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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9월 03일(목요일).
형산/옥녀봉 : 경북 경주시 / 포항시.
▣산행코스 : 국당리형산입구-기원정사-형산-농바위-옥녀봉-생태공원전망탑-소형산-형산입구.
▣산행시작 : 국당리형산입구 07시 32분.
▣산행종료 : 국당리형산입구 12시 26분.
▣전체거리 : 약 13.2km.
▣전체시간 : 05시간 54분.
▣운동시간 : 04시간 16분.
▣휴식시간 : 00시간 37분.
▣누구하고 : 정명님. 둘리님. K님. 요산(필자). .
07 : 32 국당리형산입구.
08 : 13 기원정사.
08 : 22 형산.
10 : 02 농바위.
10 : 13 옥녀봉.
10 : 23 생태공원전망탑.
12 : 07 소형산.
12 : 26 형산입구.
▲ 07시 31분 : 경북 경주시 국당1리 입구.
▲ 정국사 빗돌에서 좌측 공터에 파킹하고.. 국당리방향으로 1분가량 진행하면..
▲ 피라밋형상의 지붕이 보이는 지점의 형산들머리에서 하산하게될 소형산과 눈인사를 하고..
▲ 산죽이 보이는 곳에서 희미한 산판길로 접어 든다.
▲ 철탑을 세우기 위해 만들어진듯한 산판길을 따라.. 3~4분가량 올라가면..
▲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위를 좌측으로 에돌아가면.. 전망바위가 나온다.
▲ 전망바위에서 형산강을 따라 바라본 포항 시가지방향..
포항(浦項)의 '포(浦)'는 '갯가'를 의미하고.. '항(項)'은 '목'을 의미한다. 따라서 '포항'은 '갯가의 목처럼 좁은 곳'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며... 지리적으로 포항은 형산강과 관련이 깊은 지역으로, 포항강(현재의 칠성천)과의 관계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 지역은 수군 진지인 '통양포만호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포항 지역이 연일현의 옛 소재지로 불리며 '고현면(古縣面)'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현재의 '포항'이라는 이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제산..
이왕 이자리에 섰으니.. 이지역에서 전해지는 형산과 제산과 형산강에 얽힌 설화를 한번 살펴보자. 지금의 형산강을 기준으로 남쪽은 "형산"이고 북쪽이 "제산"이다. 이곳은 옛부터 "형제산"이라 하여 두 산이 붙어 있었는데 산이 막혀 있어서, 경주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안강에서 지대가 낮은 신광으로 흘러갔다고 한다. 삼국통일 이전이나 이후에도 비가 많이 올 때면 큰 홍수가 나고 침수가 되어 신라의 수도인 경주 계림 궁궐 마루까지 침수가 되곤 했다. 삼국통일 후 인구가 50만~80만이 살았다고 하는데, 몇 백년 동안 홍수가 반복되면서 피해가 극심해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왕과 군신들이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렇다 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이때.. 무열대왕과 김유신 장군이 내기를 했고 그 방법은 산을 잘라서 강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라시대가 오늘날과 같은 중장비 기계가 눈부시게 발달한 시기도 아닌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이 매우 어려운 묘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무열대왕과 김유신 장군이 생각해낸 묘책은 다름 아닌 “산을 자를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가진 용(龍)이 되면 되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용’이 된 김유신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용의 꼬리로 힘껏 쳐서 산을 잘라 형산강이 생기니 이때부터 산에 막혀서 고여 있던 물이 물길이 생기면서 형산강 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김유신이 아닌..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김충(마의태자)가 용이되어 산을 잘랐다는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AI시대의 눈으로 보면,, 용의 꼬리로 산을 잘랐다고 하는 얘기는.. 김유신이던.. 마의태자던..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해서.. 아래와 같이 이지역에 홍수가 범람하였던 상황을 나름대로 유추해 보았다.
▲ 윗 지도를 보면..
첫째.. 안강들판에서 빠져 나가는 물길이 "ㄱ"자 곡각지점에서 물흐름이 둔화 되었을 것이고..
둘째.. 형산과 제산이 원래 하나로 붙어 있지는 않았고 좁은 수로로 병목 현상이었지 않았을까?..
아래지도를 보면.. 그렇게 상류에서 흘러온 물의 양에 비해 빠져 나가는 물이 적으니 상습 침수로 자연 호수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김유신이나 마의태자가.. 민생시찰을 나갔을때.. 큰 홍수가 발생하여 급격하게 불어 났던 물의 엄청난 압력으로 형산과 제산에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토사가 밀려 내려가면서 병목이었던 물길이 트이고 강폭은 넓어 졌을 것이다. 이때 때맞추어 현장에 있었던 김유신.. 또는 마의태자에게 백성들의 감사함이 세월이 흐르면서.. 설화로 둔갑하지 않았을까...
▲ 형산 전위봉에 올라서니.. 우람한 바위들이 보이고.. 굿당의 흔적도 보인다.
▲ 주변의 바위군..
이곳이 풍수적으로 용의 뿔에 해당하는 곳이란다. 이곳은 남쪽에서 맥을 이어오다가 어깨를 틀어 동쪽 하늘로 청룡이 승천하는 형이며, 용머리가 큰 바위로 모여 있으며 용머리에서 형산강으로 뻗어 내려간다. 조계종 수월대종사 큰스님께서 불기2538년에 기원정사에 오셔서 산을 둘러보시고는 우리나라에서 최고 명당 청룡혈 이라고 하셨으며, 몇십년전 풍수지리에 최고로 이름을 날리던 육관도사 손석우님께서 불기 2539년에 당 사찰에 초청하여 와보시고 우리나라에서 청룡혈로서는 최고의 명당이라고 하였다.
▲ 보기에도 섬뜩해지는 실타래도 주렁주렁 걸렸다.
▲ 청룡혈 머리 앞에 갓바위 관세음보살님.. 불기 2544년(서기2000년)도에 큰 바위로 조각하여 몸체높이가 14자이며 좌대까지 높이가 20자다. 약사여래불로 약단지를 들고 있다.
▲ 기원정사 갓바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포항시.
형산강 유역에는 윗부조장과 아랫부조장 두 곳의 장시가 개설되었었는데, 부조(浮助)의 ''부(浮)' 는 배가 물에 뜬다는 뜻이고, '조(助)'는 돕는다는 뜻이다. 과거 형산강을 오가던 선박과 상업 활동을 통해 지역 경제가 발전했던 역사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아랫부조장은 영일현 서면 중명리(현 연일읍 중명리) 일대에 1750∼1905년까지융성했다고 ‘경상도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곳은 함경도 명태, 강원도 오징어, 포항 연안의 청어. 소금을 내륙으로 팔고 전라. 경상도의 농산물을 교역하는 상거래 요지로서, 형산강 일대에 수많은 황포돗대와 객주. 여각은 물론 창고업, 위탁판매업, 숙박업이 번성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는 조선시대 3대 시장의 하나였다.
‘경주부읍지’에도 “윗부조장(현 경주시 강동면 국당리)에서 갈라져 나와 아랫부조장(연일읍 중명리)이 새로 생겼었고 윗부조장이 선박 접안이 불편한 반면.. 아랫부조장은 접안시설이 좋고 포구에 훨씬 가깝기 때문이고, 후에 아랫부조장이 전국 규모의 부조장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고 기록되어 있다.
▲ 한국의 철강산업을 이끌었던 포항제철..
▲ 08시 13분 : 기원정사..
무량수전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보물 제1615호 이 불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환성사미타삼존조성결원문을 통해 1466년에 조성역사를 시작하여 1474년에 비로소 완성으며, 불상의 조성발원에는 왕실종친부 및 지방관료. 양반. 양민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형산기원정사는 천삼백년 전 신라시대 때 고찰이며.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신라 때는 형산사였는데 옥련사, 왕룡사, 왕룡사원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기원정사이다.
▲ 용왕전..
목조문무인상이 모셔져 있다. 두분 중 한분은 신라중엽에 무열대왕이시고 또 한분은.. 용이되어 형제산을 갈라 물길을 텃다는 김유신 대장군이라 한다.
▲ 형산으로 가는길은 용왕전 맞은편 향나무 사이로 진입한다.
▲ 기원정사 공덕비..
▲ 맑은 날씨였다면.. 운제산과 무장봉.. 멀리 묵장산까지 보일텐데..
▲ 08시 22분 : 형산 정상. 정상석은 보이지 않는다.
▲ 산객의 발길이 뜸했던지 칡넝쿨이 무성하다.
▲ 아쉬움에 경주쪽을 다시 살펴보고..
▲ 형산의 습지.
신라 시대에는 형산을 북형산(北兄山)이라 불렀다. 산 정상부에 왜구를 지키기 위해 673년(신라 문무왕13년)에 쌓았다는 토석성(土石城) 북형산성이 남아 있다는데 지금은 숲이 우거져 알수가 없다.
▲ 기원정사길을 만나서 우측으로..
▲ 기원정사길에서 국당2리로 내려가다가 옥녀봉쪽으로 급 죄회전..
▲ 경주땅에서.. 포항 시경계로 가는길..
▲ 포항시에서는 가깝지만 행정구역이 다르고.. 관리주체인 경주에서는 내버려둔듯.. 관리가 되지않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 09시 28분 : 소형산 갈림길.
40여분간 풀섶을 헤치며 어렵사리 올라와서 만나는 포항시경계.. 이정표가 너무나 반갑다.
▲ 이땅의 소나무.. 한국의 소나무.. 우리의 미인송이 하나둘 우리곁을 떠나려고 한다.
▲ 관리가 잘되어 있는 옥녀봉 가는길.. 좌측은 포항시.. 우측은 경주시다..
▲ 09시 51분 : 253봉.. 운제산 갈림길..
▲ 10시 02분 : 농바위..
양반댁 아씨와 머슴의 사랑이야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러브스토리 텔링이다.
▲ 옥녀봉 가는 길에는.. 격몽요결도 있고.. 명심보감도 있고..
▲ 옥녀봉 가는길..
포항쪽은 등산로는 잘되어 있는데.. 주등로에서 벗어난 정상은 잘 안가는가 보다.. 묵은길이다.
▲ 10시 13분 : 옥녀봉..
▲ 근처에 전망탑이 보여서..
▲ 10시 23분 : 생태공원 전망타워..
▲ 가야할 마지막 오름인.. 소형산을 가늠해 본다.
▲ 기원정사를 당겨본다.
▲ 배롱나무..
매끄러운 살결 위로..
붉은 실타래가 타오른다.
붉고 분홍의 구름 같은 꽃송이들을..
가지마다 걸어 두고..
백일이 넘도록
바람이 머물다 가고 햇빛을 품는다.
긴 여름을 건너며 피어 있는 것은..
꽃이 아니라..
희망이라는 것을
너는 말 없이 보여준다.
▲ 숨은 그림찾기.
▲ 포항 환경학교.
▲ 중명생태공원은..
2022년 여름 초대형태풍 힌남로가 포항을 초토화시켰다. 4년이 지났지만 잊어지지 않은 이름이다. 여기 중명자연생태공원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복구하는데만 4년 여의 세월이 흘렸고 복구와 동시에 입구에 번듯한 3층건물(포항환경학교)가 새로 오픈되었다.
▲ 소형산가는길은 바닥까지 내려 갔다가.. 다시 오른다.
▲ 11시 31분 : 소형산 갈림길.
▲ 소나무 그루터기에 핀.. 노루궁댕이..
▲ 소형산 가는길의 운치있는 수제의자..
▲ 12시 07분 : 소형산..
몇년전에 부조정(정자)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철거해 버렸다고 한다.
▲ 건너편의 형산과.. 형산강..
형산강의 발원지는 원래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의 백운산 탑골샘이었는데, 논쟁 끝에 경북 경주시 서면 도리의 인내산인출샘으로 바뀌었다. 국토지리원은 인출샘에서 강 하구까지 유로길이가 65.5Km로 탑골샘에서 하구까지의 62.2Km보다 3.3Km 더 길다며 형산강의 발원지를 변경한 것이다. 이렇게 형산강의 발원지가 경주 인내산의 인출샘으로 변경된 것은 2000년 5월 건설교통부에서 발간한『한국하천일람』에서도 확인된다.
▲ 포항시 연일읍과 경주시 강동면을 잇는 국당리의 부조천..
▲ 국당리 입구.. 환종주 마감..
▲ 13.2km를 평속 3.1km/h로 주파..
▲ 귀구길에 영천시장 할매국밥.
첫댓글 수고하셨습니다 잘 감상하고 멋진 작품 들 보고 나갑니다 감사합니다.
일기가 흐리고 수풀림을 헤쳐 나가는 길이었지만 나름대로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