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와 밥을 끓여 만드는 갱시기는 경상도 지역에서 유래한 향토 음식이다. 묵은지의 신맛은 입맛을 돋우며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은 부담 없이 속을 풀어준다. 따뜻하고 든든하게 허기를 채워주었던 갱시기를 맛있게 끓여내는 집을 찾아가 봤다.
쌀 한줌으로 온 가족이 배불리 먹던 갱시기
갱시기는 김치와 밥을 기본으로 감자, 수제비, 국수 등 온갖 재료를 넣고 퍼질 때까지 푹 끓인 음식이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갱시기’라는 메뉴명은 몰라도 ‘아! 이게 갱시기였어?’ 하고 알아볼 정도로 익숙한 메뉴일 것이다. 집집마다 부르는 이름도 달라서 어느 집에서는 ‘국시기’라 부르고 어느 집에서는 ‘밥국’, 또 어느 집에서는 ‘갱죽’이라 부른다. 갱시기는 곤궁했던 시절 쌀 한줌으로도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쌀 수확량이 늘어 더 이상 밥을 굶지 않아도 된 이후에는 간편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별미로 자리 잡았다.
갱시기는 밥상을 차리기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적은 일손으로도 많은 손님들의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메뉴이기도 하다. 경북 김천에서 <기차길옆오막살이>를 운영하는 이경식 대표는 “장례식장이 아니라 집에서 초상을 치렀던 시절, 갱시기는 조문객을 대접하던 대표적인 상가(喪家) 음식이었다”고 설명하며, “돼지 수육을 삶은 물을 육수 삼아서 밥과 김치를 넣고 갱시기를 끓였고, 한밤중에 간단히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야참으로 내놓곤 했다”고 전했다.
맛있는 김치와 육수가 경쟁력
갱시기는 김치와 찬밥만 있으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는 음식이기에 식당에서 판매하기 위해서는 외식 메뉴로 상품화할 필요가 있다. 가정에서 간단하게 만든 음식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음식점 메뉴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갱시기국밥으로 직장인 단골손님을 확보한 서울 여의도의 <마늘사랑해>는 마늘로 만든 특제 육수를 사용한다. 또한 대구 <곰비곰비>는 17가지 재료를 우려낸 육수로 갱시기를 끓여낸다. “집에서 김치만 있으면 해먹는 음식이지만, 육수의 정성을 보니 돈이 아깝지 않다”는 평을 듣는 이유다. 잘 익은 김치의 신맛, 깔끔한 양념 맛이 관건이기에 맛있는 김치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갱시기는 해장, 식사, 안주가 동시에 되는 메뉴다. 일종의 죽 요리이므로 실제 섭취량보다 포만감이 크고, 재료가 무를 때까지 푹 끓인 음식이기에 소화 흡수가 빠르다는 특성을 지녔다. 육수와 김치 양념만으로 만들기 때문에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잘 익은 묵은지의 신맛은 입맛을 돌게 해줘 매운맛 없이도 속풀이 해장이 된다. 직장인 상권에서는 점심은 물론 아침 식사로도 판매하기 좋은 메뉴로 오전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새콤하면서 개운한 갱시기는 고깃집의 곁들임 국물, 마무리 식사로도 제격이다. 대구의 양대창 전문점 <양대팔>에서는 ‘얼큰갱시기’를 후식 메뉴로 판매하고 있으며, 대전의 <금성육가공>도 고기를 먹고 난 뒤 별미 메뉴로 갱시기를 판매한다. 갱시기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라면 비주얼을 고려해 죽처럼 되직하게 끓이기보다는 다소 맑게 끓여 거부감을 줄이는 것도 좋다.
갱시기 메뉴의 SWOT분석 강점(Strength) 소화가 잘 되는 음식으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며, 재료 준비와 조리과정이 간단하다. 약점(Weakness) ‘값싼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서는 육수, 김치 등 부가가치를 높여 외식 메뉴로 상품화할 필요가 있다. 기회(Opportunity) 경북 출신 손님들에게는 ‘추억의 음식’으로,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향토색이 있는 메뉴로 소구할 수 있다. 위협(Threat)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으므로 ‘외식’ 메뉴로 판매하기 어렵다. 일상식을 구매하는 ‘매식’ 손님을 겨냥하자. 갱시기 핵심 포인트 - 경상도 향토음식으로 외식업소에서는 보기 드문 틈새 메뉴 - 부담 없이 속 풀어주는 해장음식이자 소화흡수가 좋은 건강식 - ‘저렴한 음식’ 이미지 탈피하기 위해선 메뉴 상품화 필요
부드러운 칼국수면 넣은 ‘갱시기국수’ 대구 수성구 <곰비곰비> 대구 범어네거리 인근에 위치한 손칼국수 전문점 <곰비곰비>는 대구에서도 갱시기로 유명한 집이다. 이 집 갱시기는 멸치, 무, 다시마, 파뿌리 등 17가지 재료를 우려낸 육수와 1년 이상 숙성한 김장김치로 만든다. 담백하고 개운하게 끓여낸 갱시기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김치의 신맛이 입맛을 돋워준다.
대표 메뉴인 갱시기국밥(6500원)과 갱시기국수(6500원)는 비슷한 비율로 판매된다. 갱시기국수는 갱시기에 밥 대신 칼국수 면을 넣은 메뉴다. 매장에서 직접 뽑는 칼국수 면은 얇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면발이 퍼지지 않도록 주문 즉시 삶아내며, 부재료로 수제비, 콩나물, 가래떡 등을 함께 넣고 끓인다. 갱시기국수에는 공깃밥 반 그릇을 맛보기로 제공해 국물에 밥을 말아먹을 수 있게 했다.
곽미숙 대표는 “추억의 음식이자 건강식”으로 갱시기를 소개했다. 이곳을 찾는 손님은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부드럽게 속을 풀어주기 때문에 해장을 위해 아침에 방문하는 손님도 많다. 취향에 따라 다진 청양고추를 넣어 매콤하게 먹기도 한다. 매장 외부에는 ‘갱시기를 아시나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크게 걸어두어 갱시기를 알리고 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영업하며, 갱시기 외에 돼지고기 수육, 흑태찜 등으로 저녁 메뉴를 보완하고 있다. 주소 대구시 수성구 상록로22 전화 (053)759-5669
개운한 갱시기, 고깃집 곁들임 메뉴로 제격 서울 송파구 <도나우 연탄불고기> 갱시기의 시원하고 개운한 맛은 육류와도 잘 어울린다. 서울 삼전동 <도나우 연탄불고기>는 ‘연탄불고기와 갱시기국을 잘 하는 집’으로 포지셔닝해 다른 고깃집과 차별화하고 있다. 메인 메뉴인 돼지고기 불고기와 김치를 넣고 끓인 시원한 갱시기국은 미각적으로도, 영양학적으로도 잘 어울린다.
대구 출신의 이재윤 대표는 서울에서 갱시기를 파는 식당이 드물었던 2007년부터 갱시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예전부터 자주 먹었던 음식이라 자신있는 아이템이었고, 서울지역에서는 틈새메뉴로 차별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갱시기는 집집마다 일상적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라 정해진 조리법이 없었다. 이를 메뉴화하기 위해 이 대표는 김천 토박이인 장모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조리법을 체계화했다.
김치는 포천에서 구매한 것을 직접 숙성해 사용한다. 여름에는 1~2일, 가을에는 1주일씩 숙성해 김치 맛을 끌어올린다. 멸치와 무 등으로 육수를 내고 김치와 콩나물을 넣어서 맑은 국 형태로 갱시기국을 끓인다. 갱시기국은 기본 상차림에 곁들임 국물로 제공해 불고기와 함께 곁들여먹을 수 있게 하고, 추가 주문 시 1000원을 받는다. 주문에 따라 기본 갱시기국을 갱시기국수(2000원), 갱시기죽(6000원)으로 조리해 메뉴 활용폭을 넓히고 있다. 주소 서울시 송파구 백제고분로 243 전화 (02)2202-3897
옛날에 먹던 추억의 맛 그대로 경북 김천시 <기차길옆오막살이> 이경식 대표는 22년 전 <기차길옆오막살이>를 오픈해 카페로 운영해오다가 식사 메뉴를 추가하면서부터 갱시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갱시기를 판매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예전부터 자주 먹어온 추억의 음식이자 적은 일손으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메뉴이기 때문”으로 설명했다.
이 집 갱시기(5000원)는 개운하면서도 얼큰한 맛이 특징이다. 집에서 만들 때는 찬밥을 넣고 끓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집은 불린 쌀을 볶는 것부터 시작한다. 고구마, 수제비, 국수 등을 넣고 죽처럼 퍼지게 끓여낸다. 청양고춧가루의 매운맛과 고구마의 단맛, 푹 퍼진 쌀의 식감, 쫄깃한 수제비의 식감이 어우러진다. 든든하면서도 소화가 잘돼 술자리를 마무리하는 식사 메뉴로 인기다.
갱시기는 김치의 양념만으로 맛을 내는 음식인 만큼 김치 맛이 가장 중요하다. 이 대표는 직접 농사지은 배추와 고추 등으로 매년 600포기씩 김치를 담근다. 김장김치는 0℃~-1℃ 사이에서 숙성하고 3년이 지나면 담근 순서대로 꺼내어 사용한다. 육수는 멸치, 다시마, 엄나무, 황기 등 10여 가지 재료를 6시간 동안 끓여 만든다. 매일 한 솥씩 끓여두고 음식의 기본 육수로 사용한다.
<기차길옆 오막살이>는 회식, 동창회 등 모임 예약 손님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오랜 단골손님도 많은데, 특히 타지에서 생활하다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한 사람들은 갱시기를 먹기 위해 이 집을 꼭 들른다고 한다. 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황악로 1626-30 전화 (054)436-3399
이경식 대표가 알려주는 갱시기 만들기 TIP ▲ 묵은지와 육수 준비하기 엄나무, 황기 등 약재를 첨가한 멸치 육수를 한 솥씩 끓여두고 기본 국물로 활용한다. 김치는 3년 숙성한 김장김치를 꺼내 사용한다. 김치냉장고에서 막 바로 꺼낸 것과 실온에서 좀 더 익혀 신맛이 강해진 것을 섞어 쓴다. ▲ 쌀 불려서 볶기 부드러운 갱시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린 쌀을 써야 한다. 넓은 냄비에 참기름을 살짝 두르고 불린 쌀을 볶아서 고소한 향을 낸다. 육수를 조금씩 첨가하면서 쌀을 충분히 익힌 뒤에 김치, 수제비, 감자 등 부재료를 첨가한다. ▲ 재료 넣고 푹 익히기 어느 정도 익은 다음에 육수를 조금씩 부어 끓이다가 맨 마지막에 소면과 매운 고춧가루를 소량 넣는다. 계속 보글보글 끓는 상태를 유지하며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준다. 죽 농도가 될 때까지 10분 이상 푹 끓여서 완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