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듣는 말 가운데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바로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분쟁이 강하고 다툼이 심한 그런 상황속에 나오는 말중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바로 나 잃을 것이 없다는 그 멘트이다. 스스로 잃을 것이 없으니 사생결단하고 붙겠다는 그런 의지의 발로 아니겠는가.
나는 어릴적부터 조그마한 싸움을 자주했다. 신체가 작으니 주위 아이들이 자주 싸움을 걸어왔다. 져주는 것도 일시적이고 그 다음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싸움은 계속됐다. 처음에는 많이 맞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싸움의 결과 나는 항상 승자였다. 덩치도 주먹도 강하지 않은 내가 싸움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죽기살기로 덤비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가장 작은 나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장소가 없었다. 상대는 그래도 나보다는 한 수 위였다. 덩치도 주먹 크기도 나보다는 항상 한 수 위였다. 그래서 나를 쉽게 보고 싸움을 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잃을 것이 없었다. 주위에 몇몇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싸움은 시작되고 맞아 터지면 그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상대가 반대로 얻어 맞으면 그 상대는 엄청난 심적 상처를 입는 것이다. 그래서 몇년이 지난뒤 그 다음에는 나에게 싸움을 거는 인간이 없어졌다. 작고 보잘것 없지만 그런 상대를 대상으로 싸움을 해봐야 얻을 것이 없다는 그런 명료한 의미의 결과였을 것이다.그렇다. 바로 세상 싸움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 잃을 것이 없다는 그 말 아니겠는가.
이런 말이 지금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에서 자주 들린다. 한국은 32개국 출전국 가운데 가장 하위 등급을 받는 나라이다. 송흥민이나 김민재 황희찬 그리고 이강인 등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한국 자체가 호전적이지 않고 덩치로나 피지컬으로나 뒤지고 축구의 역사가 짧은 그런 나라라고 축구 강국들은 판단하고 있는 듯 하다. 하기야 택권도 그리고 양궁의 강국인 한국에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의 선수들을 다소 가볍게 보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시선을 무례하다고 볼 필요도 없다. 한국은 축구의 변방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대항해시절 식민주의적 나라와 피식민주의적 나라로 구분해 볼 필요가 있다. 요상한 일이지만 식민제국 그리고 그들의 식민지들은 모두 축구의 강국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그리고 독일. 그들과 비슷한 나라 일본. 그리고 그들이 식민지로 삼았던 나라들. 바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칠레 등등. 그리고 아프리카의 카메룬 가나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등등 아니겠는가.
그렇다. 지금 월드컵은 식민 지배국과 피지배국의 전쟁이다. 그래서 처절하다. 그냥 축구인데 왜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경기에서 이기고 짐은 분명한 사실이다. 태어나 겪는 일이 싸움인데 어찌 이길 수만 있겠는가. 오히려 지는 것이 더 많은 것이 현실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 싸움에서 존재하는 뚜렷한 사실이 있다. 싸움에는 반드시 그 현장에 존재하는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냥 심심풀이로 싸움하는 편과 죽기 살기로 하는 편의 입장은 너무도 극명하게 갈린다. 그리고 죽고 살기로 나오는 그 편에는 반드시 있는 정신이 있다. 바로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가. 아는가. 싸움에서 얻어 터져도 바로 일어나 또 대들고 그리고 또 맞아 쓰러져도 끝까지 덤비는 그런 모습. 그리고 결국은 또 일어나 대드는 그 상대에게 아이구 내가 졌네... 너한테는 못 당하겠네라는 항복을 얻어내는 그런 상황 생각이 생각나시는가. 싸움 나아가 전쟁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한국을 관광삼아 나온 나라라 평가했다지. 그런데 한국은 잃을 것이 없다. 16강 진출로 다 이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배가 고프다. 한국 축구가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 내일 (2022년 12월 6일 새벽 4시~6시) 결판 날 것이다. 하지만 브라질의 표현을 인용하면 한국은 그냥 놀러온 나라이고 상대 브라질은 우승하지 않으면 쪽 팔리는 그런 나라이다.그리고 한국은 잃을 것이 없는 나라이다. 벤투 감독을 영입해 올 때 조건이 한국을 월드컵 본선 진출 그리고 16강 진출까지였다. 벤투감독은 지금(2022년 12월 5일 현재) 감독직에서 그만 둬도 뭐랄 사람 아무도 없다. 그는 그가 체결한 계약조건을 충실히 이뤄낸 히딩크 이후 유일한 한국 축구 감독이다. 하지만 그가 울부짖었다. "한국은 잃을 것이 없지만 아직 한국은 배가 너무 고프다"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그 말. 바로 잃을 것이 없다는 것에 전율한다. 바로 싸움꾼이 하는 그말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내뱉었다. 브라질과의 경기는 대학생과 초등학생의 싸움과 비교된다. 하지만 잃을 것이 없는 편과 지면 모든 것을 잃는 편과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을 이른바 '할 수 있다 내지는 가능성, 또는 꿈은 이뤄진다'라고 표현한다. 한국이 비록 브라질에 지더라도 한국의 도전은 결코 무모하지 않고 멋진 승부였다고 축구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2022년 12월 5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