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
(시편119,105).
시인은 하느님의 말씀이 그의 인생길을 비추는 빛임을 말한다.하느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는 어둠 속에서 길을 볼 수 없고 걸을 수 없다.“등불”은 어둠 속에서 안전한 길을 걷도록 해준다.하느님 말씀의 빛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우리가 사탄의 올가미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준다(프루덴티우스).오리게네스는 등불과 빛을 구분한다.등불로서 하느님 말씀은 이 세상에서 우리를 깨우치게 하지만,빛으로서 하느님 말씀은 우리에게 영적 미래를 향한 길을 보여준다.부연하며,등불은 발,곧 몸의 아랫부분을 위한 것이지만,빛은 길을 위해 주어진다.
시편 119편의 전체적 의미:119편은 시편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와 함께‘위대한 시편’,‘히브리 문학의 백미’로 불린다.이 시편은 충실한 신앙인의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직관하게 해준다.충실한 신앙인들에게 주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법에 대해 교훈을 주는 것이 이 시편의 의도로 보인다.시인은“당신 말씀은 제 발에 등불,저의 길에 빛입니다”(105절)라고 율법을 칭송한다.이 시편을 묵상하는 이는 시편의 메시지를 내면화하여“제가 당신의 가르침을 얼마나 사랑합니까!온종일 그것을 묵상합니다”(97절)라고 선포할 수 있다.이 시편은 주제어인 율법과 그 동의어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이하 생략-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3 시편90-150편/전봉순 著/바오로딸)
영적 타락
164.성덕의 길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평화와 기쁨의 원천입니다.한편 성덕의 길은 우리에게 “등불을 켜 놓고”(루카12,35)주의를 기울이라고 요구합니다.“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1테살5,22).“깨어 있으십시오”(마태24,42;마르13,35).하느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중대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심각성을 보지 못하기에,자신의 영적 삶이 점차적으로 식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결국 그들은 약해져서 타락하게 되고 맙니다.
165.영적 타락은 편한 자기만족의 눈먼 형태이기에 죄인의 쇠락보다 더욱 나쁜 것입니다.그래서 기만,중상,이기주의,다른 미묘한 형태의 자기중심성과 같은 것들이 전부 용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하기”(2코린11,14) 때문입니다.솔로몬은 그렇게 자신의 생을 마감하였습니다.반면에,다윗은 중대한 죄를 지었음에도 자신의 치욕을 만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타락으로 쉽게 이끄는 이러한 자기기만에 대해여 경고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서 자유로워진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그 사람은 자신의 삶이 이제는 정돈되었다고 확신하였으나 결국 더 악한 일곱 영에게 사로잡혀 버렸습니다(루카11,24-26참조).
다른 성경 본문에서도 이에 대하여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개는 자기가 게운 데로 되돌아간다”(2베드2,22;참조:잠언26,11)
식별
166.어떤 것이 성령에게서 온 것인지,아니면 세속적 영이나 악마의 영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유일한 길은 식별입니다.식별은 지성이나 상식 이상의 자질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우리가 간청해야 하는 은총이기도 합니다.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성령께 이러한 은사를 내려 주십사 간청하고 기도,묵상,독서,좋은 상담을 통하여 식별을 증진하고자 노력한다면,분명 우리는 이러한 영적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긴급한 필요
167.식별의 은사는 오늘날 더욱 필요하게 되었습니다.현대의 삶은 폭넓은 활동과 여가를 가능하게 해 주고,세상은 이 모든 것을 가치 있고 좋은 것인 양 제시하기 때문입니다.우리 모두,특히 젊은이들은 재핑(zapping)문화에 빠져 있습니다.우리는 둘 이상의 화면을 동시에 검색하며,둘 또는 셋의 가상 현실 속에서 동시에 교류하고 있습니다.식별의 지혜가 없다면,우리는 모든 지나가는 유행에 좌우되는 꼭두각시가 되기 쉽습니다.
168.식별은 우리 삶에 새로운 일이 생길 때 더욱더 중요합니다.이러한 때에,우리는 그것이 하느님께 보내 주신 새 포도주인지 세속의 영이나 악마의 영이 만들어 낸 허상인지 식별해야 합니다.어떤 때에는,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변하지 않도록,원래 상태로 그대로 두도록,변화에 완고하게 저항하도록,악마의 힘이 우리를 유혹할 때가 그러합니다.그러나 이는 성령의 활동을 차단하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의 자유로 우리는 자유롭습니다.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욕망,걱정,두려움,의문과 같이 우리 안에 있는 것과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모든 것,곧‘시대의 표징’을 잘 살펴보고 그래서 온전한 자유로 이르는 길을 깨닫도록 요청하십니다.“모든 것을 분별하여,좋은 것은 간직하여라”(1테살5,21).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한국천주교주교회의)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복음적인 삶 안에서 이루어진 여러 가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그들의 그러한 삶이 결국 복음 전승을 만들어 내는 출발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이렇게 복음 전승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필요성에 따라서 수집되고 만들어진 것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음 전승이 독창성 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복음서를 기술한 저자도 다 다르고 그 대상이 되는 공동체의 특성이나 환경도 다 달랐기 때문인데 이 점에 관해서는 공관 복음의 문제를 다룰 때 깊이 있게 다루게 될 것이다.복음 전승의 이야기들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고 고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수집되고 모아져,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조명을 받아 글로 만들어지고,최종적으로 복음서라는 형태로 편집된 글들이다.하지만 그 글들 속에는 각 공동체의 특수한 상황과 필요성들이 담겨져 있다.비록 복음 전승의 이야기들이 녹음되거나 카메라에 찍힌‘직접적인 현장 르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신앙에 관해 증언하고 있으므로 결국 우리는 이 이야기들을 통해서 예수님 사건에 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을 것이다.바로 그러한 노력들이 성서 못자리가 추구하는 학문적 방법론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말씀의 역사적 현장에 더욱 가까이 다가길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 만난 주님을 우리의 믿음을 통해 오늘이라는 현장 안에 구현하려는 노력을 해 나가게 될 것이다.이것이 이론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직결된 성경 공부가 될 성서 못자리의 핵심이라 하겠다.”(본문24-25쪽)
(Chat GPT 카페에서 09/11)
“책은 행복하기 위해 읽는 것”
(작가 故 박완서)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