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 이런 사건이 있었다.
1958년 부산 발 서울행 KNA(대한민항) 여객기가 무장괴한 6명에게 납치되어 월북한 적이 있다.
그런데 피랍된 승객 30여명 가운데 김기완 공군대령이 포함되어
더욱 화제가 되었었다. 이들은 피랍 20일 만에 풀려났다.
김기완 대령은 전역후 김재권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중앙정보부에 발탁되어 주일공사로 파견 되었다.
그러나 일본재임 중 그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사건이 터졌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 씨가 도쿄 그랜드 팔레스호텔에서 납치된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 사건이 터진 후 김재권 공사는 미국으로 이민 가버렸다.
김대중 피랍사건에서 예상외로 미국이 빨리 이를 알아내어 김대중 씨를 구했는데
김형욱의 회고에 의하면 김 공사가 당시 그와 친했던 주일 미국CIA 책임자인 도널드 그레그(후일 주한 미 대사)에게
귀띔 해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김 공사는 1974년 LA로 이민 왔는데
2남3녀의 자녀를 두고 있었으며 그중 넷째 아들이 검사가 되었다.
그가 바로 지금 주한 미 대사로 임명된 성김(51. 한국명 김성용)이다.
성김은 중학교 1학년 때 이민 왔으며 LA교포사회 출신이고 LA카운티 검사로 일하다가
국무부에 발탁되어 주류사회에서 출세한 전형적인 이민성공의 모델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2세가 아니라 한국에서 태어나 1980년에 시민권을 받은 2세라는데 의미가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계인 게리록 상무장관을 주중대사에 임명하고 한국계인 성김 대사(6자회담)를
주한대사에 임명함으로써 미국의 이미지 개선을 시도, 대아시아외교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입장에서는 일종의 모험이다. 이 두 사람이 앞으로 한미, 중미관계에
크게 이바지하면 미국의 마이너리티 커뮤니티에서 줄을 이어 외교관이 탄생할 것이고
평가를 받지 못하면 소수민족의 외교 분야 진출에 지장을 초래하는 후유증을 낳을 것이다.
성김이 부시정부에서 발탁 되었는데도 오바마 행정부에서 승승장구 하는 것을 보면
그의 인간관계가 원만함을 말해준다. 그는 과묵하고 책임감이 강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미수교 129년 만에 코리언 커뮤니티에서 주한미대사가 탄생 했다는 것은 미주한인사회의 경사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의 일부 미디어들이 성김의 대사임명에 딴지를 걸고 있는 점이다.
성김의 부친 김재권 씨가 김대중 납치를 총지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왜 그가 미국으로 가족이민을 왔을까.
‘KT 공작’으로 불리는 김대중 납치계획을 누가 미국 측에 알려주었을까.
만약 그가 기밀을 누설한 장본인이라면 잘못된 중앙정보부의 공작을 미국에 알려주어
김대중 씨를 구하게 만든 것이 과연 조국 배반일까.
이 문제가 한국에서 시끌시끌해지면 성김이 미 상원의 인준을 받는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납치를 총지휘했던 이후락 정보부장이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
사건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김재권 씨는 한국인이었지만 성김은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연좌제가 폐지된 오늘 1세의 시시비비를 국적이 다른 2세에게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성김은 한국계이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많지만 한국계이기 때문에 건너야 하는 수많은 강이 있다.
부친문제도 그중의 하나다.
성김의 숙제는 그동안 미국 정치계에 입문한 코리언 어메리칸 들이 한국을 자주 드나들면서 빠졌던
유혹의 함정을 피하는 것과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몸가짐이다.
<이철/미주 한국일보 고문/주필, 편집국장 역임/LA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