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정치를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북극성이 제 자리에 머물러 있지만, 뭇 별들이 북극성을 향해 도는 것과 같다.”라고 하셨다.
政之爲言 正也, 所以正人之不正也. 德之爲言 得也, 行道而有得於心也. 北辰, 北極, 天之樞也. 居其所, 不動也. 共, 向也, 言衆星四面旋繞而歸向之也. 爲政以德, 則無爲而天下歸之, 其象如此. 政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잡는다는 것인데, 사람의 바르지 못함을 바로잡는 방법이다. 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얻는다는 것인데, 道를 행하면서 마음에 터득함이 있는 것이다. 北辰이란 북극이며, 하늘의 중추이다. 제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共이란 향한다는 말인데, 뭇 별들이 사면에서 북극을 둘러싸고 돌되, 그것을 향해 돌아온다는 말이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면, 하는 것이 없어도 천하가 그에게 귀의할 것인데, 그 모습이 이와 같다고 말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首訓正字 本夫子政者正也 子率以正孰敢不正之意 蓋以政之理言 若第三章集註云 政謂法制禁令 則指政之實事言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처음에 正자로 뜻풀이한 것은 공자께서 정치라는 것은 바르게 하는 것이라는 말에 뿌리를 둔 것인데, ‘당신이 솔선하여 바르게 하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뜻이니, 대체로 정치의 이치로써 말한 것이다. 만약 이 편 제3장의 집주에서 말했듯이 정치란 法制와 禁令을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정치의 실제적 일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祝氏附錄本如此 他本作得於心而不失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축씨 부록본은 이와 같으나, 다른 본에는 마음에 터득함이 있어 이를 잃지 않는 것이다로 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胡氏通 必主得於心而不失之說 膠於胡泳伯量所記 謂先生因執扇謂曰 德字須用不失訓 如得此物可謂得矣 纔失之 則非得也 此句含兩意 一謂得於有生之初者 不可失之於有生之後 一謂得於昨日者不可失之於今日 先師謂此說縱使有之 亦必非末後定本深思細玩 終不如行道而有得於心之精 當不可易也 朱子訓德字 蓋倣禮記德者得也 禮樂皆得謂之有德而言 初作得於身後改得於心 夫道字廣大天下所共由 德字親切 吾心所獨得行道 行之於身也 未足以言德 必有得於心 則躬行者 始心得之 心與理爲一 斯可謂之德 有次第有歸宿 精矣 今曰得於心而不失 則得於心者 何物乎 方解德字 未到持守處 不必遽云不失 不比據於德 註云 據者 執守之意 得之於心而守之不失 又云 據德 則道得於心而不失 此兩不失字 乃自據字上說來 況上文先云 德則行道而有得於心者也 其證尤明白 若遽云不失 則似失之急 又近於贅 大學序所謂本之躬行心得 躬行卽行道 心得卽有得於心也 以前後參觀之而祝氏定本爲尤信 호씨통(운봉호씨의 책)에서는, 반드시 ‘得於心而不失’이란 학설에 주안점을 두고, 胡泳 伯量(호영의 자)이 기록한 바에 고정하여, 선생에게 부채를 잡고서 말하길, 德자는 모름지기 不失(잃지 않음)을 이용하여 뜻풀이해야 하는데, 이 사물을 얻었다면, 得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잃어버린다면, 이는 얻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으니, 하나는 태어난 그 처음에 얻은 것으로서 태어난 뒤에는 그것을 잃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또 하나는 어제 얻은 것을 오늘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옛 스승께서 말씀하시길, 이런 말이 설령 있다고 할지라도, 이 역시 반드시 최후의 정본인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심사숙고하여 상세하게 음미하면, 결국 ‘行道而有得於心’의 정밀함만 못한 것이니, 마땅히 바꾸어서는 안 된다. 주자가 德자를 뜻풀이하면서, 아마도 예기의 ‘德이라는 것은 得이다.’는 구절을 모방한 것 같다. 예악을 모두 터득한 것을 일컬어 덕이 있다고 말하였지만, 처음에는 자기 몸에 터득함이라고 하였다가, 나중에는 마음으로 터득함으로 고쳤다. 무릇 道라는 글자는 광대하면서도 천하의 모든 사람이 함께 말미암는 바다. 德이라는 글자는 가깝고 절실한 것이니, 내 마음이 홀로 道를 터득하여 행하는 것이다. 이를 내 몸에 행한다고 할지라도, 아직 德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것이다. 반드시 마음에 터득함이 있어야만, 자신이 직접 행하는 것을 비로소 마음으로 터득하여, 마음과 이치가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비로소 이를 일컬어 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리하면 순서가 있고 귀결점도 있으니, 참으로 정밀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마음으로 터득하여 그것을 잃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과연 마음에 터득된 것이 어떤 것인가? 바야흐로 德자를 풀이함에 있어, 아직 붙잡아 지킬만한 곳(持守處)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갑자기 잃지 말아야 한다고 반드시 말할 필요는 없으니, 德에 근거한다고 말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집주에 이르길, 근거한다는 것은 붙잡아 지킨다는 뜻이니, 마음에 터득하고서 그것을 지켜서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르길, 德에 근거한다는 것은, 道를 마음으로 터득하여 잃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2개의 不失이란 글자는 오히려 據자 위로부터 말한 것이니, 하물며 윗글에서 먼저 德이라는 것은 道를 행하여 마음에 터득함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였으니, 그에 대한 증명이 더욱 명백한 것이다. 만약 갑자기 잃지 않음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너무 조급함에서 잘못되는 것과 같으니, 역시 군더더기와 가까운 것이다. 대학의 서문에서 이른바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터득한 것에 뿌리를 둔다’고 하였으니, 躬行이란 곧 道를 행하는 것이고, 心得이란 곧 마음으로 터득함이 있는 것이다. 앞뒤를 참고하여 잘 살펴보면, 祝氏의 定本이 더욱 믿을만한 것이 된다.
邵子曰 地無石之處皆土也 天無星之處皆辰也 소자가 말하길, “땅에 돌이 없는 곳은 모두 흙이고, 하늘에 별이 없는 곳은 모두 辰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北辰是天之樞紐中間些子不動處 然人要取此爲極 不可無箇記認 所以就其旁取一小星謂之極星 天之樞紐似輪藏心 藏在外面動 心都不動 問極星動不動 曰 也動 只他近那辰 雖動不覺 如射糖盤子 北辰便是中央樁子 極星便是近樁點子 雖也隨盤轉 然近樁子便轉得不覺 沈存中謂始以管窺極星 不入管後 方見極星在管弦上轉 史記載北辰有五星 太乙常居中是極星也 辰非星只是中間界分 極星亦微動 辰不動乃天之中 猶磨之心也 주자가 말하길, “북극은 하늘의 중추 가운데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취하여 극으로 삼으려면 기억하여 인식할 것이 없으면 안 된다. 그래서 그 곁으로 나가 하나의 작은 별을 취하여 이를 일컬어 북극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늘의 중추는 바퀴의 살심과 같아서, 외면에 장착되어 움직이지만, 그 중심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북극성은 움직입니까? 움직이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길, “그것 역시 움직인다. 다만 그것이 저 북극에 가깝기 때문에, 비록 움직여도 깨닫지 못할 뿐이다. 예컨대 사당반자와 같은 것이니, 북극은 곧 중앙의 기둥이고, 북극성은 곧 기둥에 가까운 점인데, 비록 원반을 따라 돌기는 하지만, 그러나 기둥과 가까워서 돌아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심존중이 말하길, 처음에 管으로 북극성을 엿볼 적에, 북극성이 관에 들어가지 않게 된 후에 바야흐로 북극성이 관의 현 위에서 도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사기에 실려 있기를, 북극에는 5개의 별이 있는데, 태을이 항상 중앙에 거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북극성이라고 하였다. 북극은 별이 아니라 그저 가운데의 경계 구분일 뿐이다. 북극성은 역시 미세하게 움직이나, 북극은 움직이지 않으므로, 마침내 하늘의 가운데이니, 맷돌의 가운데와 같은 것이다.
又曰 天圓而動 包乎地外 地方而左旋不息 其樞紐則在南北之端焉 謂之極者 如屋脊 謂之屋極也 南極入地三十六度 故周回七十二度 常隱不見 北極出地三十六度 故周回七十二度常見不隱 北極之星正在常見不隱 七十二度之中 常居其所而不動 其旁則經星隨天左旋 日月五緯右轉更迭隱見 有似於環繞而歸向之也 다시 말하길, “하늘을 둥글고 움직이되 땅 이외의 것을 포괄하고 있다. 땅은 네모지나 좌측으로 쉬지 않고 돌고 있다. 그 중추는 남북의 극에 있는데, 이를 일컬어 극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집의 척추를 일컬어 屋極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남극은 땅으로 36도나 들어가 있기 때문에, 72도를 빙 둘러 회전해도 항상 숨어서 보이지 않는다. 북극은 36도나 땅 밖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72도를 빙 둘러 도는 동안 항상 숨지 않고 드러난다. 북극의 별은 바로 항상 숨지 않고 보이는 72도의 가운데에 있어서, 항상 제자리에 있으며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곁의 목성은 하늘을 따라 좌측으로 선회하고, 해와 달과 5개의 행성는 우측으로 돌아서 번갈아 숨거나 나타나곤 한다. 이는 마치 빙 둘러싸고 돌면서 그것을 향해 돌아오는 것과 같은 것이 있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德字從心者 以其得之於心也 爲政以德者不是把德去爲政 是自家有這德 人自歸仰 如衆星共北辰 北辰者天之樞紐 乃是天中央安樞處 天動而樞不動 不動者正樞星 位樞有五星 其前一明者 太子 其二最明者 曰帝座 乃太一之上居也 其後一箇分外開得些子而不甚明者 極星也 惟此一處不動 衆星於北辰亦是自然環向 非有意於共之也 주자가 말하길, “덕이라는 글자는 마음(心)을 부수로 갖고 있는데, 마음에서 그것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덕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덕을 움켜쥐고 가서 정치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덕을 갖고만 있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돌아와서 우러러본다는 것이다. 마치 뭇 별들이 북극을 향해 도는 것처럼 말이다. 북극이라는 것은 하늘의 중추이니, 곧 하늘의 중앙에 중추가 끼워진 곳으로서, 하늘은 움직여도 중추는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바로 樞星인데, 중추에 위치한 것으로는 5개의 별이 있다. 그 앞의 밝은 하나는 太子이고, 그 두 번째는 제일 밝은 것으로서 帝座라고 말하니, 곧 太一의 위에 있다. 그다음 하나는 뜻밖에도 조금 열려 있으면서도 아주 밝지는 않은 것이 바로 북극성이다. 오직 이 한 곳만이 움직이지 않으니, 뭇별들이 북극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빙 둘러싸고 향하는데, 떠받드는 것에 무슨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德與政非兩事 只是以德爲本 則能使民歸 덕과 정치는 두 가지 일이 아니다. 단지 덕을 근본으로 삼기만 하면, 백성으로 하여금 능히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爲政以德 非是不用刑罰號令 但以德先之耳 덕으로써 정치를 한다는 것은 형벌로 호령함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덕으로써 우선한다는 것일 뿐이다.
新安陳氏曰 爲政以德 本也 無爲而天下歸之 效也 無爲而天下歸之 本文未嘗明言此意 只是取象於北辰 其中含此意 北辰爲天之極 譬爲政以德之君爲天下之極 居其所 譬人君之無爲 衆星共之 譬天下歸之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근본이다. 하는 바가 없어도 천하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은 그 효과다. 하는 바가 없어도 천하가 돌아온다는 것에 대하여, 본문에서는 이 뜻을 밝혀서 말한 적은 없다. 단지 북극에서 그 모습을 취했으니, 그 안에 이 뜻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북극이 하늘의 극이 된다는 것은 덕으로써 정치하는 임금이 천하의 극이 됨을 비유한 것이고, 제 자리에 위치한다는 것은 임금의 無爲를 비유한 것이며, 뭇 별들이 떠받든다는 것은 천하 사람들이 그에게 돌아옴을 비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