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7월 24일이면 두 분의 크리스티나 성녀를 기억한다.
한 분은 3세기경에 어렵사리 알게 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 때문에 아버지의 분노를 샀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잃게 된 볼세나의 성녀 크리스티나다.
이 성인은 동방 정교회에서도
‘티로의 성 크리스티나’라는 이름으로 공경을 받는다.
다른 한 분은 ‘놀라운 사람’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는
중세기(1150-1224년) 벨기에 출신의 성녀 크리스티나다.
이들 성인에 대한 이야기는 둘 다 절절하게 사무쳐 오는데,
특히 ‘놀라운 사람’ 성녀 크리스티나는
그 기이한 행적들로 해서 오늘날에도 관심을 받으며
노래나 시, 드라마 등 오늘날의 문화 활동에서도 회자된다.
성녀 크리스티나는
벨기에의 가난한 소작농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고아가 된 성녀는
가축들을 몰아 풀밭으로 데려가는 일을 했다.
비천하게, 그러나 인내해 가며 살던 그녀가
한번은 아주 심하게 발작을 일으켰다.
그 상태가 워낙 심각해서,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것으로 여겼다.
결국 장례가 치러졌다.
그런데 성당에서 장례 의식이 한창 거행되는 도중에
, 그녀가 그야말로 요란한 모습으로 되살아나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녀의 시신(?)은 당시의 관습에 따라
뚜껑을 열어 놓은 관에 안치되어 있었는데,
갑자기 그 시신이 성당 천장까지 떠오르며 살아난 것이다.
나중에 그녀가 설명한 바에 의하면,
그곳에 있던 사람들
, 특히 죄 많은 사람들이 풍기는 악취에
견디기 힘들어서 그리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사연을 나중에 그녀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더욱 놀랐다.
그녀는 자신이
천당, 지옥, 그리고 연옥을 보았노라고 말했다.
그녀의 영혼이 육신에서 벗어나기가 무섭게,
천사들이 그녀의 영혼을 매우 음울한 곳으로 데려갔다.
연옥이었다. 그곳에는 영혼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영혼들은
말로는 무어라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천사들이 나를 천당으로,
특히 가장 거룩하신 분이 계시는 곳으로 데려갔어요.
하느님께서는 자애로운 눈길로 나를 맞아 주셨고,
나는 더 없는 기쁨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영원토록 그분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은총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하늘의 아버지께서
내 마음 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을 읽으시고는 말씀하셨어요.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딸아,
너는 여기서 하루를 나와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네게 지금 이 시간부터
죽 나와 함께 지내든지
아니면 사랑과 고통의 소명을 이루기 위해
지상으로 다시 돌아가든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고자 한다.
연옥 영혼들이 너를 보고 큰 위안을 받겠지만,
저 영혼들을 연옥의 불길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네가 세상에 돌아가서
그들 대신에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다.
너는 죽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면 너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네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표양과
끊임없이 고통 받는 너의 삶을 보고,
죄인들은 회개하고 잘못을 속죄하게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삶을 마치고 나면, 너는 많은 공로를 쌓았으니
다시 이리로 오게 될 것이다.’”
그녀는 지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고,
그 순간에 다시 살아났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가 이 세상으로 돌아온 단 하나의 목적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구원과 죄인들의 회개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삶의 모든 안락함을 포기하고
가능한 한 가난하게 살았다.
자신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열심히 찾아서 나섰다.
모든 것을 내어 놓으며 극도의 고행을 실행했다.
기록과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그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겨울에 차디찬 강물에 뛰어들어서
몇 시간, 며칠, 몇 주간을 머물기도 하면서
하느님께 기도하며 자비를 구했다.
더러는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물레방앗간의 커다란 바퀴와 더불어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뼈가 부러지거나
그 마디가 어그러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개들에게 쫓기다가 물려서 살이 찢어지기도 했고,
개들을 피해 가시덤불 속으로 피했다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긴 상처는 이내 흉터 없이 말짱해졌다.
성녀는 74세에
도미니코회의 성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후일 그곳의 원장 수녀는
그녀가 온갖 기행에도 불구하고 장상이 지시하는 것은
무엇이든 겸손하고 철저하게 순명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예수회 출신의 뛰어난 교회학자인
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도,
크리스티나가 타오르는 불길 한가운데에 있어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온몸이 상처로 뒤덮였어도 이내 말끔해졌다고 증언했다.
성녀 크리스티나에 대한 공경과 관련해서
가톨릭교회가 공식으로 인정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성인의 고향 벨기에에서는
아직도 성인을 각별히 공경한다.
그리고 교회는
성인을 제분업자들,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과
정신 건강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인정한다.
글...월간 레지오 마리애, 이석규
성녀 크리스티나는
어린 나이에 갖은 고문으로 고통을 당했다.
몇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그때마다 하느님께서 기적을 베풀어 살아날 수 있었다.
성녀는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성녀 아버지는 우상숭배를 좋아하는 이도교인이었다.
성녀 아버지는 황금으로 만든 조각들을
집안 곳곳에 놓아두고 기도하곤 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성녀는
어느 날 황금 우상 조각들을 부숴버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다.
이를 알아 챈 성녀 아버지는
성녀를 지하 감옥에 가두고 하인들을 시켜
불에 달군 꼬챙이로 성녀를 고문하라고 시켰다.
그 와중에도 성녀는 한 번도 신앙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성녀 아버지는 딸을 죽이려고 마음 먹고
성녀 목에 무거운 바위를 매달아 볼세냐 호수에 빠뜨렸다.
그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성녀를 구해준 것으로 전해진다.
성녀는 그 후에도 몇 번씩이나 감당하기 힘든 고문을 당했다.
성녀는 결국 목에 화살을 맞아 순교했다.
성녀의 무덤은 19세기 때 볼세냐 지방에서 발견됐고
성녀 유해는 현재 시칠리아 팔레르모 지방에 모셔져 있다.
글...평화신문, 박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