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 괘씸하고 분해서 내뱉는 신년 초의 분루이다. 이 민족이 일본 군국주의의 군화에 침탈당했던 시절 내뱉던 절망과 분노의 표출이었음을 우리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하필 신년 초에 이 말을 다시 들먹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식민지 시절의 비극을 되씹어 보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주독립의 한반도가 다시 분단 비극의 애환을 씹고 사는 아픔에 더하여, 남북한 분단 민족의 통치자들이 내뱉는 도발 때문이다.
남북 당국자들의 신년사는 남북 관계의 부침을 단적으로 표출하는 지렛대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년 메시지는 핵심적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증강된 한미 확장 억제 체계를 완성한 북의 핵미사일 위협의 원천 봉쇄”와 함께 “한미일 공조 체제 강화”에 방점을 두면서 “힘의 우위에 의한 평화”를 천명하고 있다. 지난 세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지탱해 왔던 나름의 “민족 공조”는 물러가고 오히려 “한미일 가치연대”에 방점을 찍으며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군사 안보를 전면에 내세운다. 일종의 매몰찬 결별 선언이다.
그런가 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2023.12.30.)에서 “우리를 ‘주적’으로 선포하고 외세와 야합해 ‘정권 붕괴’와 ‘흡수통일’ 기회만 노리는 족속들을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착오”를 지양하고 “미국의 식민지 졸개에 불과한 족속들과 통일문제를 논한다는 것이 우리의 국격과 지위에 어울리지 않음”을 주장하면서 남북관계를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 전쟁 중의 두 교전국 관계”이기에 남을 향해 “핵 사용”으로 협박하며 그 길을 열어 놓았다. 나아가 남한의 “괴뢰들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북의 제도와 정권 붕괴를 꾀하는 흉악한 것들”이라며 불신을 표출한다. 여기에 김여정은 <부부장 담화>(2023.1.2.)를 통해 윤대통령은 물론 문전대통령까지도 매몰차게 비판한다. “문재인. 참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라며 “우리에게는 핵과 미사일 발사시험의 금지를 간청하고 돌아서서는 미국산 F-35를 수십 대씩 반입하고,...어리숙한 채 달라붙어 우리 손을 얽어매놓고는 돌아서서 챙길 것은 다 챙기고,...그의 ‘평화의지’에 발목이 잡혀 우리가 전력강화를 위해 해야 할 일도 못하고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한 것은 큰 손실”이었다라면서, 이제 “무식에 가까울 정도로 ‘용감한’ 윤석열이 대통령의 권좌를 차지한 것은 우리에게 두 번 없는 기회”이며 “참으로 ‘값나가는 선물’을 받았다며 좌충우돌의 역공을 퍼붓는다.
겨우 정전 상태로 살아온 71년의 현실은 이렇게 매몰차다. 이제 정부 차원의 남북 관계는 냉탕이다. 현 상태의 지속은 한반도를 패망의 길로 내몰 뿐이다. 한반도는 이들의 전유물인가? 한반도에 다른 의지와 결의의 주인공은 없나? 있다! 남북이 공존하며 각기 자주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삶의 주권을 삶의 주체자들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우리는 안다. 대한민국의 존재 목적은 <대한 국민>의 평화와 민생이다.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존재 목적도 <북한 인민>의 평화와 민생이다. 두 집권체제는 현실적인 모형과 구성이 달라도 각기 “국민”과 “인민”을 섬기라고 위임받은 주체이지, 거꾸로 국민과 인민이 집권체제의 종이 아니다. 남북의 집권체제가 핵무기 협박에 이르기까지 적대적 대결로 치닫고 있으나, 평화와 민생에서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남북의 주인인 “백성”은 적대관계를 넘어 사랑을 나누는 이웃으로 살고 싶어 한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체제요 적대적 대결인가? 통일문제를 놓고 이젠 사고의 발상부터 바꿔야 할 시점이다.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형제자매도 사고방식과 사회활동에 있어서 다르고 다양할 수 있다. 몸이 하나이지만 몸의 장기는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지니며, 다만 각 장기는 한 몸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생명체이듯이 말이다.
함께 살기 어렵다면 각자 살자. 체제는 대결하나 국민/인민은 대결을 넘어서는 교류를 하게 하자. 국경을 맞대고 사는 인접국끼리는 항상 불편한 갈등이 상존한다. 더구나 남북은 6.25 전쟁 경험 때문에 더욱 갈등 극복에 장애가 많다. 실제로 흡수통일이나 공산화 통일이 불가능하고 불필요하고 또 무의미함을 선언하자. 남북의 “국민/인민”도 멍청한 바보가 아니다. 알 만큼 안다. 이젠 남북 정부도 주권자 국민/인민과 함께 새 길로 나서자. 진정으로 전쟁을 원치 않는다면, 께름직한 정전을 확실한 종전으로 바꾸자. 가능하다면 평화협정까지도 체결하도록 하자. 현재 남북 간에 필요한 상호 신뢰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주변의 4대 강국과 EU 그리고 UN의 동참 서명하에 보장받고, 새로운 동북아 평화 질서 수립에 선진적으로 나서 보자. 일종의 평화 벤쳐 사업이다. 이 투자는 밑져야 본전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통일의 이윤이 설령 멀리 있다손 치더라도 전쟁 없는 평화라는 엄청난 가외 소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첫댓글 전쟁없는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