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슬프게 하는것
내가 쓰고있는 타올이 낡아서 바꿔야 될것을 본 아내가 장롱속 깊숙히 정성껏 보관해 두었던 오래된 타올을 끄내준다 타올에는 [사내 개선제안 최우수 상] 이라 선명하게 찍혀있다
30여년이 훨씬 지난 오랜 세월속에서도 아직도 토해내지 못한 석유냄새와 함께 인쇄된 글씨가 변색되지않은채
그대로 남아있다
긴세월을 흘러 지나오면서도 조금도 흐트러 지지 않은채 갓구어낸 호빵처럼 따끈 따끈한 느낌이 든다
사백여명이 넘는 전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맨 나중에 호명되어 회장님으로 부터 금일봉과 함께 받은 기억이
새롭다 회사에서는 연례행사로 신년시무식을 기하여 사원들의 사기를 살리기 위해서 시상식이 있었다
일년 내내 애사심을 고취하고 회사발전에 도움이 되는 개선제안 의견서를 제출케하여 우수한 작품을 선정하였다
아 ! 벌써 이리 되었나 !
거울앞에 서있는 나를 보고 있노라니 문득 나를 슬프게 한다
검던 머리칼이 세월을 거듭하면서 분가루를 뒤집어 쓴것처럼 완전한 백발로 변해있다
어쩌다 무심한 세월에 밀리어 여기까지 와서 거울앞에서 서성이고 있는가
갑자기 동갑내기 죽마고우의 얼굴이 스친다
동짓달 칼바람을 맞으면서 둘이서 관악산 연주대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앞서가는 친구의 등산모 아래로 흘러내린 허연 머리칼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슬며시 한숨을 나온다
오랜옛날 ! 시골에서 산 등마루를 서로 넘나들며 만나던 시절이 아련히 머리속을 스친다
짧게자른 상고머리를 뒤로 젓치며 속깊이 나눈 이야기 !
한낱 의미없이 나눈 이야기들이지만 오랜세월속에서도 타올속의 글씨처럼 변색 되지않은채 그대로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 누군가가 한발자욱만 도와주면 좋으련만 -
시골에서 젊은 어머니의 유복자로 배운것이 없는데다 워낙이 의지할만한 곳이 없으니 모진 세월속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혼자서 이겨 나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보니 이럴때 누군가의 도움을 생각해본것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는 말이 있드시 누구인가 조금만 돌봐줄수 있는이가 없을가 해서 한말이다
마주앉아 술잔을 앞에 놓고 지나간 아쉬움들을 술잔위에 띄우며 스스로 위로받든 기억들 사이로 찬바람이 스치는가 싶더니 대롱대롱 달려있던 한잎파리 낙엽을 모질게 때리고 지나간다
눈물없이 흐느껴 우는 낙엽의 파드닥 거리는 애처러움을 듣자니 서글픔이 잠시 스처지나간다
요지음 갑작스러운 불청객 코로나로 인하여 거리가 한산 한데다가 날씨마저 싸늘하다 보니 하늘마저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등산인들의 썰렁한 배낭에 매달려 찬바람에 대롱대롱 춤추는 또 하나의 마스크가 왠지 애처럽다
같이한 이들과 종종 주먹인사를 나누는 모습은 더운 여름의 긴 가믐처럼 삭막하기 그지없다
코로나 이전 같으면 애인끼리 친구끼리 손을잡고 팔장끼든 소박한 풍경도 찬물에 젖은 스카프처럼 맥을 못추는것
같다
패잔병처럼 터덜터덜 맥없이 혼자서 오르고 내려오는 등산인들의 발걸음 또한 그리 무거울수가 없다
이마의 땀을 훔처내리며 몇잔술에 속알머리 없는 농담이 오고가며 떠들석하던 것들이 사라젓다
그래도 산을 찾는 이들의 마음속은 고달풀지언정 그나마 활기가 보인다
이도저도 방콕해야만 하는 처지에 밖으로 나온 이들이 손쉽게 갈수있는 곳이 동네 공원이지만 여기저기 의자위에는 싸늘한 바람만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오늘따라 차거운 바람마저 앞에서 불어와 가슴속깊히 파고든다
안양천을 따라 잔뜩 웅크린채 걷다 보니 저 앞에서 허리가 바싹 굽어진 노파의 곁을 지키며 느린걸음에 발을 맞추며 걸어오는 젊은 여인에게 시선이 끌린다
그제도 어제도 또 오늘도 시간표 속에 채워진 일과를 반복해서 예습과 복습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극 정성으로 시어머니의 눈과 발을 맞추고 있는 착한 며느리 일가
아님 늙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장래를 희생하면서 곁을 지키며 매일 매일 이렇게 같이하는 효성스런
노처녀일가
추위에 움추린데다 마스크까지 깊숙히 가리고 있으니 가늠하기 조차도 어렵다
삭막한 요지음 행여 훈훈한 미담으로 스토리를 꾸미고 싶은 나만의 고집스러운 공상에 젖는다
스처지나는 이들이 눈동자만을 빠꿈히 드러내고 마스크에 깊숙히 표정을 감춘채 묵묵히 앞만 보고 걷고있다
모두가 앞만보고 걸을뿐 오가며 스치는 이에겐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럴때 귀여운 꼬맹이에게 쵸크렛이라도 손에 쥐어주며 손이라도 흔들어 주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냉장고에 밖힌
얼음 조각처럼 싸늘할뿐 반겨주려 하지 않는 세상이다
차거운 날씨에도 양지언덕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백발노파의 가파른 숨소리가 귓전에 스치며 나를 슬프게한다
오랫만에 등어리에 땀을 촉촉히 흘리고 운동답지 않은 운동이지만 집에가면 마음놓고 먹을수있는 주전부리라도 없을가 생각해본다
호빵이라도 두어줄 사다가 따끈따끈 하게 찌어 호호불면서 먹을가?
찬바람도 쉬지않고 지나가는 길목 한구석에 작은 짐차한대가 길가에 너저분하게 사과꾸러미를 펼처놓고있다
두툼한 오리털 잠바속에 목까지 움추리고 부지런히 집으로 가는 이들에게 따뜻한 아룻목이 그리울뿐이지 사과봉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듯 부지런히 스처지나고 있다
하나 둘 이따금 지나지만 사과 꾸러미는 주인을 찾지 못하고 비닐 봉지만 바람에 휘날린다
저것을 다 판다면 도대처 얼마의 이윤이 남을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의 얼굴을 생각하면서 반질반질 닳아 헤어진 저 호주머니속에서 맨손으로 주판알을
굴릴지도 모른다
사과장수의 털모자 밑으로 바람에 흔들릴때마다 감추어진 힌머리 카락이 빠꼼이 밖을 내다본다
만원짜리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내밀며 내가 건네주는 돈을 받아들고는 틀이를 내보이며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미소사이로 새어나오는 한숨이 귀전에 스치는듯 하다
집에서 나갈때 할망구 두분이 바람을 막아주는 가림막 계단 양지 아래에서 길게 숨을 가다듬으며 소근거리나
했는데 돌아오는 길목에서 또다시 허리를 양손으로 받히고 운동이라 여기며 몸을 뒤틀고 있다
혹여 집에 들어가시면 올망졸망 귀여운 손주들이라도 쪼르르 뛰어 나와 앙상한 손이라도 잡으며 반겨줄가?
아니면 호호 늙은 영감탱이가 아룻목을 따스하게 구어놓고 기다리고 있을가?
이도저도 흐미한 전등불 아래서 혼자서 쭈그리고 앉아 점심때 먹다남은 저녁상을 대하지는 않을가
이런저런 생각하다보니 산다는게 무엇인지 나를 슬프게한다
하늘을 바라 보니 방금이라도 함박눈이 펑펑 쏟아질것 같다
이럴때 포장마차라도 들어가 누군가와 마주앉아 따끈따끈한 오뎅국물을 마시며 소주한잔에 온갖 넋두리라도 한자락 쏟으면 마음속에 슬프게하는 안타까움이 씻어내릴것 같기도하다
초라해 보이는 늙은이가 카셋트를 목에걸고 흘러나오는 곡에 따라 흥얼흥얼 아모르파티를 부르며 지나간다
산다는게 다 그런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같은 한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걸 잘할순 없어
오늘보다 더나은 내일이면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 파티
인생이란 붓을 들고서
무엇을 그려야할지
고민하고 방황하던
시간이 없다면 거짓말이지
눈물은 이별의 거품일 뿐이야
다가올 사랑은 두렵지 않아
어디서 왔는지 하얀 복실 강아지 한마리가 발아래서 재롱을 떨고있다
-고놈 참 귀엽게도 생겼군- 멀리서 중년 여인이 개목줄을 흔들며 부지런히 오고있다
-아이구 우리 베비 - 베비를 안드니 얼굴을 비비며 품안에 껴안는다
-우리는 개만도 못혀-
두노인이 마주보며 하늘을 향하여 공허한 넋두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