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1.27 23:00 | 수정 : 2014.01.28 09:38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재판이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2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43차 공판에선 이 의원에 대한 검찰 신문과 변호인 반대 신문이 이뤄졌다. 이 의원은 이날 공안사범들이 전범(典範)처럼 따르는 재판 전술을 그대로 썼다.
검찰 신문엔 “국가정보원의 용공조작”이라며 진술을 거부했고, 변호인 신문 때 조목조목 혐의를 반박했다. “아바이순대, 평양·함흥 냉면 좋아하면 북한을 좋아하는 것이냐”는 말도 했다. 자신의 허점이 노출될 수 있는 검찰 신문에는 묵비권(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변호인 반대 신문에만 응하는 재판 전술이다.
이 의원에 대한 검찰 신문에 묵비권 행사
그런 방향을 정한 이 의원 변호인단은 무려 25명이다. 이들은 그동안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 증거의 증거능력을 전면 부인하는 등 대립각을 세웠다. 재판 과정에서 이 의원과 호흡을 같이 한 그들의 면면을 살펴봤더니 대부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으로 과거 간첩단 사건 등 공안사범이나 시국사건을 주로 담당했던 변호인들이었다. 그 점에서 이 의원의 묵비권 행사는 이미 예견돼 있었다고 법조계 인사들은 말한다.
이 의원 변호인 중 일부는 KAL858 테러 사건이 조작됐다고 말하거나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대표적 인물이 이정희 통진당 대표 남편인 심재환 변호사와 장경욱 변호사다. 심 변호사는 2003년 11월 당시 KAL858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소속으로 MBC PD 수첩에 출연해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라며 조작설을 주장했다. 그는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북한 공작원,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을 짓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 과거사진실위 등이 KAL기 사건 조작설을 조사했지만 “근거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KAL기 조작설 제기한 심재환 변호사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발언 한 장경욱 변호사
심 변호사는 2012년 9월 이정희 대표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던 날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면허취소가 돼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또 작년 9월 24일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탈북여성에게 “하루 일당은 얼마씩 받냐. 어느 단체에서 왔느냐”고 발언해 탈북단체의 거센 반발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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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총선 때 함께 투표장에 나선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와 심재환 변호사.
그는 이석기 의원과는 인연이 깊다. 2002년 민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이 의원을 변호한 데 이어 2004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박진 의원이 국감자료에서 이 의원을 간첩 명단에 포함하자, 명예가 훼손됐다며 소송을 제기해 5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27일 이 의원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을 진행한 것도 그였다.그는 2003년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었던 송두율씨의 국가보안법 사건, 2006년 386간첩단 사건인 일심회 사건, 2011년 왕재산 간첩단 사건 등 주요 국보법 사건 때마다 변호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2012년에는 천안함 침몰사건 관계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변호도 맡았다.심 변호사의 부인인 이정희 대표 역시 이 의원의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려놨다. 이 대표는 이 의원의 영장실질심사와 초기 공판에 모습을 나타냈지만, 그 이후엔 법정에 거의 나오지 않았다. 사시 38회인 이 대표는 11살 위인 심 변호사와 사법연수원에서 같은 반이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자서전에서 “남편은 용접공 생활로 시작해 노동운동 투옥을 거쳐 서른다섯에 법 공부를 시작했다”고 적었다.이정희 통진당 대표도 변호인단에 이름 올려‘무단방북’, ‘나꼼수 사건’ 등 시국사건 단골 변호사가 대부분민변 소속인 장경욱 변호사는 왕재산 간첩 사건 당시 핵심 증인이던 C 교수를 찾아가 "조사받게 되면 묵비권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해, 변호인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장본인이다. 작년 말 독일 포츠담에서 북한 대남 공작 부서인 통일전선부 산하기관 인물들과 함께 참석한 세미나에서 "한반도 불안은 미국과 남한 탓"이라는 취지로 말해 고발당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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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장경욱 변호사. 김칠준 변호사. 최병모 변호사.
변호인 중 그동안 법정에서 변론을 주도한 것은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와 법무법인 정평의 심재환 변호사, 민변 회장을 지낸 최병모 변호사다. 나머지 변호인들은 잠깐 잠깐 발언하는 데 그쳤다.김칠준 변호사는 내란 음모 사건 제보자인 이모씨에 대한 반대신문을 주도했다. 대입 검정고시 출신으로 성대 법대를 졸업한 김 변호사는 행정고시와 사법시험을 함께 합격했다. 후보자 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과 시국선언 교사의 징계를 유보한 혐의로 기소된 김상곤 경기교육감의 직무유기 사건을 변호했다. 참여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과 국가인권위 사무총장(2007년~2009년)을 지냈다. 경기도 교육청 고문변호사,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경기복지시민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주로 경기 지역에서 활동해왔다.법무법인 양재의 최병모 변호사는 2002년 민변 회장을 지냈다. 그는 1999년 ‘옷로비 사건’ 특별검사를 맡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청구 사건에서 노 전 대통령의 대리인 중 한명이었다. 2010년엔 간첩죄로 기소돼 1959년 사형이 집행된 조봉암 전 진보당 당수에 대한 재심사건 변론을 맡았다.이 의원 변호인단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천낙붕 변호사는 민변 통일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0년 무단으로 북한을 방문한 혐의로 구속된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의 변론을 맡았다. 최근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의 무단 방북을 도운 혐으로 기소된 원진욱 범민련 사무처장을 변호했다.민변 사무차장,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인 법무법인 동화의 이재정 변호사는 최근 ‘나꼼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았다. 나꼼수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 조카 살인 사건에 동생인 박지만씨가 연루됐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기자가 기소된 사건이다. 이 변호사는 현직 육군 대위의 이명박 대통령 모욕죄 사건을 맡기도 했다.이 의원 변호인단은 인원이 많아 재판 초반엔 재판부가 일일이 “법무법인 ○○, △△△ 변호사님 나오셨습니까”라며 ‘출석 체크’를 해야할 정도였다. 나중엔 법정에 나오는 숫자가 줄었지만, 공판 초기 20여명의 변호인이 한꺼번에 법정에 나왔던 적도 있다. 당시 변호인 좌석이 부족해 피고인의 호송을 담당하는 교정 공무원 자리까지 변호인들이 차지하면서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간이 철제 의자가 동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