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109화 장농속에 갇힌 목사 (籠禁牧使)
옛날에 원주에 유명한 기생이 있어 원주로 부임하는 목사(牧使)들마다 기생의 수완에 몸이 녹아 업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였다.
한때 이를 심히 못마땅해하는 중앙의 관리가 있었는데, 여자에게 정신을 빼앗기는 바보라고 무시하고 멸시하였다.
마침내 이 관리가 원주목사로 부임해 가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벼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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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가 원주에 도착하기 전에 이방이 그 기생을 불러 꾀를 묻자 기생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사또를 몸뚱이 채로 옷장에 넣어 관아에 바치겠다" 고 큰 소리쳤다.
관리가 원주에 도착하고 며칠이 지나자 기생은 일부러 말을 원주관아 내에 풀어 화단과 마당 근처의 꽃과 화초를 다 뜯어먹게 만들었다.
화가 난 신임 원주목사가 말 주인을 데려오라고 하자 기생이 과부인 척 소복을 입고 나타났다.
목사의 추궁에 과부로 분장한 기생은 남편이 집에 없어 말의 관리가 소홀했음을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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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못 설움에 복받친 듯 눈물을 찍어누르는 데 목사가 내려다보니 그 자태가 절색인지라 한눈에 반했지만 짐짓 아닌 척 하였다.
그리고 과부의 사정을 감안하여 죄를 묻지 않고 방면하였다.
며칠이 지나 과부로 분장한 기생이 은혜에 보답코자 한다는 명분으로 주안(酒案)을 갖추어 원주목사의 처소를 방문하자 목사는 과부와 밤늦도록 수작하다가 마침내 정을 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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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밤마다 몰래 정을 통하더니 하루는 여인이 목사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기를 청하였다.
마침내 목사는 남의 눈을 피해 밤중에 몰래 과부의 집에 들었다.
그리고 옷을 벗고 여인과 즐기는데 바깥에서 갑자기 우렁찬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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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는 지금까지 베풀어 준 자신을 배신한 여자를 용서치 않겠다며 화난 음성으로 고래고래 소리치니 놀란 목사는 피할 곳을 찾다가 창졸간에 여인의 장농 속으로 피했다.
방문을 성큼 열고 들어선 사내는 자신을 능욕한 여인을 벌주겠다며 그 증거로 장농을 들고 가 관아에서 죄를 묻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기생은 거짓으로 그것만은 안 된다고 매달렸다.
그러나 사내가 강제로 옷장을 짊어지고 나가 원주 관아의 앞마당에 내려놓고 장문을 여니
장농 속에서 발가벗은 원주목사가 나오매 후일 모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  <고금소총 –110화 강남까지 가려면 (江南欲行) 시골에 사는 한 노파가 귀엽게 기른 외동딸을 혼인시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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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딸은 지금까지 느껴 보지 못했던 그 황홀하고 신비스러운 감동에 젖어 가벼운 신음 소리도 내면서 어찌 할 줄을 몰라했다.
한참 그러다가 딸이 신랑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서방님! 너무 좋네요. 이런 감동이라면 곧바로 쉬지 않고 멀리 강남(江南)땅 까지도 단숨에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들은 신랑은 이렇게 응수하는 것이었다.
"아니 여보 ! 강남이 얼마나 먼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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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까지 쉬지 않고 가려면 배가 고파 어쩌려고?
아마 그 먼 강남까지 가려면 배가 많이 고플걸?" 딸은 신음 소리를 멈추고는 이렇게 받았다.
"서방님! 배고픈 것은 걱정 없습니다.
아주 좋은 수가 있으니까요.
우리 어머니에게 광주리에 밥을 담아 이고 뒤따라오시라고 하면 되거든요."
이렇게 속삭이는 딸의 정감이 서린 목소리를 듣고 노파는 매우 흐뭇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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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이튿날 아침 노파가 딸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평소와는 달리 밥을 두 그릇 먹는 것이었다.
이를 본 딸이 놀라면서, "엄마 ! 왜 갑자기 밥을 두 그릇씩이나 먹어?
배아프면 어쩌려고 그래? 난 몰라 엄마!"
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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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노파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네가 신랑하고 누워서 쉬지 않고 강남까지 갈 때 말이다.
밥 광주리를 이고 뒤 따라가려면 힘에 부쳐 어찌 견디겠니?
그래서 미리 밥을 두 그릇씩 먹어 두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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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버선 (佛陀布靴)
어떤 늙은 중이 농부의 아내와 눈이 맞아서 수시로 농부가 없는 틈에 찾아와서는 재미를 보곤 하였다.
어느 날 농부가 늦게 돌아올 줄로 알고, 둘이서 이불 속에서 열기를 뿜고 있는 데,
뜻밖에도 농부가 들어와서 문을 꽝꽝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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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문 열어! 뭣하고 있는 거야?"
중은 눈앞에 캄캄하여 허둥지둥 옷을 찾는 데 아무리 찾아도 버선 한 짝이 없는지라 급한 대로
한쪽 버선만 신고 뒷문으로 빠져나가고 여편네는 눈을 비비며 문을 열였다.
"벌써부터 잤단 말야? 이봐 사내놈을 끌어들였지?"
농부는 구석구석 찾아보았으나 증거가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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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감기가 들었는지 추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일찍 드러누웠어요. 어서 들어와서 녹여줘요."
아내의 녹여달라는 말을 듣고 나니, 농부는 싫지 않아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무엇인가 발에 걸리는 것이 있어 잡아당겨 보니 낮선 버선 한 짝이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아내를 족치기에는 너무나 증거가 빈약했으므로 농부는 훗날을 위해서 몰래 감추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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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늙은 중이 농부의 집을 찾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스님 뭐 볼일이라도 계십니까 ?"
"그것을 돌려달라고 왔네." "그것이라뇨?
뭐 말입니까 ?" "시치미 떼지 말게. 부처님의 버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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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처가 아기를 원하기에 영험 있는 그것을 빌려준 것인 데 대엿새 되었으니까
이젠 아이가 들어섰을 게야. 어서 빨리 돌려주게나."
농부는 무거운 짐을 일시에 벗어 놓은 듯한 심정으로 기꺼이 버선을 스님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과연 열 달이 지나자 아내는 옥동자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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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112화
내 무슨 한이 있겠느냐? (吾何恨焉)
전라도 순창 땅 한 선비가 슬하에 다섯 살 난 딸 하나를 두었는데 매우 총명했다.
어느 날 선비 부부가 일을 치르는데 어린 딸이 깨어나 아버지의 양물(陽物)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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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무안해진 선비는 꼬리라며 얼버무렸다.
며칠 뒤 마구간에서 말의 양물(陽物)이 까닥까딱 움직이는 것을 보고 딸이 급히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아버지 꼬리가 왜 저기 달린 거야?”
"저건 말의 꼬리지, 아버지의 꼬리가 아니다.
네 아버지 꼬리가 저 말꼬리처럼 클작시면 내 무슨 한이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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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소총 –113화
성씨의 유래를 듣고 놀림을 멈추다. (聞姓由止戱弄)
어떤 마을에 정(鄭)씨와 명(明)씨가 이웃하여 살고 있었다.
순박한 농민들로서 다정하기 이를 데 없어 서로 욕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막에서 명씨가 정씨에게 이렇게 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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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봐! 당나귀 나 좀 타고 가자고 다리가 아파서 죽겠어."
"이런 빌어먹을 자식 보게, 형님을 몰라보고 버릇없이 주둥아리를 놀리다니 경을칠..."
정씨는 명씨를 마땅히 짐승으로 놀리지 못해 고작 욕설만 할뿐이었다.
"허허, 그 친구 입버릇 한 번 고약하군. 그것도 모두 고약한 성을 가졌기 때문인가? "
정씨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놀려줄 말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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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정씨는 지나가는 탁발승(托鉢僧)을 만나 어찌하면 좋을지 하소연을 하게되었다.
그러자 탁발승은, "지금 곧 명씨집으로 앞장서시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터이니..."
하므로 정씨는 뛸 듯이 기뻐 탁발승을 명씨집으로 안내하여 달려갔다.
이윽고 명씨가 정씨에게. "이 사람 당나귀 아닌가?
그래 어쩐일인가?" 하고 놀리므로 적당히 둘러대는데 곧 탁발승이 들어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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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씨는 심심하던 차에 불러들여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래 대사님의 성은 무엇이오 ?" 하고 물었다.
"출가한 탁발승에게 속세에서 쓰던 성이 무슨 상관 있겠습니까마는,
소승의 성은 말씀드리기가 심히 부끄러운 성입니다."
"아니, 무슨 성이기에 말씀하시기가 난처하다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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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쌍놈의 성이라도?" "그런 게 아니오라, 성의 내력이 좀 고약해서..."
"어서 그 내력 좀 들어봅시다." "실은 소승의 모친이 행실이 좋지 못해서 불공드린다고 절에 가서는 일정사 스님과 월정사 스님을 번갈아 가며 관계를 가졌더랍니다.
그래서 저를 낳게 되었다더군요. 그런데 어머니 자신도 내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할수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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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사의 일(日)과 월정사의(月)자를 따서 한데 어울려 명(明)가라는 성을 만들어 소승의 성으로 정했다고 하더이다."
탁발승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명(明)씨는 점점 얼굴이 창백해지고 숨소리를 씨근거렸다.
그 후로부터 명씨는 길에서나 주막에서 정씨를 만나도 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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