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4:66~72)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71절)
혈기왕성하며 가장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위한 헌신을
표현하던 베드로가 매우 비겁한 행위를 한다.
예수님의 예언처럼 닭이 두 번 울기 전까지
예수님이 자신과 관계 있다는 것을
'부인, 저주, 맹세'의 순서로 부인하며 단절을 시도한 것이다.
보통 사람은 평소에 두드러짐 없다가
위기 상황에 자신을 보신하기 위해 정직을 포기하거나
죄 없는 이를 규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베드로는 평소에 유독히도
자신이 예수님과 그의 공의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공헌했기에 상황이 우스꽝스럽기도, 조소를 금치 못할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평소에 의지를 다졌든지,
의지를 다지지 않았든지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 위기의 순간에 정직을 지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람은 약하디 약한 일면이 있다.
하나님 안에서 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일관성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베드로가 참으로 진실되며
그가 예수의 첫번째 제자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은
이후 그의 모습이다.
그가 비겁한 행위를 하고 몸 하나 겨우 건지고 난 직후
예수님의 예언대로 두 번째 닭의 울음이 들리자
베드로가 통곡한다.
그는 회개와 회한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체포되지 않은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에 멈추지 않고
이내 자신의 잘못과 한계, 하나님에 대한 회개의 마음을
보유한 사람이다.
그러니 저렇게 애처롭게 통곡하게 되는 것이다.
실존에서의 믿음이란
하나의 장애물도 없이
질풍노도식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때론 한계를 드러내더라도
그것을 아파할 줄 알고,
탄식하며 자신의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것,
자신의 과실만큼 대가를 치뤄내더라도
하나님을 다시 붙잡을 수 있는
심성을 가진 자들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윗도 다른 외적 상황이지만,
동일한 공식의 인생을 살았다.
베드로는 그 일을 겪고 난 후,
비로소 '반석의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