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수버들, 수양버들, 버드나무 등 가느다란 가지가 길게 늘어지는 나무 들은 그냥 버들이라고 부른다. 버들은 물을 좋아하여 개울이나 호숫가에 터를 잡는다.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꽃들이 얼굴 치장으로 여념이 없을 때 버들은 간단히 물 세수만 하고 가녀린 몸매 하나로 승부수를 던진다. 가물거리는 아지랑이 사이로 늘어진 버들가지는 이리저리 산들바람에 실려 몸을 비튼다. 부드러움과 연약함으로 사람들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킨다. 가냘픈 여인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창경궁 춘당지 옆의 한창 물이 오른 능수버들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인들은 버들에 관련된 수많은 시를 읊었다. 중국 진(晉)나라의 시인 도연명은 그의 집에 다섯 그루의 버들을 심어 놓고 스스로를 오류(五柳)선생이라 일컫었다. 이후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낙향하여 은둔하던 선비들은 흔히 버들을 심어두고 유유자적하면서 지냈다. 버들에 얽힌 가장 많은 주제는 사랑과 이별이다. 옛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질 때 마지막 이별 장소는 흔히 나루터가 된다.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눈물을 감추고, 나루터에 널리 자라는 버들가지를 꺾어주면서 가슴과 가슴으로 사랑을 주고받았다. 이렇게 버들이 이별의 증표가 된 것은 중국의 고사와 관련이 있다. 당나라의 수도 장안의 동쪽에는 ‘파수’란 강이 흐르고, 거기 놓인 다리를 ‘파교(灞橋)’라 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파교에서 이별을 했고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를 꺾어 떠나는 사람에게 건넸다고 한다. 버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빌어 여행하는 사람의 평안과 무사를 기원하는 일종의 주술적인 뜻도 있었다. 이후 명나라 때의 널리 읽힌 희곡 [자채기]에 나오는 여주인공 정소옥이 애인 이익에게 버들가지로 장도를 빌어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후 파교의 버들은 이별의 징표로 자리매김했다.
경복궁 경회루 앞의 능수버들
지금 서울 정릉에 묻혀 있는 신덕왕후가 태조 이성계와 만나는 과정에는 버들과의 인연이 등장한다. 정조 23년(1799) 임금은 ‘일찍이 고사를 보니, 왕후께서 시냇물을 떠서 그 위에 버들잎을 띄워 올리니 태조께서 그의 태도를 가상하게 여겨 뒤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급히 물을 마셔서 체할까 봐 버들잎을 띄운 지혜를 높이 사서 둘째 왕비로 맞이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려 태조 왕건이 신혜왕후를 만나는 이야기에도 나온다.
[동궐도]를 보면, 창덕궁 금천교 앞, 대보단 앞 궁궐 담장 밖, 궁궐의 마구간이었던 마랑(馬廊) 앞, 홍화문과 선인문 앞 등 여러 곳에 능수버들이 그려져 있고 지금도 궁궐의 곳곳에 능수버들이 심어져 있다. 능수버들은 아름다운 자태를 감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활쏘기의 표적 나무가 되기도 했다. 최고의 명궁은 왕이 참석한 가운데 늘어진 능수버들의 잎을 맞히는 것으로 우열을 가렸다고 한다. 실상 능수버들 잎을 화살로 맞힌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정확성을 기하라는 상징이었겠다.
궁궐의 마구간이었던 마랑(馬廊) 및 홍화문과 선인문 앞 등에 보이는 [동궐도]의 능수버들
버들은 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와도 연관이 있다. 양류관음도와 수월관음도는 관세음보살이 버들가지를 들고 있거나 병에 꽃아 두고 있는 형식이다. 이는 버들가지가 실바람에 나부끼듯이 미천한 중생의 작은 소원도 귀 기울여 듣는 보살의 자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아울러서 버들가지가 꽂혀 있는 관세음보살의 물병 속에 든 감로수는 고통 받는 중생에게 뿌려주기도 한다. 버들의 뿌리는 감로수를 깨끗이 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어서다.
그러나 버들과 꽃이 섞인 ‘화류(花柳)’는 뜻이 달라진다. 순수하고 애틋한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조금은 육감적이거나 퇴폐적이 된다. [춘향전]을 보면 봄바람에 글공부가 싫어진 이몽룡이 광한루로 바람을 쐬러 나간다. 성춘향과의 첫 만남은 이렇게 그려지고 있다. ‘저 건너 화류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 게 무엇인고? 자세히 보고 오너라!’하며 방자를 재촉한다. 역시 봄바람이 잔뜩 들어간 성춘향도 그네를 타고 있었으니 둘의 만남은 다분히 의도적인지도 모른다. 늘어진 버드나무에 그네를 매고 복사꽃, 자두 꽃을 배경으로 치맛자락을 펄럭였으니 숫총각 이몽룡으로서야 정신이 몽롱해지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한 노릇이다. 몸을 파는 여인을 두고 ‘노류장화(路柳墻花)’라고도 한다. 길가에서 흔히 만나는 버들이나 담 밑에서 핀 꽃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꺾을 수 있다는 뜻으로 빗댄 말이다. 그래서 이들이 어울려 노는 곳을 아예 화류계라 했다. 역시 꽃과 버들이 섞인 탓이다.
귀거래도(歸去來圖)에서 만나는 버들, 김득신 19C 49.0×29.0cm<서울대박물관>글 <모셔온글>
첫댓글 천안삼거리 흥타령에 나오는 "능수" 가 원래는 "능소" 라는 남정네 이름이었다고 하더이다...천안지역에 지금도 "능소" 라는 지역명이 있고
국수가 유명하다하여 1번국도변에 있는 "능소국수" 집 찾아가 잔치국수 한그릇 먹은적이 있습니다...맛은 참 좋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