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의 아침에 바지를 벗다* 외 1편
김영찬
미스터 내가왜, 내가왜 씨!
내가 왜 이제사 마야코프스키를 읽어야만하죠?
나는 방랑하는 사자
어디에도 신고 되어 있지 않고
어느 땅에도 속하지 않은
무명의 존재*
그런데 내가왜 씨, 내가 왜 이처럼
늦은 봄날
두려워 떠는 바람에 / 날개의 깃털이 헝클어질*
지경으로
꼭 그 타령 그 정도로 비틀어진 머리카락 짓눌리도록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를
서른일곱 살의 아리따운 심장에
권총을 쏘아 마감한
그를
알아야 하죠?
사월의 아침에 바지를 벗다, 라고
서정을 추스르는
나를 향해
‘바로 그렇게 나는 개가 되었다’ *라고 경멸하는 눈초리의
마야코프스키
미스터 내가왜, 내가왜 씨!
사월의 모든 꽃들이 엄포 놓듯 꽃망울 터트려 달라질
세상을 귀띔하려는 듯한 오늘아침
꿈속으로
금방 몰락할 존재도 아니어서 어정쩡한
내가 왜
실패한 청춘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의 생애를 되짚어 혁명을
이해해야 하는 거죠?
*졸시제목「사월의 아침에 바지를 벗다」: 마야코프스키의 대표작 「바지를 입은 구름」에서 유추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 「망명」 중에서
*마야코프스키의 대표작 「바지를 입은 구름」 중에서 따옴
*마야코프스키의 시제목 「바로 그렇게 나는 개가 되었다」
꾸꾸루 꾸꾸~, 그라나다의 비둘기
김영찬
꾸꾸루cucuru 꾸꾸cucu~ 그라나다의 비둘기는
안전핀 없는 수류탄을 부리에 물고
드넓은 안달루시아 평원을
수평 활공한다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산맥은 푸른 눈썹 좁은 이마에
빙설(氷雪)을 얹고
가끔 큰기침
비둘기의 진로나 가로막을 듯
유태인의 일요일은 거울 속에 있다, 라고 거울 속의
일요일을
푸념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진
루마니아 태생의 정결한 시인 파울 첼란의 안색이 저러했을까
적의를 품어야할 독일어를 모국어로
가슴에 안고 시를 쓴
파울 첼란
그는
네바다의 차가운 겨울을 만나본 적 있을까
네바다는 결코 추억을 추억하지 않는다
뭐라고?
스페인내란을 잊어버리라고!
네바다는 고개를 크게 가로로 젓는다
시에라네바다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를 허리에 묻어주느라 머리 하얗다
젊은 시인의 피 붉은 심장을 수렴한
네바다가 처음엔
침을 뱉었을 거라고?
천만에, 나는 당최 모르는 일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에서 한때 동성애 연인이기도 했던
로르카의 격렬한
육성은 그런데 지금 어떻게 변주되는가?
네바다는 미간을 찌푸린다 그런 걸 캐묻기 위해
그라나다*의 석류(石榴)를
수류탄(手榴彈)으로 사용할 셈인가!
네바다의 깊은 골짜기에 헤밍웨이는 아직도 장총을 겨누고
에스파뇰 비둘기가 꾸꾸루 꾸꾸
마요르 광장을 날아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그라나다 하엔공항›* 활주로를
접수할 듯이 활개를 쳐도
—수류탄 투척만은 안 되고말고, 절대로 안 돼!
하늘이 완고하게 드높아서 귀가 쩌렁쩌렁
알바이신 골목이 무겁게 뒤흔들렸다가 진동을 멈추어도
비둘기 깃털처럼 가뜬한
사라센의 발길
*옛사라센의 수도 그라나다(Granada)라는 이름은, 수류탄(a hand grenade:영어)과 석류(la grenade:불어)를 연상케 한다.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 1898-1936) 시인의 이름을 따서 바꾼 안달루시아의 공항이름. 약칭 <F.G.L. 그라나다-하엔 공항>(Aeropuerto F.G.L. Granada-Jaé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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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찬(시인) :
충남 연기 출생. 시집 『불멸을 힐끗 쳐다보다』 및 『투투섬에 안 간 이유』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