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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24일 금요일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식마린겐의 성 피델리스 사제 순교자
말씀의 초대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이르러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니아스에게 안수를 받은 뒤,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는 민족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9,1-20
그 무렵 1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3 사울이 길을 떠나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이며 그의 둘레를 비추었다.
4 그는 땅에 엎어졌다. 그리고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자기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5 사울이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자 그분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6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
7 사울과 동행하던 사람들은 소리는 들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었으므로 멍하게 서 있었다.
8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을 떴으나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다마스쿠스로 데려갔다.
9 사울은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였는데,
그동안 그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10 다마스쿠스에 하나니아스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야!” 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가 “예, 주님.” 하고 대답하자 11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
지금 사울은 기도하고 있는데, 12 그는 환시 중에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는 것을 보았다.”
13 하나니아스가 대답하였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14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 가지고 여기에 와 있습니다.”
15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거라. 그는 다른 민족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도록 내가 선택한 그릇이다.
16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그에게 보여 주겠다.”
17 그리하여 하나니아스는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안수하고 나서 말하였다.
“사울 형제, 당신이 다시 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도록 주님께서,
곧 당신이 이리 오는 길에 나타나신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셨습니다.”
18 그러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19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렸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20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52-59
그때에 52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유다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5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54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58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59 이는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신앙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남겨 주신 것을 통하여 그분을 기억합니다. 놀라운 신비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당신을 기억하게 하시면서도 그것을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만 두시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계속되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을 넘어 과거와 현재의 벽을 허무시고, 하늘 나라와 이 세상의 경계를 넘어,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신을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성체성사의 의미와 신비를 구체적으로 밝혀 줍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요한 6,51)이라고 선포하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저 멀리서 명령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 곁으로 내려오셔서 지금 우리의 삶에 힘이 되어 주시는 ‘살아 있는’ 양식이심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살과 뼈를 지닌 인간으로 이 땅에서 사셨으며, 전설 속 영웅처럼 사라진 존재가 아니라, 오늘도 성체 안에서 살아 계신 분으로서 우리 ‘안으로’ 들어오십니다.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며, 하늘과 땅을 이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받아 모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영원한 생명을 맛보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친교를 나누고, 그분을 닮아 그분과 하나 되어 살아가겠다는 응답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성체성사는 바로 이 일치를 이루는 기적입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내 삶의 자리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한 성인(聖人)은 또 다른 사람들을 성덕의 길로 견인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1800년대 이탈리아 북쪽 피에몬테ߵ토리노 지역은 수많은 성인성녀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 사람의 탁월한 성인의 등장은 절대로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한 성인(聖人)은 또 다른 사람들을 성덕의 길로 견인합니다.
저희 수도회 창립자 성 요한 보스코가 바로 피에몬테 지방 출신입니다. 돈보스코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성인들이 탄생합니다. 그의 영적 스승 요셉 카파소는 재소자들의 성인으로 유명합니다.
돈보스코의 제자 도미니코 사비오가 시성되었습니다. 살레시오 수녀회 공동 창립자 마리아 도메니카 마자렐로도 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성인 성녀들이 토리노를 중심으로 한 성덕의 온상에서 무럭무럭 성장해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 사람의 성인의 탄생이 무척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성인이 탄생하면, 그의 선한 영향력이 즉시 효과를 발휘합니다. 나와 함께 살았던 그가 그 길을 걸었는데, 나도 그 길을 걷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냐며, 그 길에 참여합니다.
은혜롭게도 저희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출신으로 그 은혜로운 길에 접어든 분들이 몇분 계십니다. 노숭피 로베르토 신부님, 원선오 빈첸시오 신부님, 이태석 요한 신부님 등등...가까운 곳에 그런 좋은 모델이 있다는 것, 참으로 큰 은총입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돈보스코와 이웃사촌처럼 지내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극진히 섬겼던 성인이 계십니다. 요셉 꼬톨렌고 성인입니다. 토리노 발도코 오라토리오에서 걸어서 3분이면 그분의 사업체 피꼴라 까사가 나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하느님 섭리의 작은 집입니다.
말마디 그대로 처음에는 아주 작게 사회사업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대단위 종합사회복지시설이 되었습니다. 저는 종종 점심 식사 후 산책 삼아 그곳을 들렀습니다.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부랑인들, 중증 장애인들, 불치병 환자들, 정신질환자들 등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수용되어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습니다.
인생의 막장에 와있는 환자들이 많다 보니 여기저기 시끌벅적 요란스럽습니다. 그런데 한 번씩 분위기가 숙연해지며, 동시에 환자들의 얼굴도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15분에 한 번씩 천정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세상 부드러운 여성분의 편안한 소리가 흘러나올 때입니다. 따뜻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듣는 모든 사람들의 긴장된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줍니다. 그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여기 우리 곁에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 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우리 사이에 현존하시는 하느님!
이 대명제는 이론이나 희망 사항이 절대 아닙니다. 명확한 실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권능과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의 빵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셀 수도 없이 강조되어온 임마누엘 하느님 신탁을 종결하는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6)
이제 임마누엘 하느님께서는 매일의 성체와 성혈을 통해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예수님의 성체성사 제정으로 이제 내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하느님 안에 내가 있게 된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느님, 말마디만 생각해도 감사의 정이 솟구칩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
우리 가운데 탄생하신 메시아께서는 이름부터 너무나 은혜롭고 감지덕지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이신데, 어떻게 구원하시는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습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하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너무나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이다 보니, 우리에게 점점 더 가까이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육화강생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내면 깊숙이 어떠한 경우에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렬한 임마누엘 주님 현존 의식을 지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노년기를 살아가는 분들, 남은 날들이 외적으로 볼 때는 조금은 우울하고 슬플 것입니다. 여기저기 탈이 나고, 점점 병원 신세를 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했던 사람들도 한명 한명 떠나가고,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 우리네 삶은 온통 회색빛일 것입니다.
그럴수록 꼭 기억해야 할 대상이 임마누엘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꽃다운 이팔청춘 내 인생에도 함께하셨지만, 쪼그라든 노년기의 삶에도 굳건히 함께하십니다. 힘겨운 병고의 순간, 우리 인생을 총정리하는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임마누엘 주님께서는 반드시 함께하실 것입니다.
개신교에서는 말씀이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하던데요?
전삼용 요셉 신부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요한 6,52)라며 격론을 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의 개신교 형제들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으라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라는 비유이지, 진짜 그분의 몸을 먹으라는 뜻이 아니다." 그들은 말씀이 곧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주장합니다.
어찌 보면 맞는 말 같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Logos)이 육신이 되셨으니, 말씀을 먹는 것이 곧 살과 피를 먹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인식의 누락'이 있습니다. 말씀은 '작동 원리'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작동 원리라도 그것이 내 안에서 실제로 가동되려면 '에너지'와 함께 그 작동 원리를 지닌 이가 '실제로 먹혀야' 합니다. 오늘은 이 '먹힘'의 신비가 어떻게 우리를 하느님의 시스템으로 재창조하는지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어떤 기계가 만들어질 때, 그 기계 안에는 설계도에 따른 '작동 원리'가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계에 작동 원리가 적용되려면 땀과 에너지를 쏟으며 그 작동 원리대로 기계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인 진리(법칙)가 내 삶을 바꾸려면, 성령(에너지)이라는 빵과 함께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야 합니다. 땀 흘리지 않는 설계도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듯, 먹히지 않는 말씀은 공허한 관념일 뿐입니다.
생물학의 『세포 내 공생설』을 다시 떠올려 봅시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를 먹었을 때, 세포는 단순히 간식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 미토콘드리아라는 '상위의 에너지 생산 시스템'을 통째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게 에너지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세포의 생존 방식을 '산소 호흡'이라는 고효율의 법칙으로 바꿔버립니다. 물론 세포도 미토콘드리아에게 먹힙니다. 내가 죽지 않고는 그분이 내 안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포가 미토콘드리아에게 자신의 자원을 기꺼이 뜯어 먹히는(순종하는) 시스템을 구축했을 때, 비로소 세포는 수십 억 년을 버틸 생명력을 얻었습니다. (출처: 린 마굴리스, 『공생자 행성』)
마찬가지입니다. 난자가 정자를 받아들이는 순간을 보십시오. 정자는 난자에게 먹힙니다. 하지만 정자가 가지고 온 것은 단순히 단백질 덩어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태아로 성장하라'는 새로운 작동 원리(유전자)입니다. 난자가 정자의 그 강력한 생명 에너지에 삼켜져 자기 복제를 시작할 때, 고작 한 달짜리 난자의 운명은 '인간'이라는 장엄한 시스템으로 격상됩니다.
정자가 난자 밖에서 "너는 사람이 되어라"라고 백만 번 외친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실제로 정자가 난자 안으로 '먹혀 들어가야' 그 법칙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정자는 난자를 먹으며 새로운 작동원리를 제공하여 새로 태어나게 합니다. (출처: 스콧 길버트, 『발생생물학』)
자녀가 성장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는 부모가 구축해 놓은 '성장 시스템'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이유는 자녀가 부모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아기는 엄마의 젖을 먹습니다. 모유는 엄마의 피와 살입니다. 아기가 엄마를 뜯어 먹면서 배우는 것은 무엇입니까? 엄마의 언어, 엄마의 도덕, 엄마의 생활 방식입니다.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늑대 소년'들이 결코 인간의 행동 방식을 닮을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의 젖을 먹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새로 태어나게 만들려면, 상위 존재가 하위 존재에게 진짜로 '먹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시간과 건강과 감정을 뜯어 먹히는 그 처절한 희생(에너지)을 통해, 비로소 '인간의 작동 원리(진리)'가 자녀의 영혼에 이식되는 것입니다.
이 '먹힘과 재창조'의 신비를 인류 문화사에서 가장 완벽하게 그려낸 작품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입니다. 수용소라는 죽음의 시스템 속에서, 아버지 귀도는 아들 조슈아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양식으로 내어줍니다. 조슈아가 그 끔찍한 수용소를 '1,000점을 따면 탱크를 받는 게임' 이라는 즐거운 세상으로 믿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귀도가 아들에게 "이건 게임이다"라고 말(말씀)만 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귀도는 그 말을 아들이 믿게 하려고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배고픈 아들에게 자신의 빵을 몰래 떼어 먹였고(살), 공포에 질려 울음이 터지려는 순간에도 우스꽝스러운 광대 짓을 하며 웃음을 주었습니다(피).
조슈아는 매일 아버지의 희생을 먹었습니다. 아버지가 뜯어 먹히며 만들어준 그 '사랑의 에너지'가 있었기에, 조슈아는 아버지의 '게임 시스템(진리)'에 기쁘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귀도가 마지막에 총살당하러 끌려가면서도 윙크를 보냈을 때, 조슈아는 그것을 슬픈 죽음이 아니라 게임의 완벽한 피날레로 받아들였습니다. 조슈아는 아버지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절망의 땅에서 유일하게 희망의 시스템으로 살게 된 '부활한 인간'이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먹혔기에 아들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출처: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 '인생은 아름다워' 1997)
예수님은 어떻게 그토록 완벽한 하느님의 아들로 사셨을까요? 그분 또한 '먹는 신비' 안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매 순간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당신의 양식으로 삼으셨습니다. 결국 양식과 뜻은 함께 들어옵니다. 뜻을 실천하지 않으면 양식도 끊깁니다. 아드님은 세례 때부터 아버지의 성령(에너지)을 전적으로 받아드셔(먹어), 아버지의 시스템(뜻)에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먹힌 상태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시스템'을 우리에게 적용하려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이 우리에게 '먹히기로' 결단하신 것입니다.
개신교의 주장처럼 말씀이 살과 피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우리 영혼의 뼈와 근육이 되게 하려면, 그 말씀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체라는 형상으로 우리 안에 '실제로' 씹히고 소화되셔야 합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실 때, 그리스도의 신성한 유전자가 우리 영혼의 핵으로 침투하여 우리의 낡은 '인간 시스템'을 먹어치우고 '하느님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입니다. 먹히지 않는 말씀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자신이 늑대라고 믿는 아이에게 밖에서 ‘너는 인간이다.’라고 외지는 말은 그 아이를 새로 태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원리는 세상의 질서 속에서도 유효합니다. 위대한 스승은 제자들에게 지식(말씀)만 주지 않습니다. 앤 설리번 선생님은 짐승처럼 날뛰던 헬렌 켈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평생을 뜯어 먹혔습니다. 헬렌이 물건을 던지면 온몸으로 맞았고, 헬렌의 손바닥에 수만 번의 글자를 새기느라 자신의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헬렌 켈러가 비로소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언어를 이해하게 된 것은 설리번이 가르친 단어 덕분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기꺼이 먹히고 있는 설리번의 '희생의 에너지'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설리번의 포옹이 사랑이라고 느꼈다면, 그 사랑이란 말씀은 그 안아줌의 먹힘을 통해 그 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먹히는 존재를 찾아야 합니다. 그가 더 위 시스템이고, 그를 먹으면 그의 시스템에 합류하여 그가 사는 것처럼 살게 됩니다. (출처: 헬렌 켈러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
개신교 형제들이 말씀이 살과 피라고 할 때, 기쁘게 웃으며 답해주십시오. "맞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진짜 피가 되어 돌고 살이 되어 움직이려면, 그 말씀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제 자아를 먹어치우도록 제가 그분을 영성체로 모셔야 합니다."
세상의 빵은 내 위장을 채우고 썩어 없어지지만, 그리스도의 살은 내 영혼을 점령하여 나를 영원히 살게 합니다. 미토콘드리아가 세포의 자원을 먹고 대신 빛과 열을 내주듯, 여러분이 모시는 성체가 여러분의 이기심을 먹게 하십시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제7권에서 주님의 음성을 이렇게 기록하며 성체성사의 본질을 선포했습니다. "나는 성인(成人)들의 음식이다. 자라나라, 그러면 나를 먹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는 보통의 음식처럼 나를 너의 것으로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네가 나에게로 변화될 것이다." (St. Augustine, Confessiones, 7, 10, 16).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살면서 우산도 없는데 갑자기 비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급한 김에 처마 밑에 있기도 하고, 심한 비가 아니면 비를 맞고 걷기도 합니다. 저도 그런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포트워스 본당 신부님의 초대로 포트워스 본당 교우들과 함께 1박 2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장소는 본당 교우가 만든 시골의 별장이었습니다. 신부님과 저는 같은 방을 배정받았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모닥불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았습니다. 저는 평소 습관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에 누가 옆에 누워서 저는 신부님인 줄 알았습니다. 옆 침대인데 착각한 줄 알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옆 침대에는 신부님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별장의 주인인 형제님이었습니다. 거실에서 자던 형제님은 화장실에 갔다가 평소대로 본인이 주로 자던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조용히 일어나 거실로 가서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형제님은 미안해했습니다. 저도 거실에서 잠을 자면서 방을 기꺼이 내준 형제님께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44년 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저는 신학생이었습니다. 본당 여름 행사를 마친 후에 보좌 신부님과 주일학교 교사들과 안면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숙소로 가기 전에 안면도 해수욕장에서 잠시 바다를 보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교사 한 명과 이야기를 하면서 잠시 걸었습니다. 차가 있던 곳으로 왔더니 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일행은 우리가 차에 있는 줄 알았고, 차는 숙소로 떠났습니다. 저와 교사는 숙소는 몰랐지만, 근처에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배가 고프니 수박을 하나 사서 나눠 먹고 아카시아 잎을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의 나뭇잎을 하나씩 떼어내면서 걸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논두렁에 차가 하나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의 차였습니다. 차는 길을 잘못 들어 뒤로 빼고 있었습니다. 당시는 연락할 방법이 공중전화밖에 없었기에 난감했었는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생각하면 아름다웠던 추억입니다.
오늘 독서는 더욱 난감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니아스에게 ‘사울’를 만나서 안수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니아스는 예수님께 걱정을 말했습니다. 사울은 바리사이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길 가다가 비를 맞는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니아스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님, 그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성도들에게 얼마나 못된 짓을 하였는지 제가 많은 이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을 모두 결박할 권한을 수석 사제들에게서 받아서 여기에 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사울’을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만들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니아스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울을 만나 안수해 주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신학과 교리의 토대를 만들었던 사도 바오로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방법으로 구원의 계획을 만들어 가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박해하던 바오로를 부르셨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의 삶을 이끌었던 신념을 버려야 했습니다. 바오로는 정통 바리사이파로 가졌던 모든 권위와 권리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박해하는 자에서 박해받는 자로 신분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신념과 지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라고 응답하는 결단입니다. 아브라함, 모세,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바오로는 벼락 맞는 것처럼 삶의 여정에 극적인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성서는 그런 극적인 순간을 하느님의 부르심, 예수님의 부르심이라고 전해 줍니다. 그러나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도 오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서에서 전해 주는 극적인 ‘부르심’의 순간은 기억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몇몇 분에게 물어보았지만, 벼락 맞는 것 같은 극적인 ‘순간’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극적인 순간은 없을지 모르지만, 세례를 받는 신앙인은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예’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 고향 땅을 떠나지 않을지라도, 모세처럼 위험한 이집트로 돌아가지 않을지라도, 첫 번째 제자들처럼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버리지 않을지라도, 바오로 사도처럼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을지라도 세례를 받은 신앙인은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입니다. 오히려 극적인 순간이 없음에도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2018년 12월 20일입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부르신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길이 막혀 지하철을 타고 교구청으로 갔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미주가톨릭평화신문’을 맡아서 일하면 어떤지 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늙은 나이에 고향 땅을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모세처럼 위험한 땅으로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처럼 삶을 지탱하는 것들을 버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처럼 제 삶의 신념을 바꾸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벼락 맞는 것 같은 극적인 순간은 아니었지만 제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어느덧 신문사의 일을 마쳤고, 지금은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서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방법으로 저를 불러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성인
성 피델리스(Fidelis)
신분 : 신부, 선교사, 순교자
활동지역 : 지크마링겐(Sigmaringen)
활동연도 : 1578-1622년
같은이름 : 삐델리스
1578년 10월 독일 슈바벤(Schwaben) 지역의 지크마링겐에서 태어난 성 피델리스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교를 마치고 법학박사 과정을 밝으면서 그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이때 그는 스스로 회개생활을 시작했는데, 고행자의 옷을 입고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1604년 그는 잠시 귀족 자제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봉직하다가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방의 아인지스하임(Ensisheim)에서 변호사로 개업하면서부터 그의 인격과 학문이 괄목할 정도로 발전하였고 또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변호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 후 그는 1612년에 사제품을 받고 그해 10월 4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피델리스라는 수도명을 얻었다. 그는 사제 서품을 앞두고 자신의 유산을 반으로 나누어서 한 몫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른 한 몫은 신학교를 지원하려는 목적으로 주교에게 증정하였다.
사제로 서품된 후 그는 주로 설교와 고해성사를 주는 임무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의 인품과 재능을 익히 알고 있던 주교는 스위스 그리존(Grison) 지방의 츠빙글리파(Zwinglian)에게 파견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하도록 명하자, 그는 8명의 다른 카푸친 작은 형제회 회원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 지방 사람들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하는데 그가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반기를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며칠 밤을 기도하면서 지냈다. 1622년 2월 24일 그루쉬(Grusch)에서 열정적으로 설교한 뒤 한 동안 탈혼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사들을 죽여라!'라는 외침을 무시하고 세비스(Sewis)로 돌아와 미사를 봉헌하다가 성난 군중들 앞에 당당히 나아가 “주님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이다.”는 설교를 하고 군중들의 공격을 받아 1622년 4월 24일 순교하였다.
이 사건으로 수많은 츠빙글리파 성직자들이 개종하였다. 그는 1729년 3월 12일 시복되었고, 1746년 6월 26일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 보나(보바)와 도다(Bona, Bova, Beuve)
연대 : 680년경
신분 : 동정
지역 : 프랑스, 베네딕또회
성녀 보나(보바)
Reims S.Pietro의 수도원장.
오스트리아의 왕이었던 Sigeberto의 딸이었다.
수녀원의 수도원장이 되면서 분도 수도회의 수도규칙을 도입하였다.
성녀의 조카인 Doda를 영적으로 잘 교육시켜 성덕으로 나아가게 이끌었다.
Doda도 후에 수도원장이 되었으며 성녀 보나와 아울러 성녀가 되었다.
성녀는 673년 4월 24일에 임종하였으며, 교회는 이 날을 성녀 보나와 도다를 기념한다.
성녀 보바는 성 발데리쿠스(Baldericus, 10월 16일)의 여동생으로 다고베르트(Dagobert) 왕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덕으로써 왕궁과 나라 전체를 교화하였다.
성녀 보바는 하느님께 자신의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모든 결혼 제의를 거절하였다. 그녀의 오빠인 성 발데리쿠스가 639년 몽포콩(Montfaucon)에 수도원을 설립한 이후 랭스(Reims)에 베네딕토회 수녀원을 설립하자, 성녀 보바는 680년 죽을 때까지 수녀원장으로서 살았다.
성녀 보바의 조카딸인 성녀 도다(Doda)는 그녀의 발자취를 따랐고 그녀를 이어 수녀원장직을 계승하였다.
두 성녀의 유해는 후에 랭스의 성 베드로(Petrus) 수도원으로 옮겨 안장되었다. 비록 두 성녀의 생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0세기에 그곳 수녀들과 관련된 전승들이 작가에 의해 다시 기록되었다.
성녀 보바는 보나(Bona)로도 불린다.
성녀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르(Mary a santa Euphrasia Pelletier)
활동년도 : 1796-1868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앙제(Angers)
같은 이름 : 메리, 미리암, 에우쁘라시아, 에우프라씨아, 유프라시아
성녀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르(Maria a santa Euphrasia Pelletier)는 1796년 7월 31일 프랑스 서부 방데 연안의 누아르무티에(Noirmoutier)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는 방데 전쟁을 피하여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18세 되던 1814년 10월 20일 애덕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1825년에 투르(Tours)에 위치한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앙제에 수녀원을 설립해 달라는 앙제 주교의 요청을 받고 파견되어 '앙제의 착한 목자 애덕 성모 수녀원'을 성공적으로 설립한 뒤에 투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앙제 수녀원이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자 다시 앙제로 가서 수녀원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가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자기 수녀회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나 수녀원 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녀는 야심이 많고 순종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함께 '능력은 있으나 한 나라를 다스려야 적성이 풀릴 사람'이란 평을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앙제에 '착한 목자 수녀회'를 설립하고, 1835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윤리적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설립되었다. 성녀 에우프라시아가 33년 동안 이 수녀회를 지도하는 동안 110개의 수녀원으로 발전하였는데, 현재 이 수녀회의 회원 수는 10,000명이 넘는다. 그녀는 1868년 4월 24일 앙제에서 선종하였으며, 1933년 시복되고 194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