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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튜링을 연기하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정부암호학교 내에서...
[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앨런 튜링은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를 해독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일찍 종식시킨 인물, 동성애자, 독이 든 사과를 깨물고 자살한 극적인 최후’ 등으로 회자되는 인물입니다.
이와 같은 컴퓨터 천재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군침을 흘리던 매혹적인 소재였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기밀 작전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베일에 감춰져 왔습니다. 게다가 자살로 마감한 그의 삶에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비극적의 인생을 살았던 수학 천재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촘촘히 진행되어 나갑니다. 영국 드라마 <셜록>의 주인공인 셜럭 홈즈로 나오는 유명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튜링으로 나옵니다. 천재와 괴짜, 전쟁 영웅과 범죄자 사이에서 겪는 주인공의 외로움과 좌절, 죄책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보여줍니다.
베네딕트는 자신이 각본을 직접 읽고 영화 출연을 자청했을 정도로 이 영화에 열의를 보였다고 합니다. 영화 내내 튜링의 독특한 개성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전반부에서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정작 본인은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동료들의 눈에는 꽉 막힌 외골수로 비치는 인물입니다. 전형적인 천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키이라 나이틀리가 역을 맡는 조안 클라크는 암호 해독팀의 유일한 여성 멤버로 나옵니다. 그녀는 사회나 국가가 외면한 튜링의 캐릭터를 유일하게 이해하고 감싸주는 휴머니스트로 나옵니다. 노르웨이 출신의 모튼 틸덤 감독은 천재에 대한 단순한 전기영화로 만들지 않고 로맨스, 액션, 스릴러, 등의 다양한 장치를 버무려 넣으면서 영화를 차원 높게 승화시켰습니다.
이 영화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앨런 튜링과 똑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야말로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튜링은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는 때가 거의 없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는 것에는 서툴렀습니다. 아울러 자신만의 세계에만 빠져 있는 듯 보였습니다. 또한 유리처럼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정작 독일의 암호를 풀기 위하여 크리스토퍼라는 기계를 만들 때의 집중하는 모습에는 연약함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도리어 이 극도의 집중 속에서 천재적 기질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캐릭터의 튜링의 모습을 베네딕트는 완전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 튜링은 자신을 찾아 온 조안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보이며 눈물을 보입니다. 이는 평범하지 않았던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한이 섞여 있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조안은 당신이 평범하지 않아서 세상은 더 나아졌다고 합니다. 이는 세상이 튜링에게 해줄 말을 조안이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튜링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전쟁 중의 공로를 인정받고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세상이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심신이 쇠약해질 때까지 끝까지 자신의 연구를 놓지 않았던 튜링은 결국 41살의 나이에 독이 든 사과를 깨물고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비운의 천재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앨런 튜링은 그가 이루어 낸 성과보다는 동성애자라는 그의 성적 정체성으로 인해 사회적 고립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을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과하지 않은 감정 연기로 과거의 앨런 튜링을 우리에게 완벽하게 보여 주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
비가 오는 런던의 어느 날. 형사들이 앨런 튜링의 저택을 급습하고, 주방에서 청산가리를 수습하던 튜링(베네딕트 컴버배치 분)을 체포합니다. 그리고 그를 취조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런던은 나치 독일의 공습이 시작됩니다. 독일 공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어린이들은 지방으로 피신 보내고 시민들은 지하 벙커 생활을 하는 모습이 화면에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때, 캠브리지 대학에서 천재 연구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튜링은 영국 정보부(SIS)의 부름을 받고 셔우드에 위치한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의 암호병 학교에 소집됩니다. 독일군의 암호기계인 에니그마의 해독을 담당하는 임무가 주어집니다.
어렸을 적부터 독특한 사고방식으로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튜링은 여기서도 다른 요원들과 여전히 물과 기름 같은 관계를 이어갑니다. 그는 이들과는 별도로 독자적으로 에니그마의 해독에 집중합니다. 결국 이를 해결하려면 복잡한 기계가 필요성을 깨닫고 관련 기계 제작에 착수합니다.
엄청난 금액이 요구되는 이 기계 제작은 번번히 SIS 지휘부의 거절을 당합니다. 또한 그의 연구를 백안시하는 동료들과의 마찰도 계속됩니다. 이런저런 방해로 연구에 아무런 진척이 보이지 않자 튜링은 런던으로 가는 다른 요원에게 총리실에 편지를 배달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편지 역시 무시당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로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에게 받아 들여졌고, 튜링은 하루아침에 에니그마 해독팀의 팀장으로 임명됩니다.팀장이 된 튜링은 팀에서 쓸모없다고 판단한 언어학자 동료 두 명을 즉시 해고하고 신규 채용에 나섭니다.
튜링은 1차로 어려운 십자낱말 퍼즐을 신문에 게재하여 여기서 통과된 자들에게 시험을 치르게 하여 채용을 진행합니다. 이 때 자기 자신도 8분이 걸리는 어려운 문제를 5분 34초만에 뚝딱 풀어내는 똑똑한 여성 조안 클라크(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채용됩니다.
새로운 팀원들과 고액의 자금이 들어가는 기계의 제작도 착착 진행되었으나 막상 에니그마의 해독은 그리 만만치가 않은 숙제였습니다. 이러한 진전이 없는 연구 진행에 상부의 인내심은 폭발하면서 상관(찰스 댄스 분)은 한달이라는 말미를 주고, 더 이상 진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기계를 부셔버리고 팀도 해체하겠다는 경고를 합니다.
* 튜링의 암호해독기
설상가상으로 앨런이 의지하는 클라크가 결혼도 안하고 그럴려면 집으로 돌아오라는 부모님 때문에 떠나야겠다는 얘기를 합니다. 앨런은 배우자가 있으면 괜찮지 않느냐며 그 자리에서 구리로 반지를 만들어 청혼합니다. 약식으로 약혼한 후 튜링은 연구에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하고 여느 때와 같이 술집에서 한잔하던 앨런은 우연히 해독에 관한 힌트를 얻습니다.
결국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성공한 앨런은 당장 이 정보를 상부에 알리자는 팀원들에게 독일군이 이런 해독 사실을 알게 되면 안 된다고 앨런은 해독 정보에 관한 보고를 금지합니다. 친형이 해군으로 근무하기 때문에 정보로 입수한 독일군 잠수함의 공격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한 요원의 눈물 어린 요청도 냉정하게 거절합니다.
* 에니그마
그 이후 아주 중요한 정보만 독일군이 들키지 않게 이용하겠다는 영국 정보부에 의해 해독 자료는 요긴하게 쓰이기 시작합니다. 이에 따라 필연적으로 당해도 되는 피해와 당해선 안되는 피해를 들키지 않도록 교묘하고 냉정하게 계산하면서 캐낸 정보를 이용합니다. 결국 영국과 연합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다시 영화는 처음 장면으로 돌아옵니다. 오랜만에 튜링을 찾아온 조안. 튜링은 당시 일종의 대형 컴퓨터인 콜로서스를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튜링의 동성애 상대방인 19세 청년이 그가 없을 때 튜링의 집에서 절도를 벌이게 되고 튜링은 이 사건으로 동성애자임이 드러납니다. 더구나 당시 소련 스파이였던 킴 필비 사건의 여파로 튜링 역시 소련의 스파이가 아니냐는 추잡한 누명까지 뒤집어 쓰게 됩니다.
* 콜로서스
튜링은 연구를 중단할 수 없어 감옥에 가는 대신 호르몬 주사를 맞는 방안을 선택합니다. 그는 이 사실을 흐느끼면서 조안에게 고백하게 됩니다. 조안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튜링을 달래보지만 이미 심신이 피폐해진 튜링은 공황상태까지 보이며 폐인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조안이 돌아간 뒤 튜링은 슬픈 얼굴로 개발 중인 컴퓨터인 크리스토퍼가 있는 방의 불을 끄고, 튜링은 청산가리가 주사된 사과를 베어 물고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 암호해독 팀원들과...
[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의 아버지, 튜링의 비극적인 삶 ]
2011년 5월 25일,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영국 의회 연설 중에 뉴턴과 다윈, 그리고 앨런 튜링을 영국의 대표 과학자로 꼽았습니다. 그만큼 앨런 튜링은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자였고,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면서 전쟁을 일찍 끝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인정되고 있습니다. 전쟁이 조금 더 진행되었다면 수백만 명의 목숨이 추가로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동성애자들이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세상이 되었지만 당시 동성애자로써 그는 사회의 지탄을 받고 쓸쓸히 독이 든 사과를 씹으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제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따라가 봅니다.
*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천재
앨런 튜링의 부모는 원래 영국령 식민지 인도에서 그를 가집니다. 그러나 자식만큼은 영국에서 키우려는 마음에서 영국으로 돌아와 1912년 6월 23일 런던에서 앨런을 낳습니다. 그러나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아직 근무가 끝나지 않아 어머니와 함께 다시 인도로 건너갔고, 앨런은 형 존과 함께 친척인 퇴역 대령의 집에 맡겨졌습니다. 그 뒤로 부모는 인도와 영국을 오고 갔지만 1916년부터는 어머니가 영국으로 돌아와 두 아들을 키웁니다.
* 마라톤광 튜링
튜링은 어릴 때부터 수학부문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학창시절에는 지저분한 외모에 말을 더듬고 영어와 라틴어를 몹시 싫어하던 외곬의 괴짜로 자랍니다. 그는 평생을 맞춤법과 글쓰기로 고생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왼쪽이 어디인지 확인하려고 왼쪽 엄지에다 빨간색 점을 칠해두기도 한 괴짜였습니다.
수학에서 뛰어난 역량을 지닌 그는 미적분에 대한 초보적 지식도 없이 어렵다는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내서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또한 난해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단순히 이해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인슈타인의 운동법칙을 독자적으로 추론해내기도 했습니다.
14살 때 도싯의 셔본 공립학교에 들어간 튜링은 총파업으로 도시의 교통이 마비되자 장장 1백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는 집념과 끈기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항상 자기만의 고집스런 생각으로 교사들을 곤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전형적인 천재의 모습의 한단면입니다.
15살 때는 수학적 재능이 빼어난 크리스토퍼 모컴이라는 친구와 친하게 지냅니다.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둘은 힘을 합쳐 엄청나게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기로 결심합니다. 그런데 2년 뒤 모컴이 폐결핵으로 숨지자 튜링은 깊이 상실감에 빠집니다.
* 학창시절 크리스토퍼 모컴(왼쪽)과...영화에서
이때부터 튜링은 필생의 과제에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지능을 기계에 넣어두는 방법을 고안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컴의 뇌에 들어 있던 모든 것을 후세에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죠.
*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진학, <튜링 기계>를 만들다
튜링은 18살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킹스 칼리지에 입학해서 수학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수치해석을 비롯해서 확률론과 통계학, 수이론, 군론에 특히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1935년부터는 대학원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2년 뒤 <계산 가능한 수와 결정문제의 응용에 관하여 (On Computable Numbers, with an Application to the Entscheidungsproblem)>라는 뛰어난 논문을 발표해서 학계에 충격을 안겨줍니다.
이 논문에서 <튜링기계>라 불리는 가상의 연산 기계 아이디어를 선보였습니다. 컴퓨터의 기본 구상이었던 셈이지요. 읽기와 쓰기, 제어 센터,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모든 계산 가능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이 튜링의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컴퓨터는 바로 이런 튜링의 보편만능기계를 그대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
예를 들어 튜링기계에 내장된 테이프는 메모리칩으로, 테이프를 읽고 쓰는 장치는 입출력 장치로, 작동 규칙표는 중앙처리장치(CPU)로 발전했습니다. 만일 실행시키고 싶은 계산이 있으면 그것의 작동 규칙표(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메모리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면 기계는 소프트웨어의 규정대로 일을 수행해 나갔습니다.
이 논문이 계기가 되어 튜링은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으로 초청받아 장학금을 받으며 연구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알론조 처치 교수 밑에서 공부했고, 1938년에 기존의 튜링기계를 보강한 하이퍼계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강의를 맡아달라는 대학 측의 제안을 뿌리치고 영국으로 귀국했습니다.
* 정부암호학교와 에니그마
* 암호학교
튜링은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지 하루 만인 1939년 9월 4일 런던 북쪽의 블레츨리 파크에 위치한 ‘정부암호학교’의 암호해독반 수학팀장으로 스카우트되었습니다. 그의 천재적 두뇌와 튜링기계의 구상, 그리고 그처럼 한 가지 일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 독일군의 암호 체계를 알아내는 데 적격일 거라는 판단에서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난해한 암호 체계로 손꼽히는 독일군의 에니그마(그리스어로 수수께끼)는 타자기처럼 사용하는 암호기였습니다. 타자기 안에 설치해둔 회전체로 인해 입력한 철자 대신 다른 철자가 타이핑되어 나오는 방식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회전체가 3개였지만 나중에는 8개로 늘어났습니다.
이런 다중 회전체 시스템으로 인해 타이핑되어 나오는 경우의 수는 백만 가지가 넘었습니다. 게다가 매일 회전체 위치도 바뀌었기 때문에 24시간 안에 암호문을 해독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초창기 블레츨리 파크에서는 암호문을 푸는 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 에니그마
그런데 침몰한 독일 잠수함에서 암호책이 입수되면서 그것을 토대로 암호학교에서 수많은 계산기들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어졌습니다. 무한한 수학적 상상력과 치밀한 계산,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한 직관력이 총동원되었습니다. 튜링은 시끌벅적한 암호학교 안에서 이방인처럼 지냈습니다.
일에만 파묻힌 채 조직 내 규칙이나 법규는 깡그리 무시했습니다. 또 자기보다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향한 경멸감과 군대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법적으로 동성애가 금지된 시절이었음에도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발설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 튜링이 고안한 기계들이 블레츨리 파크에 설치되었습니다. 동료들은 그것을 <봄베(bombe, 고압 기체를 저장하는 강철용기를 일컫는 독일어)>라 불렀습니다. 튜링은 개인적으로 학창시절 절친한 친구 이름인 크리스토퍼라고 불렀습니다. 봄베 하나는 전기로 연결된 12개의 원통형 연산기로 이루어져 있었고, 24시간 가동되면서 독일 무전 내용들 가운데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철자들을 걸러냈습니다.
* 튜링과 암호해독기
봄베의 수가 15개로 늘어나면서 연산 속도는 획기적으로 빨라졌고, 에니그마가 양산해내는 엄청난 경우의 수도 다음 두 가지 방식으로 확 줄어들었습니다.
첫째, 에니그마에서 사용되지 않는 세 철자를 배제했습니다. 즉 원래 허용되지 않은 진짜 철자 하나를 포함해서 오타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좌우 두 철자도 에니그마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E’라는 철자가 배제되면 자동으로 좌우의 ‘W’와 ‘R’도 함께 제외되었습니다.
* 에니그마의 내부
둘째, 독일군의 암호 체계가 매일 바뀌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어제 알아낸 것은 하루가 지나면 무조건 무시해 버렸습니다. 이로써 가능한 조합의 수는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영국군이 독일 잠수함의 위치와 공격 계획을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에는 튜링의 바로 이 암호해독반의 공이 컸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고전적 방식으로 암호문 해독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철자들을 모아 군대 용어 중에서 가장 자주 쓰는 단어들과 일치시켰습니다. 이렇게 어느 정도 예상 답안지가 나오면 그것을 독일군에서 내보내는 일기예보와 비교했습니다.
독일 해군은 아침 여섯 시가 되면 정확하게 그날의 날씨를 일선 부대에 타전했는데, 날씨와 폭풍, 비, 파도 같은 단어들은 유추하기가 쉬웠습니다. 특히 암호화된 단어와 실제 단어의 철자 수는 늘 똑같았기 때문에 해독 작업은 한결 쉬었습니다.
조속한 시일내에 결과를 내놓으라는 암호학교에 대한 영국 정부의 다그침은 1943년 3월 1~20일 사이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만큼 전황이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다에서 독일 잠수함들의 활약은 눈부셨습니다. 독일 잠수함들은 이 3주 동안 무려 108척의 선박을 침몰시켰습니다. 상선을 호송하던 전함도 21척이 파괴되었습니다.
* 에니그마를 사용하고 있는 독일군
반면에 적의 잠수함은 1척밖에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월 21일부터 전세가 급변했습니다. 격침된 연합국 선박의 수는 현저히 줄어든 반면 연합국에 의해 침몰된 독일 잠수함의 수는 크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히틀러는 사실상 대서양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여러 원인들도 작용했겠지만, 튜링의 암호해독반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입니다.
튜링은 암호를 해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한 시간으로 단축시켰고, 나중에는 단 몇 분간으로 확 줄였습니다. 이로써 영국 함대사령부는 독일 잠수함의 위치와 공격 계획을 불을 보듯 훤히 꿰뚫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암호의 누출을 적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독일 잠수함들을 너무 빨리 공격하지 않는 데 신경을 써야 할 판이 되어 버렸습니다.
독일군이 이를 눈치 채면 즉각 암호 체계를 바꾸어버릴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블레츨리 파크 팀의 활약상은 전후에도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영국 정부가 가장 은밀하게 수행한 이 비밀작전을 전쟁이 끝난 뒤에도 묻어 두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 튜링테스트(이미테이션 게임)
* 맨체스터 대학교 튜링관
전쟁이 끝난 후 튜링은 국립물리학연구소에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팀장으로 일하다가 1948년에 맨체스터 대학의 컴퓨터연구소 부소장에 임명됩니다. 이제 그의 관심은 인공지능에 집중되었습니다. 도대체 인간의 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그 기계에 룰렛과 같은 무작위적 우연 체계를 도입하면 인간적 사고의 변덕스러움과 비슷한 것이 만들어질까? 등등
1950년 튜링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한 실험을 제안했습니다. 즉 <튜링테스트> 혹은 <이미테이션 게임>이라 불리는 유명한 실험인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로 보이지 않는 방 세 개에 인간 두 명과 컴퓨터 한 대를 넣어둡니다. 그 중 한 명이 실험 팀장을 맡습니다. 팀장이 텔렉스로 다른 두 방에 질문을 보냅니다. 그러면 같은 방식으로 답변이 돌아옵니다. 이때 팀장이 어떤 것이 인간이 보낸 것이고 어떤 것이 컴퓨터의 것인지 가려내지 못하거나, 컴퓨터를 인간으로 간주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이것은 ‘사고하는 컴퓨터’라 부를 만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튜링도 1950년 당시 수준으로는 이런 컴퓨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까지는 작업 처리 속도와 저장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스스로 배우고, 스스로 프로그램을 바꾸는 컴퓨터가 나오리라 예언했습니다. 대단한 예측이었습니다. 튜링은 이런 컴퓨터의 제작에 전력으로 매달렸습니다.
특히 삶을 얼마 남겨놓지 않는 시점에서 여기에 거의 광적으로 집착했습니다. 언젠가 <튜링테스트>에서 인간이 웃음거리가 될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951년 튜링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왕립학회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삶이 그에게 부여한 마지막 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그의 급격한 추락이 시작되었습니다.
* 동성애자 튜링, 독이 든 사과
* 튜링을 위로하고 있는 조안...영화에서
동성애자였던 튜링은 길거리의 19세 청년을 우연히 만나 동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이 범죄 집단과 어울린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습니다. 주말에 청년을 혼자 두고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집안이 온통 다 털려버렸습니다. 그는 즉시 경찰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청년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순진하게도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그대로 불어 버렸습니다.
자유로운 지식인들과 어울리던 습관대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을 내뱉었던 겁니다. 그것은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철부지 짓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성문란 혐의로 고소당했고, 법원으로부터 화학적 거세를 선고받았습니다. 영국 정부도 튜링을 컴퓨터연구소 부소장직에서 그를 해임했습니다. 이로써 튜링은 컴퓨터 개발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됩니다.
이후 1년 동안 여성호르몬을 복용하면서 그는 거의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나자 그의 삶은 반년밖에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1954년 6월 7일 튜링은 42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사과에다 독약을 주사한 뒤 동화 속의 백설공주처럼 사과를 깨문 것입니다.
그는 월트 디즈니의 백설공주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백설공주와는 달리 더 이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도 그의 죽음을 설명해 줄 만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조국을 위기에서 구하고, 현대 컴퓨터공학에 초석을 놓은 인물치고는 너무도 쓸쓸하고 허무한 죽음이었습니다. 튜링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일을 했는지는 1974년까지 극히 일부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 콜로서스, 오늘날 컴퓨터의 원조
* 컴퓨터공학의 아버지
튜링은 컴퓨터공학과 정보공학의 기본 이론을 대부분 다 만든 컴퓨터 과학의 이론적 아버지였습니다. 비록 오랜 세월 명성이 묻혀 있었지만, 20여 년 전부터 새롭게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은 튜링 탄생 100주년으로 세계적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고 있고, 학술지 <네이처>는 튜링을 표지모델로 내세워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미국 계산기학회에서는 1966년부터 튜링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로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튜링상을 수여합니다. 흔히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상입니다.
* 2012년 런던올림픽 성화와 맨체스터 대학내 그의 동상
그리고 이른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에게는 뢰브너 상이 수여됩니다. 일부에서는 애플컴퓨터사의 로고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도 튜링을 추모하는 뜻에서 나왔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애플사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런 해석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컴퓨터 분야에서 그의 공이 막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입니다.
* 애플 로고(초기)
* 현재
2000년 이후 세계적으로 동성애자에 대한 인권 의식이 개선되면서 2009년 영국 정부 차원에서 그의 부당한 죽음에 대하여 정식으로 사과하게 됩니다. 2013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여왕의 특별 사면령으로 외설죄가 무죄로 처리되고 공식 복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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