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꿈을 꾸고 (37: 1-17)
그 동안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어떻게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약속의 땅으로 이주해 왔는지 그 과정을 배웠습니다. 이제 요셉을 통해서 우리가 앞으로 배울 것은 어떻게 구속사의 주역으로 선택된 언약의 백성이 애굽으로 내려가 400년 동안 종살이하게 되는가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예수님의 예표가 된다는 사실과 나아가 우리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요셉은 예수님의 예표로서 중요한 인물입니다.
요셉은 17세의 소년으로 어리기 때문에 좀 어리석은 부분이 있긴 하지만 창37장에 나타나는 것만 봐도 예수님의 예표가 되기에 충분한 인물입니다. 잠시 말씀 드리면 요셉은 야곱이 채색옷을 입혀 사랑했듯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최고의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고하듯 불의에 타협할 줄 모르는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태도는 훗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듯 주님도 불의를 용납지 않으시기에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또 불의를 용납지 않으시기에 지금도 대제사장으로 아버지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죄악을 낱낱이 헤아리시며 속죄의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당한 일도 그렇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자기 백성들에게 오셨지만 배척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꿈을 꾸되 높이 되는 꿈을 꾸었듯 예수님께서도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 높이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이 시간에 어찌 다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더 허버슨이 지은 “모형 연구”를 보면 요셉만 가지고도 예수님의 표상을 111가지로 말했습니다. 가령 요셉이 양을 치는 목자였듯 예수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요10:11,14) 하셨고, 형들이 요셉의 말을 믿지 않았듯 예수님의 형제들도 처음에는 예수를 믿지 않은 일이라든가(요7:5), 요셉의 형들이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했듯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이 자기 왕 됨을 원치 않았고(눅19:14), 요셉이 시기를 받았듯(창37:11) 예수님도 시기를 받아 넘김을 받았으며(막15:10), 요셉의 꿈을 아비가 마음에 두었듯 예수님의 모친도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고(눅2:51), 요셉이가 아버지의 심부름에 순종했듯(창37:13) 예수님께서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셨다(시40:7,8)는 이야기 등 허버슨은 요셉만 가지고도 셀 수 없이 많은 예수님 예표를 발굴해 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 이야기는 역사 속의 단순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약이 그렇듯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셉 이야기는 또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떤 면에서 요셉이 성도의 예표가 됩니까?
1. 우리 속에 의로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2절에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 했습니다.
우리 속에도 요셉의 성향도 들어 있고 요셉 형제들의 성형도 들어 있습니다. 형들이 양을 치면서 아버지 몰래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잘못을 의로운 요셉이 가만 두지 않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는 어떤 경우에도 숨길 수 없이 모두 하나님 앞에 고하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주신 의로움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가 자기 양심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나만 아는 일도 하나님 앞에 다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마음이 죄악으로 가득 찬 것 같아도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심어놓으신 이기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듯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성령께서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로움을 주신 것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상태를 보지 마시고 예수 안에 주신 은혜를 보고 감사하세요. 그러면 심란한 마음이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2. 야곱이 요셉을 사랑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안에서 예수님만큼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3절에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채색옷은 당시 아마포로 만든 옷으로 귀족들과 왕자들이 입는 옷이라고 합니다. 아가서의 술람미 왕후가 입었던 옷이 바로 이 옷감입니다. 이 옷이 ‘끝들의 웃옷’이라는 의미대로 손목까지 내려오도록 소매가 있고 또 발목까지 내려오도록 긴 겉옷입니다. 거기다가 채색옷은 아름다운 무늬가 있어 호화롭기 그지없습니다. 아라비아는 예로부터 무늬로 유명합니다. 이것은 일할 때 입는 옷이 아니요 왕족과 같은 귀인들이 왕궁에서 거닐 때 입는 옷입니다. 이것을 볼 때 야곱이 요셉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미워할 만큼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편애이긴 하나 단순한 편애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얼마나 요셉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그렇게 아버지의 기쁨이 되었겠습니까?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하나님의 왕자와 공주가 되게 하시고 예수 안에서 귀한 은혜와 영광을 다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마귀가 시기할 만큼 온 세상이 시기할 만큼 귀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역시 우리가 낙심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우리의 보이는 삶이 아무리 궁색하고 보잘 것 없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귀한 자녀들이며 또 예수님 안에서 그런 영광스런 복락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우리는 풍요로운 영육간의 삶을 현실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의 복도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만하거나 귀한 사역에 쓰지 않으면 잘못 될까봐 주지 않으십니다. 전도 잘하는 분들 볼 때 한 결 같이 물질의 복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목구멍이 열리지 않으면 귓구멍도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질로 섬기면서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런데 주시면 하겠다가 되면 안 됩니다. 주시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희생하면서 하는 그 마음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하신다면 구하는 것마다 다 허락해 주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3. 우리에게도 요셉의 아름다운 꿈이 있습니다.
5절에 “요셉이 꿈을 꾸고”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몽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두 번 꾸었는데 한 번은 밭에서 형들의 곡식 단들이 요셉의 단을 둘러서 절하는 꿈이었습니다. 또 다른 꿈은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이것은 부모형제 온 가족이 요셉에게 절하는 꿈입니다. 이것은 왕 혹은 왕에 준한 사람이 아니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입니다.
요셉의 꿈 너무 부러워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 안에서 하늘 같이 높이 되는 왕적인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지상의 총리지만 우리는 하늘의 왕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령 안에서 죄를 다스리고 마귀를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고 하늘의 영광을 누립니다. 우리가 지금 그 사실을 믿음으로 누립니다.
이 꿈 이야기를 요셉의 형들이 싫어했듯 우리의 복음을 가장 싫어하는 자는 원수 마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와 함께 높이 됨을 확신할 때 원수 마귀는 그 믿음 앞에서 멸망을 자초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이 자꾸만 꿈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나는 예수와 함께 영광스럽게 되었다” 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지상에서 왕과 같은 능력으로 살게 됩니다.
4.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꿈은 성취됩니다.
18-20절에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드디어 형들이 네 꿈이 성취되는 것을 보자하며 요셉을 죽이려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 빨리 꿈을 이루는 길이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없이 어떻게 요셉이 애굽에 가며 거기서 총리가 될 수 있었겠습니까? 죽어야 삽니다. 이처럼 시험은 더 빨리 가는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 더욱 겸손하게 되고 그 때 더 하나님의 은혜 속에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으십시다. 그리고 요셉은 우리 성도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받아 요셉처럼 아름답고 귀하게 쓰임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