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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재화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다 / 한국의 美_STORY
ysoo 추천 0 조회 45 17.01.28 11: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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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_STORY

 

재화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가졌다는 돈.

우리 선조는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물로 보는 돈의 역사와 갑부 이야기, 그리고 우리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재화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목제진유장식전궤(높이 11.3cmx길이 45.5cmx너비 26.0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돈의 역사, 인물에서 찾는다


세계 어느 나라나 대부분 존경할 만한 인물을 화폐에 도안하는데, 이는 국가의 대표성을 상징하는 것 외에도 위조 방지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인물은 쉽게 모방하기 어렵기 때문. 주로 오른쪽으로 인물을 도안하는 이유는 돈을 접을 때 인물이 접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화폐에 삽입된 인물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발행한 고액권 100원에서 볼 수 있는 대흑천상이란 상상의 인물이었다.

대흑천상이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신으로, 삼보란 불교의 3가지 보배인 ‘부처님, 부처님 말씀, 부처님 제자’를 가리킨다. 1915년에 발행한 1원권, 5원권, 10원권에 등장한 관을 쓴 긴 수염의 수노인(壽老人) 또한 대흑천상과 같은 가상의 인물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가 최초로 도안한 인물은 이승만 대통령으로, 12년간 화폐 10여 종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나라 화폐 역사 52년간 화폐 7종에 단골로 등장한 인물은 1960년 1,000환권에 처음 등장한 세종대왕이다. 또 우리나라 최초로 화폐에 도안된 여성은 5,000원권에 도안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훌륭한 서예가, 시인인 신사임당이다.


물론 신사임당보다 먼저 화폐에 등장한 가상의 어머니가 있었다. 1962년 모자가 같이 등장한 100환 모자권으로, 이것은 긴급 통화 개혁에 의해 25일 동안만 유통되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수명이 짧은 화폐기도 하다.

1972년에는 율곡 이이의 도안을 영국인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5,000원 지폐를 제작했는데, 1977년 6월에 다시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유는 영국인 디자이너가 한국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서구인의 골격으로 디자인해 율곡 이이가 서양인처럼 코가 높고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국내 화가가 그린 영정으로 바뀌면서 현재 율곡 이이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나전칠연모란당초문상자(높이 12.7cmx길이 44.5cmx너비 68.5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최고의 갑부는 누굴까?


‘역무축재 언변현정(譯貿蓄財彦卞炫禎: 역관 무역으로 재산을 모으니, 홍순언·변승업·장현·현상정이다)’에 나오는 홍순언, 변승업, 장현, 현상정의 공통점은 조선 최고의 갑부이자 통역을 전담한 역관 집안이라는 사실이다. 역관이란 중국, 일본, 몽골, 여진과의 교류에서 통역을 담당한 관직으로 조정의 대신은 역관을 천히 여기면서도 역관의 임무는 국가의 중대사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당시 역관은 중인 신분으로 국가의 주요 외교 실무를 전담한 전문직이었으며, 통역 지식과 독점적인 사무역(私貿易)을 통해 경제력이 탄탄했음에도 항상 사회적 차별 대우를 받았다.


역관의 사신행에 필요한 경비와 녹봉을 지급하지 못한 조선 조정은 역관에게 사무역(私貿易)을 도모해 필요 경비를 조달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이에 따라 역관들은 조선 후기 재배에 성공한 인삼을 개인당 80근(당시 은 2,000냥, 쌀 2,000석의 가치에 해당)씩을 청나라에 가져가 비단, 서책, 도자기 같은 희귀한 물화로 바꾸어서 가져와 조선과 일본에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되팔았다.

17세기 무렵은 중국에서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특별 화폐가 주조될 정도로 조선은 인삼 무역의 황금기를 누렸다. 조선의 상인과 역관은 청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인삼을 팔았고, 그 대가로 엄청난 양의 은과 희귀한 물화를 조선으로 들여왔다.


국제 무역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역관이 거대한 부(富)를 이룩한 17세기, 그들은 조선 최고의 신흥 자본 세력으로 급부상한다. 특히 역관 홍순언은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파병을 이끌어낸 소설 같은 역사의 주인공으로 그의 일화가 흥미롭다. 홍순언이 통역관으로 북경에 다다라 우연히 기방에 들렀다가 은자 1,000냥에 자신을 팔겠다는 기이한 여인을 만난다. 사연인즉 그 여인의 부친이 명나라의 국고를 책임지는 호부의 책임자였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하옥되어 전 재산이 몰수된 상태인 것. 여인은 부친을 구하기 위해 은자 1,000냥에 자신을 팔려고 했던 것이다. 홍순언이 보았을 때 여인의 재주와 용모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고, 그 효심과 처지가 딱해 홍순언은 역관 무역에 쓸 사재를 털어 여인에게 자유를 찾아주었다.

훗날 그 여인은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명나라 황제 측근이자 국방을 담당하는 병부상서 석성의 후처가 되어 석성을 설득, 조선 파병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홍순언에게 원군 출병으로 보은한 것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더라도 역관 홍순언의 의기와 측은지심이 조선의 역사에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홍지법랑채모란문대접(높이 4.7cmx입지름 11.8cmx바닥지름 6.0cm, 국립중앙박물관)

 

 

당시 역관과 더불어 부를 이룩할 수 있었던 상인들은 한양 일대의 경상과 개성 중심의 송상과 의주 일대에서 상업에 종사한 만상들이다. 의주 만상 중 흥미로운 인물은 마흔이 되기 전에 인삼 무역 독점권을 가지고 조선 최고의 거상이 된 무역왕 임상옥이다.

임상옥은 철저한 상도(商道)를 지키며 평생을 살아온 인물로 유명하다.

그가 부자가 된 계기도 의미심장하다. 청나라 상인의 인삼 불매 동맹을 깨고, 인삼의 가치를 지켜내고 거둔 값진 결과여서다. 당시 조선 상인은 사신을 따라 전국의 인삼을 모아 청나라에 들어갔는데, 청의 상인들은 당치 않은 가격으로 인삼을 사기 위해 짜고 누구도 인삼을 사지 않았다.

시간에 쫓긴 조선 상인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헐값에 매매하려고 하자 임상옥은 어음을 주고 헐값으로 모든 인삼을 거둬들였다. 그렇게 사들인 인삼을 전부 쌓아놓고 불태우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청나라 상인들은 결국 임상옥이 원하는 10배 가격에 인삼을 구매한다.

지혜를 겸비한 임상옥의 결단력과 원칙으로 그는 순식간에 조선 최고 거상의 반열에 오른다. 그 이후 임상옥은 자신의 어음을 믿고 헐값에 인삼을 양도한 경상과 송상들에게도 섭섭지 않은 이익을 나눠주었으며, 의주 일대 많은 빈민을 구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상옥은 평생 계영배(술잔의 70%만 차는 잔)를 옆에 두고 넘침을 경계했으며 과욕을 두려워했다.

오늘날에도 임상옥이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자신이 축적한 이문을 백성에게 적절히 분배할 줄 아는 용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人中直似衡)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 나오는 이 구절은 재물을 독점하지 않으려는 임상옥의 신념과 상도를 추구하는 바른 인생을 그대로 읊은 절구임이 분명하다.

 

 

대동폐(지름 2.2cm, 지름 2.8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돈, 경계하고 나눠야 하는 것


돈은 최선과 최악을 모두 상징하는 변화무쌍한 이면체로, 우리나라에는 그에 관한 재미있는 속담과 명언이 많다.

‘돈이 없으면 적막강산이요, 돈이 있으면 금수강산이다’,

‘염라대왕도 돈 쓰기에 달려 있다’,
‘돈은 귀신도 맷돌을 돌리게 한다’,

‘돈이 양반이다’,

‘돈이라면 호랑이 눈썹도 빼온다’ 등등.

 

돈이 차지하는 현실적인 비중과 영향력을 짚어주는 속담부터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속담까지 선조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돈이 현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과거 금속 화폐 대부분은 형원공방(形圓孔方)의 모습, 즉 외형을 둥글게 만들었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상징하는데 하늘이 천하를 비추며 돌아가는 것처럼 ‘돈은 돌고 돈다’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숙종 7년(1102)에는 지름 2.5cm의 동전인 해동통보(海東通寶)를 주조했는데, 여기서 통보(通寶)란 ‘여러 사람이 나눠 쓰고 서로 통하는 보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돈이 최악의 주인으로 사람 위에 군림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우친 우리 선조는 그에 대한 경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술은 얼굴을 붉게 하고, 돈은 마음을 검게 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 ‘사람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느냐’ 등의 말귀가 그 예다.


고려 무신 정권기의 문인인 임춘은 공방(엽전)을 의인화한 가전체 소설 <공방전(孔方傳)>을 발표한다.
돈을 좇아 이익만 추구하는 공방이란 인물을 통해 전통적인 농민 사회와 유교 전통이 무너지는 모습과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인간 경시 풍조를 풍자했다.

소설에서 엽전을 상징하는 인물 공방은 권세를 잡고 고관에 오르자 천지 사방으로부터 뇌물을 거둬들였다.

공방은 친밀하게 사귐의 기준을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어질지 않음을 묻지 않고, 비록 시정의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으면 함께 사귀고 통하니 이른바 시정의 사귐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임춘은 공방이 땀 흘려 일하는 농사의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장사치의 이익만 앞세워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엄히 꾸짖었다.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는 배금주의(拜金主義)가 장차 고려에 미칠 폐해를 가전체 소설로 경계한 것이다. 고려 후기 임춘의 경계 의식은 인본주의적인 문제 의식과 사라지는 전통 공동체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에서 비롯한 것인데, 그것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겠다.

 


글 홍순채(자유기고가)

에디터 방은주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및 사이트 <조선 최대갑부 역관>(이덕일 지음, 김영사 펴냄), <부자열전>(이수광 지음, 흐름출판 펴냄), <한국 고중세사사전>(한국사사전편찬회 지음, 가람기획 펴냄), <상식의 반전 101>(김규회 지음, 끌리는책 펴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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