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 근처의 시너스에서 영화 '밀양'을 보았다.
평일의 심야시간인데도 연인들이 많아서인지 약간의 낮설음을 감수하면서...
"<용서> 내가 어떻게 용서를 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이창동 감독은 사람을 참 불편하게 한다
'박하사탕'에서는 나 돌아갈래 하면서 울게하더니
'푸른 물고기'에서는 막둥이를 사진 한장만으로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더니
'오아시스'에서는 영화보는 내내 사람을 불편하게 했었다.
'밀양'은 사람을 가라앉게 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삶의 끝에서 우는 여자,
깊은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라고는 전혀없는 삶에서 종찬(송강호)이가 있어서 그래도 다행인가?
이런 사랑도 사랑인가?
절망은 늘 희망보다 익숙하다.
密陽, 시크린 선샤인 (Secret sun-shine), 숨어있는 빛, 마음의 빛,
한문을 풀어보니 이런거다~ 빽빽할 밀, 별 양,
아~멋있다 숨어있는 빛이라니, 있기는 분명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찾아내야 하는 그 밝음의 세상...
이청준의 소설,'벌레 이야기'를 이창동은 꾸밈없이 담아내려고 노력한 듯 하다.
그의 영화에서처럼 여주인공들을 세상의 삶에서 동떨어진 인물로 묘사하지 않고 삶 속에 녹아있게 했다.
낳은 자식에게 가해진 죽임이라는 극단의 고통과 시련,상처와 용서의 문제,
사람에게 구원이 있는 것일까?
가능한 것일까?
도대체 구원이란 게 무어냐? 그런 이야기다.
주인공 여인 (신애)이 자기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려고 찾아갔는데, 그는 이미 하나님에게
용서 받았다고 이야기 한다.
아니, 당한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하나님이 용서한다는 것이 있을법한 일이냐,
이때부터 신애의 방황은 시작되고 이야기는 이어진다.
구원( 용서)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대개 모든 것을 다 용서하고 순결해져서 세상을 극복해 떠나는 것이 구원 이라고 말하는데
이렇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
스테인드 글라스에 빛이 들면 그 무늬의 음영에 따라 밝은 부분은 밝은 대로
어두운 부분은 어두운 대로 다채롭게 형상이 드러나듯이 구원은 빛과 그늘이
얼룩져 있는 그 상태로의 것은 아닐까?
우리안에서의 용서가 이루어질 적에 하나님의 구원은 섭리되는 것은 아닐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견해다.
이 글을 읽는이들과 이 문제로 논쟁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의 다원화, 그 넓음으로 이 영화를 본다면 영화의 엔딩자막이 나올 적에 '이게 뭐야?'
라는 경조부박한 표현은 하지 않을 게다.
이창동의 어느 영화처럼 불편하게 줄거리는 이어진다.
하지만 라스트 신에서 나는 구원을 보았다.
집 앞마당에서 신애가 앉아 머리를 자른다. 머리가락이 표표히 바람에 실려 날아다니다가
마당 한구석 수챗 구멍위로 쓸려가 내려 앉는다,
그 수챗 구멍위에 희미한 한줄기 햇빛이 서린다.
구원은 저 공중에 있는 게 아니라 생활의 밑바닥 수채 속에, 모든 중오와 분노와
용서와 후회가 엉클어진 그 안에 조용히 숨어 들어 서려 있는 것, 그 라스트 신에서
나는 'Secret sun-shine' 을 보았다.
1999년도 겨울, 영화 '접속'으로 스타로서 자리매김을 한 그녀를 난 가극'눈물의 여왕'에서 만날 수 있었다.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에 잠시 동안의 한국나들이에서 뮤지컬이라 하기엔 2%가 부족한 '눈물의 여왕'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정치용교수의 부탁을 받고 배우들의 발성연습과 편곡을 맡았었다
나는 '접속'이란 영화를 보지 못했고 '전도연'을 알지 못했다 .
그래서 편했을까? 그녀는 소탈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였다.
개인적으로 연예인들을 특별한 감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도 함께 삶을 공존해가는 사람인 것을.....
그녀가 유명세를 탓다고 해서 그녀를 칭찬하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바라 본 전도연은 바로 밀양에서 그리고,그녀가 보여 준 영화에서의 화려하지 않은 삶,
바로 그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이다.
'밀양'에서 장식이라곤 전혀없는 맨얼굴의 그녀는 내게서 발성을 배우던 맨얼굴의 평범한 바로 그녀였다
바로 그녀가 몇천원 짜리 신발과 발목을 덮는 흰 양말,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진검승부한 그녀가 마땅하게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쾌거다. 아무래도 우리는 지금 션샤인으로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찡그리게 하는 사람들과 사건들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 지금, 희망을 나누자.
2007.6.6
cantabile
첫댓글 그래요,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함께 고민해야 하구요. 죄는 나에게 지었는데 죄를 지은 사람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하고 그 죄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니... 저도 겪어 보면 큰 절망에 빠질 것 같아요. 이번 시험 끝나면 보려고 생각하고 있는 영화인데... 감사해요. 미리 주인공 얼굴도 보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