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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제 만나러 갑니다 Daum 팬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골통
아래 글은 지난 1월 말에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청년의 방문기입니다. 올 1월 북중 국경의 상황을 깊이있게는
몰라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기에 3회로 나누어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이들에겐 장백을 향해 가는 길이지만, 탈북자들
에겐 반대로 목숨을 내건 필사의 탈출길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십시오.
2편.
장백현에 도착하자 송강하의 김선생님께서 소개해주신 박선생님이 우리를 마중 나와 주셨다. 장백에서 가장 처음 눈에
띄었던 것은 바로 택시였다. 장백현에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택시”라고 표시되어 있는 차들이 없다.
장백의 택시는 우리나라의 다마스와 같은 미니 봉고차이며 대부분이 같은 디자인으로 은색인 차이다.
그리고 택시 요금역시 일괄적으로 5위안 또는 10위안이다. 기준은 외지인인 우리로서는 판단하기 어려웠다. 장백에서
우리를 안내해준 박선생님을 보니 가까이 갈 때는 5위안, 좀 멀리 간다싶으면 10위안을 지불하는 것 같았다.
장백현의 중심시내는 그 크기는 작았지만 매우 잘 정돈되어 있었다. 특히 북한과의 국경도시이다보니 공안의 순찰활동이
상당히 많았다. 곳곳에 공안순찰차들이 있으며 도로를 지나가는 차량 중에 외부번호판 차량이 있으면 철저하게 검문을
하고 있었다.
이틑날 우리는 박선생님과 함께 택시 한대를 빌려서 북한 국경지대를 답사하기로 했다. 압록강을 따라 난 도로를 통해
다녀오는 코스인데, 주의사항으로는 차량이 멈췄을 때 북한쪽을 향해 사진이나 촬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차량이 이동할 때도 우리 차량 뒤와 앞에 공안순찰차량이 따라오거나 보이면 즉시 사진과 영상촬영을 멈추고
기기를 숨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북한쪽을 향한 사진촬영과 동영상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분위기
였다.
우리는 차량을 타고 이동하면서 요령껏 압록강 건너의 북한 혜산시내와 외곽의 풍경들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촬영도중
실제로 중국의 공안순찰차가 자주 오가서 촬영 중 긴급히 카메라를 숨기기도 하고 천천히 운행하던 차량의 속도를 높이
는 등 긴장되는 상황이 몇 번 발생했다.
압록강 너머의 북한 혜산시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하얀 눈에 덮여있고 뿌연 안개가 끼여 있는 조용한 분위기였다. 압록강
역시 꽁꽁 얼어있었고 그 위로 눈이 두텁게 쌓여있었다. 온통 하얗다보니 강둑을 걷는 북한사람들, 혜산시내에서 돌아다
니는 사람들, 그리고 얼어붙은 압록강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선명히 눈에 띄었다. 북한사람들이 대부분 검은색 계열의
동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압록강 넘어 북한의 혜산시에는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혜산 시내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가끔 트럭들이 공장기업소로 보이는 건물들로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다.
평일에도 시내에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이유는 현재 북한에서 산업생산설비와 공장설비가 매우 열악하여 실질적으로
생산 활동이 멈췄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인민들은 평일에도 공장기업소에 출근하지 않고 장사를 하거나 각자 생계
수단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다.
가끔 보이는 트럭들도 공장기업소에서 운영되는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장사에 활용되는 일종의 “서비차”들이었다. 실제
로 압록강 넘어 바라본 혜산의 많은 공장들은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나오지 않았고 공장 내부가 훤하게 바라보이는 건물
들은 내부가 텅 비어 건물구조만 남아있기도 했다. 북한을 연구한 본 필자가 책에서 공부한 내용들이 실제로 나타나니
매우 실감 있게 북한경제의 문제들이 다가왔다.
사실 압록강은 북한과 중국 간의 국경선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압록강을 통해 북한과 중국 상인 간의 밀무역이 성행
하고, 자유를 찾아 북한인민이 탈출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현재 북한 인민경제의 생산력이 마비되었고 배급체계가 무너
졌기 때문에 북한인민들은 시장에서 물품을 사고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상인”인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북한의 시장에서 유통되는 물건은 당연히 대부분 중국으로 부터 들어오는 물품이다. 정확히는 밀무역을 통해 들어오거나
공적 무역에서 빼돌려지는 상품들이다. 실제로 북한 혜산시와 중국 장백현을 공식적으로 연결하는 세관 다리는 출입이
거의 없었다.
즉 압록강을 통한 밀무역이 북한 시장 물품공급의 중요한 통로인 것이다. 이렇게 북한의 시장을 중심으로 인민들의 생계
가 달려있고, 압록강 상류쪽의 경계가 느슨한 곳에서는 북한인민들이 자유와 생계를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탈북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즉 압록강은 북한인민들에게는 “생명의 강”, “생명의 통로”인 것이다.
생명의 강인 압록강에는 북한 인민들이 삼삼오오 나와 얼음이 얇고 뚫려있는 곳을 통해 물을 긷는다.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나 차디차게 보이는 이 광경은 북한의 상수도시설의 낙후와 미비가 발생시킨 것이다. 물을 긷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의 여성들이었다. 또한 나이가 매우 어려보이는 소녀들도 눈에 많이 띠었다. 모두들 자기 집의 식수와
생활용수를 얻기 위해 추운 날씨와 두꺼운 강 얼음을 무릅쓰고 나와 그 무거운 물통을 들고 물을 길어가고 있었다.
압록강의 또 다른 풍경은 빨래터였다. 저렇게 차가운 겨울 강물로 빨래가 제대로 될까라는 생각보다도 그 추운 강물과
날씨에도 불구하고 북한여성들이 삼삼오오 모여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이 북한 일상생활의 고단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우리는 북한국경의 모습들을 답사하던 중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혜산시 시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혜산
동광산이 있는데, 그 동광산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그대로 압록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었다. 그것이 폐수인지, 아니
면 동광산에서 작업을 하고 흘러나오는 부유물이 섞인 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짙은 오렌지색의 붉어 보이는
물이 엄청난 수량으로 그대로 압록강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했던 중국인 운전기사와 박선생님은 북한인민들이 너무나 불쌍하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런 폐수가 스며든
물을 바로 옆에서 긷고 있으며 그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국사람들은 절대로 이 압록강 물을 마시지 않으며,
심지어 여름에 압록강에서 수영하는것도 꺼린다고 했다. 문제는 심각해보였다. 폐수는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으며 국경
을 맞대고 있는 북한과 중국당국의 아무런 방지대책도 관심도 없는 듯 했다.
압록강을 따라 북한 땅을 바라보면 강둑에 일정한 간격으로 경비초소가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모든 경비초소에
경비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어있는 초소들이 상당수 되었고 경비병이 있는 경비초소에서도 경비의 삼엄함보다는
그냥 어슬렁거리면서 초소 주변을 배회하거나 초소 그 자체를 관리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가끔 북한군 지프차가 지나가면서 경비병이 타고 내리는 모습들이 눈에 띠었지만 국경경비자체는 엄격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비병들은 얼어붙은 강에 나가있는 물 긷는 여성들과 빨래하는 아낙네들을 관리하는 모습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강둑에 설치되어 있는 경비초소들은 평평한 강둑에서도 조금은 경사가 있는 곳에 설치되어
있다. 따라서 자연히 초소로 부터 강둑 밑에까지 자연 썰매장이 생긴 것이다.
북한의 아이들은 그곳에서 마대자루를 깔고 썰매를 타고 있었다. 아이들 한두 명이 타는 것이 아니라 어림잡아도 30명이
넘는 아이들이 경비초소를 출발해 아래 강둑 밑의 동네 길까지 썰매를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표정들도 매우 해
맑아 보였다. 마대자루 뿐만 아니라 제법 썰매의 모습을 갖춘 썰매를 만들어와서 타는 광경도 눈에 띠었다. 삼엄하고
무거운 분위기의 국경경비초소와 그곳에서 썰매를 출발해 신나게 동네 길로 내려가는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이 무척이나
어울리지 않게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평일 낮 시간에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북한
의 공교육 현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장기적인 경제난과 심각한 인민경제 상황, 배급제의 붕
괴는 교육체계 마저 붕괴시켰다. 학교 선생님들도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하거나 각종 사업에 참여해야 하기에, 학생들은 부
모를 따라 생계전선에 함께 나가거나 부모가 없는 사이에 학교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친구들과 노는 현상으로 전체적인
북한의 공교육은 그 뿌리부터 심각하게 무너지고 있는 현재의 북한 상황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압록강 국경의 이러한 다양한 모습들은 모두가 다 현재 북한 체제의 문제점들과 현실을 그대로 담지
하고 있는 증표들인 것이다. 우리는 국경지대의 북한인민들의 삶을 보면서 북한체제가 직면해 있는 심각한 문제들과
앞으로의 개선 방향들을 직접 느끼며 북한 국경 답사를 한 것이다.
우리는 장백시내로 돌아와 새로 생긴 대형마트에 들렸다. 1층짜리 건물에 장백현의 규모에 비해서는 매우 크고 세련된
현대식 대형마트였다. 하지만 마트의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사진을 찍다가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마트를 나와서 길을 걷던 도중 우리를 안내하는 박선생님이 저쪽 사람들을 보라고 하면서 손으로 가리켰다. 그쪽에는
검은 외투와 검은 바지를 입은 남자 2명이 길을 걷고 있었다. 박선생님은 그 사람들이 북한 사람이라고 했다. 장사하는
사람들로 장백에 들어와서 필요한 물품을 사고 저녁에 북한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그리고 외투가 중국 사람들과는
달리 검은색으로 금방 눈에 띤다고 말해주었다.
반면 북한 군복과 유사한 차림의 사람들도 있었다. 탈북자들은 저 복장이 북한 보위부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복장이라고
한다. 물론 보위부 사람들만 입는 것은 아니지만, 보위부 사람들은 무조건 저런 차림새라고 한다. 저들은 탈북자들을
잡기 위해 중국에 들어온 것일까.
장백시내에는 복권가게가 곳곳에 있었다. 우리를 장백에서 안내해주신 박선생님도 낮 시간에는 복권가게에서 여가시간
을 보냈다. 복권가게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것은 20분에 한 번씩 당첨을 정하는 복권이었다.
숫자3개를 정하고 베팅하면 20분에 한 번씩 숫자3개가 뜨고 맞추는 형식이다. 우리일행도 재미삼아 두번 정도 해봤지만
숫자를 맞추기는 어려웠다. 복권의 당첨시간을 기다리면서 드는 생각은, 바로 몇 백미터 거리에 북한이 있는데 자본주의
의 상징인 복권을 이곳에서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기분이 묘했다.
실제로 장백에 머무르는 내내 장백시내의 활발한 사람들의 모습과 잘 정돈된 현대식 건물들, 한집건너 영업하는 식당들,
큰 시장과 슈퍼들,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으로 단장하는 상가들의 모습들을 보니 바로 건너편 북한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인 상황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우리일행은 장백현에서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또 다른 목적지인 요녕성 단동시로 가기위해 심양시로 떠나는 침대버스를
탔다. 장백현에서 단동시로 가는 방법은 장백현에서 버스를 타고 송강하로 가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과 장백현에서
요녕성 심양시로 버스를 타고 심양시에서 단동시로 기차로 이동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일행은 심양시로 버스를 타고 가는 경로를 택했다. 왜냐하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도중에 북한 국경인 압록강변을
일정시간 지나가는 경로이기 때문이다. 장백현에서 버스를 타고 심양시로 가는 도중에는 길림성 임강시를 경유한다. 바
로 장백현에서 임강시까지의 도로가 압록강변으로 이어지는 국경도로인 것이다. 임강시는 우리가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자주 배운 북한의 중강진과 마주보고 있는 국경도시이다.
장백현에서 임강시까지 이어지는 압록강변 도로를 통해 바라본 북한의 모습은 혜산시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눈덮힌 산 밖에 풍경은 없었지만, 산에 나무가 거의 없어서 마치 눈이 산을 타고 곧 흘러 내릴듯한 매끄
러운 모습이 낯설었다. 드문드문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띄었으나, 사람들의 활동은 거의 보이지가 않았
다. 국경도시인 혜산시에도 상수도 사정이나 주택사정이 열악한데, 이쪽 산지의 민가들은 어떻게 생활을 할지 참으로
어려워 보였다.
날이 어둑어둑해진 저녁, 우리는 임강시를 지나갔다. 임강시는 저녁이 되니 화려한 네온사인과 거리의 조명등으로 인해
무척이나 활발한 도시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시의 크기는 매우 작지만 그 작은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잘 정리된 시내,
색색들이 화려한 조명, 새로 건설된 현대식 건물, 빌딩 들을 보니 중국정부에서 공을 들여 개발하고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밤 12시경에 우리는 심양시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곧장 심양역으로 향했다. 심양역은 북역과
남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우리는 남역으로 가서 새벽에 떠나 아침에 도착하는 단동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심양역은 현대식으로 거대하게 새로 건설되었다. 중국은 건물들이 매우 크고 위엄있는데, 최근에 지어진 공공건물들은
그 크기가 더욱 거대한 것 같았다. 심양역이 현대식으로 지어진 탓에 새벽에도 영업을 하는 음식점들이 역 안에 있었다.
우리는 미국계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 세트를 먹으며 단동으로 가는 새벽 기차를 기다렸다.
(2편 끝)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