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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님 자경문 제 3 강
●夫初心之人은 저 초심지인은. 처음 발심한 사람은 이 말인데. 대저라는 이런 말들은 한국에서 주로 이런 말들을 쓰지만 원문에서는 대저라는 말이 없고 그냥 夫 를 씁니다. 말을 시작할 때에 “무릇. 대저. 도대체” 이런 뜻으로 쓰는데 이것이 원래 지아비 夫자 아닙니까?
지아비 夫자인데 한 一자에다 큰 大자를 합친 것이거든요. 한 一자밑에다 큰 大자를 한 것은 사람이 하나가 커져서 한 사람의 사람 몫을 한다 이 말입니다. 20세 이상의 성년이 됐다는 뜻. 성년이 되면 한 사람의 남자로서 떡하니 구실을 하게 되면, 큰 大자, 그것은 원래가 사람 모습을 표시하는 겁니다. 팔을 쫙 펴고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사람의 모습을 한 겁니다. 컸다는 뜻은 남자가 20세 되면 관을 쓰고 결혼을 하게 되고, 마누라를 얻게 되고 그 다음에 취처하게 되면 부역도 하게 되고 취직도 해서 나라에 세금도 바치고 일도 해야 된다 이 말입니다. 한사람 몫을 한다 이 말입니다.
국민의 한사람 몫을 한다 이 말입니다. 夫唱婦隨라는 말이 있는데 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들먹거리면 부인은 거기에 따라간다. 남자가 뭘 주장하면 여자는 따라가게 마련이다. 식구들은 다 따라가게 마련이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를 보통 “주인” 그러잖아. “무릇” 한다든지 “대저” 라고 한다든지 할 때는 夫자가, 남자가 턱하니 나서면 식구들이, 온 식구들이 따라가는 것처럼 “도대체가” 할 때는 말 시작할 때 쓰는 말이라고 그랬어.
夫初心之人은 처음 발심한 사람은, 갈 之자는 간다고 그래서 갈 之자라고도 해요. 걸어간다고 말입니다. 갈 之자 걸음이라고 그러잖아. 한 잔 먹고 삐딱삐딱 하는 것을 갈 之자 걸음이라고 그러지. 갈 之자를 간다고 새길 때도 있어. 그러나 보통 말을 끝맺음으로 쓰기도 하고, 중간에 그것“의”로 쓰기도 하고, 어조사로 쓰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쓰기도 하고 그래.
夫初心之人은 ●須遠離惡友하고
須라고 하는 것은 “모름지기” “반드시” 그런 말이지요. 꼭 필요하다는 “필수 조건으로” 이런 말이지. 遠離惡友하고 그랬는데 이 須遠라고 하는 것이, 須遠라고 하는 뜻이 출가의 근본입니다. 출가의 근본이라는 것은 遠離行이라 그랬어요. 出家是遠離行이라고 그랬거든요. 出家라고하는 것은 멀리 떠나는 行이 出家다 이 말입니다. 사람이 세속에 살면 자연히 파 마늘 먹게 되고 세속사람들 하고 어울리게 되고 술 담배 먹게 되고, 세속 사람들하고 고기 먹게 되고, 세속 사람들 생각하고 그냥 같이 어울리게 되지. 세속에 살면서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 겁니다.
저 계룡산 근방에 살면 누구든지 다 비결쟁이가 됩니다. 거기가면 저절로 비결쟁이가 되어 버립니다.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전라도 여흥 여천 쌍태 마을이라고 있답니다. 쌍태봉이라고 하는 봉우리가 앞에 똑 같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 동네에 시집가면 누구든지 쌍둥이를 낳는다는 겁니다. 한 동네에 100호도 안 되는데, 한 7~80호 되는데 지금 쌍둥이가 36쌍이 있답니다. 그런데 이웃동네는 안 그런데, 그 동네만 가면 쌍둥이를 낳는다는 겁니다. 이 동네는 안 그런데 그 동네에 가면 사람들이 앞산에 쌍둥이 산. 그것만 쳐다보고 사니까 그 분위기 속에 들어가면 그 분위기에 그냥 젖어 들어가고 마는 거니까... 그러니까 참선할 사람은 무조건 선방에 가야 됩니다.
선방에 들어가면 선방 분위기가, 참선 분위기에 들어가면 참선하게 돼 있거든. 공부 하려면 강원에, 글 배우려면 강원에 들어가야 되고. 독학을 하고 대학 교수 되기는 어렵습니다. 교수 되려면 대학에 가야지. 대학에 가면 공부 잘하건 못하건 동기동창들 하고 어울려서 꺼떡거리고 장난치고 놀아도 공부 전혀 안 하는 것 같아도 그래도 시험 쳐야 되고 학점 따야 되는데... 그 분위기가 학생 분위기인데 공부 하게 되지 안 하고는 못 배긴다 이 말입니다. 아주 엉터리 대학생이야 어디 있나? 아주 엉터리는 없거든요. 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놈은 없거든...
지금 우리를 이북 평양 한 복판에 갖다 놓아 보세요. 세상에 이런 곳이 있나 지랄 염병하나 싶어도 한 서 너 달 너 댓 달만 지나가면 저절로 박수 계속 치게 됩니다. 안치고 못 배깁니다. 저절로 박수 치게 되는 겁니다. “김일성 원수님” 하면 저절로 벌떡 일어나게 되고.
저희들도 일정시대에 “천황폐하” 하면 차렷 자세로 척 일어서거든.
그 분위기. 환경이라는 것이 인간을 다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 스님들은 그랬거든.
▮掬湯消池氷하니, 끓는 물 한 바가지를 퍼가지고, 언 연못을 녹이려고 갖다 부었다는 말입니다.
▮氷堅湯亦應이라. 얼음이 견고해서 끓는 물이 금방 얼음이 돼버린다 이 말입니다. 안 되더라 이 말입니다. 내 혼자 공산주의 속에 들어가서 공산주의를 민주주의 만들려고 해봐요. 되나요? 그런데 그 반대로 ▮將氷投釜入하니, 얼음을 가마속에 집어넣었더니
▮針芥合自然이라. 바늘과 겨자씨가 합한 듯이 자연히 그대로 푹 녹아버린다 이 말입니다.
마을에 살면서 머리 기르고 양복입고 살면서 “내가 여기서 중노릇 한다” 마을에서 “내가 중이다” “내가 중노릇 한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친구들이 불러내고 한 잔 하자고 하고 “왜 안 먹느냐?” 하고 “한잔 먹으라”고 하고 하니까 안 되는 겁니다. 머리 깎고 들어오니까 중 맛이 나고 중물이 들기 시작 하거든. 별 수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분위기라는 것이 아주 무서운 겁니다. 중생은 완전히 이 분위기로 말미암아 가지고 모든 업이 조성이 됩니다. 그래서 맞짱하면 가는 것이지 별수 없는 것입니다.
▮出家是遠離行이라고 그러거든요. 出家라는 것은 멀리 떠나는 행이다. 멀리 떠나야지 거기 있어가지고는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어떤 아가씨가 자꾸 치근덕거리고 덤비고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 거기서 그것을 치워 버리고 살려고 그러면 안 됩니다. 거기서 훅 떠나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멀리 떠나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본래 수자그림(?)이라고 젠장 맞으리 내가 언제 올 때 온다하고 왔나, 갈 때 간다하고 가나, 훅 짊어지면 그만 이거든. 그것이 수자그림이라고 하는 것이거든. 중은 어쨌든 간에 1년에 팔도강산을 한 너 댓 번씩 돌아야... 그래서 부처님도 한 곳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거든. 부처님은 길에서 탄생하셨고 길에서 살다가, 평생 길에서 설법하시다가 돌아가실 때도 길에서 돌아가셨거든. 그래서 道입니다. 도 닦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의 어머니가 친정에 가서 아이 낳으려고... 그 때는 풍습이 친정에 가서 얘기 낳는 법입니다. 친정으로 가다가 룸비니 동산에서 갑자기 애가 나오니 어찌합니까? 無憂樹나무. 근심 없는 나무지. 그 나무 턱~ 거느리니까 부처님이 나왔거든. 길에서 낳았어. 출가 해가지고 한 평생 집 없이 살았거든. 길에서 설법하시니까 왕들이, 빈바사라 왕이나 파사익 왕이나 그들이 부처님을 모시고 싶어서 억지로 기원정사니 죽림정사니 지어서 모셔서 한 철씩 계시기도 하고 두 철씩 계시기도 하고 또 떠나고 그랬지, 꼭 거기만 계시지 않았거든. 出家是遠離行이라, 멀리 떠나는 행이다. 이런 시가 있지요. 出家是遠離行이요,
▮忍辱是安樂道요. 인욕 할 것 같으면 그것이 안락의 길이다. 인욕은 안락의 길이다.
▮慈悲是出世心이요. 자비심을 갖는다. 억지로라도 자비심을 갖는다는 것은 출세심이라. 출세한 사람의 마음이다! 이 말입니다. 세상을 벗어난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출세라는 것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벗어난 사람이다. 출세한 사람의 마음은 자비심을 갖는 것이다.
▮寂靜是涅槃道니라. 적정. 마음이 고요하고 모든 번뇌망상이 조용해진 적정이 그것이 열반의 길이더라. 이것이 다 出家是遠離行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遠離行만 바로 잘 알면 번뇌망상도 遠離해 버리면 될 것 아닙니까? 멀리 떠나버리면 될 것 아닙니까? 근심걱정 보따리 다 遠離해 버리면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夫初心之人은 須遠離라 하면 끝나는 겁니다. 다 끝난 겁니다. 어질고 착하고 악하고 독하고 따질 필요도 없는 겁니다. 遠離行만 바로 되어 버리면 끝나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에 만공스님은, 만공스님은 본래 글을 안 배웠거든. 안 배우신 양반이 도인이지.
만공스님이 31본산 주지가운데, 마곡사 주지를... 31본산 주지들은 다 강사들이고 법사들이지. 만공스님 무식하다고 뒤로 자꾸 그렇게 하거든... 그 소리가 자꾸 들리니까 ‘한번 혼낼 수밖에 없다’ 싶어 가지고 대중 공양시에 “대중 스님네여, 나는 본래 무식해 가지고 글자를 못 배웠는데 여러분들에게 글자 한자 물읍시다. 방바닥에다가 주먹으로 한 一자를 쫙 긋고 이자가 무슨자?” 아무도 대답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중 가운데 한 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만공스님은 앉은 키가 6척입니다. 앉은키가 6척이니 키가 9척 장신이거든. 9척 장신에다가 어깨가... 얼굴만 봐도, 앉은키만 봐도 위압이 되어서 뒤에서는 뭐라고 빈정거려도 그 앞에서는 아무도 말 한마디 아무도 못하는 겁니다. 확 긋고 “이자가 무슨 자요?” 하니 아무도 대답 못하는 겁니다.
한 번은 법문을 하는데 “夫初心之人은 須遠離 그 다음은 뭐지?” 정말 모르거든. “그 다음은 뭐지?” 하니까 어떤 수좌가 惡友 어쩌구 하니까, 아구고 아구찜이고 다 치워 버리고 “須遠離라” 이래놓고 이 글자 가운데 夫 初 心 之 人 須 遠 離 ...이 여덟 자 가운데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고, 부처를 살리고 조사를 살리고, 일체 중생을 성불케 하고 일체 중생을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도리가 다 있는 글자가 있으니 한 마디 일러라. 쉽게 말해서 선문답이지만 뱃심도 대단한 능력이 있거든. 또 알고 보면 법 아닌 것이 없으니까.
어디 가서 대방광불화엄경. 화엄경. 화엄살림해 달라고 했거든. 화엄경책도 구경 안 한 사람에게 무슨 대방광불화엄경. 누구 애먹이려고 대방광불화엄경법문 해달라고 하느냐고... 책 갖다 놓으니까 책은 치워 버리고 “내 대방광불화엄경 할란다. 大라. 여하시대오? 어떤 것이 대냐?
담뱃대도 대요, 진대도 대요, 시누대도 대요, 곰방대도 대요, 상줏대도 대요, 긴대 짧은대 오죽대. 어떤 것이 대 아닌 것이 없다. 이 대라고 하는 것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두루 덮고, 덮고 나서 시방 불보살이 머물 수 있는 가람을 지어 마쳤으니” 옛날에 법문 들은 것은 많으니까. 부처님께서 여기에 가람을 짓고자 하노라. 하니까 계림왕이 일지죽을, 대나무 하나를 턱 꽂아놓고 대 가람을 다 지어 마쳤습니다. 하니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찬탄하시기를 一毛端에 現寶王刹하고. 한 터럭 끝 위에 보왕찰을 나투고 微塵裏에 轉大法輪이로다. 한 먼지 티끌 속에 대법륜을 굴렸도다. 하고 찬탄을 하셨다. 이 말입니다. 이 도리를 아는가? 이 도리를 알아야 생사를 해탈할 수 있고, 생사를 해탈하려면 바야흐로 藏보살을 昧覺하느니라. 도톰하게 들어가거든요.
방이라고 하면 큰방 작은방 안방 뒷방 하면서 방자를 또 다 들먹거리는 겁니다.
대 방 광 불 화 엄 경. 글자 일곱 자를 가지고
7일 설법을 하셨거든.
그러니까 견성만 하면 유식 무식이 상관없는 거라!
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고 안 했나? 일체법이 불법 아닌 것이 없다고 금강경에도 바로 나오잖아.
一切法이 皆是佛法이라. 다 불법이라 말입니다. 불법 아닌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아까처럼 할 것 같으면 마른 똥 막대기, 진똥 막대기가 부처 아닌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산하대지 초목총림이 어쨌든 간에 塵塵刹刹이 그대로 다 法王身이다 이겁니다.
만공스님은 “夫初心之人은 須遠離라” 해놓고, 여기에 일체생사해탈권이 다 있는 글자가 있으니 알아봐라” 했다는 겁니다. 거기에 악한 벗을 멀리하고, 親近賢善하야 어질고 선한 이를 친하고 가까이 하라. 그러니까 惡友를 멀리 하라는 말은 諸惡莫作이고, 賢善을 親近하라는 소리는 衆善奉行 하라는 소리 아닙니까?
그러니까 鳥窠 道林禪師(조과 도림선사)는 항상 나무 꼭대기에, 나무 가장이 위에 앉아서 공부하셨답니다. 백낙천이라는 당송 8대 문장 가운데 한 사람인 백낙천이라는 사람이 조과도림 선사가 큰스님이라고 해서 찾아 갔대. 나무 꼭대기에 새 둥우리처럼 해놓고 거기서 공부 했다는 겁니다.
나무 꼭대기에 까치집처럼 해놓고 올라 앉아 공부하시니까 백낙천이가 와서 쳐다보고
“앗따, 스님 계시는 곳이 대단히 위태롭습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이 더 위태롭네”
“저야 몸은 부귀영화 가운데 살고 있고, 또 두 다리는 이 大地에 있는데 위태로울 것이 뭐 어디 있습니까?” “신아조치식성부전이라. 네 분별망상심이 들락날락, 들락날락. 緣起緣滅이 生死다. 한 생각 나오고 한 생각 꺼지는 것이 생사다. 한 숨 내쉬고 한 숨 들이쉬는 그것이 바로 생사다”
“한 숨 내쉬고 들이쉬지 못하면 죽음인데, 네 어찌 위험하지 않다고 하느냐? 생사가 호흡지간에 사는 사람이 어찌 위험하지 않다고 않느냐?” 알쏭달쏭합니다. 알쏭달쏭하지만
“如何是道니꼬?” 어떤 것이 도입니까? “諸惡을 莫作하고, 衆善을 奉行하라”
●親近賢善하고 遠離惡友하라 그 말이지요.
나쁜 일은 하지 말고, 좋은 일만해라.
“그런 말쯤이야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다 할 줄 압니다.”
“세 살 먹은 어린애가 말은 할 수 있지만, 80노인이 행하기는 어려운 것이니라.”
親近賢善하고 遠離惡友. 그것만 바로 할 수 있으면 되는데 惡友라는 것이 꼭 나쁜 사람만이 악우가 아니고, 내 마음 가운데도 악우가 꽉 찼잖아. 안 그래? 나를 유혹하는 놈. 나를 간사스럽게 만드는 놈이 꽉 찼잖아. 그것이 8만4천이나 있거든. 부처님이 8만4천 마구니를 항복 받았다는 말도 외부의 8만4천 마구니가 아니라 자기 자신 가운데 있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8만4천 번뇌 망상을 8만4천 마구니라고 한 것이거든. 그것만 항복 시키면 성불이니까. 내 마음 하나만 조복하면 성불이니까. 그러기 위해서 諸惡莫作衆善奉行. 遠離惡友親近賢善...
이렇게 하기 위해서
●受五戒十戒等하야 5계와 10계등을 잘 받아 가지고
●善知持犯開遮하리라. 持犯開遮를 잘 알아야한다.
착할 善자지만 착하다고 하지 않고, 잘 안다 그래요. 잘 알선. 잘 알아야 하리라.
持犯開遮를 잘 알아야 하리라. 5戒와 10戒. 5계와 10계등 하는 것은 5계에다가, 전5계에 후5계를 합치면 10계가 되는 것인데. 전5계라고 하는 것은 출가에 5계10계가 있고, 재가에 5계가 있고 그렇거든. 출가한 사람은 10계고, 재가에 있는 사람은 5계인데, 신도들이 받는 것은 5계인데 殺盜淫妄酒. 살생ㆍ도적ㆍ음행ㆍ거짓말ㆍ술. 한 마디로 외워. 殺盜淫妄酒. 살도음망주라는 말이...
함허득통 선사. 함허득통 선사는 마을에서 본래 큰 선비거든요. 아주 큰 유학자거든. 그런데 공자님이 내 세운 말씀에 그 기본이 뭐냐 할 것 같으면 三綱五倫이란 말입니다. 儒學의 큰 대들보가 삼강오륜 아닙니까? 어질 仁자를 제일 먼저 많이 내세웠거든. 어떤 것이 진짜 어질 仁자인가? 이것이 늘 궁금했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서울 삼각산 승가사에 어떻게 무슨 일로 갔다가 하룻저녁 자고 일어나니까 거기서 受戒를 한다고, 어떤 행자가 계를 받는다고 떡~ 하니 앉아 있는데, 법사스님이 법상에 올라가서 하시는 말씀이 제일 不殺生이니라. 이렇게 하거든.
제이 不偸盜니라. 하는데 거기에서 턱 깨쳤어요. ‘不殺生이 바로 그냥 어질 仁자구나!’
함허득통 선사의 현정론이라는 책이 있는데 仁ㆍ義ㆍ禮ㆍ智ㆍ信 이러는데 순서가 바뀌어 졌습니다. 仁ㆍ義ㆍ禮ㆍ信ㆍ智 이라야... 거짓말 하지 않아야 믿을 信이 성립이 되거든. 음행하지 않는 것은 예의에 속하는 것이고. 도적질 하지 않는 것은 옳을 義자에 속하는 것이고. 지헤 智자는 술 안 먹으면 지헤 智자에 속하는 것이고. 仁ㆍ義ㆍ禮ㆍ信ㆍ智. 그것이 역시 殺盜淫妄酒를 뒤집으면 仁義禮信智거든요.
일타스님 자경문 제 4 강
殺盜淫妄酒를 뒤집으면 仁義禮信智가 됩니다. 모든 세계도덕이 여기에서 기본이 돼. 불교뿐이 아니고, 세계 평화도덕의 기본이 이 다섯 가지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인도의 싼스크리스트어 원어로는 의미가 조금 차이가 있어. 不殺生을 “아나띠빠띠...하거든, 정신적으로 상해하지 아니하고ㆍ육체적으로도 상해하지 아니하고ㆍ그리고 항상 자비심을 베푸는 것. 이것이 말하자면 “출가 수행하는 사람이 부처님의 진리를 행하는 기본이오니 우리는 그것을 따라 행하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있어요. 다시 말해서 不殺生이 아니고, 不傷害지요. 상해하지 않는다.
무엇을 상해하지 않느냐? 남의 속도 상해하지 않고, 남의 몸도 상해하지 않고, 그러니까 남의 몸과 마음을 상해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마음이 언제든지 편하고, 남의 마음을 상해하면 내 마음도 상할 날이 오는 것이고, 남을 속 썩이면 나도 속 썩는다 이 말입니다. 남의 몸뚱이를 뚜드려 팼으면 나도 언젠가는 뚜드려 맞을 날이 있다! 이겁니다. 남을 죽였으면 나도 죽임을 당할 날이 있는 것이지... 둘째 도적질 盜자가 “도적질하지 말아라” 이렇게 되어 있지 않고, “아진나단나...”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이 “도적질이다” 이 말입니다. 그 가운데서는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이니까 착취하는 것도 있고, 강도도 있고, 절도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이 “도적질이다” 이 말입니다.
그 다음에 “아부라우마타리아...”속과 겉이 유리쪽 같이 깨끗한. 內外가 明徹한 淸淨하지 못한 行이 邪淫, 姦淫으로 번역이 되었고, 옳지 못한 말ㆍ아닌 말ㆍ그른 말ㆍ남 속 썩이는 말ㆍ흉측하게 꾸짖는 말ㆍ살짝쿵 속이는 말. 이런 여러 가지 妄語ㆍ綺語ㆍ兩舌ㆍ惡口... 여기서 이 말하고 저기 가서 저 말 하는 것. 흉측하게 꾸짖어 욕하는 그런 것. 네 가지 망어를 갖다가 얘기하는 거.
마지막에 우리나라 떡이라는 말이나 술 이라는 말은 인도에서 온 말입니다. 인도에 가서 간지스강이라고 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항강 이라고 해야 알아듣습니다. 항강이라고요 항강. 그래서 왜 경에도 항하라고 안 하던가? 항하라고 하지 간지스라고 안 하거든. 항강 이라고 해야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뭘 “불에다가 따끈하게 데워 드릴까요?” 를 “아궁이 속에다 넣어서 따끈하게 해서 드릴까요?” 합니다. 아궁이라는 말도 거기 말. 아구니 = 火神이라는 말입니다. 화덕이라는 뜻입니다. 유구한 역사 속에 모르는 가운데 거기서부터 많이 건너 왔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일본 말이 범어에서 유래된 책을 만들었어. 그 책에 보면 일본 말 가운데 범어로 된 것. “단나상” 이라는 말은 주인님이라는 말인데 하인들이 주인을 “단나상” 이라고 그러거든. 주인은 우리에게 뭘 베풀어 주신다는 말이거든. 뭘 보시 하는 것을 단월이라고 하는데, 단바라밀. 보시바라밀을 말하는 것입니다. ‘준다’는 뜻입니다.
殺盜淫妄酒는 도 닦는 사람이 갈 길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기본 五戒가 되었어. 신도들도 절에 오면 의례히 삼귀오계는 다 거쳤든. 우리나라는 5계가 거의 없다시피한 것이, 없는 증거가 뭐냐? 삼귀의는 거쳤는데 5계는 안 거쳤거든.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계행이 부실해서 불교가 해이하고, 문란하고 시원찮은 것입니다. 불교정화라는 것은 ‘계율의 복고’라는 말입니다. 내가 지금 삼귀의 노래 끝에 5계 노래를 꼭 보급시켜 보려고 서울에 노력을 하고...
산목숨 앗지 않고 훔치지도 아니하며 삿된 음욕하지 않고 거짓말도 않으리라.
술 마시지 않는 계행 지키오리다. 5계는 행복의 씨앗. 우리는 5계를 지키오리다.
이런 식으로 1절만 딱 그렇게 만들어서 삼귀의 노래 끝에 5계 노래를 딱 부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5계가 불자의 기본이 됩니다. 이것을 성계라고 그래요. 성품 性자 경계 界자. 성품이라는 것은 마음 心(심변) =忄(심방변)에다가 날 生이니까... 마음이 나는 곳이므로 마음의 바탕이라는 뜻이거든요. 性質이라는 그 性이, 그 사람의 근성이라는 말입니다. 바탕이다 이 말입니다. 性質.
그래서 그것을 性界라. 기본, 근본 자체가 죄가 되는 계다! 이 말입니다. ▮살생을 한다든지 살인을 하면 당장 잡혀가잖아. 어디서 살인을 했든지 간에 살인을 했으면, 어떤 형식으로 살인을 했든지 살인을 했으면 그것은 국법에 걸리게 돼있잖아. 도적질도 국법에 걸리게 돼있고. 요즘 간음죄는 치워버리자고 신문에 나오다가 마는 것 같습디다만, 어쨌든 그것도 간음하면 법에 걸리는 것이고. 거짓말해도 안 되는 것이고. 이 네 가지는 性界라고 하고, ▮술은 반성반차계라고 그래요. 반은 性界가 되고 반은 遮界가 됩니다. “하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차계입니다. 술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러나 그것을 먹음으로서 죄가 되기 때문에 반은 性이 되고 반은 遮가 되어 반성반차계라고 하거든요.
그 다음에 10계가 있는데 첫째가 ▮坐高大牀. 高廣大牀이라고 되어 있지. 높고 넓고 큰 평상에 앉지 말아라. 다음에 ▮香鬘塗彩... 香 : 향기 바른다. 鬘 : 머리를 장식한다. 塗彩 : 화장한다. ▮歌舞作樂. 넷째가 ▮受蓄金銀. 10번째에 가서는 ▮不非時食. 그랬거든. 非時食戒라고 해도 됩니다. 非時에 먹는다, 이런 말입니다. 이 다섯 가지는 遮界라고 그래. 그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을 함으로서 잘못 될 위험성이 있으니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이 차계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뭐냐? ▮坐高大牀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냐?
坐高大牀이라는 것이 넓고 “큰 방을 쓰지 말아라” 이런 뜻이 아니고, 지금 전 세계가 다 평상을 쓰고 있거든. 방에 신 신고 들어와서 신 벗고 평상에서 자고 그러잖아. 그것이 침대인데 우리 한국 사람하고 일본 사람만이 바닥에서 돌아다니다가 그냥 자는 겁니다. 그 자리에서 밥 먹고. 그것이 좀 안 좋기도 하지만, 풍습이 그러니까 그러는데... 평상을 쓰되 높고 넓고 큰 평상을 쓰지 말아라. 이 말... 왜 높고 넓은 큰 평상을 쓰지 말아라! 하느냐 할 것 같으면, 자기의 방을 꾸미되 너무 화려하고 야단스럽게 사치스럽게 그렇게 방을 꾸며놓지 말아라! 이 말입니다.
그 전에 어떤 큰스님의 방에 가니까 방에다가 보료를 깔아놨는데, 등기대는 넓은 것 있잖아. 전부 옛날에 궁중에서 쓰던 것이었습니다. 뒤에 등받이도 용 그려 넣은 등받이 턱 해놓고... 모든 것이 너무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중하고는 안 어울리라고. 다른 큰스님이 그 방에 갔다와가지고 “그게 중이냐?” “그게 중이냐?”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그 방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이상스럽게 무슨 새촉방도 아니고 무슨 음탕한 방도 아니고... 방을 그렇게 꾸며놓고 살지 말아라. 비단이불. 비단휘장. 커텐도 너무 호화찬란한 것. “이불”이라는 소리는 여읠 離자 부처 佛자라는 겁니다. 부처가 떠나가 버린다는 말입니다. 부들부들한 이불, 사타구니에다 끼고 사는 이불은 괜히 나태심만 생기고 방일심만 생긴다! 이겁니다. 부처님이 떠나가 버린다고 離佛이라.
飢寒에 發道心하고
飽暖에 生淫心이니라.
飢寒에 發道心하고, 배고프고 추울 때 道心이 發하고, 춥고 배고프면 도 닦을 마음이 일어난다! 이겁니다. 그 반대가 飽暖에 生淫心이라. 배부르고 등 따뜻하면 淫心밖에 안 난다 이겁니다. 해태심이 생긴다 이겁니다. 이것이 좀 고생스러워야 도 닦을 마음이 난다 이겁니다. 지금은 고생스럽지 않은 세상이 되어서 사람이 어떻게든지 다 편하게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도 닦을 마음이 모두 자꾸 해이해지는 겁니다. 飢寒에 發道心하고 飽暖에 生淫心이라. 이것이 아주 참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런 뜻으로 높고 넓고 평상을 만들 때 거기다가 채색을 하고 너무 호화찬란하게 하고 방 치장을 너무 야단스럽게 하고, 그것이 다 중한테는 맞지 않는 짓이라는 겁니다. 부처님은 6년 고행하실 때, 부드러운 풀을 깔고서는 풀 위에서 공부해서 성도하셨는데 오늘날 이와 같은 평상이 있고 좌복이 있는 이것만 하더라고 얼마나 행복하고 다행스런 일인데, 거기에다 부과해가지고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꾸미고 살까보냐? 했다 이 말입니다.
옛날 오달국사라는 스님은 본래 이름이 知玄, 지현스님이라고 하는 분인데, 이 사람이 14세에 열반경 강의를 했대. 열반경이 40권인데... 열반경 강의를 하는데 청중이 수천 명. 열반경 강의 듣는 사람이... 노장님들이, 큰스님들이 전부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고 열반경 강의를 들었다는 겁니다. 14세의 꼬마가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을 하니 천재 아닙니까? 종교적인 천재지. 학문적으로도 천재고.
그래서 그 때 이상은 이라고 하는 사람이 시를 짓기를,
▮十四沙彌가 能講經하니, 열네 살 먹은 사미가 능히 경을 강의를 하니
▮沙彌說法沙門聽이로다. 사미는 설법을하고 큰스님들은 꿇어 앉아서 듣는구나.
▮沙似年期에 智携甁하니, 스님같이 어린 나이에 지혜의 병을 찼다는 말입니다. 병을 찼다는 것은 병을 휴대했다는 것입니다. 병을 휴대했다는 것은 노장님들이나 차고 다니면서 자주 목마르니까 물마시고 그러지. 젊은 아이들이 병을 차나? 그러니까 어린 나이라도 바로 그냥 노장님과 같은 덕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不大年高諸性靈(?)이로다. 나이 높은데 있는 것이 아니고, 성품이 신령한데 있는 것이로다. 이런 시 까지 다 지음 받은 스님이거든요.
어느 젊은 시절에 이 스님에게 어떤 노장님이 한 분 왔는데 풍병이 들었어. 풍병이 들어서 피 고름이 질질질 흐르고 손가락이 문들문들문들하고 냄새가 어떻게나 지독한지 아무도 곁에 안 가려고 해. 그런데 이 지현스님이 간병을 잘 해드렸어. 그 스님이 얼마동안 병이 좀 좋아져서 가면서 “내가 자네를 보니 자네가 좀 크면 크게 되겠는데, 그래도 이 세상에는 어려운 일이 있을 것일세. 어려운 일이 있거든 저 서촉도 팽주땅에 달홍산이라고 하는 산이 있으니 서촉도 팽주 달홍산에 찾아오면 雙松이 있을 것일세. 소나무가 두 나무가 있을세. 그 쌍송하를 찾아오게” 라고 하거든.
“서촉도 팽주땅 달홍산에 쌍송하를 찾아서 찾아오게” 하시고 그 스님이 가시고 나서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 이 스님이 큰스님이 되었거든... 나이를 먹고 하니까 14세부터 열반경 강의한 스님이니까 인물도 잘 났을 것 아닙니까? 머리 좋고 나이도 3~50세 큰스님이 되니까 당나라 때 두 임금의 국사가 되었다고 그러지. 두 임금의 국사가 되어서 오달국사라.
본래 이름은 知玄스님인데요. 悟達國師. 깨달아 통달했다 이 말입니다.
오달국사에게 그 임금이 沈香寶座. 전단향도 향기가 좋은데 침향 향나무로 보배의 평상을 만들어 줬는데, 평상 높이가 10장. 열자입니다. 높은 평상을 좋게 만들어서 거기서 주무시고 거기서 설법하시라고 해 줬거든. 沈香寶牀. 보배지. 말도 못한 보배침상을 해주니까 거기에 떡 올라앉아서 내려다보니, 참 아닌 게 아니라 천하가 다 그냥... 거만한 마음이 살짝 일어났다! 이 말입니다.
하루는 삼매에 들어서 좌선을 하는데 어떤 보살하나가 나타나거든... 관세음보살같은 보살이 나타나서 광명을 쫙 놓더니 또 홀연히 없어져버려. 없어지더니만, 갑자기 무릎팍이 아프기 시작하거든. ‘왜 이렇게 아픈가?’ 하고 보니까 무릎팍이 부글부글 부어오르잖아. “人面瘡” 이라고 사람 헌디(瘡)가 툭 불거졌는데 이것이 눈 귀 코 입 다 있어. “인면창” 이라. 사람 얼굴 같이 생긴 헌디라 이 말입니다. 꺼떡나와 가지고 입을 오물오물 하거든. 이것이 건드리거나 움직이면 어떻게 아픈지 말도 못해. 할 수 없이 밥 먹을 때는 주둥이에다 넣으면 쩍쩍쩍쩍 먹는대...
천하 명의들이 다 와 가지고 들여다보고서 “이런 헌디는 생전 처음 봤다” 는 겁니다. 이런 종기는 처음 봤다는 겁니다. 아무도 고칠 재주가 없는 겁니다. 아프기는 말도 못하게 아프지. 무릎팍이 아프니까 가래톳이 솟고 전신에 오한이 들고 그렇다, 이 말입니다.
그래 홀연히 생각하니까 서촉도 팽주 달홍산 생각이 나거든. 서촉도 팽주 달홍산을 어떻게, 어떻게 찾아갔어. 그 멀고 먼 길을 걸어서, 걸어서 찾아갔어. 참 아닌 게 아니라 쌍송하에 가니까 조그만 초가집이 있거든. 초가집에 가니까 아이고
그때 그 노장님이 다 나아서 허리가 꼬부라져 가지고
“자네 올 줄 알았네” 하면서 아주 반가워하거든요.
“이래서 왔습니다” “내가 자네 올 줄 알았네. 뭐 그것 별일 아닐 세. 내려가게. 저 밑에 언덕 밑에 가면 옹달샘이 있는데 그 옹달샘물을 퍼서 씻게. 그러면 낫네” 그러시거든. 그래서 내려가 옹달샘 물을 퍼서 씻으려고 하니까
그 인면창이 갑자기 “止止” 가만히 있거라. 소리를 지르거든. “좀 있거라.”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뭐라고 하느냐면, “公은 識達論智하야, 그대는 아는 것이 많고 지혜가 멀리까지 봤으니 일찍이 한나라 때 爰盎鼂錯傳이란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느냐?” 이러거든요. “봤지. 옛날 전한 시대에 원앙조조전이란 책 봤지” 그 원앙조조전이란 것이 뭐냐 하면 원앙이라는 사람하고 조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둘이가 말도 못한 친구입니다. 절친한 친구인데 그 두 사람이 똑 같이 출세를 했거든. 좌의정ㆍ우의정이 되었지. 그런데 원앙이가 하루는 ‘저 자식만 없으면 내가 쏵 올라가겠는데 저 자식 때문에 자꾸 걸려서 그냥 못 올라간다! 이 말이다.’ 그래가지고 임금님한테 넌지시 “조조가 이상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이랬어. 역적도모 한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물어 볼 것도 없이 그러냐고 천자가 조조를 묶어다가 동문 밖에서 허리를 잘라서 죽였어. “汝是 爰盎이요 我是 鼂錯라. 너는 그때 원앙이고, 나는 조조다. 어찌 원한이 하늘에 사무치지 않았겠느냐?”
저는 이번에 캄보디아에 가서 사람 많이 죽인 것을 보니 그런 생각이 나더군요. 100만 명을 죽였다니 말할 수 있나? 앙코르와뜨 만들 때 노예들 100만 명을 40년을 부려먹으면서 거의 다 죽었다니까, 지쳐서 죽고 돌에 깔려서 죽고 돌에 찍혀 죽고 매 맞아서 죽고, 크메르운수군이 돼가지고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인 것 같아.
우리나라도 지금 이조 500년간 이북 사람은 벼슬을 안 줬거든.
그러니 홍경래 난 같은 것이 일어났었잖아.
홍경래를 잡아다가 종로 네 거리에서 소 네 마리에 4지를 묶어서 찢어서
죽였잖아. 얼마나 이가 갈렸겠습니까?
김일성이가 혹시
홍경래가 아닌가 싶어.
그것이 다 인과응보인데 원앙이는 그 친구가 죽고 난 뒤에 후회를 했어. 아주 후회를 해서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일 놈이다. 100번 죽일 놈이다. 내 잠시의 출세를 위해가지고 어찌 죽마고우 친구를 모함해서 죽일 수 있느냐?’ 그래서 자기도 벼슬 다 내버려 버리고, 세상을 다 내버려 버리고 중이 되었습니다. 중이 되어서 도를 닦아가지고 10생을 고승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10생 동안을 고승이 돼놓으니까,
조조가 윈혼이 돼가지고 원수를 갚으려고 해도
항상 무상심을 발하고 정진하고 있으니까 10생 동안을 따라 다녀도 침범할 기회가 없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네가 어느 날 人主, 임금의 총애를 받아가지고 높은 평상을, 침향보좌를 받고 방일한 마음이 잠깐 일어나니 그 틈을 타서 내가 침입했다” 는 겁니다. 그냥 물을 내리 퍼 부었더니 어떻게나 시리고 아픈지 뼛속까지 사무치는 것 같았지. 씻으니까 싸~악 없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가 갔다와가지고는 [오달국사수참법문] 이라고 하는 글을 지었어요. 아주 유명한 책입니다. 장경 가운데 있습니다. 미타참회가 있고 자비참회가 있고 자비수참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沈香寶座. 평상하나를 받고 거만한 마음에...
그러니까 어른들 오는데 마루에 걸터앉아서 안 일어나면 어른들 뭐라고 하잖아요?
“이 눔의 자슥, 버릇없이 턱하니 걸터앉아서 어른 오는데 일어나지도 않는다” 고 야단치잖아. 바로 그겁니다. 거만한 마음이 버르장이 없는 짓이다! 이겁니다. 캄보디아 같은데도 그렇고, 태국 같은데도 그렇고, 태국에도 주지스님 방... 이런 데는 호화스럽게 차려놨거든. 비까번쩍하게 꾸며놨거든. 중 방을 너무 비까번쩍하게 꾸며놓으면 중답지 않지...
그런데 떨어진 돗자리 하나 깔아놓고, 모기장 하나 걸어놓고, 침침한 방에 시커멓게 때 묻은 차반 하나 갖다놓고, 앉아서 졸고 있다가 손님 오면 때 묻은 차반에다가 차 한 잔 자시라고 권하고, 또 앉아서... 그냥 참 중입니다. 그대로 그냥 옛날 고풍나는 중입니다. 거기도 가면 모양이 그렇다고.
그러니까 중은 중답게 수수하게 살아야지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멀리하라는 뜻에서 坐高大牀. 坐高大牀을 하지 말아라.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말아라. 고 하는 戒가 마련된 것이다 이 말입니다. 4강 完
일타스님 자경문 제 5 강
坐高大牀이라. 坐. 앉는다는 뜻이고, 高 大牀. 高라고 할 때는 높다는 말이지만 ‘넓다’는 뜻도 그 다음에 붙거든. 넓다는 뜻은 거기에 줄여진 것입니다. 높고 넓은 큰 평상에 앉지 말아라. 이렇게 되어있거든... 높고 넓은 큰 평상이라고 할 때는 자기의 생활공간을 너무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미지 말아라. 그러니까 이불은 여읠 離자 부처 佛자니까 이불도 비단 요이부자리! 궁전같이 번들번들 하게 그렇게 하지 말고, 휘장 커텐 같은 것도 비단으로 너무 요동심심하게 그렇게... 그러니까 방 안에 장식물 꾸며 놓은 것 보면 그 사람 성격을 알 수 있거든. 방에 탁 들어가 보면 ‘아, 이사람 성격이 어떻구나!’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방에 퀴퀴하게 발가락 냄새가 나고 방 안에 구질구질 하게 어질러놓으면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람이구나!’
방이 깔끔하고 깨끗하면 ‘아, 이 사람은 성질이 깔끔하고 깨끗하고 그렇구나!’ 알 수 있거든.
정돈이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 이것이 다 자리하나 반듯하게 놓고 앉는데도 다 자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 전에 저 어릴 때 경책을 삐딱하게 놓으니까 우리스님한테 경책을 반듯하게 안 놓고 삐딱하게 놨다고 혼난 적이 있습니다. 한 번은 “아무개야~” 하고 불러요. 쫓아가니까 “저 장 단지 좀 봐라” 마당 장광에, 장 단지가 있거든. 장 단지 뭘 보라 하는지 알 수가 있나요?
“장 단지가 어째서요?” “장 단지 좀 보란 말이다” 뭘 보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어. 큰 된장단지 인데... 14~5살 때니까 장 단지 키가 제 키만 하거든. 그러니까 발뒤꿈치를 들고, 뚜껑은 옛날 큰 넓고 큰 옹기 뚜껑이거든. 그것을 열어젖히고 된장을... 꽤도 없어, 작은 단지에다 퍼 놓고 먹으면 될 텐데... 된장 뜨고, 된장, 그것도 뜨고서는 바쁘다고 그냥 갔다가는 나중에 혼나거든.
탁 뜨고서는 옆을 콕콕콕콕 눌러놔야 됩니다. 김치도 그렇고. 노장 가끔 조사를 하거든. 그래가지고는 혼나는데... 그것을 안 해놓으면 그런 줄 아는데... 된장 단지를 쳐다보라니 된장 단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있나?
“된장 단지 뭐요?” 하고 소리를 꽥 질렀더니 ‘요 자슥 봐라’ 싶었는지 노장이 맨발로 후닥닥 뛰어나와 가지고 한 대 딱~ 올려붙이더니 된장 단지가 삐딱하다! 이겁니다. 뚜껑이 삐딱한 것이 눈에 안 뵈느냐? 이겁니다. 된장 단지 삐딱한 것을 어떻게 해서 잘못 건드리면 떨어져서 깰 것 아니냐? 이겁니다. 그것을 사람이 어떻게 반듯하게 닫지 않고서 삐딱하게 닫아놓고 그냥 사느냐? 이겁니다. 그 노장한테 한 대 얻어맞은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거든... 뭐든지 반듯하게 놔야 된다고. 놓는 것도 그렇지만 하여간 사용하는 물건 자체를 호화스럽고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중의 분수에 맞지 않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옷도, 스님들은 흰 옷을 입지 않고 먹물 옷을 입잖아.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피하기 위해서 먹물 옷을 입는 겁니다. 왜 그러냐? 옛날 2000년 3000년 전에는 그 때는 원색 시대거든. 누구든지 빨간 것을 입든지ㆍ파란 것ㆍ노란 것ㆍ임금은 노란 황금색을 입고. 대신들은 파란 것을 입고. 계급 따라서 자색을 입기도 하고 붉은 옷을 입기도 하고, 하얀 것을 입는다든지 모두 원색...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때는 다 그랬어.
그런데 부처님은 그런 원색적인 것을 입지 말고, 물을 들여 가지고 수수름하게 해서 입어라. 그러니까 옷 물을 하나들이더라도 종합적이고 보변적이고 非靑非白亦非黑인데 非靑非白亦非黑이지만, 역시 靑黃赤白黑이 겸해져 있는 것. 그것이 말하자면 스님들 옷이다 이 말입니다. 회색이라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원색적이고 화려한 그런 것을 피하고 말하자면 수수름하니 與道로 相應이라. 도로 더불어 相應하다! 이 말입니다. 이러한 옷 색깔을 만들어 입어라.
지금 세상 사람들은 신비감 예술감각이 있어서 수수름한 색깔의 옷을 입기를 좋아하고, 양면 다 그러는데... 세상 사람들이 절에 오면 5색 단청을 너무 화려하게 해 놨잖아? 그것을 보고 무당집ㆍ무당사당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사실은 별로 기분 안 좋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그런데 부처님의 궁전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집이기 때문에 모든 풍습이 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단청을 하고, 단청을 하면 또 나무가 오래 간다고 하니까 몇 천 만원씩 들여서 단청을 하고 그러기는 그러지만, 화려하게 단청하는 저 풍습도 우리 한국이 저렇지 외국은 그렇지 않거든...
그래서 나는 밖의 것은 할 수 없이 세상 따라서 단청하지만, 안에까지 돈 많이 들여서 단청할 것 뭐 있나싶어서 안에는 아니하고, 바닥에 칠하는 것도 요즘 니스칠. 비까번쩍하니 번쩍번쩍하는 그런 것 보다는 無光을 칠해서 수수름하니 표 안 나게 때도 안 묻고... 무광이 좋으냐 번쩍번쩍하는 것이 좋으냐 하면 저는 무광이 좋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회색의 뜻도 그런 겁니다. 그런 것의 전체가, 그런 사상이 坐高大牀에 다 들어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안 어울린다! 이겁니다. 중 색깔하고 안 어울린다 이겁니다. 與道로 相應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與道로 相應하게 하라!는 것이 “坐高大牀하지 말라”는 뜻이 되고, 또 그로 말미암아서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자리에 앉아 있으면 사람 마음이 둥둥 뜨게 되어 교만한 마음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4강의 오달국사 얘기 처럼!!!
그 다음에 香鬘塗彩(향만도채)는 화장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옛날 서역의 귀인들은 향수를 몸에 문댄대. 사람을 시켜서 문대게 해서 몸이 부드럽고 향기가 나게 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화장을 많이 한다. 갖가지 화장이지. 그런데 화장한다는 것은 스님들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다 이겁니다. 香鬘塗彩. 彩는 채색. 연지곤지 찍고 입술 붉게 바르고 눈썹... 그리는 것이 塗彩아닙니까? 香鬘이라는 것은 몸에 향수를 뿌린다든지 장식을 하는 것. 鬘: 꽃다발 만자라고도 하고 달비 만자라고도 하는데, 달비라고 하는 것이 가체(어여머리)를 말하는 겁니다. 역시 꽃을 장엄하는 것도 鬘에 속하는 겁니다. 어쨌든지 간에 얼굴을 아주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인데... 慢藏誨盜(?)요 冶容誨淫(?)이라. 얼굴을 다듬는 것은 음욕심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겁니다. 쉽게 말해서 얼굴을 아주 예쁘게 꾸미는 것은 ‘나를 이쁘게 주세요.’ ‘나를 끌어안아 주세요.’ 하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慢藏誨盜. 아무렇게나 놔두는 것은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이겁니다. 100원짜리 수표를 길 바닥에 아무데나 놔둬 보세요. ‘훔쳐가라’ 이말 아닙니까?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신의 물건을 자신이 제 자리에 잘 단속하지 않고 함부로 놔두는 것은 남에게 도적질을 가르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얼굴을 너무 예쁘게 꾸미는 것은 남자들에게 음욕심을 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화장을 너무 곱게 하지 말아라!” 이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坐高大牀이라고 할 적에는 자기의 방을 너무 호화스럽게 꾸미지 말고, 또 입는 옷도 너무 사치스럽게 꾸미지 말고... 어떤 여자들은 여우 목도리 같은 것... 얼굴에다 분을 보얗게 바르고 절에 와서도 법문 들을 때 자기를 좀 돋보이게 하려고 용을 쓰거든... 그런 것이 다 출가한 사람으로서는 “당치 않은 것이다” 이게 어디까지나 “검소한 생활이 청빈한 생활이 출가인의 기본이다” 이런 말입니다.
歌舞作樂...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쓰지 말아라. 이랬거든. 그러니까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쓰고 띵땅거리고 오락. 즐겁게 하려니까 자연히 그렇게 꾸며야 되잖아.
그런 것들의 전부가 이쪽 前五戒... 殺盜淫妄酒 그것을 범할 가능성이 많은. 말하자면 전제 작업이라고 할 수가 있어. 그러니까 막을 遮자, 遮界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말.
세상 사람들은 흔히 어떤 취미생활이 하나 있어야 된다. 취미생활로 기타 하나쯤은 칠 줄 알아야지. 취미생활로 바이올린 하나쯤은 실을 그을 줄 알아야지. 피리 하나는 불 줄 알아야지. 어쩌고... 대금을 하나 불 줄 알아야지. 옛날부터 전부 다 그런 짓들을 좋아하고 그러는데... 부처님의 율법에 있어서는 중이
生死大事를 위해서 출가하여 無上大道를 닦으려는 사람이
취미생활이 어디 따로 있느냐? 이겁니다.
공부하는 그 자체가 취미생활이 되는 것이라야 되는 것이지...
요전에도 기자가 와서 “스님 취미가 뭐냐?” 고 그러더군.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쓸데없는 취미냐? 고 제가 그랬지. 난초? 난초를 누가 갖다 줘서 할 수 없이 그냥 물주고 있는 것이지 취미생활은 아니라고. 글씨? 글씨 쓰는 것도 자꾸 써달라니까 귀찮지만 어쩔 수 없이 하나씩 써 주는 것이지 제가 무슨 취미로 쓰는 것은 아니라고.
취미생활이라는 것이 따로 있을 수 있느냐? 공부하기 바쁘고 참선하기 바쁘고 그렇지, 취미라고 한다면 참선하는 것이 취미라고 하면 될런지는 모르지만, 그 밖에 즐겁기 위해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랬는데...
사람이 본래 낙천적으로 되는 사람들은 그런 버릇을 그렇게 들여 놓으면, 그것을 아니 하고는 못 견디거든요. 항상 해야 되거든... 유담스님이라고 하는 스님이 피리 불기를 좋아해. 항상 피리 불기를 좋아해서 피리를 언제든지 들고 다녀. 가나오나 피리를 들고 다니거든.
범어사에서 원주를 사는데 그 양반은 손님이 오거나 말거나 누각위에 올라가서 두 다리 떡 동겨 가지고 삐~~ 피리를 분다고 고개를 꺼떡꺼떡꺼떡하고 정신이 없어. 손님이 오든지 말든지 원주가, 원주라고 하는 것은 손님이 오면 방으로 안내하고 그래야 할텐데... 조실스님은 손님 숭늉그릇 가지고 쫓아가고, 이런 제기, 원주라는 사람은 저 위에 앉아서 피리불고 앉았고 그 모양이었어.
이 양반이 평생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는... 피리를 잘 불고하니까 기생들이 좋아하거든. 기생들 기방에 가가지고 피리 한 바탕씩 불어주고 한잔 얻어먹고 그러고 다니다가 죽었어. 죽었는데 그의 친구가 경월스님이라고 있는데 그 스님은 또 천재적으로 대금 선수입니다. 대금을 잘 불어. 대금 불고 피리 부는 것을 그 스님한테 배우고 그랬거든. 아주 친한 친구입니다. ▮유담스님이 죽고 난 후에 ▮경월스님이 동래 금정사에 주지를 살고 있는데, 하룻밤 꿈을 꾸니까 ▮유담스님이 턱 들어오거든. 들어오는데 반 중 반 속인이 되어서 맨 날 피리나 불고 돌아다니다 보니까
중은 참선하는 것이 취미가 되어야 되는데,
피리 불고 노는 것이 취미니까 중 맛이 안 납니다.
사방 담배 피우는 집으로 돌아다니며 놀다가 보니 몸에서 냄새가 나거든. 목욕도 자주 아니 했는지 어쨌는지... 세로 두루막을 입었는데 두루막위에 하얀 동정을 다는데 누구 빨아주지도 않으니까 동정이 새카만 것을 입고 다니고 그래.
“아이고 내 갈 데가 있나? 밥 좀 얻어먹으려고 들어왔다”
“니 또 담배 피우는데 가서 온 종일 앉아 있었구나. 아이고 냄새 난다. 저 객실로 나가라” 안 나가고 꾸적꾸적 아랫목으로 자꾸 들어오거든... 나가라 해도 안 나가고 자꾸 들어오니까 멱살을 번쩍들으니까 졸장 같이 가볍거든. 들고 나가서 금정사 누각 옆에 구렁창에다가 탁 집어던지니까 그 구렁창 속에 “꽥” 하고 쳐 박히거든. 그리고는 잠을 깼어. 깨보니 꿈인데 ‘야~, 내가 그래도 친구인데, 수십 년 친구인데 친구를 멱살을 집어들고 가서 쳐 꼬라박다니 내가 그렇게 부랑스럽나? 내가 그렇게 부랑한 놈은 아닌데 그것 참~’ 영 기분이 안 좋거든. 잠은 안 오고 가만히 앉았으니까 4시 싸이렌이 불거든...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와서, 새벽에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서 施食을 해 줬어. ‘먹고 싶은 것 먹고 해탈하고 가라’ 고 ‘기로에 머물지 말고 가라’ 고 시식을 해줬습니다.
범어사 동산노스님이 그 얘기를 듣고 “그래 그런 것을 직접 지눈으로 보고서도 그 눔의 대금... 그것을 뚜두려 깨서 내다 버리지 않고 그것을 짊어지고 다녀? 이 눔의 자슥 나쁜 놈이네” 그러고 노장님이 야단을 치셨거든. 실지가 그렇게 되는 거!
그런 것이나 가지고 놀면 죽고나서 갈데가 없어.
類類相從으로 그런 것을 따라 다닐 수밖에!
그러더니 경월스님은 그 뒤에 발심을 해서... 대금은 내 버렸는지 어쨌는지 모르되... 절 내 놓고 토굴로, 토굴로 다니면서 정진하고 그러셔.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그렇게 발심해서 수행하러 다니신다고 하더군.
▮찬불가 하고는 다르지요? (질문)
자기를 위해서 즐겨서 하는 것이 아니고 法事ㆍ佛事를 위해서, 법의 일이나 부처님의 일을 위해서 부처님을 찬탄하고 법을 찬양하기 위해서 하는 노래는 그것은 자기스스로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非自娛也라. 자기의 오락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찬불가 하고는 같지 않다고 그랬어. 법화경에 비파여발직구 라고, 비파는 요즘 기타 같은 것이지. 여발은 바라춤을 추고 징을 치고 하는 그런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출가한 스님이 하는 짓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출가한 스님이 하는 짓은 아니고 그것은 다 거사들을 시켜가지고, 거사들 가운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도 스리랑카 켄디 불치사라고 하는데 가면, 아침저녁 예불 할 때 마다 그 악대들이 옵니다. 와 가지고 위층 아래층이 있는데 위층에서는 스님들이 예불하고, 예불하고 나서는 사리탑을 열어놓고, 황금탑입니다. 순황금이 삐까 번쩍번쩍번쩍 하지. 그 탑문을 열어놓고 참배하고 이쪽 문으로 나오고 그러는데 아래층에서는 쫭지리장짱짱 쫭지리장짱짱 뚜두리고 난리가 났어. 그것이 다 거사들이 그렇게 해. 신심 있는 거사들이 부처님을 찬탄하는 뜻으로 하는 것이지. 가사 장삼 입은 사람들이 가사 장삼 입고 펄럭거리면서 춤을 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이 다 안 맞는 것입니다. 중이 연극을 하는 것도 안 맞는 것이고.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전에 중들이 연극을 한 적도 있거든. 그런데 중이 연극을 하는 법 아닙니다. 방편이든 아니든 중은 하는 것이 아니라고. 거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부대중 가운데 각각 해야할 일이 따로 있잖아.
沙門은 어디까지나 三千威儀와 八萬細行을 가지고, 떡하니 점잖은 거동을 가지고 그야말로 승가리야. 승가리야 라는 것이, 스님들이 입는 대가사를 승가리라고 하잖아. ▮승가라고 하는 것은 대중이라는 뜻이고, ▮리야 라고 하는 것은 항복시킨다는 뜻입니다. 說法伏從 설법을 해서 대중을 항복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큰옷을 입고, 위의를 갖추고 떡 점잖게 설법함으로 해서 그야말로 모든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것... 이런 것이지 들이 꽹과리를 뚜두리고 고개를 흔들어 제키고 다리를 꺼떡꺼떡 들고 있을 수 없는 짓이다! 이겁니다.
또 이런 얘기가 있지. 옛날에 등타연나왕 이라고 하는 임금이 있었는데, 등타연나왕 이라고 하는 그 임금이 호화스럽고 사치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왕이어서 궁녀들을 500명 데리고 경치 좋은 산속으로 갔다는 겁니다. 벌판인데 꽃이 사방에 피어있고 경치 좋은 숲속으로 갔어. 사방 벌판에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아주 경치 좋은 그런 곳에 술 고기를 가지고 가서먹고, 궁녀들에게 춤을 추게 하는데, 남자는 하나도 없게 만들고 전부 여자들만 전부 옷을 발가벗게 해서 춤을 추게 했다는 거라. 풍장고를 울리며 춤을 추고 난장판이 벌어졌지. 그 때에 5신통을 얻은 신선들이 허공으로 쭉 날아가고 있었다!는 거라. 여러 신선들이 날아가고 있었는데 어디서 풍장고 소리가 나고 향냄새도 진동을 하고 하니까
이것이 무슨 일인가? 해서 내려다보니까
여자들이 전부 발가벗고 춤을 추고 있거든
.
여자들의 관능미에 혹해가지고 마음이 산란해져 버렸어. 그것을 구경하다가 마음이 산란해져 버리니까 허공에서 날개 부러진 새처럼 왈카닥 다 떨어져 버렸다는 겁니다. 뚝 떨어졌어. 지금 한창 신나게 노는 판인데 웬 남자들이, 500신선들이 확 떨어지거든. 등타연나왕이 깜짝 놀라 가지고
“웬 놈들, 뭐하는 놈들이냐?” “우리는 신선들이요”
“신선들이면 이미 四果를 다 證得했느냐?” “증득한 사람도 있고, 못한 사람도 있고 그렇소.”
“그러면 5신통을 다 얻었느냐?” “5신통을 얻었는데 지금은 잃어버렸소.”
“네 이놈들, 不離慾之人이, 욕심을 떠나지 못한 사람이, 음욕심을 떠나지 못한 놈이 어찌 나의 궁중처녀를 너희 마음대로 도적질해서 본단 말이냐?” 엿보는 것도 도적질이거든... “이 도적놈들, 너희들은 다 다리를 끊어야 된다” 고 하면서 장검을 뽑아가지고 500신선 다리를 다 잘라 버렸다는 겁니다... 그런 얘기가 있어요. 옛날에 왕이라고 하면, 칼 하나 빼면 500명을 다 당할 수 있는 대장군이니까. 힘이 막 천하장군이고 그만한 정력이 있고, 그만한 고수꾼 이거든. 이래 가지고는 그만 500신선이 다리가 다 잘렸다는 겁니다. 觀聽之害가, 보고 듣는 해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自作乎)아? 자기 스스로 자작을 할까보냐? 자기 스스로 그런 짓을 할까보냐?
그러니까 중은 歌舞作樂도 아니하는 것이고, 또 그 뿐만이 아닙니다. 바둑을 둔다든가 장기를 둔다든가 이런 것이 다 歌舞作樂에 속하는 거라. 그것이 즐겁기 하기 위해서 하는 짓이거든. 딴 것 아닙니다. 사행심을 가지고 하는 것이거든. “시간이 있는데 한판 할까?” 그러면 아무데서나 한판 벌이거든. 그것도 사회악입니다. 안 좋은 것이거든. 더군다나 중들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바둑에 취해놓으면 밤을 꼬박 새운다대.
옛날에 양 무제가 바둑을 두는데 바둑을 두면서 使者를 시켜가지고 계도법사라고 하는 스님이 있었어요. “계도법사라는 스님을 모셔 오너라” 이랬거든요. “그 스님 청해다가 법문 듣게 모셔 오너라” 이랬거든요. 모시러 갔는데 지금 한창 바둑이 이기느냐 지느냐 요즘 말로 크라이막스에 올랐다 이겁니다. 지금 한창 신나게 두는 판인데 바깥에 사신이 와가지고
“폐하 계도법사 대령하였나이다” 했어. 그렇지만 그 소리는 조그마해서 못 들었어. 그 소리 하는 찰라에 “죽여라” 하고 딱 한 놈 잡았거든. 바깥에서는 계도법사 모셔왔다니까 “죽여라” 하고 소리를 방에서 지르거든. ‘아이고 어떻게 일 났는구나’ 할 수 없이 “왜 그러십니까?” 했다가는 “이 눔의 자슥, 죽이라면 죽이지 네가 무슨 잔소리냐? 묻기는, 이놈까지 갖다가 죽여라” 하면 자기도 죽는다 이겁니다. 그래서 더 물어보지도 못하고
“계도법사님 큰 일 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니,
계도법사가 껄껄 웃으며 하는 말이, 某甲이, 내가 前劫에 沙彌러니, 과거전생, 과거전생에 사미가 되었었는데, 괭이로 땅을 파다가 한 꼬부라진 두꺼비 한 마리를 찍어서 죽인 일이 있다. 무량겁 전에 그 때 그 두꺼비가 지금 梁무제 라는 겁니다. 오살은 誤殺之果가 있으니, 내가 모르고 죽였는데 지금 왕도 나를 모르고 죽이는 거라면서 단 두 대에 올라갔거든. 단 두 대에 올라가서
▮四大는 本來空이요, 사대색신은 본래 내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이고,
▮五蘊은 本非也라. 색수상행식.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성과ㆍ생각하고, 사유하고ㆍ행동하고ㆍ분별하는 이 모든 감정이 본래 내가 아니다! 이겁니다. 환경 따라서 이것도 생겨나고 저것도 생겨나고 하는 것이지 본래 내가 아니다 이겁니다.
▮以首臨白刃하니, 내 머리를 흰 칼날 앞에 대고나니,
▮猶如斬春風이로다. 마치 춘풍을 베는 것과 같도다. 봄바람을 끊는 것과 같다.
그러고서는 돌아가셨어. 양 무제가 바둑을 다 두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가? 스님 안 오시나?” 이렇게 하거든요. “천자가 죽이라고 해서 이미 목 베었습니다” “어? 그거 무슨 소리냐? 돌아가실 때 뭐라고 했느냐?” “이만저만해서 죽이는데 턱 하니 四大가 本來空 五蘊이 本非也라. 以首臨白刃하니, 猶如斬春風이로다. 이렇게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양 무제가 그 소리를 듣고 대성통곡을 하고, 내가 이 손가락을 가지고 바둑을 다시 뒀다가는 이 손가락이 성하지 못할 줄 알라고 자기 손가락을 보고 욕을 하고, 다시는 바둑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출가해서 생사대사를 위해서 도 닦는 사람이 어디 바둑 같은 것을 가지고 세월을 보낼까 보냐! 이 말입니다. 있을 수 없는 짓이다 이거라.
그거 다 못 쓰는 겁니다. ▮피리 같은 것도 불지 말고ㆍ▮바둑ㆍ▮장기ㆍ▮투전같은 것도 종류가 많지? 수 십 가지되는데 탁구 같은 것은 운동이니까 이것도 좀 안 맞기는 안 맞지만 탁구 좀 치는 것은 꼭 놀음은 아니니까. 놀음을 위해서 하면 이것도 게임을 해가지고서는 한 판에 돈을 걸고 이기려고 하면 이것도 놀음이라. 경마장에서 얼마 이말 걸고 저 말 돈을 거는 것은 놀음이잖아? 경마장 그것은 놀음입니다. 놀음은 못 쓰는 겁니다.
놀음이 아니고 운동으로 하는 것은 종류가 다르고... 피리를 불고 그러더라도 불사ㆍ법사를 위해서 하는 것은 종류가 다르다지만, 그러나 그 나마라도 출가한 스님들이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在家人들을 시켜서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쨌는지 10계 가운데에는 歌舞作樂은 하지 말라고 했고, 재가 5계에는 歌舞作樂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재가인들은 할 수 있는 것이고. 다음은
▮受蓄金銀인데, 이것은 금과 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든지 남이 욕심낼만한 물건을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내 자신도 그것을 잃어버리면 아이고 동동 할 만 한 것. 이런 것 갖지 말라는 겁니다. 그 전에 어떤 중이 100만 원짜리 시계를 차니까 상좌란 놈이 자꾸 와서 만지거든. ‘자슥이 왜 자꾸 만지노?’ 잠깐 여가만 있으면 또 곁에 와서 “스님, 그 시계 좋으네요” 하면서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밤에 잘 적에도 와서 슬슬 만져보고, “스님, 시계 좋으네” 자꾸 그러거든.
할 수 없이 그것을 벗어줬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전에는 스님들이 시계 차는 것을 수갑 찼다고 그러잖아. 시간을 보기위해서 차는 것이 아니고 옛날에 사치품으로, 폼 재기위해서 시계도 차고 반지도 차고 “아이고 골치야” 하면서 자기 이마에 손을 얹힙니다. 이 반지보라고... 그것이 출가한 사람으로서는 마땅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계뿐 아니고 반지든지 출가한 사람은 마땅하지 않은 것이지요. 중이 반지 찼다면 아주 참 안 맞는 것이거든.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 보통 시계는 괜찮지만 고급시계. 좋은 시계는 다 안 맞는 일입니다. 그것뿐 아니라 모든 물건에 있어서 잃어버려서 아이고 동동 할 만 한 물건은 갖지 말아야 됩니다. 그거 다 탐심을 일으키는 것이니까.
그래서 부처님말씀에는 저 뒤에 나오지.... 財色之禍는 甚於毒蛇라. 재색의 화는 독사보다 심하다. 이랬는데. 불법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재색을 멀리 했느냐? 재색을 가까이 했느냐? 딱 거기에 달렸어. 종단 자체가 재색을 ▮멀리 했을 때는 불법이 흥하고, 재색을 ▮가까이 하면 불법은 망하고 그러는 것이지. 중노릇도, 중노릇 자신도 그래.
발심에 보면 出家富는 是君子所笑라는 말이 있듯이 출가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군자들이 웃을 바다. 그랬는데. 중이 부자라고 한다면 그 중노릇은 알쪼인 것입니다. 돈 하고 道하고는 반대이기 때문에 그런 것. 도 닦는 사람은 ▮돈 이라는 것이 ▮도 뒤에 따라와야지 ▮도가 ▮돈을 질질 따라가면 그것은 아주 천덕꾸러기거든.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도만 잘 닦고 있으면, ▮돈은 거기에 분수대로 저절로 따라붙게 마련입니다. 슬금슬금 따라붙어 가지고 하고 싶은 것의 100%는 안 된다 하더라도 50%는 저절로 따라붙는 겁니다. 배 안 곯으면 되는 것이지. 10리에 한 사람씩 배고파서 죽은, 부황 들어서 죽은 사람이 있어야 눈 먼 중하나 굶어죽는다?는 말이 있잖아.
그러니까 고봉정상에서도 중은 굶어죽는 법 없어. 그것은 도를 닦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중이 돈을 모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금이나 은이나 사치품을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나는 실제,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내 보따리를 세 번쯤 털렸어. 완전히 제 몸뚱이만 되어버린 것이 세 번 있었습니다. 제가 18세 때니까
그 전에 가지고 있었던 물건들 자질구레한 것들을 18세까지 가지고 있었을 것 아닙니까? 바랑 안에다가 만년필이니 뭐니 뭐니... 지금으로 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내가 귀하게 여기던 물건. 지금으로서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때로서는 굉장히 귀하게 여겼는데 누가 바랑을 짊어지고 가버렸어. 완전히 두 손 탁 털었어. 딱 입은 것 하나 뿐이었어. 입은 것 하나 뿐인데 누비바지 저고리 입었거든. 한 달을 넘게 입으니까 봄이 되니 덥기도 덥고 빨아야 되겠는데 장삼까지 다 없어졌으니까 빨 재주가 있나?
우리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때는 상복 장삼이라고 해서... 상주들은 전부 다 광목으로 장삼을 하나씩, 그냥 둘둘 박아가지고... 그런 것이 마침 있었는데, 그것을 얻어다가 물을 들여 가지고 그것만 하나 딱 입고 속옷까지 빨았지. 속옷도 안 입고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 장삼 하나만 입고 앉아서... 하루 종일 앉아서 글만 읽으니까 쟤가 어쩐 일이냐고 “어이 공 차러가자” “나 공 안 차” 옷이 없어서 일어서지를 못하는 판인데
다른 사람은 그러는 줄 몰라. “저 눔아가 말뚝 신심 났네” 그러거든요. 그런 적도 있어.
그 뒤에 어떻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옷이 하나 생겨가지고 입고...
그런데 강원에 있는데 다른 아이들은 여행 가는데 여행비 달라고 자기 스님한테 편지 하니까 자기 스님이 여행비 보내주나? 안 보내준다고 지대방에 와가지고 고민을 하고 끙끙 앓고 우는 놈도 있고 그래. 저는 차는 공짜니까 돈 없으면 안 사면 그만 아니냐?고 하고 덮어놓고 그냥 따라 갔어. 경주로 포항으로 방어진으로 한 바퀴 도는데 저, 돈 한 푼 없는 줄 아니까 다른 아이들이 두 개씩 사가지고 한 개씩 주대. 얻은 떡이 가락 반이라고, 돈 주고 산 그들보다 제가 더 많아.
그래서 미리 구하지 아니하면, 미리 구하지 아니하면 다 넉넉하다! 중은 최소한도 그렇다 이겁니다. 그래서 달마스님의 四行論 가운데 無所求行이라. 구하는 바 없이 행하라. 미리 구하면 구하는 것만큼 괴롭다 이겁니다. 無 所 求 行 하라. 5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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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호호법당임니다_()()()_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