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 만들어놓은 정원에는 서른 개 정도의 화분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돋고 자라는 과정을 지켜본 나무가 있습니다. 씨앗을 심었는데 작은 화분에서 파릇하게 싹을 틔우고 조금씩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날마다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가녀린 가지에 잎을 매달고 바람에 팔랑이고 가을에는 빨갛게 단풍이 들고 겨울에는 이파리를 다 떨구고 빈 가지에 봄을 품은 채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지낸 구피를 돈나무 아래 묻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팔꽃이 자랐습니다. 내가 씨앗을 들인 것도 아닌데 바람이 물고 온 건지 구피가 나팔꽃으로 환생한 것인지 해마다 나팔꽃이 핍니다.
자연스럽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돈나무에서 자라는 나팔꽃이나 우수관 밑에서 자라는 접시꽃이나 겨울이 끝나면 제일 먼저 노랗게 꽃을 피우는 부추황금꽃이나 사랑초 화분에 셋방살이하는 제비꽃이나 상추 텃밭에 무작정 방 하나 만들어 살고 있는 고들빼기와 냉이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오늘은 포도나무를 넓은 텃밭에 옮겨 심었습니다.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나무를 큰 화분에 옮겨 심는 작업을 했습니다. 핑곗김에 화분대를 다시 정리했습니다. 버릴 것은 버리고 바닥도 깔끔하게 닦았습니다. 봄맞이 대청소를 했습니다. 베란다에 만든 작은 정원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도 멋진 정원입니다. 상추와 쑥갓 열무와 파를 심어놓고 정성스럽게 키웁니다. 자라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 작은 텃밭이지만 충분히 먹을 만큼 잘 자랍니다. 남편이 지극한 정성으로 키우니까 다행이지 아무나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인에게 말합니다. 이런 일에 관심이 있거나 좋아하면 키워보는 것도 굉장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베란다에서 온종일 보냈습니다. 화초 정리하는데 보조 노릇을 하다가 삐지기도 하다가 웃기도 하다가 힘들다고 주저앉아서 노래도 부르다가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베란다가 환해졌습니다. 포도나무가 잘 자라도록 지지대도 세우고 줄도 만들어주었으니 이제 포도만 열리면 됩니다. 긴 시간을 가꾸면서 기다렸습니다. 잘 자라줘서 고마웠습니다. 포도송이와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립니다.
명자꽃이 이렇게 피는구나! 남편이 명자나무 화분을 보여줍니다. 연두색 꽃망울을 다섯 개 매달고 있었습니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명자꽃입니다. 아파트 놀이터 울타리 목으로 자라는 명자나무에서 가지치기한 것입니다. 작년 봄에는 명자꽃에 빠져서 보냈습니다. 정말 고마워서 울먹울먹했습니다. 팥알 크기보다 작은 콩알만 한 꽃망울을 보는 순간 가슴이 쩌릿했습니다. 명자꽃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 살아있구나. 생명의 신비로움에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 2023년1월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