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다는 건
요즘은 줄곧 추위와 눈雪 그리고
경제가 혹독하게 이 겨울을 꽁꽁 묶고 있는 듯합니다.
이렇게 흐르는 시간들의 기준은
고정되지 않고 늘 변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삶을 고정된 상태를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 계절도 우리는 겨울이라고 하고,
처음부터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정된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그런 대상과 맞닥뜨리게 되리라는 것은
결국에는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럴 때 흔히 역경逆境이라고 부르지만,
이는 실재實在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또는 익숙했던 방식이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익숙하지 않은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명이란 특정의 상태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자신을 표현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고정된 상태에서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다면,
죽음, 즉 생명형상을 멈추게 할 것입니다.
하는 일마다 바라는 대로 술술 풀린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평상시 음주운전을 하는 사람이
단속에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그 일은 자랑을 할 일이 아닙니다.
요행으로 경찰들에게 들키지 않았을 뿐,
음주상태를 바꾼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경逆境이라는 것은
어느 날 내게 들이 닥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 택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내가 선택한 것들로 인하여 잘못 되었다면
얽히고 섥힌 그 굴레에서 벗어 날 생각은 못하고
더 그 일에 대한 좋았던 순간의 미련 때문에
더 깊이 빠져드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몸을 비롯한 갖가지의 환경,
언어적인 습관,
그리고 독특한 행동거지 까지 나름대로
선택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삶의 모든 조건들에 앞서서
생명이 있어왔기에 그렇습니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역경逆境이 닥침으로 해서
잘못된 삶이 수정되어야 한다는 자각이 싹트게 되므로,
이 때를 일러 극락이라고 하는 역설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시는 극락세계는 이렇습니다.
[사리불아,
저 세계를 어찌하여 극락이라 하는 줄 아닌가.
저 세계에 있는 중생들은 아무 괴로움도 없고,
다만 온갖 즐거움만 누리므로 극락이라 하느니라.]
극락에 대한 참으로 명쾌한 정의입니다.
말 그대로 아무런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만 누리니 극락입니다.
그러면 어떤 이를 그럽니다.
푸념 아닌 푸념을 하지요.
“아니,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그래도 난 괴로운 골 어떻게 해.”
“누군 괴롭게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아슈?”
“나야 괜찮지만 그 인간 때문에 괴로워 죽겠어.”
가만히 살펴보면
도대체 뭘 얘기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마치 즐겁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듯합니다.
즐거우면 그만이지,
왜 인간이 나오고 조건이 붙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즐거움을 바란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괴로움을 자기화自己化하는 데 능한 사람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만 온갖 즐거움만 누리므로 극락.”이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말해서 극락이란 자재自在한 삶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은 이제 정해져 있습니다.
즐거움을 자재로이 택해서 살면 그만입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스스로가 택한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자신이 택한 인생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즐거움입니다.
자신이 선택했던 많은 일들인 데
누구를 원망하고 왜 괴로워합니까?
자신이 선택한 일들이니 무엇이나 즐거워해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했지만 괴로운 날들 뿐이라고요?
그래서 갈림길에서는 늘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하고
그 갈림길에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지혜로운 선택을 했어야 합니다.
누가 만들어 준 역경逆境이 아니라
내가 만들은 틀 속에 갇힌 현재의 고뇌가 역경逆境이라는 얘기겠죠.
누구를 원망을 하면 안됩니다.
그때 그 인간을 만난 게 아니었어,
그때 그 사람 말을 안 들었어야 해,
그때 그 사람을 믿은 게 탈이 난거야.
그러나 이런 푸념은 누구에게도 쏟아내면 안 됩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지
누가 억지로 하게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모든 선택은 내가 했습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 한다는 건 핑계일 뿐입니다.
그런 핑계를 들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자네가 멍청한 것이지 이제야 넋두리 하면 뭐 하는가?’하고
당신에게 핀잔만 할 뿐 다른 도움도 못됩니다.
역경逆境은 누굴 탓 할게 아닙니다.
내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자신이 선택하였으니 늘 즐겁게 지내야 하는 것이고
자신이 선택을 하였으니 누구를 원망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실패,
이 또한 소위 객관이라는 이름의 생대적인 평가이지만
그것도 즐거운 것입니다.
당연히 실패도 엄연히 스스로 택합니다.
뜀박질을 하다가도 무릎이 깨어져도
누굴 원망할 수 없는 일입니다.
누굴 원망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일어나서 더 힘껏 달려야지요.
넘어졌다고 화가 난다고 땅을 걷어찰 수는 없습니다.
그 땅을 걷어차거나 돌을 걷어찼다면
도리어 발가락마저 해체는 것은 진짜 어리석은 일 인거죠.
인생이란 닥치는 모든 것,
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선택한 모든 것을
그저 즐기고 사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택해서 스스로 받는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 드리는 따끈따끈한 글입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차시기 바랍니다.
2024년 01월 14일 오전 07;29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운월야인雲月野人 진각珍覺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