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09년 10월 10일-인디페이스/천주교 주교회의 생명 단편영화 상영

[늘 푸른 초원]

촬영 현장, 시사회 현장 등 궁금한 영화현장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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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주교회의 생명 단편영화 촬영현장

"죽일 놈." TV 뉴스에서 살인현장 검증장면이 나오자 노인(임형태)은 묵직한 한마디를 던진다. 그때 옆에서 링거를 갈아 끼우던 간호사 정미(송지언)는 멈칫한다. 순간 5평 남짓한 병실 안의 공기가 싸해진다. 도대체 이 둘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1강도 살해사건으로 혼수상태가 된 아들.
2거울을 보고 있는 노인.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7월3일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서울예대 내 기숙사. 병실로 개조한 이곳에서 단편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세상에서 나가라](연출 김경환·조미나, 각본 이정화)의 촬영이 한창이다. 강도살해사건으로 며느리와 손자를 잃고, 혼수상태에 빠진 아들을 간호하는 노인이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아버지를 잃은 정미를 만나면서, 가해자에 대한 마음을 서서히 여는 내용이다. 이는 천주교 주교회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에서 주관한 '생명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선정된 5편의 시나리오 중 하나로, 천주교 쪽으로부터 제작지원까지 받게 됐다.

공간이 좁은 만큼 열기는 뜨겁다. 한쪽에선 조미나 공동감독이 "선생님, 카메라가 여기서 바라보니까 (얼굴) 각도는 이 방향에서 천천히 반대로 움직이시면 되요"라며 노인 역을 맡은 임형태에게 동선 지시를 한다. 그동안 촬영팀은 멀쩡한 창을 빼내고 있다. 건물 밖에서 안으로 찍어야 되는데, 중간에 있는 유리창이 그림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일 촬영계획표가 벽에 가지런히 붙어 있는 복도에서는 김경환 공동감독이 모니터를 통해 카메라의 위치와 앵글을 맞춰보고 있다. "선배님, (앵글을) 조금만 더 오른쪽이요. 네. 지금이 좋아요." 오가는 사람들로 병실 안은 정신없이 북적거리는데도, 스탭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할을 위해 열심히 구슬땀을 흘린다.

"영화 관련 사업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조성애 수녀는 "대한민국은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나 다름없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완전한 폐지와 사형제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만큼 영향력 있는 매체가 없다"라며 사업의도를 말했다. 마치 TV에서 백번 토론하는 것보다 극장에서 한번 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대중의 뇌리에 더 깊이 각인되는 것처럼 말이다([우리들의…]의 모니카 수녀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조성애 수녀는 사형수의 대모로 불린다).

진중한 주제라 그만큼 부담도 클 것이다. "이번 영화에 출연하면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알게 됐는데, 억울한 희생을 당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걸 깨달았다"는 정미 역을 맡은 송지언의 말이다. "죽일 놈"이라는 노인의 한 마디에, 그녀가 "앞으로의 갈등을 암시하기 위해" 미소를 짓자, 감독은 "미소 없이 놀라는 표정만" 주문한다. 작은 분위기 하나가 자칫 주제에 큰 영향을 끼칠까 우려라도 하듯 말이다.

인간의 감정은 마음먹은 대로 쉽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며느리와 손자를 죽이고, 아들을 혼수상태에 빠뜨린 강도를 노인은 쉽게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사형제폐지운동 서명을 받는 정미는 얄미운 존재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미는 자신을 미워하는 노인을 아랑 곳 않고 정성을 다해 돌본다. 과연 영원히 닫힐 것 같은 노인의 마음이 열릴 수 있을까. "사형제 폐지에 관해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게 조미나 공동감독의 연출 의도다.

영화는 제작지원을 받은 나머지 4편([낙원](최우수상, 김영훈, 이상경) [햇빛 좋은 날에](가작, 조중만) [고리](가작, 이유리) [138bit의 리듬](가작, 윤미현))과 함께 10월10일(사형 폐지의 날) 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천주교, 생명 단편영화 제작지원 시작

- 생명 단편영화 제작지원금 전달 -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3월 2일(월) 서울 명동에서 ‘생명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에 대한 영화 제작지원금을 전달했다.

□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2008년에 생명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을 가톨릭 신문사와 공동 주관하여 2008년 12월 11일에 당선작을 발표, 시상했다. 이번 영화 제작은 가톨릭 교리에 입각한 생명 존중과 용서의 정신을 사회에 전파하고, 18대 국회에서 반드시 사형제도가 폐지되기를 염원하며 생명 존중의 정신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한 것이다.

□ 제작지원금은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가톨릭신문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공동 지원한다. 지원 대상작은 이미 총 7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 바 있는 생명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수상작 5편이며, 지원금 총액은 1,100만원이다. 지원 대상작 ＜낙원＞(공모전 최우수작),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세상에서 나가라＞(우수작), ＜햇빛 좋은 날에＞, ＜고리＞, ＜138bit의 리듬＞(이상 가작) 등 5편은 ‘세계 사형폐지의 날’인 오는 10월 10일(토) 상영회를 목표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소위원회로 2001년 5월 23일 설립되어,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반 생명 행위인 사형제도를 폐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생명존중과 인권을 위한 사형제도 폐지 운동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연대하여 실현해 나가며, 온 세상에 생명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2008년에 범종교 연합으로 김경한 법무부장관과 김형오 국회의장을 면담했고, 사형제도의 비인간성을 알리는 만화 자료집 ｢이젠, 완사폐로!｣를 제작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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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

- 최우수작 ＜낙원＞(김영훈, 이상경) 등 5편 -

▲ 공모전 수상자들과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뒷줄 가운데),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 위원들과 공모전 심사위원들이 시상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최기산 주교) 산하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와 가톨릭신문사가 주관한 생명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이 2008년 12월 11일(목) 오후 2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4층 강당에서 열렸다.

□ △최우수작 ＜낙원＞(김영훈, 이상경), △우수작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세상에서 나가라＞(이정화), △가작 ＜햇빛 좋은 날에＞(조중만), ＜고리＞(이유리), ＜138beat의 리듬＞(윤미현) 등 모두 5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차후에 수상자들은 시나리오에 근거한 영화 제작계획서를 제출한 뒤,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에서 제작비를 지원받게 된다.

□ 최기산 주교는 공모전 출품자 전원과 심사위원에게 감사를 전하며, “생명이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천부적 권한이라는 생명존중 사상이 널리 전파되어 18대 국회에서 반드시 사형제도가 폐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시상에 앞서 전규찬 심사위원장(한국 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이 심사 총평을 발표했다. 전 위원장은 “시나리오의 완성도뿐 아니라 생명이라는 화두에 방점을 찍다 보니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주목하게 되었다”면서, “생명을 해치고 삶을 비참하게 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 다소 작위적 구성이 있더라도 이 공모전에서만 발굴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골랐다”고 말했다.

□ 최우수작 ＜낙원＞을 쓴 김영훈, 이상경 씨는 “공모전에 낼 시나리오를 쓰면서 사형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로서 인간의 운명과 본질을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고, 어려운 주제에 도전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되어 기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낙원＞은 사형수 유가족과 범죄피해자 가족이 시골 마을의 작은 병원에서 만나 서로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 최우수상 수상자 김영훈, 이상경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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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 심사 총평, 수상작 심사평

심사 총평 - 전규찬 심사위원장

‘사형폐지’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이번 단편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의 주제는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살아 숨 쉬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를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성찰’이라는 좁은 주제에서부터 ‘모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넓은 주제까지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형제도라는 특정한 소재에 갇힌 상투적 이야기보다는 생명존중의 일반주제로부터 펼쳐지는 창의적이고 완성도 높은 이야기에 많은 점수를 주고자 했던 것이 첫 번째 원칙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는 성찰적인 측면, 즉 우리의 삶의 다양․다기한 무늬를 구성하는 사람들의 비참․고통․희망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살아있는’ 시나리오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소수자, 약자가 대상이 아닌, 주체로 등장하는 ‘선한’ 이야기들에 보다 많은 관심이 쏠렸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완성도와 더불어 메시지를 고려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메시지를 내세우는 딱딱한 것들을 골랐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둡고 심각한 내용의 작품들에 점수를 준 것도 전혀 아닙니다. 편견은 창의적 작업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생명’의 시나리오 만들기는 차라리 일상의 은폐된 명랑 스토리, 일상의 보편적 희망 메시지를 발굴하는 작업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 차이는 있지만 공통된 이야기를 구성하는 인간적 기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소재의 참신성, 주제의 적합성, 구성의 완성도, 사회적 효과성과 더불어 대중적 재미라는 심사기준을 마지막에 추가했습니다. 시나리오가 우리에게 재미를 주어야 한다. 감동이든, 즐거움이든. ‘대중적’인 작품에 점수를 주었습니다. 단편영화라는 것도 결국은 대중과의 교통, 즉 대중들과 함께 하는 커뮤니케이션 매체, 커뮤니케이션 활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대화가능성‘, 즉 많은 대중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가 자칫 방심할 수 있는 생명 죽임/살림의 주제를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그럼으로써 성찰의 계기를 촉발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를 뽑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될 수 있는지 여부도 따져보았습니다. 물론 판단이 쉽지는 않았지만 고려하였습니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기준을 마련해놓고, 성실하고 꼼꼼하게 공모한 시나리오들을 읽어 보고 나름대로 냉정하고 엄격하게 평가했습니다. 우선 출품된 모든 시나리오를 읽고 점수 매기는 예심을 거친 후, 심사위원들이 추천한 각기 스무 편의 작품들에 대해 본심사위원회 회의를 통해 다음과 같이 다섯 편의 시나리오를 최종적으로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뽑은 것이 누구나 동의할 만한 절대적 잣대에 기초한 보편타당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심사위원들의 사상과 이론이 일정하게 배어든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 공모전을 주최한 목적과 이유 역시 판단에 고려가 되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심사위원들 모두가 공정하고 엄격한 결정을 위해 최선노력을 다 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에겐 선택의 고통이었습니다. ＜당신 삶의 가치＞(김지혜), ＜사형을 사형한다＞(김희정), ＜아름다운 날에 살다＞(오충상), ＜지금 만나러 갑니다＞(김복미), ＜체리향기＞(김용구), ＜해피＞(김종해), ＜현주 결심하다＞(김원양), ＜Sky Line＞(조운) 등이 아깝게 탈락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나리오들이 다른 기회에 보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출품한 모든 작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여한 모든 작가 또는 예비 작가님들께 주최 측을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더욱 많은 정진을 기대합니다.


수상작 심사평

＜햇빛 좋은 날에＞
쓰레기로 처리되는 죽은 인명 구조견을 통해 실직 상태인 시간강사의 무력함뿐만 아니라, 이 시대 버려진 삶, 잉여적 생명의 이야기를 원숙하고 담담하게 잘 풀어내었다. 그런 ‘쓰레기가 될 삶’을 주체적으로 책임지고자 하는 이 시대 88만원 세대의 고난과 용기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생을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데 헌신한 구조견이 늙어 죽자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현실, 성실한 사람이 사회에서 도태되고 무시당하는 현실, 생명보다 돈을 중요시하는 현실 등을 생각하게 하고 이런 차가운 사회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의 생명을 보듬어주는 생명의 문화가 절실하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

＜138beat의 리듬＞
비참한 현실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감동을 전달한다. 최근 젊은이들의 혼전 성관계에 대한 윤리의식이 변하면서 미혼 임신과 낙태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젊은이들의 문화성 감성과 잘 어울리는 가운데 생명의 소중함을 잘 전달하고 있다. 리듬을 느끼며 음악에 반응하는 태아에게서 생명의 신비와 희망을 느끼는 주인공은 어려운 처지에서 좌절하지 않고 희망찬 미래를 꿈꾼다.

＜고리＞
열쇠고리를 모티프로 해서 삶을 단절시킨 폭력의 고리를 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에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두 중학생 사이의 긴장감 있는 사건은 숨길 수 없는 이 시대의 단면임에 틀림이 없다. 여동생을 살해한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동생의 사진이 담진 ‘열쇠고리’를 소홀히 하는 친구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설정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세상에서 나가라＞
인혁당 사건으로 무고하게 아버지가 사형당한 간호사 정미와 강도 사건으로 의식을 잃은 아들을 간호하며 가해자를 증오하고 사형폐지에 냉소적인 한 노인이 서로의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어 화해과정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준다. 관계 설정에서 작위적인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역시 글 쓰는 일이 역사의 조건으로부터 비껴 설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이 교훈적 메시지가 영화로 어떻게 만들어질지 기대된다.

＜낙원＞
＜낙원＞ 또한 화해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누이의 죽음에 보복하기 위해 살인범의 아버지인 한 노인의 주변을 맴돈다는 설정은 대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이 시나리오는 실감나는 언어구사와 상징적인 역할배치를 통해 살인에 대한 죽임의 복수, 폭력에 대한 폭력의 보복은 평화로 종식시켜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형은 또 다른 고통을 양산할 뿐 피해자나 가해자 누구에게도 근본적인 위로와 치료를 주지 않는다. 진정한 평화는 보복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잘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