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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8:31~45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우리를 말할 때의 우리 는 지금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 교인이어서 신구약 성경을 믿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말이며, 하나님의 백성이고, 성도며, 자녀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유대인들도 우리와 같은 성경을 경전으로 가지고 있으며,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있으며, 저들이 우리와 다름이 있다면 저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들이고, 우리는 택함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고, 그래서 저들은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고 하고, 모세라고 하는 지도자로 인하여 율법을 가지고 있고, 유대 종교를 가지고 신앙으로 사는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가지고 있고, 예수를 구원자로 믿으며, 기독교 라고 하는 교리를 가지고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생활을 하고 살면서 스스로 믿음의 자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 저들은 하나님의 자녀에 가깝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의 혈통까지 가지고 있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아브라함의 자손의 자긍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 8장의 본문을 보면, 그런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이 “너희가 믿고 있는 믿음도 성경이 인정하는 그 믿음이 아니며, 너희가 믿는 하나님도 성경의 그 하나님이 아니며, 너희가 아버지라고 조상이라 부르는 아브라함도 너희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아브라함과 관계없는 자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런 주장은 그들이 가진 신앙의 근본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며, 동시에 오늘 기독교에서 믿고 있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시는 말씀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들]은 요8:33, 39절에서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이 곧 자신들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저들의 그런 주장에 대하여 39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자손의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증거는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로 인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지금 가지고 있는 너의 (신앙) 삶이 아브라함과 같아야 자손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2절에서 주님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 됨의 근거는 유대교나 기독교나 목사나 장로 집사가 돼서 종교 생활하는 자 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거듭남이라는 과정을 거쳐 종교로 사는 자에서 말씀으로 사는 삶이 바뀐 자가 되어, 삶에서 예수를 사랑하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 될 때 자녀로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43절에서 자녀가 아닌 증거로 “내 말을 들을 줄 모르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들에게 내 말을 들을 줄 모른다는 말씀은 유대 종교로 즉, 유대교 지도자들의 말로 사는 자 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 됨은 하나님이 구원자로 보낸 예수의 말로 사는 자 곧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는 자여야 함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또한 44절에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의 욕심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보니 마귀의 자녀가 맞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의 행동을 보니 하는 짓이 마귀가 하는 짓을 하고 있으니 그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을 읽어보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입었으며, 육신적으로 볼때에도 아브라함의 혈통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그를 조상으로 여기는 것이 틀리지 않으며, 대를 이어가면서 유대교 전통 신앙을 가지고 산 것도 맞습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이러한 전통의 뼈대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으며, 더구나 모세와 다윗과 같은 훌륭한 조상들이 그들의 신앙적인 견고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실제 생활에서도 성경의 모든 법을 준수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통 신앙은 오직 살아 계신 유일하신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그 출발점을 두고 있었기에 감히 누가 이러한 유대교에 대해 엉뚱한 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에서 태어나 목수 일을 하던 시골 청년 하나가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며,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가진 믿과는 다른, 그러므로 그의 자손이 아니라며 정면으로 부인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는 너희가 자녀가 아닌 근거로 요8:37~41절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신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너희 아버지라면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너희를 보면 아브라함과 도무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아브라함의 자녀라 주장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말로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한들 다른 집 자식이 우리 집에 와서는 내가 맘에 든다고 아버지 라고 한다면 그렇게 한 것이 그의 자손임을 보증해주거나 뒷받침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주장은 너희가 입으로는 아브라함을 아버지하고 부르지만 너희 삶의 모습을 봐서는 너희 아비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마3장:9절에도 보면, 세례요한은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임에 대해 자긍심을 느끼고 있는 그들에게 "너희야 말로 내가 보니 독사의 색끼다." 라고 책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예수님의 이 말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그의 육체적인 혈통만을 고집하고 하나님의 자녀라 주장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산 아브라함처럼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부터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 보여진 너희들을 보면 그 어디에도 아브라함의 자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으니 어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그의 아들인 이삭이 가지고 있었던 순종의 믿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어, 삶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인정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이삭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사람 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아들 이삭은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었던 순종함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은 이삭과는 다르게 혈통만을 주장하면서 아브라함이 우리 아버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의 혈통은 믿음의 세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님이 주장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의 우리들을 살펴볼까요?
이방인이었으며, 세상 사람이었다가 어떻게 해서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고, 기독교 교인이 돼서 유대인들처럼 기독교 교리를 배워 가지고 교회 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씀하고 있나요?
아니라면 지금 우리는 누구인가요? 아닌데.... 생각으로는 유대인들처럼 우리도 기독교 교인으로 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자녀라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요?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라고 주장하려면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현재 삶으로 증명해야 하지 않을까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자녀 됨에 합당한 삶은 없이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고, 교회를 다니며, 신학을 공부하여 전도사, 목사 장로 집사가 된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참고할 말씀: (마7장 22~24절)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 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요8장 본문에 나오는 저들은 그나마 혈통이라도 가지고 있었기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해할 수는 있지만, 오늘의 우리들은 무슨 근거로 자녀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손이라고 주장을 하려면, 성경의 어떤 자녀 됨의 과정을 거친 이후의(요1:12절)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으로 증명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다니는 기독교 종교인이 된 것으로, 또 유대인들처럼 입술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예수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또 교회에서 하는 이런저런 일들을 열심히 한 것을 경력으로 내 세워서 하나님 자녀라고 주장하려고 한다면 마7장20절의 말씀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처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알지 못하면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주장해 본들 무슨 아무 소용없었다는 것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진짜 아브라함의 자녀란 어떤 사람을 두고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삭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은 늙은 나이로 자녀를 생산 할 수 없는, 그래서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죽은 자와 같은 몸이었는데,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아들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믿어서 아브라함이 100살에 낳은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 됨의 증거로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을 자신의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이는 자녀는 자녀의 삶 즉, 그가 자녀로 인정 할 만한 것을 가진 것으로 말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도 자신을 아들로 주장 할 때, 내 입에서 똑같은 아버지의 말이 나오지 않느냐로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는 공생애의 삶에서 아버지의 행사(8:12)를 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이름만 아브라함을 말할 뿐 행위는 이삭의 순종함의 신앙이 아닌 종교 욕심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비(마귀)의 행사를 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비는 비록 이름은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어도 마귀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 속에는 육의 혈통은 가지고 있으나 하나님의 자녀 됨의 근거가 되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이 없었으며, 그렇다면, 그는 세상 사람 즉, 마귀에 자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었는지를 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바로보기 전에는 더 이상 교인 된 것으로,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으로, 기독교인으로 목사 장로 집사로 교회 일 열심히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기독교라고 하는 종교를 가지고 사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뜻을 알아 예수처럼 제자들처럼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사는것이 아닌, 교회 직분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만 종교 행위로 열심을 내고, 대를 이어서 목사 장로가 집사가 된 것을, 또 건물교회를 세우고, 더 크게 넓히고, 자기들만의 울타리를 쳐 놓고, 세상 학위를 가진 운영자를 목사로 두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 기독교 방송에 이름까지 내는 등...의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산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라 주장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사도바울처럼 나의 불타는 사명감을 진리의 삶을 사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한다면, 마7장22절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주여! 주여! 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고 내가 이렇게 많이 모았고 선교를 많이 하고 있으며, 주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구제도 하는 사람이 아닌지 뒤돌아 봐야 할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자신의 종교 생활을 열심으로 한 것을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고, 그가 말하는 진리에 머물고 있으며, 믿음으로 사는 것으로 여기는 착각을 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육 적 혈통까지 가지고 있었고, 다윗을 왕으로 모시면서, 모세의 율법을 따라 회당에서 열심을 다해 사느라고, 지금 자신들이 도무지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은 꿈속에서도 하지 못했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마치 큰 교회 목사가 교회라는 기업체(?)를 만들어 놓고 자신이 나이 들어 늙어 아들에게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물려주는 등,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면 그가 누구의 자녀냐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사탄의 자녀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에 보여진 유대인들의 신앙을 볼 때 저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결코 인간의 욕심인지는 생각도 못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한 줄로만 생각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울(바울 되기 전에)이 그리스도인을 진멸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는 그 열심이 무엇인지 모르고 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지금 누구의 자녀 일까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 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자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의 나는 유대인들처럼 기독교라고 하는 집단을 만들어 놓은 종교에 몸 담고 있으면서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교회 일을 열심히 하고 살면서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여기는 나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녀는, 자신의 삶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말과 같은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말씀이 말한 대로 순종하는 이삭처럼 내 삶에 하나님의 하신 말씀에 순종함이 있어서 예수님과 같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영혼을 구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사는 삶을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사랑으로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은 부르면서, 주님 뜻대로 한다는 말을 입으로는 말하고 있으면서, 그 삶의 모습은 여전히 율법적이고, 종교적이며, 종교를 이용한 세상의 것에 욕심과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마7:22절에 나오는 대로 자기의 목적 때문에 주님의 이름만을 불러 대는 세상 사람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삶이었고 그 아들 이삭 역시 순종함으로 아들이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십자가 지기까지 순종하셨기에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되는 길은, 요 1:12절에 기록된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영의 신분으로 다시 우리 마음 안에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마음에 믿어 실제로 진리의 영 곧 말씀을 자기 마음 안에 영접해서 모시고, 그분이 내 안에서 나를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 된 것이 자녀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인 것을 잊지 마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