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호의 디자인 돋보기] 최근 북미 애틀랜타에서 2019년형 쉐보레 블레이저가 공개됐다. 블레이저는 트럭 베이스 SUV의 정통성에서 탈피, 포드 엣지와 닛산 무라노와 직접 경쟁하는 크로스오버 SUV로 재탄생했으며 또한 2020년 등장을 앞둔 정통 오프로드 4x4 포드 브랑코를 염두에 둔 쉐보레 SUV 라인업의 전략차종이기도 하다. 이는 다운사이징 된 이쿼녹스와 대형화 된 트레버스 사이의 미드사이즈 SUV의 공백을 채우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차명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혼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69년부터 2005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블레이저는 2도어, 프레임바디, 탈착가능한 루프로 특징지어지는 정통 트럭의 상징이었으나 새로 출시되는 블레이저는 캐딜락 XT5, GMC 아카디아와 같은 C1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전형적인 승용베이스의 유니바디 스타일의 크로스오버이기 때문이다. 물론 블레이저에서는 보다 와이드한 트랙을 적용하여 기본적인 자세에서 안정감과 묵직한 맛은 있다.
전반적으로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는 블레이저의 디자인을 살펴보자. 최근에 소개된 이쿼녹스는 말리부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반영해 패밀리룩을 적용하고 있는데 비해 이번에 발표된 블레이저는 그 디자인 방향성이 차별화가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전통적인 패밀리를 위한 차량이기보다는 운전자를 위한 나만의 개성을 뽐내려는 디자인 방향성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사이드에서 높게 자리 잡은 벨트라인은 완벽하게 카울로 물 흐르듯이 이어져 윈드쉴드를 단단하게 감싸고 있으며 이는 다시 C필러를 지나 일체형 스포일러로 치고 올라가 블랙아웃 처리된 필러들과 함께 플로팅 루프를 구현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대부분의 SUV 디자인에서 A 필러를 중심으로 벨트라인과 카울라인의 단차 즉 높이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블레이저는 그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사이드와 쿼터뷰에서 미려하고 강인한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곧 디자인의 경쟁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개발 기간 동안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디자인의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숱한 시간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고 할 것이다. 또한 날카롭게 조각된 후드와 공격적인 그릴의 레이아웃과 함께 상대적으로 돌출된 앞뒤 펜더는 그 역동성을 더 하는 안정감 있는 자세를 연출하고 있다.
프론트 레이아웃에서도 기존 SUV 라인업과 다른 개성을 발견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부분은 그동안 쉐보레 디자인의 방향성에서 다소 아쉬웠던 부분에 대한 매우 적절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외장과 내장디자인에서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역동성의 상징과도 같은 쉐보레 카마로의 디자인 언어를 적용한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통 패밀리 지향의 디자인보다는 운전자의 개성을 보다 강조한 공격적인 디자인을 지향한 결과로 보인다. 또한 최신 트렌드의 하나인 분리형 램프를 적용한 슬림한 주간주행등으로 날렵한 인상을 전하고 있는데 이는 사선으로 처리된 범퍼의 투톤라인과 함께 세련미과 개성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테일램프의 디테일도 최근 쉐보레 디자인에 비해 완성도가 살아있는 듯하다. 기존 쉐보레의 테일램프 디자인은 쉐보레 아이덴티티라는 이름으로 듀얼 램프를 강조해 왔으나 다소 평면적인 구성에 그쳤다면 블레이저의 테일램프는 보다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사이즈도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는 비례를 적용하여 그 완성도가 확연히 개선된 모습이다.
한편 블레이저는 세 가지 트림으로 구성되는데 베이스인 스포티어와 블랙아웃처리를 강조한 RS 그리고 바디칼라를 적용한 고급버전인 프리미어가 있다. 이들은 각각 차별화 된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특히 그릴과 트림류들로 그 차별화를 극대화 시키게 된다.
인테리어는 쉐보레 카마로에서 볼 수 있는 스포티함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모습이다. 이런 디자인의 방향성 또한 운전자 중심의 레이아웃으로 풀어내고 있는데 특유의 라운드타입의 벤트그릴과 함께 기능적이면서도 세련된 디테일이 눈길을 끈다. 블레이저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바는 사실 마케팅적인 자신감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헤리티지의 관점에서는 네이밍에서 그 정통성이 훼손 된 듯이 보일 수도 있지만 링컨 컨티넨탈, 포드 브랑코 등 최근 트렌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서 만든 개성 있고 강렬한 네이밍을 굳이 외면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그 자신감이 단단함과 스포티함으로 빚어낸 새로운 블레이저를 탄생시킨 것이다.
다만 한국 시장의 소비자를 만나게 된다면 언제나 그렇듯이 ‘착한 가격’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블레이저, 트래버스 그리고 콜로라도로 이어지는 쉐보레의 SUV 라인업을 한국 도로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