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 10. 8. 오늘의 양식 : 교회의 윤리적 부패 - 안락사와 여자 사역자 / 옛 신앙
표어 : 오직 예수. 재림 신앙. 땅끝 선교
삶의 터전에서 드리는 예배
1. 예배의 부름 ----------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를 드리는 데 방해가 없도록 합시다. ------------
2. 찬양과 경배 ---------- 200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547 나 같은 죄인까지도
202 하나님 아버지 주신 책은 --------------------------------------
3. 신 앙 고 백 ---------- 사 도 신 경--------------------------------------------------------
4. 찬 송 ---------- 86 내가 늘 의지하는 예수 ----------------------------------------
5. 기 도 ---------- 주의 나라를 위하여
주의 동력자를 위하여
예배자를 위하여 ---------------------------------------------------
6. 하나님 말씀 ---------- 디모데전서 2: 11-14,
11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7. 설 교 ---------- 교회의 윤리적 부패 - 안락사와 여자 사역자 / 옛 신앙
3] 안락사
오늘날 세속 사회에는 안락사를 허용하는 움직임이 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1997년 9월호에 의하면, 네델란드는 가망 없는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부터 만성적 환자를 위한 안락사로, 신체적 질병을 위한 안락사로부터 심리적 고통을 위한 안락사로, 그리고 자발적 안락사로부터 비자발적 안락사로 움직여왔다.
'죽음의 의사'(Dr. Death)라는 별명이 있는 잭 케보키안(Jack Kevorkian)은 적어도 45건의 '자살'을 도왔다. 그중 많은 이들은 최종적으로 아픈 상태가 아니었고 몇 경우는 질병의 아무런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의료 윤리지(Journal of Medical Ethics) 1999년 2월호의 한 보고서는 네델란드에서 남의 도움을 받은 자살의 다섯 사건 중 하나는 환자의 동의 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였다(World, 13 March 1999).
그 조사는 또한 1995년에 네델란드의 안락사(安樂死)의 거의 3분의 2가 법이 요구하는 대로 보고되지 않았다고 나타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이 교회 안에도 들어오고 있다. 1991년 미국 연합 그리스도의 교회(UCC)는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하고 자살을 허용하는 최초의 대 교단이 되게 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1999년 미국의 프린스톤 대학교의 생명 윤리학 분야의 교수직에 임명된 피터 싱어(Peter Singer)에 의하면, 갓난아기는 돼지와 소와 개보다 생명에 대한 더 큰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는 척추 장애나 혈우병(血友病) 등을 가진 갓난아기들을 죽일 권리를 환자들이나 의사들에게 주기를 원한다(New Americans, 27 September 1999).
리더스 다이제스트 1999년 10월호에 의하면, 그는 "불구가 된 어린 아기를 죽이는 것은 한 인간을 죽이는 것과 도덕적으로 동등하지 않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안락사는 일종의 살인 행위이다. 인간의 생명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 그것은 자신이나 타인에 의해 고의적으로 손상되어서는 안 된다. 남의 생명에 대한 고의적 손상은 분명히 살인의 죄에 해당한다.
4] 여자 목사, 여자 장로
증거
오늘날 교회들 안에는 세상의 남녀 평등주의 사상이 많이 들어와 있고 이것은 특히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예들은 많지만, 최근의 몇 가지 예들을 들어본다.
미국 커버넌트 신학교 변증학 교수요 프란시스 쉐퍼 연구소 소장인 제람바즈 교수는, 1997년 라브리 청년대학생 수양회에서 '세상 속의 일그러진 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면서,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에 관해 구분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돕는 자로서의 여성이라는 성경 말씀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의미가 아니고 동등한 위치의 남성과 여성으로서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남녀는 동등한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 S. News & World Report) 1998년 8월 10일자는 "하와에 의한 성경"이라는 특별 기사에서 "여성들은 약 80개의 기독교단들에서 목사직에 그리고 보수파와 개혁파와 재건파 유대교에서 랍비직에 용납된다. 여성들은 신학교 프로그램들 안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3분의 1에 이른다"고 하였다.
미국 연방 노동청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자신을 '성직자'라고 묘사하는 여성들의 숫자는 1983년과 1996년 사이에 27,134명 증가하였다. 1983년에는 그 숫자가 16,408명이었으나, 1996년까지 여성 '성직자'의 숫자는 43,542명으로 늘었다. 이것은 여성들이 미국의 모든 성직자들의 12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7년에, 229개의 북미 신학대학원 학생들의 30퍼센트는 여성이었는데, 그것은 1972년의 10퍼센트와 비교할 때 크게 증가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개신교 감독교회 신학교와 디스트릭에 있는 연합 감리교회의 웨슬리 신학교는 학생들의 절반이 여성이다.
1994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총회는 701대 612로 여성 안수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예장 통합측은 대한기독교감리회(기감측)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와 더불어 한국에서 자유주의적 교회들의 노선을 다시 한번 더 드러내었다.
비평
그러나,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에 대한 주장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세속사회의 영향이다. 이런 생각이 복음주의적 신학교 안에서 가르쳐지고 기독청년들에게 퍼진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현상이다.
여성 안수을 주장하는 자들의 근거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1)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여성 사역자들이 있었다는 점(예를 들어, 여 선지자 드보라, 미리암, 전도자 빌립의 딸들, 브리스길라, 뵈뵈 등),
(2)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는 갈라디아서 3: 28의 말씀은 남녀평등의 원리를 가르친다는 점,
(3) 세속사회도 남녀평등을 주장하는데 하물며 교회가 시대 조류를 역행할 수 있는가라는 주장,
(4) 교회 내의 여성들의 은사를 활용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위의 주장들에 대하여 우리는 그러한 생각들이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가? 라고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믿고 행동해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역사상 변칙적으로 허용하신 것과 교회의 정식적 규범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밝히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성경을 믿는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여왔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인간적, 시대적 생각을 버리고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사람의 창조 기사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시고 그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돕는 자]'을 지으셨다(창 2: 18).
이 기사가 분명히 보이는 바는 하나님께서 여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하여 남자를 만드신 것이 아니고,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를 위하여 여자를 만드셨다는 점이다.
여기에 남녀의 역할의 구분이 있다. 여자는 남자를 위하며 돕는 역할을 하도록 창조된 것이다. 물론 이것이 남편이 아내를 마음대로 지배하고 학대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둘은 한 몸이요 참된 사랑의 관계이다.
남편은 아내를 아끼고 사랑해야 하며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그 둘의 관계는 한 편이 다른 편을 위하며 순종하는 관계인 것이다.
신약성경은 결코 여자 목사와 여자 장로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가르치는 디모데전서 2: 11-14과 고린도전서 14: 34-37은 여자 목사직과 여자 장로직을 금하는 다섯 가지의 이유들을 밝히 제시하였다.
디모데전서 2: 11-14, 11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이 구절은 여자의 가르치는 일(목사직)과 다스리는 일(장로직)을 명백히 금하고 있다.
이렇게 금하는 이유들은 두 가지이다 :
① 창조의 질서 때문이다.
창세기 2: 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helper)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자는 남자의 협력자로 창조되었다.
② 여자의 범죄에 대한 징벌 때문이다.
인류의 타락시 아담은 여자가 선악과를 줌으로 그것을 먹고 범죄하였다.
창세기 3: 6,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러므로 이제 여자는 또다시 나서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제약을 당한다는 뜻이다. 이 두 이유는 다 어떤 시대적, 환경적 요인들이 아니고, 역사적, 불변적 사실들이다.
고린도전서 14: 34-37,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너희의 아내들]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여기에서도 여자들이 교회 앞에 나서서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허락지 않고 있다.
그 이유들은
① 율법의 말씀이기 때문이다(34절, "율법에 이른 바와 같이").
어떤 말씀을 가리키는가? 예를 들면,
창세기 2: 18,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창세기 3: 16,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창세기 18: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② 주의 명령이기 때문이다(37절, "주의 명령인 줄 알라").
에베소서 5: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베드로전서 3: 1, 5-6, "아내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 . .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사도들(바울과 베드로 등)의 교훈은 곧 주의 교훈이다.
③ 교회의 보편적 규율이기 때문이다(34절,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위의 두 구절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교훈을 옛 시대의 사고방식과 풍습에 제약을 받은 사도의 인간적 말로 보는 것은, 거기에 제시된 다섯 가지의 이유들의 정당성을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사도들의 글인 신약성경의 신적 권위에 대항하는 큰 오류요 죄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 15,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박형룡 박사는, 여성에 대한 이러한 규례가 2천 년 전의 한 지방 교회의 풍습이 아니고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밝히 강조하였다.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신학자들이 인용하는 다음 성경 구절들은 위의 성경 진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1: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갈라디아서 3: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구절들은 직분에 있어서의 남녀평등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은혜와 구원의 복을 받음에 있어서 남녀가 동등하다는 뜻이다.
신약의 만인 제사장 진리도 가정과 교회 안에서 남녀 역할의 차등 진리와 배치되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신약시대의 복음 사역에 여자들의 역할이 컸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누가복음 8: 2, 3,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또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저희[예수님과 12제자들]를 섬기더라."
로마서 16장에는 뵈뵈, 브리스길라, 마리아 등 복음을 위해 많이 수고한 여자들의 이름이 언급된다. 그뿐 아니라, 여자에게는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특별한 사역이 있다.
디모데전서 2: 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이 구절은 여자가 해산을 통해 그의 낮은 지위가 회복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훌륭한 남자의 배후에는 대체로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
8. 기 도 ---------- 받은 은혜와 귀한 사명을 통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가 되기 위하여 ------------------------------
9. 찬 송 ---------- 580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
10. 폐 회 ---------- 주기도문 ----------------------------------------------------------
|
|

첫댓글 내 계명을 지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잠 7:2).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그러나 언덕에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여유롭고 평화롭습니다..
내게 미움이 다가 왔을때 미움 안으로 몸을 담그지 마십시오..
내게 걱정이 다가왔을 때 긴 한숨에 스스로를 무너뜨리지 마십시오..
미움과 걱정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지나가 버리는 것일 뿐입니다..
미움 걱정 떨쳐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본향을 향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