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지리산문학상 수상작 | 김륭
달의 귀 외 4편
가끔씩 귀를 자르고 싶어, 내 몸을 돌던 피가
네모반듯하게 누울 수 있도록
그러면 우리 집 고양이는 온통 벽을 긁어놓겠지만 혀를 붓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나는 누군가의 뱃속에서 지워진 내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테고 가만히 첫눈이 온다고 속삭이는 여자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심장을 꺼내 뭇 남자의 무릎을 베기도 한다더군요
그러니까 나는 자궁을 들어낸 어머니 뱃속 가득 담겨있던
신발 한 짝이었음을 기억해냅니다
달의 귀를 잘라 마르지 않는 그녀의 우물은 누군가의 손목을 베개로 삼아야 들을 수 있는 노래, 우두커니 아무리 울어도 나무가 될 수 없는 나는 축축한 밤의 옆구리에 의자를 갖다놓는 나는 달팽이, 신발을 주우러 다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어쩌죠? 귀를 잘라버린 무덤은 허공에 입을 그려 넣고
그녀는 밤새 눈사람을 만들지만 더 이상
무릎은 벨 수 없다더군요
어머니, 나뭇잎 좀 그만 떨어뜨리세요
뱃속에서 우는 아이의 심장을 가만히 꺼내
늙은 고양이를 만드는 그녀를 위해
밤은 가끔씩 종이가 됩니다
—《서정시학》 2014년 봄호
그리하여 홍합처럼,
—숨바꼭질의 정신사
나는 왜 가끔씩 인간의 언어보다 개소리가 필요한 걸까요. 핏줄보다 신경질이 더 절실한 걸까요. 아직도 뜨겁기 때문이라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집어치우시지. 고백하자면 이런 숨바꼭질은 아닐는지요.
엄마가 나를 낳은 게 아니라 내가 엄마를 찾으러 세상에 나왔다는 거, 그러니까 아버지는 빠지시지. 나는 당신의 개털이 아니므로,
젖은 베개 밑에 떨어져있던 머리카락 한 올이 눈알을 터트릴 것 같은 여기는 한 여자의 골방, 마른입으로 뻑뻑 피워 올리는 담배연기가 신기루 같소. 그렇다면 술래가 아닌 모든 種들은 울음을 멈추시오.
그렇소. 홍합처럼, 울음을 까는 일이 헌책방 주인이 되는 것과는 다르잖소. 그리하여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내가 찾지 못한 엄마는 누이로 변해 명품가방을 낳고 저승사자란 놈은 세상의 흔해빠진 오빠들처럼 아직 대가리 피도 안 말랐고,
그런데 누구였더라, 나는 누구였더라? 숟가락 대신 발가락 꼭 물고 머리카락을 구워삶은 적이 있으므로 세상은 좀 빠지시지.
입 안의 혀가 비비 꼬이는 걸 보면 지금까지 내가 홍합처럼 눌러 붙었던 곳은 한 여자의 골방이 아니라 마른하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날벼락을 주먹밥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소.
그러니까 제발, 좆도 모르는 인간들은 빠지시지. 나는 지금 개소리가 필요하오. 신경질이 절실하오.
—《서정시학》 2014년 봄호
첫사랑
입이 묶인 복주머니처럼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악보처럼
목이 긴 병에 천국과 지옥을
가득 담아서 파는 소녀가 있었다
나는 왜 누워서야 식은 房에 누워서야
날개를 끓이려고 하나
호접문(胡蝶紋)이라도 달아낼 듯
볼을 씰룩거리던 그 소녀를
쿡쿡, 꼬챙이로 쑤셔본
소년이 있었다
—《현대시》2014년 6월호
어느 로맨티스트의 산책
그는 자꾸 떠나려고 하고, 그런 그를, 그는 자꾸 어이없어 하다가
깜짝 놀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는 툭툭 돌멩이 하나를 깨우려하다가
이건 뭐,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고 그는 실실 자꾸 실없이
웃으려고 하다가 지난밤의 섹스가 양심에 찔리는지
마이너스통장에도 없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는 자꾸자꾸 두 발을 저어
늙은 배롱나무 밑으로 흘러내리는 심장을 만지작거리다가
식은 손을 주워 머리 위로 집어던지다가
공기보다 가벼운 말투로 혀를 녹이려하다가 그는 자꾸
무거워지려는 얼굴을 피하기 위해 그는 자꾸 다정해지려고 하고
자꾸자꾸 형식적으로, 개개비 둥지에 벽시계를 걸어놓는 뻐꾸기처럼
너무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하다가 인간을 벗어났다는 걸 눈치 챈 그는
자꾸 원숭이보다 높이 올라가려고 하고, 그런 그를, 그는 자꾸자꾸
눌러 앉히려하다가 궁둥이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리며, 뻐꾹
두 발이 살살 혀에 감기는 듯 그는, 자꾸, 뻐꾹, 뻐뻐꾹
자꾸 그는 먹고사는 일을 한가한 취미생활로 바꾸려고 하다가
그는 자꾸 방탕한 선비생활을 먹고사는 일로 바꾸려고 하다가
이건 뭐, 예술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고, 깜빡 그를 지나친
그는 자꾸 뻐꾹뻐꾹, 하고 우는 뻐꾸기도 아니고
그는 자꾸 붓처럼 휘어지는 다리를 들고 뻐꾹, 뻐뻐국,
자꾸 뻐꾹, 자꾸자꾸 뻐꾹, 자꾸자꾸자꾸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흙을 주워 담으려고 하다가
이건 뭐,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누군 딸꾹질 같은 연애하러가고 누군 집에 밥먹으러간다는데
그는 자꾸 돌아오려고 하고, 그런 그를, 그는 때려죽이려고 하다가
그는 자꾸 뻐꾹뻐꾹 발밑에서 솟아오르는 땅을 살살
남의 여자 허벅지처럼 어루만지려고 하다가
그는, 자꾸, 뻐꾹, 뻐뻐꾹
—《현대문학》2014년 7월호
침
방목할 수 없는 여자라고 쓴 문장이 밤새 끈적거립니다. 침을 뱉을 때마다 자꾸 발목이 빠지고, 눈사람은 왜 청바지가 어울리지 않는 걸까요. 내 귓속에 버려진 여자의 그림자가 주석을 달아줍니다.
넌, 내 밥이야.
닭똥집보다 못한 입술을 아무래도 너무 많이 모았습니다. 돈보다 더러운 말을 꺼냅니다. 똥보다 귀한 말을 꺼내기도 합니다. 발바닥을 하늘로 섬기기 위해 제 똥구멍을 핥는 고양이의 요술지갑처럼,
그림자를 뛰어내리는 순간 침은 바다, 그러니까 당신 몸에 바른 침은 바다 속에서 떼어낸 파도 한 조각.
넌, 내 침이야.
달콤했던 내 인생 최대의 치욕은 피보다 침을 많이 흘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꽃도 욕을 할 줄 안다는 거지요. 일종의 형상기억합금(形狀記憶合金)입니다. 지나가는 똥개에게도 함부로 침을 바르지 말아야했습니다.
입 안의 침이 밥을 만나 꿀꺽, 망하는 한순간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발견》2014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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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지리산문학상 심사평]
이번 제9회 지리산문학상 후보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시산맥시회 회원들의 1차 추천을 받았다. 추천 받은 시인들 중 이미 문학상을 여러 개 받은 시인, 그리고 중견 시인 이상은 시산맥 편집부에서 제외를 하고 득점 순으로 8명의 후보를 2차로 추천하였다.
심사대상은 최근 1년간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 및 최근 1년 내에 발간한 시집이다. 심사대상이 된 작품과 시집은 권현형 시인의 「앤의 다락방」외 9편(시집 『포옹의 방식』 게재 작품 포함), 김륭 시인의 「달의 귀」외 10편, 김이듬 시인의 「운석이 쏟아지는 밤에」외 19편, 복효근 시인의 「즐거운 사기꾼」외 9편, 서안나 시인의 「새를 깨닫다.1」외 12편, 윤의섭 시인의 「샤먼의 저녁」외 9편, 이병률 시인의 「여름 감기」외 9편, 조정인 시인의 「정육」외 9편으로 무기명 심사를 하였다.
본심에 올라온 후보자는 여덟 명이었고, 각각 문예지에 발표한 10편의 노작들이 검토 대상이었다. 그 중엔 한 권의 시집에서 뽑은 10편도 포함되어 있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이들의 시작품을 읽고 일차적으로 후보자를 반으로 압축하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 투표에 의해 복수추천을 받은 김륭, 서안나, 윤의섭 시인을 최종심에 놓고 다시 토의에 들어갔다.
세 시인 모두 개성 있는 작업을 수준 높게 끌어가는 역량이 돋보이고 그에 값하는 성과물에 대해서는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수상자 한 명을 뽑아야 하는 입장에서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를 거쳐 김륭의 「달의 귀」「그리하여 홍합처럼」「첫사랑」 「어느 로맨티스트의 산책」「침」 등 5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우선 이 시인의 시 한 편 한 편이 개별적인 높이를 가지고 있어 전체적인 수준을 일정하게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소 맥이 빠지고 지금은 흔해져 있는, 일단의 시인들이 구사하는 수사적 글쓰기의 냄새와 현실을 희석시키는 ‘경輕 화법’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이 시인의 일상을 훑는 시선은 충분히 감각적이고 눈빛은 다른 말을 할 줄 알며 상상력은 주행하고 있다. 그 언어는 뒤로 갈 때에도 갑갑하지 않으며 나아갈 때에도 투미하지 않고, 속도를 사용한다. 그 묘사는 새로움을 유지하고 서술과 구어 또한 지난 몇 년 간 보다 진화했다. 거기다 어느 때는 눈물까지 나고 재미있기까지 한데, 그 궁극적인 지향이 세계의 근원과 인간의 본래를 향해 머리를 디밀고 안간힘 쓰며 가고 있다.
김륭의 시에 매력이 있었다, 고 하면 될 것 같다. 이 시인의 진정성과 불온함과 아이러니는 실패하겠지만 “망하는 한순간을 우리는 사랑이라고”(「침」)” 부른다는 시어의 힘은 우리말의 장력을 한껏 키울 것이다. 큰 정진이 있기를 바라며 그 걸음이 세상에 창조적인 무엇이 되기를 기대한다.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
_심사위원 : 김명인(시인), 황학주(시인, 글), 김행숙(시인)
—《시산맥》2014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