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5일 토요일. 20차 (늘재에서 갈령까지) 산행을,, 세 분 대장님 포함 29명이 함께 하였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삼세번 만에 큰 탈없이 무사히 해내었다. 잠깐 숫자 3의 의미가 스친다. 우린 보통 어떤 일에 '삼세번' 을 자주 말하고, 또 그렇게 하곤하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좋은 의미로 다뤄진다. ㅡ 천,지,인. 삼존. 삼위일체 기타 등등,, ㅡ 하기사, 잠시던 길게(영원히)던 속세를 떠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기 어려운 속리산을 나, 유도사는 다섯 번째 오르는 셈이다. 양념 삼아 자랑해본다. ㅡ처음은 1974년 8월 초,, 나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 세 명과 함께였다. 고 3 여름 방학이 시작되는 날부터 외가 친척에게 부탁해 놓았던 건축 잡일을 열흘 동안 해서 경비를 마련하여, 부산역에 집결했다. 주요 장비 일체를 가지고 있던 급우가 오지 않았다. 망설이다 "사나이가 ~ 중략 ~ 가자!!" 해서, 자취하고 있던 수영 사는 친구가 조그만 냄비 두 개 들고 와서 늦은 출발을 하였다. 컴컴한 저녁이 되어서 법주사 계곡 옆을 지나고 있는데, 대학생 무리가 우리 보고 "밥 먹었냐?" 묻고는 남은 밥 먹고 설겆이 부탁을 하였다. 우리는 제법 많은 양의 밥과 찌개를 깨끗하게 먹어 치웠다. 조금 더 위쪽에 조그만 빈 컨테이너에서 넷이서 군용담요 두 장으로 깔고 덮고 새우잠을 잤다. 다음 날 문장대를 올랐다. 물론 굶은 채로,, 6박 7일 동안 응가 한 번 안했다. //두번째는 80년도 즈음, 회사 야유회 때. 모두들 법주사 계곡에서 노는데, 나는 입사동기 둘과 함게 문장대로 가기로 했지만, 결국 혼자서 달려서 갔다 왔다. //세번째는 1995년 약수를 찾으러 갔으며, //네번째는 21년도 백두대간 종주 포기에 대한 허기심을 달래려고 일일일산 했을 때였다. 문장대에 세번 오르면 극락 간다는 전설을 들어 알고 있기에 나의 사후세계는 보장되어 있다고 본다.
6번째 국립공원 속리산은, 주봉인 천왕봉(1058m)과 비로봉, 문장대, 관음봉 등 8개 봉우리가 활처럼 휘어져서 뻗어 나가며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잇고 있다고 하며,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관이 빼어 나서 한국 8경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부처님 법이 머문다는 법주사,, 8개의 대와,, 8개의 봉우리,, 8석문,, 불교의 덕목을 일컫는 숫자 8과 관련이 많으며, 영웅호걸, 문인과 무인, 기인과 이인들의 행적이 스며있는 산이다. 이름의 유래는 신라 성덕왕 때, 승려 진표가 금산사에서 내려 오는데 밭갈던 소들이 무릎을 꿇고 그를 맞이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짐승이 저러한데 참으로 존귀할 것이다." 라며 머리를 깎고 진표를 따라 입산수도에 나선 이들이 많았다하여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ㅡ 참고로, 불교에서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밥만 축낸 중이 소가 된다고 하였다. ㅡ오래 전부터 광명산, 지명산, 미지산, 구봉산, 형제산, 자하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한다.
속리산 아래 증항, 증산 일대는 조선 중후기 사회 혼란기에 몸을 보전할 수 있는, 거주 환경이 좋은 피난처로 여겨진 십승지 중 하나로 알고 있다. 정감록, 징비록, 남사고비결, 도선비결, 토정가장결 등의 기록에서 10여 군데 나타나 있다한다. 1))영월. 정동 상류 2))풍기. 금계촌 3))가야산. 만수동 4))부안. 호암 아래 5))보은. 속리산 6))운봉. 지리산 동점촌 7))안동. 화곡 8))앙양. 영춘 9))무주. 무풍 10))공주. 계룡산 유구천과 마곡천 사이이다.ㅡ거제도 향토사학자 이승철님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수많은 포로를 살렸다고,, 거제도 계룡산이 진짜 십승지라고 얘기하였다. (일리 있는 말씀이라 동의하였다.)
사람들은 이상적인 장소를 희구하며 살고자하는 경향이 분명 있는 것같다. 기독교의 천국과 에덴동산, 불교의 극락과 정토, 도교의 무릉도원, 서양의 유토피아, 동양의 도원경, 우리의 낙원, 청학동이란 단어들은 이상향을 추구한다는 의미이고 증거인 셈이다.
나의 16대 선조는, 병자호란을 겪고 한양을 떠나 고령으로 대가족을 이끌고 터전을 가꾸었다 하였다. 그의 후손 나, 유도사는 어릴 적부터, 현실도피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탓에,, 사회생활의 소용돌이에서 방황하였다. 싯다르타가 아들 이름을 라훌라(뜻;장애)로 지었듯,, 나도 처자식이 족쇄같은 짐으로 여겨졌다. 부처가 야밤 도주했듯 나도 방랑자가 되고 싶었지만,,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란 명제 때문에, 반드시 되돌아 와야하는 가출((여행과 산행))이 탈출구였고,, 내 안에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그 무엇을 잠시나마 다독거릴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나온 과거의 행적은 나름의 수련과 수행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오십 중반이 지나서 들었다. 출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떠나지 못함이 오히려 소중한 가족을 지키게 된셈이다. 지금은 탈피, 해소 차원의 감정은 사라지고, 여여하고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는 일상의 삶이 연속되고 있다.
새벽녘, 비탐구역을 몰래 오르는 일탈과 잠도 자지않고 힘이 드는 산행은, 긴장감과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잠깐의 속세를 떠남이라 하겠다. 들머리에 도착(01;35)하였다. 사진찍고 어수선하니 회장님 왈, "다음에 또 오니 빨리 가라." 해서 한 줄로 오른다. 난 순애님 곁을 도와주기로 약속했기에 맨 뒤에서 출발(01;47)하였다. 깜깜한 밤 짙은 어둠속에 머릿불만 길게 이어져 있었다. 무작정 뒤를 따라 걷는다. 험산이라 정체구간이 자주 발생했다. 흐린 날씨였다. 불빛에 수증기같은 비가 흩날렸다. 밧줄을 잡고 올라야하는 곳이 많았다. 명프로 부부님 앞서 오르고, 한길행님이 젊은이처럼 잘 오른다. 다올라서 뒤돌아 서는 순간, 방귀를 뀌었다. 엄청 큰 소리였다. 그때 난, 깨달음같은 느낌을 받았다. 엄격하게 보여서 조금 어렵고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는데,, 재미있는 인간적인 면을 보았다. 여명이 어렴풋이나마 비칠 시각이 되었음에도 깜깜하더니,, 보슬비부터 내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배낭커버 씌웠다. 반나절 넘는 시간을 걷는 동안 주위를 볼 겨를이 없었다. 문장대에 도착(06;14) 하였다. 마침 한길행님께서 올라 오셔서 사진을 찍어 주셨다. 추웠다. 바람막이옷을 꺼내입어도 몸이 떨렸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순애님이 신선봉 매점에서 라면을 사준다고 한다. 열심히 걸어 도착(06;56) 하였다. 중위 그룹이 막 철수 준비 중이었다. 육개장 컵라면은 정말 꿀맛이었다. 킹콩바위, 굴바위, 큰바위 등에서 사진 찍고 하면서 천왕봉에 도달(08;42)하였다. 비는 열 시 쯤에 그쳤다. 구름 속에 숨어 있던 가을 하늘을 보았다. 애국가에 나오는,, 동심의 기억속에 남아 있던 경치였다. 넓디넓은 산세였다. 그 연봉 너머로 나는 자라면서 거쳤던 고향의 풍경을 보았다. 또, 멋모르고 지나온 나의 어리고 젊었던 모습을 보았다. 아련한 추억들이고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움이었다.!! 비로봉은 모르고 지나치고 피앗재(11;13)를 거쳐 형제봉으로 가며, 길이 몇 번 헷갈렸다. 이정표에 형제봉 1,3km를 보고 시간을 짐작하는데,, 이때 조금 지겨웠다. 목적지 갈령에 도착(12;56)하였다. 약 11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침에 맛있는 떡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한길행님 생일떡이라네요. 생신 축하합니다. 근디 환갑?? 진갑?? ㅎㅎ ㅡ하산식사를 무쏘꿈님이 쏘았어요. 백두대간 졸업했다고 그런답니다. 감사히 잘 먹었어요.ㅡ근디 총무님께서 앞으로는 이런 식사 찬조는 받지않는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맞다고 여겨집니다. 왜?? 그냥 산이 좋아 참석하는데,, 나도 내야하나? 하는 부담이 생길 수가 있으니까요.. 대찬성입니다. 낙동은 ((회비와 식대 만원)) 입니다. 다오리님, 안개꽃님(꽃반지님으로 착각해서 미안요.), 유경석님 참석 좋아요. 귀염둥이 서연님 파스 주었다고 비스켓과 단백질바를 주어서 감사해요. 만약 초코릿이었으면 칠십 유도사 가슴이 요동쳤을것입니다. 한길행님 맨 뒷좌석까지 오셔서, 많이 아프게 보이는 무릎 까진 것 보여주시면서 무용담을 이야기하셨다. 농담삼아 엄살 부리지 말라며, 희미하게 긁힌 내 무릎도 꺼냈다. 스틱 부러지고, 여기저기 상채기 이야기,,, 스르륵 졸음이 온다.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존경하는 나의 멘토,, 한길행님.. 하모니카소리 못들어서 식당에서 연주해달라는 부탁을 생각해보니,, 영웅담이 왁자한 분위기를 깰 수 없어, 행님 블로거에 올리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잘안되어 결국 산행기에 올리니,, 설익은 소리이지만 들어 주세요.. 다음에 기회를 잡아 행님 옆에서 연주할께요.
첫댓글 하모니카 연주 동영상 파일 등록 실패.!!!
🍂✨️
비탐구역의 긴장감을 뚫고, 보슬비를 맞으며 문장대, 신선봉, 천왕봉을 지나 피앗재와 형제봉, 갈령까지 대장정을 무사히 마친 유도사님과 20기님들 모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가을 하늘이 어렴풋이 열리며 바라보았던 그 넓디넓은 속리산의 연봉들처럼, 유도사님과 20기님들에게 여여하고 소소한 행복이 가득하기를 응원합니다.
왕서방,님.!
님의 등반 모습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아니 모두들 그렇게 밧줄 잡고 매달리며 끙끙거리면서 기어코 올라서서, 다음을 향해 가는 의지가 대단해요. 진짜 멋졌어요. 또 다가오는 뭐? 세숫-대야산.도 좋다고해서 기대가 한가득입니다.
유도사 형님, 장거리,
난코스 우중산행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산행중 보호자 역활로 선행까지 하시니, 귀감이 됩니다. 중반전 후에 스퍼트가 없었던 이유가 있었네요. ㅎ
삶의 우유곡절이 많으셨던 소실적 경험담을 공유해 주시니, 소탈하신 정감이 더 느껴지는
듯 합니다.
결코 쉽게 지나지 않았을것 같은 젊은날의 고뇌와 같은 경험을, 이제는 웃으시며, 행복한 맘으로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은, 형님께선 복이 많으신분인것 같습니다.
형님의 산행기를 읽어면서, 속리산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네요.
속리산은 법주사와 함께 제게도 특별한
추억이 있어, 설레임을 안고,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좀 그시기 했습니다.
늘, 기다려지는 재미있고, 유익한 산행기 감사 드립니다.
다음 산행때 뵙겠습니다.
P.S: 한길 큰형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영양떡 너무 맛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쏘꿈님 점심 감사 합니다.
산사랑제이,님.!
우리가 살면서 어떤 이유에서든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싶은 마음이 들 때가 분명 있었을겁니다. 그러나, 숙명의 고리를 끊어 내기는 어렵지요.- 지나고보면 그것이 인생이라 생각합니다. 비를 좋아합니다만, 요번에 좀 추웠어요. 다음에 또 만나요.
이러쿵 저러쿵 문장대 사랑입니다~~ㅋ
햐아아! 후미에서 에스코트하는 사나이는 사나이 중 사나이 아이겠습니까
신선대에서 춥냐고 여쭈어보는데 하나도 안 춥다고 하시드만~ㅍㅎㅎ
그런 점도 사내의 일면 같습니다
문장대 사랑만큼 오랫동안 함께 산행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무박 산행 휴우증이랄까요! 밤도 낮도 없는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그래도 천진난만한 소년처럼 즐겁습니다
고맙습니다
무쏘꿈,님.!
역시 잠도 없이 댓글이나 달고 말이지,,ㅎ-이웃사촌 순애님을 돕는 것은 상부상조입니다. -문장대에서는 손 시리고 부들부들 떨었지만, 신선봉 가는 동안 몸이 따뜻해졌어요. 난, 뻥은 가끔 재미로 치지만, 진짜 뻥은 안하요. 하지만 사나이는 맞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뽀글이 참 잘먹었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잉, 그냥 참석만 해도 난 좋았어요.
산행기가 그냥, 재밌습니다
산행을 같이 하고 읽으면 더 재밌습니다ㅎ
다오리,님.!
함께 같은 길을 걸어서, 공감이 더 실감나겠지요. 재미있게 느껴짐은, 경청의 마음가짐이 크기 때문입니다. 님의 참석이 더욱 반가워 질 것같아요. 다오리님도 참 잘했어요. 다으에 또 만나요.
유도사님의 재미난 후기 읽으며
19기에서의 속리산 종주길에 대한 기억이 새록합니다.
어쩜 이리 글빨이 좋으신지 그저 신기합니다ㅋ
개성 강하고 찐한 재미가 있는 귀한 글,
고맙게 잘읽고 갑니다.
다음 편 기대합니다👍👍👍
오.!-란선,대장님
반갑습니다. 등대 순례 잘 하시죠? 끝났을까나? 걸림없는 바람처럼 전국을 휘몰이 같이 다니시는 님의 호연지기가 부럽습니다. 이번 속리종주는 평생 기억이 뚜렸하게 남을 것입니다.-글빨 칭찬 감사합니다. 사실 장편소설 한 권 자비로 십 년 전에 출간했어요.
그외 수필 등으로
다수 수상하였어요.
바위 구간 오르면서 유도사 님과 순애 님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여러 번 다녔던 내가 도움을 줘야 했는데, 거꾸로 된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속리산과 그 밖에도 여러 도움 글 고맙게 읽었습니다.
비범한 유도사 님 만나 백두대간 길이 즐겁고 유익합니다.
워낙 발이 빨라 같이 걸으면서 주옥 같은 얘기 들을 기회가 적어 아쉽기는 하지만...
지난 날 속리산에 오른 유도사 님 사진이 귀하고 멋있습니다.
내가 산에 다닌 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지난 날 수도 없이 찍었던 사진은 잦은 이사 따위로 한 장도 남기지 못한 것에 견주면 유도 사 님은 잘 보존하고 있어, 대단하다는 느낌입니다.
멋진 글 다음 차례를 기다립니다.
수고 많이 했습니다.
한길,행님.!
비가 와서 위험천만한 바위투성이 길을 젊은이 못지않게 가시는,,더군다나 44리터짜리 그 큰 배낭까지 메고서 말입니다. 저의 관점에서 행님은-사람이 아니다.-입니다. 저도 40짜리 배낭 꺼내놓았어요. 행님처럼 멋지고 싶어서요. 여러 칭찬 감사합니다. 오는 산행부터는 행님을 위해 하모니카 한 두곡씩 불어 볼께요.-
어쩐지.
어디서 부터인지
도사님과 함께 걷고 있구나 생각했는데
어느새
저를 버리고 떠나셨더군요.
겨우 10리 정도 남겨두고.
발병 안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제법 한시간 남짓 함께한 것 같은데 마르지않는 에피소드 덕분에 여유 있었답니다.
암릉 구간수고했습니다.
대야산 구간 더
재미있겠지요.
일출감상을 기대하며...
(십승지중 한 곳?)
승승도사,님.!
순애님 보디가드 한다고, 갔는데-어느 지점을 지나서 부터는 괜찮을것같아. 속도를 올렸어요.-그런데 제법 멀어졌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부르며 뛰어 오는 순애님이 멧돼지가 무서워서 그랬답니다. 발과 다리가 아프데요.-해서다음도 끝까지 보디가드 해야 함. 순애님 페이스로 갈게요. 하모니카 가져 갑니다.기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