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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계사년 7월 (1593년 7월)
597
7월 초1일 (계축) 맑다. [양력 7월 28일]
598
인종(仁宗)의 제삿날이다.
599
밤기운이 몹시 서늘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600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도 놓이지 않아 홀로 봉 창 아래에 앉아 있으니,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난다.
601
선전관이 내려 왔다고 들었는데, 초저녁에 임금의 분부(宥旨)를 가지고 왔다.
602
7월 초2일 (갑인) 맑다. [양력 7월 29일]
603
날이 늦어서야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배를 타고 선전관(류형)을 함께 대접하였다. 점심을 먹고나서 헤어져 돌아갔다.
604
해질 무렵에 김득룡(金得龍)이 와서 진양이 불리하다고 전했다. 놀라고 염려됨을 이길 길 없다. 그러나 그럴리 만무하다. 이건 반드시 어떤 미친 놈이 잘못 전한 말일 것이다.
605
초저녁에 원연 ∙ 원식(元埴)이 와서 군사에 관한 극단적인 말을 하니, 참으로 우습다.
606
7월 3일 (을묘) 맑다. [양력 7월 30일]
607
적선 몇 척이 견내량을 넘어오고, 한편으론 뭍으로도 나오고 있으니 통분하다.
608
우리 배들이 바다로 나가 이들을 쫓으니, (적들은) 도망쳐 버려 도로 물러나와 잤다.
609
7월 4일 (병진) 맑다. [양력 7월 31일]
610
흉악한 적 수만여 명이 죽 벌여 서서 기세를 올리니 참으로 통분하다.
611
저녁에 걸망포(巨乙望浦)로 물러나 진을 치고 잤다.
612
7월 5일 (정사) 맑다. [양력 8월 1일]
613
새벽에 척후병이 와서 보고하는 내용에,
614
"적선 열 여 척이 견내량을 넘어온다"
615
고 했다. 그래서 여러 배들이 한꺼번에 출항 하여 견내량에 이르니, 적선은 허겁지겁 달아났다.
616
거제땅 적도(赤島)에는 말만 있고 사람은 없으므로 싣고 왔다.
617
저녁나절에 변존서(卞存緖)가 본영으로 갔다. 또 진양이 함락되었다는 보고가 광양에서 왔다. 두치(豆恥)의 복병한 곳에서 성응지(成應祉)와 이승서(李承緖)가 보낸 것이다.
618
저녁에 도로 걸망포(巨乙望浦)에 이르러 진을 치고 밤을 지냈다.
619
7월 6일 (무오) 맑다. [양력 8월 2일]
620
아침에 방답첨사(李純信)이 와서 보고, 소비포권관(李英男)도 와서 봤다.
621
한산도에서 배를 끌고 오는 일로 중위장이 여러 장수들을 데리고 나갔다.
622
공방(工房) 곽언수(郭彦壽)가 행재소에서 들어 왔는데, 도승지 심희수(沈喜壽)와 지사 윤자신(尹自新)과 좌의정 윤두수(尹斗壽)의 답장도 왔고, 윤기헌(尹耆憲)도 안부를 보내어 왔고, 승정원 소식도 아울러 왔다. 이들을 보니, 탄식할 일들만 많다.
623
흥양현감이 군량을 싣고 왔다.
624
7월 7일 (기미) 맑다. [양력 8월 3일]
625
순천부사 ∙ 가리포첨사 ∙ 광양현감이 와서 보고는 군사일을 의논했다.
626
각각 가볍고 날랜 배 열다섯 척을 뽑아 견내량 등지로 가서 탐색하러 위장(衛將)이 거느리고 나갔더니, 왜적의 종적이 없다고 했다.
627
거제에서 사로잡혔던 한 사람을 얻어 와서 왜적의 소행을 꼼꼼히 물으니,
628
"흉적들이 우리 수군의 위세를 보고 달아나려고 하였다"
629
고 하고, 또
630
"진양이 이미 함락되었으니, 전라도까지 넘어 것이다"
631
라고 했다. 이 말은 속인 것이다.
632
우수사(이억기)가 내 배로 왔기에 같이 이야기하였다.
633
7월 8일 (경신) 맑다. [양력 8월 4일]
634
남해로 왕래하는 사람 조붕(趙鵬)에게서 듣건대,
635
"적이 광양을 친다하여, 광양 사람들이 벌써 고을 관청과 창고를 불질렀다"
636
고 한다. 해괴함을 이길 길 없다.
637
순천부사(권준) ∙ 광양현감(어영담)을 곧 보내려고 하다가, 길가다가 들은 소문을 믿을 수 없으므로, 이들을 머무르게 하고, 사도군관 김붕만(金鵬萬)을 알아 오도록 보냈다.
638
7월 9일 (신유) 맑다. [양력 8월 5일]
639
남해현령이 또 와서 전하기를,
640
"광양 ∙ 순천이 이미 다 타버렸다"
641
고 했다. 그래서 광양현감(어영담) ∙ 순천부사(권준)와 송희립(宋希立) ∙ 김득룡(金得龍) ∙ 정사립(鄭思立) 등을 떠나 보내 놓고, 이설(李渫)은 어제 먼저 보냈다. 듣자하니, 뼈속까지 아파 와 말을 못하겠다.
642
우수사(이억기) 및 경상우수사(원균)과 함께 일을 논의했다.
643
이 날 밤 바다에 달은 밝고,
644
잔 물결하나 일지 않네.
645
물과 하늘이 한 빛인데,
646
서늘한 바람이 건듯 불구나.
647
홀로 뱃전에 앉았으니,
648
온갖 근심이 가슴을 치민다.
649
밤 한시에 본영 탐후선이 들어와서 적정을 알리는데,
650
"실은 왜적 들이 아니고, 영남 피난민들이 왜놈옷으로 가장하고 광양으로 마구 들어가서 여염집을 불질렀다"
651
고 했다. 그러니 이건 기쁘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양이 함락되었다는 것도 헛소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양의 일만은 이럴리 만무하다. 닭이 벌써 운다.
652
7월 10일 (임술) 맑다. [양력 8월 6일]
653
김붕만(金鵬萬)이 두치(豆恥)에서 와서 하는 말이,
654
"광양의 왜적들은 사실이다고 했다. 다만, 왜적 백 여 명이 도탄(陶灘)에서 건너와 이미 광양을 침범하였다고 했다. 놈들의 한 짓을 보면 총통도 한발 쏜 일이 없다"
655
고 했다. 왜놈이 포를 한 발도 쏘지 않을리가 전혀 없다.
656
경상우수사와 본도 우수사가 왔다. 원연(元 )도 왔다.
657
저녁에 오수(吳水)가 거제의 가삼도(가조도)에서 와서 하는 말이,
658
"적선이 안팎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659
고 했다. 또 말하기를,
660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나온 사람이 말하기를,적도들이 무수히 창원 등지로 가더라"
661
고 했다. 그러나 남들이 하는 말이라 믿을 것이 못된다.
662
초저녁에 한산도 끝에 있는 세포(細浦)로 진을 옮겼다.
663
7월 11일 (계해) 맑다. [양력 8월 7일]
664
아침에 이상록(李詳祿)은 명령을 어긴 일로 먼저 나가고, 여러 장수들은 전령내릴 일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보고하여 말하기를,
665
"적선 열 여 척이 견내량에서 내려온다"
666
고 하므로, 닻을 올려 바다로 나가니, 적선 대여섯 척이 벌써 진 앞에 이르기에, 그대로 추격하니 달아나 재빨리 도로 넘어가버렸다.
667
오후 네 시쯤에 걸망포(巨乙望浦)로 돌아와서 물을 길었다.
668
사도첨사(김완)가 되돌아 와서 하는 말이,
669
"두치(豆恥) 나루의 적의 일은 헛소문이요, 광양 사람들이 왜놈옷으로 갈아 입고 저희들끼리 서로 장난한 짓이다"
670
고 하니, 순천과 낙안은 벌써 결딴 다났다고 했다. 이토록 통분함을 이길길 없다.
671
어두울 무렵 오수성(吳壽成)이 광양에서 와서 보고하는데,
672
"광양의 적변은 모두 진주와 그 고을 사람들이 흉계를 짜낸 것이었다. 고을의 곳간은 쓸쓸하고 마을은 텅 비어 종일 돌아 다녀봐야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다고 한다. 순천이 가장 심하고, 낙안이 그 다음 간다"
673
고 했다. 새벽에 우수사의 배로 갔더니 수사 원균(元均)과 직장(直長) 원연(元 ) 등이 벌써 먼저 와 있었다. 군사 일을 의논하다가 헤어졌다.
674
7월 12일 (갑자) 맑다. [양력 8월 8일]
675
식사하기도 전에 울(蔚)과 송두남(宋斗男)과 오수성(吳壽成)이 돌아갔다.
676
저녁나절에 가리포첨사 ∙ 낙안을 청해 와서 일을 의논하고 같이 점심을 먹고나서 돌아 갔다.
677
가리포의 군량 진무가 와서 전하는 말이,
678
"사량 앞바다에 와서 묵을 때, 왜적들이 우리나라 옷으로 변장하고, 우리 나라의 작은 배를 타고 마구 들어와 포를 쏘며, 약탈해 가고자 한다."
679
고 했다. 그래서 곧장 각각 가볍고 날랜 배 세 척을 합하여 아홉 척을 보내어 달려가 잡아 오도록 단단히 명령하여 보냈다. 또 각각 배 세 척씩을 정하여 착량으로 보내어 요새를 방어하고 오라고 했다.
680
고목이 왔다. 또 광양 일은 헛소문이라고 했다.
681
7월 13일 (을축) 맑다. [양력 8월 9일]
682
저녁나절에 본영 탐후선이 들어와서,
683
"광양 ∙ 두치 등에는 적의 꼬라지가 없다"
684
고 했다. 흥양현감이 들어오고 우수사 영감도 들어왔다.
685
순천 거북함의 격군으로서 경상도 사람인 종 태수(太守)가 달아나다가 잡혀 사형에 처했다.
686
저녁나절에 가리포첨사가 와서 보고 흥양현감(배흥립)이 들어 와서, 두치의 잘못된 거짓 보고와 장흥부사 류희선(柳希先)의 겁내던 일을 전했다. 또말하기를,
687
"그 고을(고흥군 남양면) 창고의 곡식을 남김없이 나누어 주고, 게포(蟹浦)에 흰콩과 중간콩을 아울러 마흔(되)을 보냈다"
688
고 한다. 또 행주대첩을 전했다.
689
초저녁에 우수사가 청하기에 그의 배로 가 봤더니, 가리포 영감이 몇 가지 먹음직한 음식물을 차려 놓았다. 밤 세시나 되어서야 헤어 졌다.
690
7월 14일 (병인) 맑더니 저녁나절에 비가 조금 내렸다. [양력 8월 10일]
691
진을 한산도 둘포(豆乙浦:통영시 한산면 두억리 개미목)로 옮겼다. 비는 땅의 먼지를 적실 뿐이다.
692
몸이 몹시 불편하여 온종일 신음했다.
693
순천부사(권준)가 들어와서 본부의 일을 말로 나타내지를 못하였다. 같이 점심을 먹고 그대로 머물렀다.
694
진을 한산도 둘포(豆乙浦)로 옮겼다.
695
7월 15일 (정미) 맑게 개었다. [양력 8월 11일]
696
저녁나절에 사량의 수색선 ∙ 여도만호 김인영(金仁英) ∙ 순천의 김대복(金大福)이 들어왔다.
697
가을 기운이 바다로 들어오니,
698
나그네 회포가 어지럽고.
699
홀로 봉창 아래에 앉았으니,
700
마음이 몹시도 번거롭네.
701
달이 뱃전을 비치니,
702
정신이 맑아져 잠 못이루는데,
703
어느 덧 닭이 우는구나.
704
7월 16일 (무진) 아침에 맑다가 저녁나절에 구름이 끼었다. [양력 8월 12일]
705
저녁에 소나기가 와서 농사에 흡족하다. 몸이 몹시 불편하다.
706
7월 17일 (기사) 비가 내렸다. [양력 8월 13일]
707
몸이 대단히 불편하다.
708
광양현감(어영담)이 왔다.
709
7월 18일 (경오) 맑다. [양력 8월 14일]
710
몸이 불편하여 앉았다 누웠다 했다.
711
정사립(鄭思立)이 돌아왔다.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봤다.
712
신경황(申景潢)이 두치에서 와서 적의 헛소문임을 전하였다.
713
7월 19일 (신미) 맑다. [양력 8월 15일]
714
이경복(李景福)이 병마사에게 갈 편지를 가지고 나갔다.
715
순천부사와 이영남(李英男)이 와서,
716
"진주 ∙ 하동 ∙ 사천 ∙ 고성 등지의 적 들이 이미 도망해 버리고 없다"
717
고 전했다.
718
저녁에 진주에서 피 살된 장병들의 명부를 광양현감(어영담)이, 보내왔는데, 이를 보니, 참으로 비참하고 통탄함을 이길 길이 없다.
719
7월 20일 (임신) 맑다. [양력 8월 16일]
720
탐후선이 본영에서 들어왔는데, 병마사의 편지 및 공문과 명나라 장수의 통첩이 왔다.
721
그 통첩의 사연을 보니, 참으로 괴상하다. 두치의 적이 명나라 군사에게 몰리어 달아났다고 하니,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다.
722
명나라 사람들이 이와 같으니 다른 사람들이야 말해 본들 무엇하랴! 통탄할 일이다.
723
충청수사(정걸) ∙ 순천부사(권준) ∙ 방답첨사(이순신) ∙ 광양현감(어영담) ∙ 발포만호(황정록) ∙ 남해현령(기효근) 등이 와서 봤다.
724
조카 이해와 윤소인(尹素人)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725
7월 21일 (계유) 맑다. [양력 8월 17일]
726
경상우수사(원균)와 충청수사 정걸(丁傑)이 함께 와서 적을 토벌하는 일을 의논하는데, 원수사의 하는 말은 극히 흉칙하고 말할 수 없는 흉계이다.
727
이러하고서도 일을 같이 하고 있으니, 뒷걱정이 없을까?
728
그의 아우 원연도 뒤따라 와서 군량을 얻어서 갔다.
729
저녁에 흥양도 왔다. 땅거미질 때에 돌아왔다.
730
초저녁에 오수(吳水) 등이 거제 망보는 곳에서 와서 보고하기를,
731
"영등포의 적선이 아직도 머물면서 제 맘대로 횡포를 부린다"
732
고 했다.
733
7월 22일 (갑술) 맑다. [양력 8월 18일]
734
오수(吳水)가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온 사람을 싣고 올 일로 나갔다.
735
아들 울(蔚)이 들어와서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자세히 말한다. 아들 염(苒)의 병이 차도가 있다.
736
7월 23일 (을해) 맑다. [양력 8월 19일]
737
울(蔚)이 돌아갔다.
738
충청수사 정걸(丁傑)을 불러 와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739
7월 24일 (병자) 맑다. [양력 8월 20일]
740
순천부사 ∙ 광양현감 ∙ 흥양현감이 왔다.
741
저녁에 방답첨사와 이응화(李應華)가 와서 봤다.
742
초저녁에 오수(吳水)가 되돌아 와서
743
"적이 물러갔다"
744
고 했는데, 장문포(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적들은 여전하다.
745
아들녀석 울(蔚)이 본영에 들어갔다고 했다.
746
7월 25일 (정축) 맑다. [양력 8월 21일]
747
우수사(이억기)가 와서 이야기했다.
748
조붕(趙鵬)도 와서 체찰사의 공문이 영남수사(원균)에게 왔는데, 문책하는 말이 많이 있더라고 했다.
749
7월 26일 (무인) 맑다. [양력 22일]
750
순천부사 ∙ 광양현감 ∙ 방답첨사가 왔다.
751
우수사도 같이 이야기하고, 가리포첨사도 왔다.
752
7월 27일 (기묘) 맑다. [양력 8월 23일]
753
우수사의 우후(이정충)가 본영에서 와서 우도의 사정을 전하는데, 놀랄만한 일들이 많았다.
754
체찰사에게 갈 편지와 공문을 썼다.
755
경상우수사의 영리가 체찰사에게 갈 서류 초안을 가지고 와서 보고 했다.
756
7월 28일 (경진) 맑다. [양력 8월 24일]
757
아침에 체찰사에게 가는 편지를 고쳤다.
758
경상우수사(원균) 및 충청수사(정걸)과 본도우수사(이억기)가 함께 와서 약속했다.
759
그러니 수사 원균(元均)의 나쁜 마음과 간악한 속임수는 아주 형편이 없다.
760
정여흥(鄭汝興)이 공문과 편지를 가지고 체찰사 앞으로 갔다.
761
순천부사 ∙ 광양현감이 와서 보고 곧 돌아갔다.
762
사도 첨사(김완)가 복병했을 때에 잡은 보자기 열 명이 왜놈옷으로 변장하고 하는 짓거리가 매우 꼼꼼하다 하여 잡아다가 추궁을 하니,
763
"경상우수사(원균)가 시킨 일이다."
764
고 했다. 곤장만 쳐서 놓아 줬다.
765
7월 29일 (신사) 맑다. [양력 8월 25일]
766
새벽 꿈에 사내 아이를 얻었다. 사로잡혔던 사내 아이를 얻을 꿈이다.
767
순천부사 ∙ 광양현감 ∙ 사도첨사 ∙ 흥양현감 ∙ 방답첨사를 불러 와서 이야기했다. 흥양현감은 학질을 앓아서 곧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768
방답첨사는 복병할 일로 돌아 갔다.
769
본영 탐후인이 와서 아들 염(苒)의 병이 차도가 없다고 하니 몹시 걱정이다.
770
저녁에 보성군수(김득광) ∙ 소비포권관(이영남) ∙ 낙안군수(신호)가 들어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