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프랑스 화가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진다. 그는 포비즘(Fauvism, 야수주의)의 중심인물로서, 과감하게 변형된 형태를 대담하고 강렬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붓 터치로 그려냈다. 그는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움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봉에 서 있었고, 그런 그에게 있어서 캔버스란 자기해방의 장소였다. 하지만 만년에 이르러서는 작품의 격한 분위기가 누그러지면서, 단순한 색과 형태를 강조한 세련된 모더니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결장암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제대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자, 그는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내어 다시 흰 종이에 붙이는 단순한 제작방식을 시도하게 됐는데, 이는 오히려 작품의 구성에 생기를 가져다주었다. ‘컷 앤 페이스트’(cut-and-pasted)로 불리게 되는 콜라주 기법을 통해, 다이내믹한 구성과 형태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열게 된 것이다.
마티스는 사망하기 2년 전에 ‘크리스마스 이브’(La Nuit de Noël)라는 유명한 색유리화를 제작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만년에 이룩한 독특하고 매력적인 단순미가 잘 드러나 있다. 그는 과슈(gouache, 고무수채물감)를 사용하여 종이에 칠을 하고, 이를 잘라 붙이는 방법으로 모형을 먼저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색유리화를 제작했다. 마티스는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방스(Vence)의 로사리오 성당을 위해서도 색유리화를 제작했는데, 두 경우 모두 폴 보니(Paul Bony)라는 색유리 시공업자의 도움을 받았다. 1952년 11월에 완성된 이 작품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록펠러 센터의 타임-라이프 빌딩에 성탄절을 축하하는 의미로 설치됐고, 이듬해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기증됐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네 개의 가로 틀로 구획이 나뉘어 있다. 아랫부분에는 붉은 배경 위로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양식화된 식물들이 무성하게 표현됐고, 그 사이로는 하늘을 향하는 간절함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잎사귀가 위로 쭉쭉 뻗은 식물이 푸른 배경 위에 그려졌다. 중간 부분부터는 좌우 대칭으로 그려진 장식적 패턴 사이로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희고 검은 별들의 무리는 화면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가장 밝게 빛나는 커다란 별과 만나게 된다. 아주 단순한 색채와 형태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3.3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색유리화는 전혀 지루하거나 단조롭지 않으며, 오히려 조화롭고 풍요로운 느낌마저 들어, 마티스의 예술적 재능에 다시금 찬사를 보내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빛, 자유로운 형태, 뚜렷한 윤곽선, 강렬하고 선명한 색채, 그리고 넓은 색면의 배치는 우연찮게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샤르트르 대성당의 색유리 창에서도 보이는 요소들이다. 마티스는 근대미술의 선구자이면서도, 전통과의 단절을 외친 당대의 예술가들과는 달리 고딕미술의 현대화를 시도했고, 여기에 그의 새로움이 있다. 이 작품에 관해 마티스는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장이었던 알프레트 바 주니어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색유리화의 모형과 색유리화 자체는 마치 악보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도 같다.”
같은 악보라 하더라도 어떤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느낌의 음악이 되듯이, 색유리화의 모형은 일정할지라도 색유리화 자체는 날씨와 빛의 강도에 따라 마치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는 생물체처럼 다양한 느낌을 준다는 뜻이다.
만년의 마티스는 인간 존재의 가치와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했고, 자신의 작품이 마치 편안한 안락의자처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나는 예술에서 조화와 순수함을 얻으려 노력한다. 삶에 지치고 상처받은 사람들은 나의 작품 속에서 평화와 휴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불편함이나 혼돈스러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팔순을 넘긴 화가 마티스는, 성탄절 전야의 설렘과 기쁨을 어두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로 형상화 시켰다. 온 인류가 간절히 기다려온 구세주가 작은 아기로 태어나는 밤, 세상의 헛된 소란스러움이 잠잠해져야 할 바로 이 순간, 마티스의 순수하고 밝은 색채와 지극히 단순한 형태는 최고의 가치를 발휘한다. 종교와 예술의 합일이라는 지극히 험난한 여정이 여기서 마무리 된 느낌이다.
조수정씨는 프랑스 파리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