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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_STORY
재화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다
우리 선조는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인물로 보는 돈의 역사와 갑부 이야기, 그리고 우리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재화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목제진유장식전궤(높이 11.3cmx길이 45.5cmx너비 26.0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돈의 역사, 인물에서 찾는다
대흑천상이란 불교에서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를 수호하는 신으로, 삼보란 불교의 3가지 보배인 ‘부처님, 부처님 말씀, 부처님 제자’를 가리킨다. 1915년에 발행한 1원권, 5원권, 10원권에 등장한 관을 쓴 긴 수염의 수노인(壽老人) 또한 대흑천상과 같은 가상의 인물로 사람의 수명을 관장한다고 믿었다.
1972년에는 율곡 이이의 도안을 영국인 디자이너에게 의뢰해 5,000원 지폐를 제작했는데, 1977년 6월에 다시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유는 영국인 디자이너가 한국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서구인의 골격으로 디자인해 율곡 이이가 서양인처럼 코가 높고 자연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국내 화가가 그린 영정으로 바뀌면서 현재 율곡 이이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나전칠연모란당초문상자(높이 12.7cmx길이 44.5cmx너비 68.5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최고의 갑부는 누굴까?
당시 역관은 중인 신분으로 국가의 주요 외교 실무를 전담한 전문직이었으며, 통역 지식과 독점적인 사무역(私貿易)을 통해 경제력이 탄탄했음에도 항상 사회적 차별 대우를 받았다.
17세기 무렵은 중국에서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 특별 화폐가 주조될 정도로 조선은 인삼 무역의 황금기를 누렸다. 조선의 상인과 역관은 청나라와 일본을 오가며 인삼을 팔았고, 그 대가로 엄청난 양의 은과 희귀한 물화를 조선으로 들여왔다.
훗날 그 여인은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명나라 황제 측근이자 국방을 담당하는 병부상서 석성의 후처가 되어 석성을 설득, 조선 파병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홍순언에게 원군 출병으로 보은한 것이다. 다소 과장된 면이 있더라도 역관 홍순언의 의기와 측은지심이 조선의 역사에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홍지법랑채모란문대접(높이 4.7cmx입지름 11.8cmx바닥지름 6.0cm, 국립중앙박물관)
당시 역관과 더불어 부를 이룩할 수 있었던 상인들은 한양 일대의 경상과 개성 중심의 송상과 의주 일대에서 상업에 종사한 만상들이다. 의주 만상 중 흥미로운 인물은 마흔이 되기 전에 인삼 무역 독점권을 가지고 조선 최고의 거상이 된 무역왕 임상옥이다. 임상옥은 철저한 상도(商道)를 지키며 평생을 살아온 인물로 유명하다. 그가 부자가 된 계기도 의미심장하다. 청나라 상인의 인삼 불매 동맹을 깨고, 인삼의 가치를 지켜내고 거둔 값진 결과여서다. 당시 조선 상인은 사신을 따라 전국의 인삼을 모아 청나라에 들어갔는데, 청의 상인들은 당치 않은 가격으로 인삼을 사기 위해 짜고 누구도 인삼을 사지 않았다. 시간에 쫓긴 조선 상인들이 막대한 손해를 보고 헐값에 매매하려고 하자 임상옥은 어음을 주고 헐값으로 모든 인삼을 거둬들였다. 그렇게 사들인 인삼을 전부 쌓아놓고 불태우기 시작했고, 이에 놀란 청나라 상인들은 결국 임상옥이 원하는 10배 가격에 인삼을 구매한다. 지혜를 겸비한 임상옥의 결단력과 원칙으로 그는 순식간에 조선 최고 거상의 반열에 오른다. 그 이후 임상옥은 자신의 어음을 믿고 헐값에 인삼을 양도한 경상과 송상들에게도 섭섭지 않은 이익을 나눠주었으며, 의주 일대 많은 빈민을 구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임상옥은 평생 계영배(술잔의 70%만 차는 잔)를 옆에 두고 넘침을 경계했으며 과욕을 두려워했다. 오늘날에도 임상옥이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자신이 축적한 이문을 백성에게 적절히 분배할 줄 아는 용기를 지녔기 때문이다.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財上平如水人中直似衡)
대동폐(지름 2.2cm, 지름 2.8cm, 조선 시대, 국립중앙박물관)
돈, 경계하고 나눠야 하는 것
‘돈이 없으면 적막강산이요, 돈이 있으면 금수강산이다’, ‘염라대왕도 돈 쓰기에 달려 있다’, ‘돈이 양반이다’, ‘돈이라면 호랑이 눈썹도 빼온다’ 등등.
돈이 차지하는 현실적인 비중과 영향력을 짚어주는 속담부터 돈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탐욕을 경계하라는 속담까지 선조에 의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돈이 현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상징하는데 하늘이 천하를 비추며 돌아가는 것처럼 ‘돈은 돌고 돈다’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숙종 7년(1102)에는 지름 2.5cm의 동전인 해동통보(海東通寶)를 주조했는데, 여기서 통보(通寶)란 ‘여러 사람이 나눠 쓰고 서로 통하는 보물’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돈이 최악의 주인으로 사람 위에 군림할 수도 있다는 점을 깨우친 우리 선조는 그에 대한 경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술은 얼굴을 붉게 하고, 돈은 마음을 검게 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 ‘사람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느냐’ 등의 말귀가 그 예다.
소설에서 엽전을 상징하는 인물 공방은 권세를 잡고 고관에 오르자 천지 사방으로부터 뇌물을 거둬들였다. 공방은 친밀하게 사귐의 기준을 “사람을 접하고 인물을 대함에도 어질고 어질지 않음을 묻지 않고, 비록 시정의 사람이라도 재물만 많으면 함께 사귀고 통하니 이른바 시정의 사귐이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설에서 임춘은 공방이 땀 흘려 일하는 농사의 근본을 깨닫지 못하고 장사치의 이익만 앞세워 백성에게 해를 끼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고 엄히 꾸짖었다.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는 배금주의(拜金主義)가 장차 고려에 미칠 폐해를 가전체 소설로 경계한 것이다. 고려 후기 임춘의 경계 의식은 인본주의적인 문제 의식과 사라지는 전통 공동체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에서 비롯한 것인데, 그것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에디터 방은주 자료협조 국립중앙박물관 참고도서 및 사이트 <조선 최대갑부 역관>(이덕일 지음, 김영사 펴냄), <부자열전>(이수광 지음, 흐름출판 펴냄), <한국 고중세사사전>(한국사사전편찬회 지음, 가람기획 펴냄), <상식의 반전 101>(김규회 지음, 끌리는책 펴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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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