도
여전히 푸른 마음으로
편안하고 건강한 날들이 오래 이어지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첫댓글 ㅡ 신현득
축하의 글 고맙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지금 같이 살렵니다. 윤회의 글 잘 읽었습니다. 모든 친구 분들 건강합시다.
ㅡ 남한욱
청목 산수 축하드리고. 윤회의 회상이 실체인지 알수는 없으나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합니다. 대장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ㅡ 이극식
[25년 간 교보생명 '광화문 글판' 중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10선 글귀 그 첫째
- 풀꽃/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울 회원님들 오래오래 볼 수 있도록 兩脚有步 !
- 청목님 傘壽 잔치에 나산님의 커피향을 곁들여 초하의 대낮이 더욱 찬란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ㅡ 권수문
* 소인, 아직도 '輪廻'가 누엇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가끔 '법륜'스님의 '즉문즉답'을
들어보면서 스님의 법명인 '법륜'의
'륜'자도 '바뀌 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중생들이 이승에서 머무는 시간은
'소낙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처마 아래 서 있는 시간'이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습니다.
잠시 머무르다 가는 시간,
그저 윤회의 법칙에 따라
다음 생애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지금보다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ㅡ 박낙원
부모님으로부터 여기까지 와서 나도 부모님 처럼 잔디 아래흙으로 영혼은 저 먼곳, 밤이되면 🌟로 빛날까?
공곡 윤회 글 세번을 읽었어요.
글 속에 풍부한 용어들 과연 명 수필가다.
종교적 진리도 개인과 시대적 조화로 돌아가는 물래이뜻, 물... H2O로 못을 박아놧으요.
천동설(天動說) 세상에서 '지동설' 이라고 주장한 그 사람은, 우리 몸에 피(血) 수혈에 역사가 100년이라는 시행착오가 이룩한 의술,
증기기관 기차 역사도 80년에 세월의 결과물이 지금은 골동품 전시물로 자리잡고 손님께 보여주고 있어요.
양자광학, 핵융합 산업화들도 무한에 시간 또는 저 먼 천체속에서 진리라는 답을 얻어올것이라 믿어요 나는.
♡건강 하시고 하는 일마다 행운아가 되새요♡
ㅡ 최천기
어럽읍니다,
어제 법이산~용지봉~유건산~사직단으로 다녀왔는데 마지막 길이 생각을 담는길이였읍니다 ㅎ
좀 쉬운 산행기(수필) 부탁드립니다. ㅋㅋ
ㅡ 정문희
대구 시지 청계사?
퇴직하고. 친구랑 매일
청계사까지. 산책으로~~
반가운 사진속에 6회 동기분들. 건강한 모습들에 박수보냅니다
주지스님께서
청계사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한 사찰이지요.
ㅡ 김종배
아이쿠야 청계사 계곡이 시끌벅쩍 했겠습니다
많이도 가셨네요.
친구분들과 담소를 나누며
건강도 다지고, 늘 그냥 부럽기만 합니다.
건강하십시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