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값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 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 다오 우리는 파묻어 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 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 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불거나.
[한국인의 애송시 II, 청하]
1960년대 한국 농촌.
겨울은 농한기였습니다.
요즘처럼 비닐하우스에 상추, 고추, 딸기, 깻잎.....을 재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울밤은 길었습니다.
사랑방에 앉아 묵내기 화투를 치는 동네 아저씨들.
도토리묵은 졸음을 참아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먹었던 묵맛은 지금 찾을 수 없었습니다.
동네 형님과 누나들은 서울가시고
설날이나 추석에 선물울 한아름 사왔습니다.
아끼고 아껴서 사온 선물인 것을 훗날 알았습니다.
인정으로 추위도 배고픔을 잊고 지냈습니다.
이제 설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설엔 고향을 찾아 옛생각에 잠겨보세요.
오늘도 행복하시길 빕니다.
=적토마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