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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때가 있다! | ||||
[사람 사는 이야기-홍승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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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작은 도서관 공간을 예배당으로 구조를 바꾸는 날이다. 구조를 바꾼다고 해봐야 책은 그대로 두고 책상의 위치를 약간 바꾸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물들을 꺼내놓고 청소를 하는 정도다. 이렇게 작은 변화의 시간이긴 해도 나에겐 참 소중하다. 이때 자신을 돌아보고 내 속에 쓸어낼 것 쓸어내고 닦아서 빛내야할 것은 닦는 시간이며, 더불어 못 바친 기도도 바치는 귀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감기가 들린 몸으로 청소를 하자니 조금 귀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삿된 생각을 떨치고 한쪽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둔 청소기를 꺼내온다. 그런데 오다가 스쳐 지나간 선인장 화분이 무언가 다른 느낌이다. 무엇 때문일까. 다시 화분 앞으로 가서 선인장을 가만히 보니 꽃봉오리가 하나 눈에 띈다. 너무 작아 언뜻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은 봉오리다. 선인장이 작은 크기가 아니긴 해도 겨울을 여기서 난 것만 해도 대견하다. 낮에는 난로가 먼 쪽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온기가 조금은 있다. 그러나 밤이 되어 퇴근을 할 때면 난로를 끄고 가니 그때부터 다음날 아침까지는 온기라곤 느낄 수가 없다. 그러니 건물 안이라고는 하나 선인장이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그렇게 겨울을 난 선인장 꽃봉오리를 보니 내 가슴이 화안해지는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입춘이 벌써 보름 전에 지나갔다. 그때 창원에 사는 형이 입춘첩을 손전화로 보내 왔었다. 한자로 ‘立春多情’이라고 쓰고 사진으로 찍어 보냈는데, 글씨와 마음이 올곧으면서도 따스하게 느껴졌다. 어려운 시절에 맞이하는 봄, 따스하게 맞이하고, 이웃에게도 따스함을 나누라는 뜻으로 새겼다. 그런데 오늘 선인장 꽃봉오리가 감기로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나를 또 다시 일으켜 세운다. 사실 이번 겨울은 참 견디기 힘들었다. 날씨는 추웠고 물가는 오르고, 거기다 구제역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그렇게 죽어간 가축들 소식을 듣는 것도 힘들었으며, 그 가축을 기르던 농민들의 한숨소리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더 힘든 것은 그 재앙을 우리 스스로가 불러들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오는 자책감이었다.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힘겹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살아있는 우리는 또다시 일어나 걸어가야 하는 것을. 그리고 이왕 살아야 한다면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겨울 추위에 얼어 죽지 않고 때가 되어 작은 꽃봉오리를 내민 선인장을 보니 어떤 논리에 앞서 선인장이라는 한 생명이 들려주는 희망을 소리를 듣는다. 성서는 말한다. 모든 것은 다 정한 때가 있고, 그 때가 되면 어김없이 변화는 일어난다고. 그러니 너무 절망하거나 또는 무턱대고 낙관하지 말고 그냥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그렇게 자기 길을 충실히 걸어가라고 한다. 나와 주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놀기도 하고 책도 읽는 아들 사린이를 본 사람들은 그 어휘력과 지식에 어른 같다는 말을 종종 한다. 그런데 사린이가 화장실에 혼자 가기가 무섭다고 나한테 같이 가자고 하면, 말하는 것은 어른 같으면서 화장실도 혼자 못 가느냐며 반은 놀림이고 반은 놀람으로 묻는다. 그러나 아동발달의 측면에서 보면, 지성은 빨리 자랄 수 있지만 감성은 제 나이를 먹어야 한다. 사린이는 아직 어린 아이라는 것이다. 이걸 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가끔 나도 그걸 잊어먹을 때가 있다. 한 사람이 정서적으로 온전하게 성장하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걸 그냥 건너 뛸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가 성숙해지려면 역시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성숙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긴 서구사회가 삼백년 걸린 근대화를 삼십년에 이루었으니 그 과속에 문제가 없을 수가 없다. 빨리 오느라 놓친 것도 많고 함께 왔어야 했는데 눈감고 못 본 척 떼어놓고 온 것도 있을 것이다. 그걸 다 회복하기 전에는 진정한 근대화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니 한국사회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다고 섣불리 축배를 들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 현실이 그걸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사회는 앞으로만 달리는 걸 멈추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데 한동안 마음을 쏟아야 한다. 조금 더디다고 생각해도 달리 방법이 없다. 성숙함에 이르려면 일정한 정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인장이 꽃봉오리를 피운 것은 정확한 제 때가 이르렀기에 가능했다. 손전화 대기화면 사진을 꽃봉오리를 내민 선인장으로 바꿨다. 그리고 그 아래에다 이렇게 썼다. 홍승표 /목사, 길벗교회, 청주에서 아내와 함께 천연비누 만드는 공방을 하면서 작은도서관 '지혜의 등대> 지킴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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